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화 〉62. 혹한기 훈련 생각난다….
참 신기한 건 도심 주변보다 바깥, 외곽, 산중….
어쨌든 간에 외부는 가을이 도래한 시점에 이미 춥다는 말로 해결이 안 될 정도로 혹한이 밀려들곤 하는데, 그런 곳에서 하룻밤 머물라 하면… 아닌 말로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그렇다고 추위를 이겨낼 지혜며 도구가 충분히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천만다행인 건 빌리는 거긴 해도 외곽 근무… 순찰 및 정찰을 나서는 이들에겐 묵직하게 느껴지는 털 안감이 들어간 제복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에드릭도 이들과 동행하는 시점에 같은 부류로 배정돼 같은 복장과 같은 조건으로 부려지게 됐는데, 체력 및 제식 훈련 등으로 길들이기가 시작될 줄 알았으나, 애초에 제식 같은 게 존재하질 않은 곳이기도 했다.
제식 훈련의 중요성은 나폴레옹이 치밀하게 강조해오곤 했는데, 사실 이딴 걸 왜하는지 하는 이들은 그렇다 쳐도, 지켜보는 이들 기준에선 제식이 훌륭한 군대에 대해선 묘한 기대감을, 적군 입장에선 경계를 늦출 수가 없는 게, 군기가 흐트러졌냐, 아니냐의 척도를 제식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게 편하기도 하고.
원래 상대가 만만하면 무심코 선빵 날려 대는 법.
그러나 상대가 한 대 쳤다가 사단 날 것 같은 이라면, 알아서 분노 조절 장애가 치료되기도 하는데, 그게 헷갈리니 만날 때마다 칼부림을 해대며 시비 걸지 마라, 눈에 띄지 마라, 걸리면 죽여버리겠다 하고 이를 드러내곤 하는 거다.
일종에 짐승들이 영역 다툼에 민감한 태도를 보면 이해가 쉬울 거다.
영역을 침범하거나 침탈할 시,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드는 이유도 비슷한데, 인간의 영역 다툼도 큰 차이는 없었다.
“망할 바르잔들이 틈만 나면 이곳 주변을 기웃거리죠.”
바르잔은 바트리온 왕국을 격하 시켜 부르는 명칭인데, 이쪽 뜻으로 해석하면 바트리온 잡졸 새끼들이라 줄여서 부르는 격이다.
요새 성벽이 자리한 부근은 그렇다 쳐도, 성벽이 자리할 수 없는 산중, 산맥 부근이 중립지대, 초원 지대보다 훨씬 국지전을 비롯한 신경전이 더욱 격화되는 부근이란다.
“날이 추우면 제발 좀 안 기웃거려야 정상인데 오히려 더 기승이니.”
숙련된 베테랑 병사로 십인대를 이끄는 십인대장 파르솔은 십인대라 해도 나름 몸이 날렵하고 말귀를 잘 알아먹는 이들을 주축으로 꾸린 정예 병사들에 해당했다.
그래서인지 보통 병사가 아니라 수색병, 정찰병으로 불리는데… 털옷을 껴입은 덕에 덩치가 부풀려져서 그런지, 갈색 곰이라 불린단다.
“뿐만 아니라 사냥꾼들도 뭐 잡겠다고 영역까지 침범하는데, 이때가 제일 곤란하죠.”
민간인, 사냥꾼을 어찌 처분하고 처리하느냐는 제법 민감한 문제란다.
만약 한쪽에서 용서해줬는데, 그걸 기점으로 소문이 이상하게 번져 다른 사냥꾼들이 더 들락거린다? 사냥꾼인 척하고 적 첩보병이 기웃거린다면? 침범해 온다면?
이건 서로가 문제기에 결국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긴 했으나, 먹고 살기 어렵다며 수렵하고 채집해대며 사냥을 업으로 삼는 것들은 안 걸리면 그만하고 나대기 일쑤.
“…하이고.”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도 문제는 문제란다.
애초에 산맥 부근은 워낙 지세가 험하고 따로 길이 뚫린 것도 아닌지라 잠깐 방식하면 헤매기 일쑤고, 그러다 며칠을 헤맨 나머지 엄한 곳으로 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
“여기에 터를 두는 사냥꾼들이나 소수 인원들, 그 외에 의도적으로 사냥길을 형성할 부류들까지 뭐라 할 순 없지만, 적대국 쪽에서 자꾸 나대는 건 이야기가 틀리니까요.”
오전대 임에도 나무들이 워낙 울창해서 그런지 주변은 어두침침했다.
그렇다고 횃불을 들자니 시간대도 안 맞고, 여기서 불 피우면 몇 킬로미터 거리에서도 보인다 하는데, 이 말을 이해한다는 눈치를 보이자 파르솔은 무척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저희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 못 믿는 눈치던데….”
