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65. 초원 엘프들은 남자를 원한다? 그것도 많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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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성이 크기는 크나 사실상 성벽 두께가 근사한 거지, 내부에서 지내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전시라면야 천여 명 이상을 수용하고, 성곽에 대기 타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반은 더 수용 가능하겠지만, 애초에 여긴 전시에 입각했다 가정하면, 그리 적절한 공간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연 내부 생활 여건도 그런 면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그래서 에드릭의 객실 겸 머무는 공간도 생각 이상으로 공간이 협소했던 거였다.
…물론 에드릭의 세계의 단칸 고시원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겠지만, 하필 그걸 비교할까.
그래서였는지, 사절로 온 초원 엘프들에게 건넨 곳은 기숙사에 가까운 공간으로, 영주성 바깥에 놓인 연병장 쪽에 밀접한 공간이었다.
기숙사긴 하나 이곳은 과거엔 수련 기사들, 기사 지망생들로 향사라 불리던 에스콰이어(Esquire)들이 머물렀던 장소기도 했다.
현재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아 반쯤 방치된 상태였지만, 그 때문에 다수 인원으로 하여금 자리를 내주기도 제법 용이했다던가.
그렇다고 영주성 내에 공간이 협소하냐, 부족하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흐음!”
남자남자! 하고 입에서 노래를 불러대던 엘프들이 걸신 들린 듯 식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며 에드릭과 파스티나는 먹성들이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특히 엘프랍시고 풀떼기만 먹는다는 편견은 이들에게선 여지없이 의미를 상실했는데….
“통돼지 그냥 살살 녹네!”
“비린내 이거 뭘로 잡은 거지?”
“향신료 꽤 들어간 거 같은데?”
“조리법은?”
“통돼지 쳐 구우면 그만이지 뭔 조리법이야?!”
“모자란 새끼! 대충 구우면 비린내 똥내에 역겨워서 쳐 먹지도 못 하는 새끼가….”
“그딴 건 사내새끼들한테 맡기면 되지! 우리 어엿한 전사들이 그런 거 추잡하게 하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모자란 티 팍팍 내네. 진짜로 끔찍한 년.”
풀떼기도 잘 먹는데 고기도 잘 먹고, 일단 먹을 수 있는 건 죄다 잘 먹었다.
포식이란 게 언제나 주어진 게 아니다 보니 이런 식으로 음식이 마련되면 섹스 못지않게 환장한다는데….
심지어 술도 그렇다.
“야! 이거 마셔볼래?”
가죽 주머니에 담겨진 술을 에드릭에게 건네는 엘프가 히죽대며, 음란한 눈초리로 그의 온몸을 탐색하듯 훑어본다.
열린 마개 사이로 냄새가 아주 그냥….
“줘보세요.”
에드릭은 그걸 받아 거리낌없이 입안으로 기울였다.
“후우. 나쁘지 않네요.”
“새끼, 마음에 드네.”
“그런데 도수가 너무 낮아서… 물하고 다를 바가 없는 게 아쉽네요.”
“…….”
시끌벅적하게 먹던 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에드릭을 노려봐 왔다.
물론 마유주도 종류에 따라선 막걸리처럼 어중간한 맛에 계속 들이붓다간 한 큐에 갈 수 있지만… 그걸 구태여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애초에 이 험악한 전개, 노골적인 도발은 에드릭이 작정하고 벌인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 새끼가 우리들의 영혼의 음료를 보고 지금 뭐라 씨부려 쌌냐?”
“얼마나 잘난 걸 처먹길래 면전에다 냅다 침을 뱉어대?”
“재미있네. 더 말해봐.”
하여간 성질머리들하고는.
자기들 게 최고, 최선, 최강이란 마인드는 무식할수록 더 돋보이는 면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준비해둔 참입니다.”
에드릭이 한 차례 박수를 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종 몇몇과 임시지만 에드릭 직속 시녀가 된 미셀이 마개가 막힌 자그마한 항아리를 몇 동이 가져왔다.
“뭔데 항아리에다 담아뒀대?”
“그 오줌물 아니래?”
“여기 검은 오줌은 그래도 쓸만하던데.”
파스티나가 살짝 울컥한 기색이다.
브레나임 명물인 검은 핏물을 욕하다니, 목숨이 뭔 여러 개쯤 되는 건가?
그래도 아마추어는 아니기에 울컥한 기색일 뿐 따로 내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맥주가 취향이 아니면 좀 저질스럽긴 하지.’
애주가도 아니고 술을 아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맥주는 가볍게 마시긴 좋으나 거기까지.
애초에 에드릭은 술에 그다지 미련이 없기도 했다.
그냥 마셔서 맛있으면 족하다?
분위기를 잘 녹아들게, 긴장도 풀어주고 몸도 마음도 그럭저럭 완화 시켜주는 용도는 그럭저럭 나쁘진 않지.
그러나 술 마시면 실수를 하니 어지간하면 반주 정도가 족했다.
이윽고.
“흐음?”
비린 향도 안 나는데 제법 강렬한 알콜 향이 후욱 나면서도, 다시금 은은한 꽃 향기가 이어지니….
“특이하네.”
“뭐야, 한 잔 줘봐.”
“술 맞지?”
에드릭은 소주잔처럼 자그마한 나무 잔을 여러 개 늘어놓고, 이를 채워갔다.
