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41)화 (241/454)



〈 241화 〉64. 예상, 계획은 늘 빗나가기 마련.

다음날.
영주 앞에서 어제 파스티나에게 이야기한  보충해 재차 구상을 밝혔다.
그러자.


“…….”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제안 자체는 의외라는  신기해했지만 거기까지.
무엇보다.



“최초에 귀경에게 요구한 게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가?”


귀공이 아닌 귀경이란다.

같은 높임말이어도 두 단어 사이엔 넘을 수 없는 격차가 나누어져 있다.
패왕녀가 이쪽을 부를 때 귀공이라 부른 건, 귀족 혹은 그 이상의 존재라는 가정으로 이를 부른 것.

반면 귀경은, 기사 계급을 높이 부르는 표현이라 보면 무방했다.
예컨대, 나는 너를 공이 아닌 경으로 대우하겠다, 하급자로 취급하겠다는 의도라는 건데.

이렇듯 명칭, 표정, 대우하는 방식에 따라 상대의 의중이며 목적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다시금 그 속에서 어떤 속셈이 있는지를 점쳐야 하는 게 정치적 인간들을 상대할 때 흔히 발생하는 피곤한 점.



“얌전히 시키는 일, 하는 일에만 집중하라 하셨지요.”
“그럼에도 이러한 제안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연유는 무엇인가?”
“흐음, 정말로 저를 이곳을 그저 얌전히 거쳐만 가는, 그런 목적으로 부리실 속셈이신지요?”



왜 하라는 거 안 하고 날뛰냐?
기껏 왔는데 이득 안 보고 이런 식으로 부리셔서 당신한테 무슨 이익이 있다는 겁니까?


라는 식의 말을 주고받은 에드릭과 변경백.



“추구하는 바에 따라 가치 또한 달라지는  아니겠나?”
“마찬가지로 가치 대상, 셈치는 방식이 다르다 이 말씀이시군요.”



에드릭의 제안은 사실 대단한 이익과 경제적 지각 변동을 동반한다.
대가리가 빈 게 아닌 이상  제안에 반발하거나 반론을 제시하려면 그에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마땅했다.

그냥 상대가 잘난 척하는 꼴 보기 싫다고 저러는 거라면, 저 인간은 싸움만 잘하는 머저리일 가능성도 아예 간과할 순 없을 거고.


아니, 그러니까 오히려 실세로 올려두고 방패막이로 삼는 걸지도.
제안이 제안으로 끝이 아니다.

무릇 선물을 주고, 술을 퍼먹이고, 권력을 빙자한 그에 준하는 자리를 앉혀준다면 상대의 능력, 인격, 잠재력 등을 고스란히 파악할  있는데, 그로 인해 표출되는 반응은 많은 걸 시사한다.


그리고 이건, 위아래  거 없이 마찬가지.
에드릭은 이번 제안이 반려되거나 반발에 부딪힐 거까지 당연 고려했다.



“무역  경제적 영향보다는 역시 곡창 지대로서의 역할에 더욱 비중을 두시겠다 이거로군요?”
“흐음….”




그 말은 곧….



“전쟁이라도 벌이실 계획이신지요?”
“속단은 이르지 않나?”
“제가 제안 드린 것들은 평화를 기반으로, 전제로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서로가 다 유리한 방식으로 굴러갈 테고… 의도한다면 특정 방향에 차별이며 차등을 둬 이익을 감소시킬 순 있으나… 그뿐이겠지요.”



거기다 그런 식으로 대우하면 그쪽에서 폭발하니 이건 이것대로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향력, 자금줄, 그로 인한 제한적 평화까지. 그러나 이게 못마땅하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사견입니다.”
“그렇지. 귀경의 사견이지, 실제로 무엇이 어찌 진행될지를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리고 에드릭은 파스티나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 어차피 이쪽에서 말귀를 못 알아먹거나 들어먹을 행세를 취하지 않을 시….

“하면 바트리온 왕국 쪽에서 이를 주도하려 든다면, 전쟁 명분으로는 어떤지요?”
“……?”
“평화적 목적보단 이익을 목적으로, 서로 제한적 조약, 협정을 체결하자고 한다는 가정 하에 말입니다.”
“…상인들의 방식에 대해 아는 바가 있지.”



변경백의 싸늘한 음성이 차갑게 식은 집무실을 훑고 지나간다.

