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35)화 (235/454)



〈 235화 〉61. 상대 평가 + 반가운 인연.(4)

브레나임 백작, 변경백으로 카일론 내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실세.
그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장군 상이었다.


잘 다듬은 수염과 깔끔하게 쳐낸 단발.
파스티나와 마찬가지로 갈색이되 노을을 연상하게 하는 머리 색에 푸른 눈.
청동색과 유사한 갑옷은 무광 처리가 됐는지 빛이 반사되거나 해서 눈이 부시게 하는 일은 없었다.


그가 바로 말트리우스 멜 브레나임.
한동안 자주 얼굴을 보게 될 이곳, 백작령의 주인 되시겠다.


거두절미하고 그는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이곳의 주변 지형을 파악하라 일러뒀다.
추후 군사 훈련, 행동 때도 동행하게 될 거라 이야기했는데….




“북부는 쉴 새가 없을 걸세.”



기대해도 좋다는 양 사나운 눈빛으로 활약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을 표현하는 그에게, 에드릭은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그 외에도 실질적인 후계자로 지목된 영주의 장자, 큰아들은 아직 만나볼 수 없었지만….



“이건 자존심, 체면의 문제로군.”



파스티나의 간단 설명에 에드릭은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든 제가 해결을 해버리면 백작 가문 입장에선 이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실리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가문이 유서 깊고 위치가 높을수록, 이런 체면이 천금보다 더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런 맥락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사실상 대강 부려먹다 보내면 백작 기준에선 몇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는 개척 군주 겸 부군 후보가 와도 해결 못 할 만큼 북부 상황이 썩 좋지 못하다.
둘째는 에드릭을 우군, 아군이라 생각지 않거나 사전에 어떤 언질을 받거나, 특정 누군가를 밀어준다 치면 그쪽에 대한 몇몇 이권을 포함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점.
셋째로는 어떤 식으로든 상황이 뭣 같으니 뭐라도 내놓으슈, 지원이든 뭐든 간에!
넷째는 안 그러면 우리 멋대로 행하겠다. 이미 그러고 있지만!

…유치하게 표현했지만 원래 힘겨루기, 주도권 싸움이란  막상 다 까놓고 보면 유치찬란한 싸움이다.

마치 애들의 자존심 싸움 같다고 할까.
특히 적을 대상으로 하는 외교며 정치는 그나마 그러려니 하는데, 아군들끼리 정치질 일삼는 건….



‘원래 만만한 쪽을 찔러대는 거지.’

남 탓도 적보단 아군이 쉽다.
왜? 만만하니까.


“그런  전부 고려해서 알아서 풀어헤쳐 가야겠죠.”
“계획은 있어?”
“오면서 문제점 몇 가지를 살펴는 봤는데… 제가 여기 얼마나 있게 될까요?”
“글쎄. 오래 내버려 둘 거 같진 않은데. 따로 정해진 기간은 없지만… 대충 한달 정도 아닐까 싶은데.”
“겨울 때보다는 봄 때가 초원 쪽 엘프들이 본격적으로 난장판을 펼친다고 들었습니다만….”

농한기(農閑期)인 이 시기엔 농사일이 제법 무른 편.

그래도 일이라는 게 만들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편이지만, 적어도 영주 입장에서 보면 그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자시고 할 일은 없는 시점인 건 확실했다.

농번기 마냥 바쁘기 그지없고, 설상가상 농사 따위는 알게 뭔가 싶은 초원 부족들 기준에선 그때가 작정하고 습격하고 들쑤셔대는 시기다 보니 정말로 전쟁과도 같은 시기는 봄, 여름, 가을.


…웃기지만 혹독한 겨울이 오히려 휴식기가 되는데, 그 휴식기가  도래한 시점에 이곳에 오게 된 거였다.


‘문제가 없어.’




달리 말하면, 문제며 여타 것들을 찾아서 개선 안 하면… 관광만 하다 호구처럼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그러니 군사 훈련이나 참가하라 그런  테지.


