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화 〉65. 초원 엘프들은 남자를 원한다? 그것도 많이?
브레나임 변경백의 자식들은 위치로 따지면 최전방, 모두 요새 부근에서 병졸로서 부려지곤 했다.
이는 책상물림을 증오하는 변경백의 특성과도 맞물며, 실전적 체험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인데, 이를 버티지 못한 자식들은 자식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면 차선이 용병이자 모험가로서 바깥 세상을 경험하는 건데, 파스티나가 이에 해당했다.
그녀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자진해서 나간 케이스였다는데, 집안 갈등이 심화 돼서 그랬단다.
아무튼.
브레나임 백작의 정식 후계자로서, 동시에 현 팔라임 요새 지휘의 총 부지휘관을 역임하고 있는 이는 그의 아들인 올미르 델 브레나임이었다.
부지휘관이라 한들 그는 사실상 반쯤은 명예직으로 실정을 파악하고 추후 맞이할 변경 백작위를 계승한 뒤 새로이 총사령관으로서의 위치가 보장돼 있기에 이런 직함은 사실 의미가 없기도 했다.
무엇보다 총 부지휘관이라 해서 요새의 실무를 담당하는 이들과 기싸움을 벌이기도 어려웠고.
이제 나이가 막 서른에 근접했다 한들 그는 현직에 종사하는 이들, 요새에 십수년 넘게 박혀 있던 이들 기준으론 여전히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들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저거… 엘프 맞지?”
요새 성벽 위에서 이를 내려다보던 몇몇 병사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마우론 산맥 심처에 자리한 엘프들하고는 외양 자체가 다르군요.”
올미르가 옆에 자리한 나이 든 부관을 향해 그런 소감을 드러냈다.
우선 피부가 땡볕에 타서 그런지 살짝 그을린 감이 있었다.
개중에는 새하얀 이도 있었지만, 이는 가지각색.
무엇보다….
“야 이 썅%#%$&!! 어딜 산속에 처박힌 개*#&%#*&하고 비교를 해! 죽여삔다!”
“양 오줌만도 못한 새꺄! 너! 그래 너! 내려와라 인간! 포를 떠서 회 쳐 먹어 내 자식과 남편 새끼 아가리에 처넣어 잘게 잘게 씹어 똥으로 만들어줄 테니!”
그리고 엘프족 특유의 청력 덕에 숙덕인 걸 듣기 무섭게 벼락같은 노호성을 질러오는데, 다들 오금이 저린지 순간적으로 몸을 쭈뼛 세우기까지.
‘기세가 엄청나군.’
심지어 저들 모두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체격이 우락부락하다거나 오크며 오우거들 뺨쳐 버릴 정도로 터무니없지도 않다.
겉만 보면 일반적인 여성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나, 실상은 전혀.
무엇보다 수북한 털옷들을 고루 두르고, 털모자까지 눌러쓴 덕에 신체가 어떤 식으로 구성돼 있는지, 단련돼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무리가 따랐다.
열명 정도의 엘프들이 모두 말 위에 올라탄 상태로 요새 성벽 앞까지 온 것도 특이한데, 심지어 깃발까지 달고 온 거 보면….
‘사신(使臣)?’
흔히 왕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에 놓인 이의 명을 받고 외국이며 적지에 파견되는 이를 말하는데….
가끔 요새 인근에 와서 화살 날려 간담을 써늘하게 하고 낄낄대다 사라지는 건 비일비재하나 이 정도로 성벽 앞까지 가까이 온 건 정말 드문 경우다.
그리고 여기까지 일이 진행되면 보통….
‘대화를 하겠다는 건가?’
무슨 이유로?
여기서 이들을 돌려보내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애초에 깃발을 달고 오지 않았다면 개인적 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초원 엘프 부족이 여럿 이나 저들은 그 가운데서도 사납기가 남다른 부족.
마르 평야 인근을 주름잡는 이들이었기에 사이가 틀어지면 골치가 아파지는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다….
‘이건 이것대로 행운일지도.’
웃기는 이야기지만, 정말로 드물게 이런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저들이 변경백 앞까지 도달하기까지, 우선 요새 안엔 들여도 영토 내를 누비는데는 변경백의 허락이 떨어져야 할 테니, 오고 가고 하면 최소 하루, 늦으면 2,3일 가량은 이곳에 머물러야 할 텐데….
‘그동안 접대도 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저들에게 있어 접대란 음식과 술.
그리고… 남자였다.
사실 외모만 보면 누가 마다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걸출한 엘프들이 아닌가.
그런데 성욕이 왕성하고 사내에 올라타길 주저하지 않는데… 문제는 사내 한 둘로는 감당할 여력이 안 되니 여럿을 투입하게 되고….