“저도 군이며 전쟁을 안 해본 건 아니니까요.”
“아, 맞다. 신대륙에서 위명을 떨치셨다고… 이거 저희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게 아닌가 모르겠군요.”
“신경 쓰지 마시길. 황무지, 사막 지대, 초원, 밀림, 평야… 전부 같을 순 없으니까요.”
매 순간 피가 와대고, 독충과 온갖 질병, 질환들이 심심찮으면 퍼지는 지대에서 평범한 병사며 기사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애초에 말을 끌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수풀이 울창한 밀림이며 산림 지대의 경우엔, 기병이란 병과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는 거고.
“신대륙에선 어떤 일들이 있으셨는지요? 이틀 정도 주변 살필 때, 쉬엄쉬엄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얼마든지요.”
보초 서보면 알겠지만, 혼자서 멍 때리는 거에 일가견이 있다거나 그런 쪽 취향이 있는 게 아니면 이게 상상 이상으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잡다한 소리라도 하기 마련이고,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 시간이라도 때우려고 온갖 발악을 해대는데… 그나마 이곳은 실질적으로 적들이 침범하는 주변이다 보니 시간 그 정도로 넋 놓고 있진 않겠지만, 이들이라 해서 항상 긴장하며 전시 체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그런 건 아닌 걸로 보였다.
‘사람 사는 곳이야 다 똑같지.’
전쟁이 빈번한 세계라 해서 농땡이며 어리버리를 안 까는 게 아니니깐.
그래도 몸을 움직이니 추위가 한결 가시긴 해도 멈춰서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에드릭이야 정령체인 덕에 체온 조절이며 땀 분비로 인한 부작용이 조금 덜한 편이지만, 평범한 이들 입장에선 땀을 흘린 시점에 잠자코 있으면 동사 당하기 아주 딱 좋았다.
여기서 눈발 좀 휘날리고, 소변 보다가 소변이 실시간으로 얼어만 붙는다면 시베리아가 따로 없겠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란다.
거기다가.
“한 번 먹어보시겠습니까?”
“…….”
그가 건넨 것은 새끼손가락보다 조금 작은 무언가.
이를 받은 에드릭은 허허하고 웃어 보였다.
“훌륭한 식량원이군요.”
“오, 샌님들은 그거 보면 기겁을 하는데… 특이하시네요.”
심지어 망설이지 않고 그걸 입안에 넣어 콰득 하고 씹어 먹는 걸 보곤 그들은 뭔지 모를 뿌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외지인, 외부인이 하나의 그룹, 모임, 집단에 속하기 위해선 최대한 그들과 친화적인 태도를 내비출 필요가 있다.
…벌레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같은 크기 소며 돼지고기에 비하면 수 배, 그 이상의 효율을 지녔다고는 하나, 익숙해지지 않으면 여간 먹기가 껄끄러운 녀석들이다.
애초에 파라메라 대륙에서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원체 벌레를 질색하는 에드릭도 금세 얼굴색이 시퍼렇게 질렸을 거다.
“다리가 여러 개 달렸다거나 몸에 털과 같은 이상한 것만 아니면 뭐, 대충은요.”
거기다 그런 것들은 평균적으로 알레르기며 독을 품고 있으니.
“그건 날씨 때문에라도 여기 주변에선 못 볼 겁니다. 남부 지방 쪽엔 그런 게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래도 겨울이 오면 싹 다 사라진다니까요.”
캠핑 기분과는 다르지만 다른 의미로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물론 그 나쁘지 않다고 여기기 이한 필수 조건은, 길이 따로 없는 지형을 뒤처지지 않고 따라잡다 못 해, 즐길 정도의 체력이 보장되어야 할 테지만.
걷는 거나 이곳저곳 오가는 건 좋아한다.
여행까지는 어떨지 몰라도, 에드릭 스스로도 몰랐지만 파라메라 대륙에 가게 된 이래, 자신에게 탐험심에 대한 갈증이 있었음을 어찌 됐든 깨달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미지의 오지, 미개척지로 발을 들인다는 건 여러모로 가슴 뛰는 일.
물론 그곳에서 떡하니 외지인을 반겨주는 적대적 존재에 대한 기대감은… 전혀 별개의 문제지만.
“은거지에 도착하면 그래도 한숨 돌릴 수 있을 겁니다. 불을 피우긴 어려워도 사냥해서 꾸려둔 가죽이며 이런 것들은 많거든요.”
음, 불을 못 피운단 말이지.
그렇게 수 시간, 쉬지 않고 움직여 쉬어가는 구간에 도착하자 굴곡진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던 십인대장이 땅을 주먹으로 퍽퍽 두들겼다.