“일을 먼저 처리한 다음 보고한다. 선조치 후보고. 능력 있는 인재 주도 하에 이러한 것은 모든 일에 속도감을 부여하지.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고, 물정이며 사정에 어두우면 세월은 변치 않은 듯 하나, 보이지 않은 산맥의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계곡이며 강물조차도, 쉼 없이 빠르게 흘러, 흐르고 또 흘러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자신들을 내던지곤 하지. 그래, 그러한 부지런함은 인간에게도 몹시 중요한 요소지.”
“…….”
“귀경은 사전에 일을 진행 시킬 작정이었나… 아니지, 이미 진행 시키고 있는 게로군?”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이를 확신하며 추궁해온다는 건,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건데….

“절 너무 높게 평가하시는군요.”
“귀경이 신대륙을 개척할 당시 가장 빠르게, 과감하게 내륙으로 치고 들어간 점은 유명하지. 주위의 화합에 대한 방식도. 앞서 미끼로 이익을 건넨 다음 거기에 얽매이게 묶어버려, 그걸 거절한다는 것이 극심한 손해라는 걸 이성과 감성,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흐음….”


그 정도까진 아닌데.

다만 상대를 혹하게 하려면 결국 이익을 건네줘야 하고, 미끼를 줘야 내 말을 따르든, 들어보든, 수락하든 뭐든 할  아닌가.


이건 일종에 예의다.

 음악인이 친구를 만들고자 돈다발을 건네며 이제 친구냐? 하고 들이대서 수락을 받아낸 것처럼.

원래 세상은 이익구조로 돌아가고, 초면은 신뢰감 형성이 불가능하니 이런 식으로 혹하게 해야지 별수 있나.

어차피 타인은 믿을  못 된다면, 차악 개념으로 일단 이익을 주는 존재란 포지션을 구축.


 다음 이쪽을 객관적으로 보며 호감을 어느 정도 품은 상태에서 신뢰감을 부추기고 부여하는 게 순서라면 순서겠지.


신뢰는 시간과 노력에 의해 쌓여간다.
그러나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부족하다면, 적어도 다른 방편이라고 구사해야지.

“귀경은 이곳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본인의 호의를 사고, 성과를 이루어 왕도로 돌아가 당당히 부군 후보로서의 영향력을 과시할 테고. 눈에 보이는 이득 문제 아닌가. 거기다 이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결국… 귀경과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서라도 본인이 눈치를  수밖에 없게 만들 작정이로군?”
“설마 그렇겠습니까. 그저 모두가 잘 풀릴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저는 제안하기 위해 궁리했을 따름입니다.”
“모두가 좋아할 만하군. 이득을 안겨주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호구처럼 퍼주지도 않으면서 이권을 챙기니, 너절한 것들이라면 아쉬워하겠으나… 능력 있는 이들, 자부심으 깃든 이들은 걸출하다 자부하는 이들 스스로 생색내기 좋게 명분까지 깔아주고 말이지. 입으로만 나불대는 아부에 비하면 비할 바가 못 되는군.”

저급한 상인보다 능력 있고 뛰어난 이가 파트너로서 자신을 빛내주며 이득까지 챙겨주고,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이어간다는 보증까지 해준다.


거기서 그들이 할 일은?
그저 상대와의 관계만 잘 다독여주면 끝.
뭔가를 어마어마하게 요구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정도로 부담을 가진다면…?
여기서부터는 체면 문제로 작용한다.




‘당연히  정도는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잘 설정해 투자  투입을 끌어낸다.
이번의 경우는 어떤가.


결국 평야 지대에 대한 이권, 야욕만 접으면 서로가  윈윈할  있다, 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포장돼 있다.

그러나 정작 조약이며 계약을 체결하고 시장이 형성되고 이럴 시, 상황이 어찌 돌변할지 모르고, 당연 그런 돌발 경로를 예측 가능한 이들은, 이미 경험이 충분히 쌓인 상인들 쪽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니겠나.




“허나 본인은 내키지가 않는군.”
“…….”
“바르잔들에게 무언가 이권을 내줘서 저것들에게 여유를 준다? 차라리 녀석들의 허술한 방어벽을 깨부수고, 보수 공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성벽을 부숴 저것들의 기반을 깡그리 박살  다음… 평야 지대를 먹어 치운 이후 추가로 마시장을 구축해 시장을 독점하는 방향이 훨씬 더 유용하리라 추측되는데, 어찌 판단하나?”
“시장이 형성돼도 과연 적대국들이 이를 눈 뜨고  일도 없을뿐더러, 통행 자체가 문제가 돼서 역풍을 맞을 겁니다.”



아예 그 목적으로 통행하려는 것들을 막아서거나, 통행료 및 관세를 미친 듯이 부가한다거나.


