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65. 초원 엘프들은 남자를 원한다? 그것도 많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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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금세 퍼졌다.
아니, 어떻게?
‘시기가 알맞긴 하네.’
사절이랍시고 온 초원 쪽 엘프들이 요새에 머문 기간은 이틀.
그리고 3일째 되는 날이 현재.
그동안 작심했는지 그들의 문란한 행태에 대한 소문이 아주 파다하게 퍼졌다.
본래라면 어제쯤 백작이 머무는 도시, 영주성에는 도달했어야 했으나, 한창 벌인 일이 있다 보니 그거 즐기느라 하루를 더 지연시키고야 말았는데, 이 때문에 안내인으로 갔던 이들이 그 참상(?)을 목격해 복귀 후 술자리에서 부랴부랴 이를 털어놓은 덕에 입소문을 타게 된 모양이었다.
애초에 이런 사태가 드문 일도 아니라는 점도 그렇고.
외부의 시선으론 최전선에 머무는 이들이 저래서야 쓰겠나 싶겠지만… 국경이 접했다 쳐도 초원, 평야가 중간에 떡하니 자리 잡은 점도 있기에 병력이 조금이라도 준동하면 눈에 안 띄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안내 및 수행원의 인도에 따라 도시로 들어선 그들을 영주민들이 신기하다는 듯 지켜보는 와중에, 에드릭은 영주성 성곽 쪽에서 그들이 오는 모습을 엄지 크기보다 조금 큰 일자형, 접이식 망원경을 동원해 이를 살피고 있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정령술을 이용해 렌즈 비슷한 걸 구성해서 살필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녀석인데, 거리가 따로 정해진 바가 없이 대략적으로 조절이 가능한 녀석인데, 누가 훔쳐가든 빼앗아간다 쳐도 사실상 쓸모가 없기도 한 터라, 에드릭 전용 망원경이라 할 수 있었다.
“흐음….”
그렇게 인물 하나하나를 살피다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잘 해줬나 보네.”
아르세이유에 있던 당시, 혹시나 싶어 연락 체계를 구성해뒀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원 엘프 출신인 다프넬은 어쨌든 그쪽에 보낼 사절로서 제격이었다.
더군다나.
‘유목 부족은 늘 굶주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환경 자체가 척박하다 보니 별도리가 없기도 하고.
정주민.
한 곳에 머무르며 농사 짓으며 살아가는 농경민에 비하면 유목 부족은 언제나 덥고 춥고 목마르고 배고픈 이들이다.
자신들의 영토가 없다는 것도 서러운 마당인데.
애초에 영토랍시고 선 긋고 내 땅이다! 하고 나라를 세워 울타리며 장성을 쌓는 이유가 뭔가.
고대엔 영토며 땅, 영역에 주인이며 손님이 따로 없었다지만, 결국 자기들 영역을 확고히 다지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이 바로 자신들이 살아가기 가작 적합하고, 적절한 땅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그게 아니더라도, 남들이 침범 못 하는 우리 고유의 영역이 있다는 거 자체가 어디겠냐만… 있으나 마나 한 땅을 굳이 우리 영토랍시고 목숨 걸고 수호하고, 지킬 이유가 있을까.
종교적 목적에 의한, 성역이라면 모를까.
유목 부족들, 초원 부족들이 오래 전서부터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 쳐도, 정작 반 유목, 반 농경 흐름을 지속할 때조차 그 영토가 호구수, 인구수에 비해 일부 밖에 안 되는 이유는, 그만큼 양지가 바르고 척박함과는 거리가 먼, 농사짓기 좋고 수렵하기 용이하며, 머물기 좋은 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드릭은 마시장을 포함해 유목 부족에 제법 도움이 될 법한 사업을 다프넬을 통해 제법 구체적으로 제안했고, 한술 더 떠서 에드릭 자신의 과장된 명성과 엘프 종족과의 친화적 관계를 어필해 그들을 개입 시키기로 결정했다.
…숲의 일족, 숲 엘프들과 초원 엘프는 견원지간에 가깝다지만, 그래도 원조며 원류가 숲 엘프다 보니 아예 눈치를 안 볼 순 없는 노릇이라는데….