그리고 겨울이긴 해도 유목 깡패들이 안 쳐들어오는 건 또 아니고, 요새 넘어 와서 들쑤셔 대기 시작하면 이건 이것대로 대책이  서게 된단다.

애초에 말이 요새며 성벽을 넘을 수 없다 쳐도, 몸이 날렵한 엘프들이 주변을 휘젓고 다니면 그건 그것대로….


숙영지며 군사 훈련 시설 등이 이곳저곳에 널린 이유도 그런 맥락.




“심심하면 마주치니까 아마 왕도로 돌아가기 전에 몇 번은 보게 될 걸?”
“…그렇게 자주 침범해요?”
“와서 사내아이도 납치해가고, 식량도 도둑질해가기도 하니까.”
“…….”

사내보다 여성 쪽 권리가 압도적으로 드높은 초원 엘프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실상은 어떨지….


애초에 다프넬의 경우도 그쪽 출신 아니던가.
순진한 척 그래도 판만 깔리고 상황만 익숙해지면 여걸이 따로 없다.


“그래도 우리 에드릭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걸.”
“그냥   있는 걸 하는 거죠.”



파스티나가 과거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발전했는지에 대해 새삼 궁금한 듯 이런저런 과잉 기대를 표출해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온 이후부터 딱히 본사 쪽에서 지령이랄까, 이행에 대한 지침 같은 게 하나도  들어오네?

파라메라 대륙에서야 서국 회사 임원으로서 전제 지령, 목표치가 떨어져 거기에 맞게 부응했다 쳐도….

‘알아서 잘 하라는 건가?’


기다려도 별말 없는  보면 그게 맞는 것도 같고.

‘우선은….’




어그로  끌어볼까?
아니면 그냥 얌전히 있어?

마음 같아선 넋 놓고 가만히 있다가 적당히 즐기며 돌아가는  원하지만, 그렇게  시에 평가가 어떨지는… 음, 안 봐도 비디오겠지.

“우선은 영주님이 지시하신 걸 따르겠습니다. 여긴 엄연히 주인이 있는 영역인데, 제가 멋대로 나대면 그건 그것대로 예의에 어긋나는  같기도 하니.”
“그 또한 지당한 판단.”

파스티나는 어느 쪽이든 지켜볼 속셈인가 보다.
 누님도 무슨 꿍꿍이인지….
애초에 이게 우연인지 필연인지도 애매한 판에.

일전에 알던 그녀는 정치적 인간이라기보다는 투박하지만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댔는데, 지금은… 살짝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어제 도시를  소개해줬지? 아르세이유보단 규모도 작으니 하루면 충분히 다 돌고도 남을 거야.”




점심 경이긴 하나 이곳에선 점심, 중식을 따로 챙기지 않는다.
많은 국가, 각 지역들을 살펴봐도 중식을 거르는 게 보통이긴 하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날은 도시를 한 바퀴 돌며 안내를 받았는데, 생각해보니 파스티나가 직접 안내한 시점에 상당히 대우받고 있단 자각이 들었다.

영주가 자리를 비운 당시 영주 대행으로 작업을 이어온 이가 그녀 아니던가.

다른 의미로, 대리로서의 역할은 그렇다 쳐도, 주인이 왔을 시엔 자리를 비켜주는… 뭔가 입장이 조금 이상해 보였지만, 사정이 있겠거니 해서 특별히 캐묻지는 않았다.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해가 평소보다 빨리 저문 덕에, 다시금 영주성 내에 마련된 객실로 돌아온 에드릭은….

“쉽지 않겠네.”



배척까진 아니나 기대는 하되, 받쳐주거나 장려하진 않는다.
거기다 기간도 애매하다 보니, 뭐라 딱 까놓기도 그렇고.




“시장 쪽도 살펴보고… 그 외엔….”



계획을 대강 세워두긴 했지만 와서 직접 살피니 역시나, 새로이 계획을 수정하고, 재정립해야만 했다.