열명쯤 왔다는 건 사실상 요새 내에 백여 명 이상이 그녀들을 접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는 건데, 종족 차별주의자, 배척자 및 저들로 하여금 가족을 잃어 원한이 잔뜩 서린 이들이 아닌 한, 거부감을 보일 리도 없을 거란 점이다.
게다가.
‘크흠!’
올미르도 요새 내에 틀어박힌 덕에 상당수 쌓인 상태기도 했다는 건 덤이라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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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새끼들! 아주 귀여운 반응들이네?”
요새 성벽 위에서 신기하다는 듯 자신들을 보며 술렁대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건조해진 입술을 훔쳐대는 엘프.
투레질하는 말의 머릴 가죽 장갑이 씌워진 손으로 툭툭 건드려 이를 달래준 그녀가 문득 옆에서 콧방귀를 껴대는 동료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놓고 냉소가 뒷받침된다.
“겉늙어 보이는데 뭐가 귀엽다는 거지?”
“그건 인간 수명이 우리 반에 반에 반도 안 되니 그런 거 아니겠냐? 내 눈엔 죄다 꼬맹이로 보이는데….”
“그만큼 나이 퍼먹으면 힘도 못 쓰는데 그게 좋아?”
“대신 수가 많잖아!”
인간이 바라보는 미적 기준, 그 외에 심미안, 개인 취향까지 더 해지면 이게 참 애매해진다.
물론 그런 것과 별개로… 혀를 차는 이도 있었지만.
…아주 잘 하는 짓이다.
사절의 대표로서 왜 자신이 임명됐는지, 에기아헤는 납득에 납득을 더했다.
그녀는 초원 엘프 중 드물게도 남녀 관계가 문란하지 않은 부류에 속했다.
이 때문에 처녀냐? 이상한 종교에 심취했냐? 무슨 서약이라도 했냐에 매번 놀림 받아대는 건 물론, 사내놈 X 비린내도 안 맞아봤고, X 내용물 냄새도 모르는 어설픈 풋내기라며 줄기차게 까여댔지만… 그녀로선 알게 뭔가 싶었다.
때문에 성욕에 눈 돌아가 판단을 그르치고, 멍청한 짓 하지 않도록 이들을 통제하는 역을 맡았는데… 과연 가당키나 할지.
나름 이런 식으로 보내지는 게 알게 모르게 그들 사이에서도 포상에 가까웠는데, 이는 생각 이상으로 유서 깊은 관례에 해당했다.
바트리온 왕국의 국경지, 접경지를 수호하는 브루헬 변경백에게 사절을 보낼 때도 그렇고, 엘피나 공국에 사절을 보낼 때도 매한가지.
참고로 이러한 사절 및 사신을 배척하는 움직임을 보이면… 작정하고 타겟이 되니 저들로서도 마냥 홀대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다 보니 환심을 사기 위해 너도나도 환대하며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했는데, 웃기지만 여기엔 파견된 이들 접대에 있어 먹거리와 주머니를 채워주는 거 외에도, 성 접대를 하는 게 아주 일상적으로 굳혀지기까지 했다.
물론 이런 게 흔한 경우는 아니다.
초원은 언제나 말보다 화살을 먼저 날렸고, 대화에 앞서 곡도로 목이며 팔을 쳐내고, 창으로 심장을 찔러댔으니 말이다.
“다브헤나, 넌 어떤데?”
에기아헤의 물음에 얌전히 그녀 옆 부근에 자리하고 있던 엘프 소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야 임자가 있으니까.”
“저 년은 인간 도시에서 살다 오니 이상해졌다니깐.”
“훌륭한 수컷, 배우자를 구하는데 있어 희생을 불가피한 거 아니겠어?”
여타 초원 부족과 달리 털옷을 걸친 건 비슷하나 그녀의 주변은 화려한 장식물로 치장돼 있었다.
“내가 옆에 두고자 하는 이는 무려 한 부족이 아니라 다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이자 군주 된 존재. 그런 존재 눈에 들려 하는 내가 헤프게 아래를 놀리고 다닐 순 없잖아? 품격이란 게 따로 있지.”
“뭐래, 미쳐 가지고.”
낄낄대는 엘프들을 향해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희가 뭘 알겠냐. 아무튼 야만인 소리 듣지 않도록 행동 똑바로들 하셔.”
“어쩌라고. 야만인 소리 하면 혀며 입술을 도려주면 그뿐이지. 어딜 함부로 입을 놀려댈까.”
“…그 점이 야만적이란 거야.”
말이 안 통한다.
말보다 주먹이며 칼이 나간다.
이성이며 논리가 안 통한다.
폭력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든다.
“그래, 그래서 그자의 이름이 뭐라 했지?”
“에드릭.”
“…너는 그와 인연이 깊다고 했었지?”
“아르세이유에서 나름 애인으로 잘 보냈었으니까.”