‘제안은 거절할 수 없게 할 것.’
그래야 냉대당하지도, 무시당하지도 않으니.
무시를 당한다는 거 자체가, 명성을 지닌 이들에겐 체면을 구기고,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과 진배없는 상황으로까지 해석되는데,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행보 하나하나에 이름이며 얼굴값, 가치를 매기니….’
내심 패왕녀의 부군이 돼서 반쯤 은둔자의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거니 싶었지만… 어떠려나.
이윽고 파스티나가 성 도개교 안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접한 에드릭은 곧장 성곽을 떴다.
괜히 여기서 존재감을 어필하다간 다른 의미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그럴 의도는 아니지만 내정에 간섭하고 관여하는 거 자체가 터줏대감, 말 그대로 자기 영토의 주인되는 이라 자부하는 이들에겐 여간 자존심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으니.
그래도 다프넬이 접해오는 건 금방이었다.
“안녕. 오랜만~!”
파스티나와 함께 당도한 다프넬이 익숙하게 포옹해왔다.
에드릭은 이를 맞아주며, 당연하게도 자신보다 한없이 작아진 다프넬의 머리를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쓰다듬어줬다.
“애 취급은 싫은데….”
“정말?”
“…….”
애 취급이 싫지만, 애 취급받을 때에서야 만끽할 수 있는 특유의 그런 게 있지 않은가.
그 이점, 그 메리트를 차마 놓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둘은 이번이 처음인가요?”
“음?”
“…처음?”
생각해보니 브리앙르가 떠난 이후, 다프넬을 만난 거니 둘은 모르려나?
에드릭은 간단하게 파스티나와 자신과의 관계, 동시에 다프넬과 자신과의 관계를 파스티나에게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둘이 서로를 묘하게 관찰해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좀 시원치 않았다.
…아니, 뭘 기대한 건데?
“절 만나기 전이라면 어쩔 수 없죠.”
다프넬이 한 말.
“내가 떠난 뒤라고 하니….”
파스티나가 한 말.
…뭔가 경쟁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은 아닌 거 같다.
그 정도로 눈치가 없을 리가.
물론….
‘그게 좋은 거지.’
정력이 왕성해져 한 사람으론 만족하지 못하게 되니, 자연스레 여럿이 화합해서 자신을 받아주는 쪽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된 덕에… 아주 고약한 취향, 버릇이 생겨버렸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파라메라 대륙에서 형성된 사고 방식이긴 한데….
‘거기야 여럿을 누리는 게 훨씬 남자답고 훌륭하다며 칭송해대니….’
생각해보니 이건 이것대로 조금 문제일지도?
영웅본색, 영웅이 여자 여럿을 누리는 건 큰 하자가 아니라지만….
‘스스로를 영웅이라 자처할 수 있는 것도 낯부끄럽고.’
그냥 적당적당 누리며, 꿀 빨며 사는 거면 족하니… 딱 이 정도가 좋았다.
어쨌든.
“그보다 에드, 우리 쪽 애들이 에드릭이 그렇게 잘한다고 기대가 엄청난데, 호응해줄 생각은 있어?”
“뭘 호응해요?”
“에이, 다 알면서.”
당연 소문은 에드릭도 들어서 잘 알고는 있었다.
엘프 여덟이 인간 남성 백 여명을 쥐어짰다는 그 소문.
“여기 머물면서도 꽤 요구해댈 텐데, 그런 식으로 물 흐리면 여간 민폐잖아? 그러니까 에드가 조금 분발해줬으면 하는데….”
“…다프넬, 제가 다른 여자하고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했던 거 아니었어요?”
“초원에선 잘 나가는 사내는 자랑하고 과시하는 게 관례거든. 내가 정처라는 어필만 충분히 해주면, 백이고 천이고 누벼도 상관없어~!”
말 그대로 잘난 사내가 내 것이니, 그걸 과시한다는 명목이라는데… 이건 이것대로 신기해서 할 말을 잊은 정도였다.
“어차피 자식이야 모계 따라서 가는 거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같이 즐길 수 있으면 그건 좋은 거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다지만….”
“뭐가 그건 그래.”