“세상 일  모른다니까.”

어쨌든 다음날은 도시를 나서서 숙영지, 외부에 마련된 병영 겸 훈련소를 겸하는 시설로 가게 될 테니, 조금 일찍 눈을 붙여두고자 했다.
아마 아침이라 해서 해가 하늘에  시점은 아닐 거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


달리 말하면 새벽 때에 일어나서 움직일 게 자명했기에, 늦잠 자지 않도록 일찍 눈을 붙이는 수밖에.


…쉽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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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상당했다.


가죽에다 목도리를 겸할 정도로 묵직한 털이 자리한 휘장 망토를 덩달아 착용하니 조금 살만 했지만….


‘귀가 얼겠네.’




아직 본격적인 겨울도 아닌데 이 정도 추위다.
정령체라 해서 추위에도 거뜬하고, 별 영향 안 받는 자연체는 아니다.
그나마  고통스럽지만, 한도를 넘으면 힘든 건 매한가지.


그래서 이 시기에 갑주는 보통 안에다 가죽이며 털을 덧입은 형태란다. 단순 복장에 쇠갑옷이라? 얼어 죽기 딱 좋다 했던가.


말을 타고 1시간 가량을 달렸을까.
해가 떠오르는 직후임에도 세상은 아직도 어둑어둑했다.

훈련소 겸 병영 부근은 횃불이 자리해 입구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는데, 병영이 마치 자그마한 성채를 연상하게 했다.


그렇더라도 건물에다 연병장 비슷한 게 딱 달린 게 고작.
그것도 평야 지대에 자리해서 이게 참… 뭐랄까.


‘위화감 쩌네.’

훈련에 임하는 병사들의 군기는 제법 삼엄했지만 다들 눈초리들이 칙칙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해는 된다.


 날씨에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훈련한다 치면, 누구라도 욕이 먼저 나오지.
에드릭도 군대를 다녀 와본 입장 아니던가.
근데 그런 거 아니어도, 상황이 거지 같다는 걸 공감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다만 이러한 거지 같은 걸, 매일 같이 경험하느냐, 이번만 겪느냐는 차이가 극과 극이지만.


그러나 윗선에선 그런 행태를 보곤 군기가 빠졌다, 당나라 군대다 뭐라 하겠지만… 웃기게도 당나라는 무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대 중원을 지배한 국가로 동아시아를 포함해 초원 지대까지 그 영역을 넓혀온 초강대국이었다.

우리나라 군대도 대충 당나라 군대다, 폐급이다 뭐라 하지만 세계 기준으로 군사력은 여전히 최상위를 웃돈단다.


어쨌든.


100명을 부리는 백인장에 위치한 이에게 안내받은 에드릭은 그와 함께 주변 순찰  지형 파악을 목적으로 동행하라는 명을 받아 이에 따르고자 했다.
당연하지만….

“흐음, 아랫지방 풋내기는 아닐 테고.”



소문이 안  건지, 의도적으로 무시한 건지, 세상 물정에 어두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백인장 되는 사내는 에드릭을 어디서 튀어나온 잡것인가 하는 듯한 표정으로 뚱한 태도로 일관했다.



“귀하신 분이라 하여 멋대로 구는 건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이게 마음에 안 드신다면….”
“비전문가가 전문가의 말을 따르는 건 당연한 거죠. 걱정 않으셔도  겁니다.”
“흠….”



속내야 어떻든 표면상으론 이렇게 말하는  맞지.
사실상 이 모든 게 길들이기, 그 외에도 몇몇 신경전, 주도권 잡기 위한… 아무튼 수작일 수도 있으니.

아무쪼록, 상상과는 다르지만 한편으론 그럴싸한 파견 근무가 시작됐다.
음, 근무가 맞나?
…아무렴 어떤가. 그게 그건데.
부디 별일만 없기를.


…라고 바라면 꼭 뭔가 일이 터지던데, 당장 큰 문제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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