혹여 오는 건 그렇다 쳐도  때 수많은 말들을 이끌고 카일론 아래쪽으로 향해 강을 타고 뱃길로 쭈욱~ 빙 돌아서 복귀한다? 이러면 말을 구매하는 것보다  끌고 가는 운송료, 운행료가 배로 폭등할 테니 이건 이것대로 문제다.

물론 카일론 자체에서 이러한 걸 고려해서 배로 인한 운행료를 대폭 삭감해도 문제인 건 매한가지.


 시대는 군마, 전마에 대한 메리트가 우리 세계처럼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아니다 보니, 그 정도로 절실하고 절박하게 이를 확보하려 고행을 자처하진 않을 거다.


‘비병(飛兵)이 있으니.’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짐승이며 마수를 탑승하기도, 기계며 마도 기구를 활용하기도.


물론 이것들을 개발, 생산, 유지 및 보수 쪽이 말을 관리하는 것보다 십여 배는 족히 넘는 비용이 들겠지만….

‘일단 활용한다 치면 전용 대응책 외엔 대책 자체가 없으니까.’

활을 쏴도 안 닿는 거리까지 상승해 일방적으로 공격을 해대면 어쩔 텐가.
그러기에 모든 전쟁에선 상대의 공군, 공병. 즉 비병과가 확보돼서 투입되느냐 아니냐를 사전 파악하는 게 무척 중요했다.

아님 그걸 위해 전투 마법사들을 대거 확보해대던가.
카일론이 궁마병, 마법사로 이뤄진 기병대를 운용하는 것도 다용도 목적도 있지만 실상은 저것에 대한 확실한 카운터를 치기 위한 이유도 다소 포함돼 있었다.

“결국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속단은 이르다 하지 않았나.”
“…….”



전쟁을 치르려 한다.
 반대는 치르지 않으려 한다.


…라고 쳐보자.

전쟁을 당장 혹은 근시일 내에 발생시킬 생각이 없다.
그런데 이쪽의 제안은 썩 내켜하지 않는다.
그러면 당장은 아니어도 추후 그런 시장이 형성돼 손 쓰기 어려운 사태, 투자를 해놓고 이를 허물어야하는 손실에 대해 불만을 지니고 있는 건가?



‘흐음.’

너무 단편적으로만 생각하는데?
외부에 눈 돌리지 말고 내부로 눈을 돌려보자.
예컨대 정치적 목적으로 이쪽을 견제한다 치면?
사고를 넓히니 조금 더 눈앞이 환해진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아니, 이렇게도 생각해볼  있을지도?
그냥 내가 잘 풀리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면?


조금 더 구체화해보자.
내가 부군이 되는 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미 다른 쪽과 선을 대고 있다?’


그런 추측을 아예 부정하긴 어려울 거다.
아니, 반대로 부정도 해보자.
선을  대고도 있다. 그런데도 내가 부군이 되는 건 마음에 안 든다?

‘어째서?’



그러다 문득, 에드릭이 한쪽으로 시선을 줬다.
거기엔 파스티나가 응접 소파에 앉아 차분하게 논쟁인지 담론인지 모를 분위기를 이어가는 둘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쫓고 있었다.

그러니까….


에드릭은 정치적 인간을 표방하나, 굳이 정치인인 척 너무 겉을 치장할 필요는 없다 매번 자부해왔다.
거기다 상인의 탈을  때는 더더욱.
물론 개척 군주로서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이를 표방할 때는 또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영주님께선 제가 부군이 되는 것이 마땅치 않으신 겁니까?”
“…….”



에드릭은 아무렇지 않게 직구를 던져 넣었다.


사실 돌아갈 필요가 없다.
잘해주겠다는데 자꾸 훼방을 놓는다.
어쨌든 이유가 있을 건데….
상대가 아니라 이쪽, 에드릭 자신에게로 초점을 달리해본다.

즉.

“어차피 부군이 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이상의 이득, 이익을 얻을 자신이 있다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무슨 말도  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 그 말은 본인이 감정적으로 귀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방해 공작을 펼치고 있다, 그리 비방을 하려는 겐가?”

일부러 감정론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그럴 리가.



“감정적인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의도적으로 그러고 있다는 점에 저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똑바로 말하도록. 어설픈 언사로 앞뒤 구분 없는 비방을  속셈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마디  마디를 확실히 해야 할 게야.”




반응이 왔다.
여태 위협적으로 윽박지르는 기색이 없었는데, 지금은 확실하게 경고 차원에서 물러서지 않으면 너도 각오하라는 발톱을 내보였다.


결론은?
찔리는  있단 의미지.


그렇기에.
에드릭은 살포시 입가에 미소를 그려 넣으며, 이렇게 물었다.




“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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