그러자, 땅이 뜬금없이 열리는 게 아닌가.
“뭘 그리 늦장을 부린답니까?”
“무슨 소리야? 바로 온 건데. 시간도 딱 맞췄건만.”
그러면서 하늘을 가리키자, 확실히 주변 지대가 높다 보니 해가 버젓이 눈에 띄었다.
“아, 그러네. 안에만 처박혀 있으니 죽을 맛입니다요.”
“건조 식량 좀 가져왔으니 받아둬.”
“…오늘 며칠 지난 거죠?”
“이틀 더 남았으니 분발해.”
“아, 그렇게 남았나. 죽겠네 정말….”
매일 같이 교대를 하는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짊어지고 왔던 일부 건조 식량을 건네라 부하를 지명한 십인대장.
딱딱하게 굳은 비스킷 조각, 바짝 마른 채소와 콩, 그 외에 육포 조각 소량.
“…물에 잘 불려 먹어라.”
“입에 넣고 녹여 먹어야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이 오고 갔지만….
“그럼 수고해라.”
“바로 가시게요?”
“날이 심상치 않으니 빨리 움직여야지.”
기이한 건 산 주변은 날씨가 참으로 뒤죽박죽이라는 점.
뭔 차이가 있겠냐만, 여기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걸 지금 고려하고 싶진 않았지만.
“안에만 있다고 다 퍼 자진 말고.”
“잠이 와야 퍼 자던가 하죠.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억울하면 욕심을 덜 부렸어야지.”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랬습니까? 하여간….”
군율이랄까, 말투만 보면 하극상하겠다고 대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둘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간다.”
“살펴 가십시오.”
30분도 채 안 돼서 휴식 시간이 끝났다.
“별말 없으시군요?”“어려운 곳에선 원래 겉치레보단 진심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말투며 태도가 어쨌든 중요한 건 녀석이 자기 역할에 충실하느냐 마냐인데, 샌님들은 이걸 모른단 말이죠.”
“각자 맡은 영역이 있고, 그곳에 있는 이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죠. 다 같이 잘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누굴 위하고 자시고 간에… 중요한 건 모두가 평화, 행복, 안정이란 걸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데… 아, 물론 꾀부리거나 농땡이 피우는 이들은 제외합시다. 가끔이야 그렇다 쳐도… 그 가끔 중에 적이 진격해오고, 이를 발견 못 했다면… 그로 인해 엄청난 사단이 일어날 텐데, 그 문제까지 이해해주고 존중해줄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요.”
“치밀하시네요.”
대강 이해하는 척이 아니라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확고하게 정의 내려버린다.
힘든 거 잘 안다. 노력하는 것도 알고. 그러니 힘든 내색 비추고 쉬엄쉬엄 그러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그러다 문제가 발생해서 그걸 사전에 발견 못 한다? 그로 인해 비극이 벌어진다?
그러면….
“군이며 병사의 역할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모두가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니, 이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필요악이더라도 그들이 존재하기에 주변이며 내 가족이며 지인, 존경하는 이들… 조금 덧붙이면 싫어서 한 대 쥐어박고픈 녀석들도… 어쨌든 평온하게 살아가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그걸 위해 저희가 이렇게 분발하는데… 이것들은 그걸 모르죠.”
평화에 찌든 이들 기준으로 군비, 군자금 등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비치는 이유가 그런 맥락.
그들이 돈 먹는 돈벌레, 밥만 쳐먹는 식충이로 여긴 시점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전혀 모르기에 그러는 거다.
전쟁이 안 터진다고 필요가 없다? 무쓸모?
…군이 확고하게 갖춰져 있기에 전쟁이 방지가 되고 예방이 되는 거지, 그게 아님 적이 침략하고 습격해온다 쳤을 때, 뭐 한테 기댈 텐가?
우리 세계, 현대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힘없는 국가, 민족이 어떤 식으로 대우를 받는지, 나라 없는 서러움이 어떤 식으로 그들을 불행으로 밀어 넣는지….
“사람마다 각장 생각하는 방식이 있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할 순 없는 거죠.”
전쟁이 나쁘다, 어쨌다, 문제 터지면 도망가면 되지 않은가?
그러나 이곳 세계에선 자기가 발 딛은 영역에서 평생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게 태반.
나중에야 시대가 발전하고 어쩌고 하면 이주도 하고 국경도 넘겠지만… 적어도 아직 이곳 세계에서 그런 걸 기대하기엔 무리가 따를 거다.
물론….
알그리타 대륙이라 명명된 곳도 아직 일부 밖에 안 되고, 저 끝머리에 있을 법한 유목 깡패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다 패권에 밀려 이 일대로 대거 이주해온다면… 다른 의미로 대혼란이 빗어질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