파스티나가 상식의 선에서 지적을 걸어왔다.
“음, 그것도 그렇네요.”
“…….”
“…….”
그래서 어느 쪽이란 건데?
…황희 정승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괜히 종교며 국가적 법에서 일부일처를 장려하고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고대에 형사취수제며 온갖 결혼 및 혼인, 그와 관련된 문화는 다 그 시대적 배경에 맞춰 성립된 거기도 하지만, 체계며 방식, 환경이 바뀌면 그 또한 변하기 마련.
뭐 종교며 법이 그렇다고 완벽하게 불륜이며 바람을 안 피게 된다거나, 성 문화가 정갈해지고 단정해질 이유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니.
의외로 서양 중세 암흑 시기에도 평민 귀족 할 거 없이 떡을 치는 거에 있어선 꽤 자유로웠다고 하니 말이다. 이게 들키면 문제가 되는 건데… 이 문제는 동서양 따로 막론하는 거 자체가 부조리한 거 같기도 하고.
“누가 옳다, 그르다 할 게 아닌 거 같아서요.”
개인적으로 모두를 지지한다.
이쪽에 가면 이게 맞는 거고, 저쪽에선 저게 맞는 걸 텐데, 이걸 하나로 어찌어찌 통합하고 결론 짓는 거 자체도 새삼 무책임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면만 보면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도 같은데.”
“예전엔 어땠는데요?”
거기다 어디서 합의점을 찾았는지 갑자기 자기들끼리 이야기 꽃을 피우는 파스티나와 다프넬.
…뭐지? 뭘 놓친 거지?
에드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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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객실 겸 숙소로 배정된 방에서 한 엘프가 버릇처럼 주절댔다.
“남자….”
“닥쳐 좀.”
“다브헤나는 벌써 애인 만나서 한창 덜컥덜컥하고 즐기고 있는 거 아냐? 많이 참고 있던데….”
“하아….”
에기아헤는 대놓고 아래쪽이 고프다며 성토를 부려대는 동료들을 보며 한숨을 삭혔다.
그리고 그런 에기아헤를 보던 한 엘프는.
“너 욕구 불만이냐? 왜 그렇게 답답하게 한숨 쉬고 그러냐? 복 달아나네.”
“…누구들 때문에 그럴 거 같냐?”
“근데 여기 방이 너무 칙칙한데….”
“비바람 안 들어오는 게 어딘데.”
“벽난로 저거, 불 때도 여기까지 온기도 안 오고….”
“사내새끼 옆에 끼면 되지 뭘 그런 걸 걱정해?”
“아, 그게 맞네.”
“그러니까 사내새끼 달라고… 맛 좀 보자….”
“…….”
미치겠네.
꼬리에 불붙은 고삐 풀린 말 새끼도 아니고….
“아, 젠장. 야, 네가 손으로 대신 좀 쑤셔줄래?”
“더러운 새끼가 미쳐 가지고….”
“아, 왜! 끝나면 나도 해줄 테니까.”
“아, 꺼져!”
…누가 보면 덜 떨어진… 발정들 주체 못 하는 저렴한 암캐 나부랭이로 볼지도.
유서 깊은 엘프란 것들이 아주 숲 떠나 초원에 정착하더니 머리가 회까닥해 가지고….
에기아헤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돌아가는 꼴을 보다 별수 없이 다브헤나를 찾아보기로 결정.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이 새끼들 밖으로 뛰쳐나가 엄한 거리에서 사내놈들 붙잡아서 떡쳐댈 게 아~주 자명했기에, 어쨌든 해결을 봐야만 했다.
‘다브헤나의 남자가 감당 못 하겠다 치면… 따로 요구하는 수밖에.’
솔직히 취향으론 그 영주란 남자도 제법 맛있어 보이는…
“크흠!”
하여간 그 발정 난 것들 옆에 붙어 있다 보니 괜한 영향을….
그러다 마주 걸어오는 에드릭, 다프넬과 파스티나 3인을 목격한 에기아헤는, 문득 에드릭을 보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내심 특별한 건 없다 생각했는데, 첫인상이라는 게 참 특이했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저거… 꽤 취향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