…떠날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능글맞지가 않았는데.
에기아헤는 이 꼬맹이가 이렇게 바뀐 게 한편으론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보다 네 애인이 그렇게 떡을 잘 친다며?”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역시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는 건 별도리가 없나 보다.
“엄청 잘 치지. 아마 우리들 전부 감당 가능할 걸.”
거기다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이 엘프들은 신기할 정도로 밤일에 자존심이며 체면을 내거는 족속들이다.
그러다 보니….
“그 말은 간과할 수 없는데.”
“사내자식이 그래 봤자 몇 번 쥐어짜면 시체 마냥 골골댈 텐데 어딜!”
“두셋은 그렇다 쳐도 우리 전부를 감당 가능하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기 애인이 무슨 희대의 초인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낄낄대며 비웃기를 한참.
그러나 다브헤나는 의연했다.
“어쭙잖은 물건들만 맛보다 보니 진짜를 모르지. 갸륵한 것들. 쯧쯧!”
그러나 다브헤나의 특유의 오만한 태도, 반응은 그들의 의구심과 호기심에 불을 붙였다.
“들통날 거짓을 허세 삼아 하는 건 아닌 거 같고….”
“진짜라면 그 새끼 대족장께 데려가는 건 어때?”
“미친년아, 헛소리 작작해라. 어딜 감히….”
“그렇게 좋으면 대족장께도 가져다 드려야지. 왜 흥분하고 지랄이야?”
“그분은 특별하시다!”
“특별하면 뭐 피 색이 달라? 알에서 깨냐? 고대 엘프처럼 나무에서 자라? 염병 꼴값!”
“쓸데 없는 걸로 실랑이 벌이지 말고.”
“아, 그 전에 이 새끼들은 문 안 열고 뭐해? 확 그냥 올라가서 다 조져버릴까?”
“…전쟁하자고 온 거 아니니 기다려라. 인내라는 게 없냐?”
“넌 이… 썅! 위에서 먹어달라 눈을 반짝여대는 귀염둥이들이 저리 널렸는데, 참을 수는 있고?”
“…하여간 골통에 든 게 그거뿐이냐?”
“그게 어때서? 서로 좋자고 하는 거잖아? 하여간 젖비린내도 안 빠진 것들이 울타리 안에 처박힌 약한 족속들처럼 이상한 헛소리나 해대며 빌빌대기나 하지….”
가만히 있던 에기아헤의 미간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만 아가리들 쳐 물지?”
“오오! 깃발 좀 짊어졌다고 네가 우리 대가리라도 되신 줄 아시나?”
“죽여버린다?”
“해볼래?”
“대족장에 권한에 도전해대는 걸로 간주해도 되겠지?”
“거기서 대족장이 왜 나와?”
“그럼 네년이 대표며 깃발 들고 다니시던가.”
“이 망할 년이?”
“평소 행실이 그 지경이니 넌 평생 앞에서 칼이나 휘두르고 활질만 하다가 가겠구나. 최소한의 격이란 게 있어야지….”
“야 이 씹년아. 말 다 했냐? 네년 내장 색깔은 뭐 우리보다 검냐?”
“같이 드러내서 한 번 비교해봐?”
그들 가운데서 얌전하다 뿐, 에기아헤도 성향이 소심하고 얄팍한 편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 가운데 그나마 이성적인 측에 속했고, 침착했기에 대표가 된 것일 뿐….
그리고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 끝에….
쿠쿵!
요새의 성문이, 천천히 육중한 음을 내며 그들의 분쟁에 끼어 들었다.
“…목 간수 잘 해라.”
“훗! 네 년 조상신이 도운 줄 알아라.”
“이게 진짜!”
“지랄들 말고 채비 수습해. 인간들한테 얕잡아 보일 셈이냐? 버러지들아?”
험한 말들이 오고 갔지만, 어쨌든 이들도 세상 물정을 아예 모르는 이들은 아니었다.
특히, 전투, 전쟁, 사냥, 수렵에 있어선….
이러한 대치, 신경전, 외교도 따지고 보면 모두 전투, 전쟁에 일환.
그리고 그들은 어쨌든 즐기러 온 것도 있지만, 부족장의 뜻을 대행하는 대행자의 역을 맡은 충실한 사냥개들이기도 했으니.
…하라는 일 제대로 못 했다가 창대에 대가리 걸리면 그건 뭔 놈에 개망신인가.
차라리 전쟁에서 칼 맞고 화살 맞아 숨지면 명예롭기라도 하지.
어쨌든.
요새 내부로 들어선 그녀들 중 일부는, 뒤이어 이어질 접대며 환대를 기대하며 혀를 훔쳤다.
그리고 다브헤나, 아르세이유에선 다프넬로 불린 초원 엘프는 다른 의미로 기대감을 고취 시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