당연 성격 급한 엘프들이 뭐 하는 짓이냐며 불만과 불평을 스트레이트로 쏟아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 한 번에 확 들이키는 겁니다.”
“…고작 이걸?”
“실망은 안 할 테니 해보세요.”
“흠… 음미하라 뭐라 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라 다행이네.”
쥐꼬리만 하게 주고 음미다 뭐냐 하면 답답해서 화병 났을 거다.
어쨌든 참다못해 다들 단번에 자그마한 나무잔에 든 내용물을 단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어 목구멍 안쪽으로 흘려 넣자….
“!!!”
“―!”
“크으!”
“콜록! 켁!”
반응들이 재미있었다.
항아리 내용물을 따로 주전자에 채워 넣어뒀기에 비워진 잔을 채우는 건 간단.
“어때요? 근사하죠?”
“…이건 뭐냐?”
“존나 자극적인데?”
“야, 이런 게 고급스럽다, 뭐 그런 거냐?”
“내가 어떻게 알아, 무식한 년아.”
“너 자꾸 아까부터 무식하네 뭐네 그런다? 들풀 노래질 때까지 맞아볼래?”
그걸 지켜보던 에드릭이 슬쩍 시선을 주곤 한 마디 덧붙였다.
“싸우시는 분들은 안 드립니다.”
“…….”
“…….”
저런 성격은 파라메라 대륙에서도 꽤 흔한 편이었다.
속에 있는 걸 참지 않고 그대로 내뱉는 성향들.
그러니 이런 이들을 상대할 땐, 계산보단 앞뒤 구분 없이 진솔함, 그 외엔 적당적당 감정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좋았다.
“이건 뭐라 하는 거지?”
“아르세이유 산, 소르주라 합니다.”
우리나라 전통술로 흔히 탁주와 약주, 소주 이렇게 3가지를 자주 언급하는데, 탁주는 막걸리, 약주는 달리 표현하면 청주라고도 하며, 슬 찌꺼기를 가라앉혀 용수를 박아 걸러낸 거고, 그 다음이 탁주며 약주를 증류한 이것, 즉 소주가 되겠다.
이건 에드릭 쪽이 원조가 아니라 본사 출신의 누군가가 이미 퍼트린 건데, 그는 이걸 고급주로 콘셉을 잡아 왕후장상이 마시는 술이란 명목으로, 고급품으로 시중에선 아무나 살 수 없는 그런 술로 둔갑시켰다.
…사실 만들기도 까다롭고.
무엇보다 청주는… 국내 주세법 상 밀 누룩 사용 시, 청주가 아닌 약주로 표기하게 해서 약주라 하는데, 이 경우엔 탁주, 막걸리의 존재가 아르세이유가 아닌 다른 국가, 다른 지방에서 유행시킨다는 명목 탓에 소르주는 아르세이유 산이 됐지만, 아마 탁주며 약주, 아마 이곳 현지화시켜 만들어질 약주며 청주는 본사 출신의 다른 누군가가 차지해 상품화시켜 제조, 유통할 거란 평이 지배적이었다.
추가로 쌀 흩임누룩을 써서 만든 게 사케인데, 일본 고사기에도 백제인이 일본 천왕에게 술을 빚어 바쳤다는 대목이 있으나 전수했는지, 바치기만 했는지의 여부는 애매했다.
뭐 그런데 어디가 원조고 어쩌고가 뭔 상관이겠냐만.
중요한 건 극상의 제품을, 잘 구현해서 제조, 유통시키는 게 관건이지.
본사 출신 이들에게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이 뛰어나다 뭐다 하는 건 어리석음의 소치다.
이미 다차원에서 활동하는 이가 특정 종족, 민족, 국가, 지방에 대한 우월주의에 빠져 있다? 단칼에 모가지 잘리기 딱 좋은 명분이다.
…애초에 그런 놈들은 취직도 불가능할 거고.
에드릭이 스무스하게 취직된 이유 중 하나는, 그러한 편견이 없었던 것도 한몫 단단히 했다.
어쨌든 물장사가 돈이 되는 만큼, 이쪽도 잘 굴리면 말할 여지가 없겠지.
이곳 세계에서 비롯된 특수한 전통주들도 무시할 건 못 됐지만, 본사의 엄중한 단계를 거쳐 이곳 현지화된, 우리 세계의 술도 이곳 세계 사람들에게 있어서 통하지 않을 리도 없을뿐더러, 경쟁력 자체로도 전혀 밀릴 여지가 없는 건 분명했다.
거기다 술맛이 제아무리 근사하더라도, 대다수에게 유통되려면 결국 양조장을 굴려야지. 개인이 빚고 제조하는 건 물량의 한계를 도저히 어찌할 수 없기도 하고….
“난 도수가 좀 쌔서 이건 그러던데. 역시 와인이 좋아….”
다프넬은 이미 여러 차례 맛본 터라 입에 대진 않는 모습이었다.
“넌 이런 좋은 걸 마시고 다녔었냐? 다브헤나… 이런 게 있으면 재깍 가져왔어야지!”
“…이거 말고도 많나 본대. 한 번 털어놔 봐. 또 뭘 숨긴 거냐?”
그리고 저런 성향을 지닌 이들에게 술은 최고의 선물이자 교우 관계를 개선하는 가장 좋은 뇌물이 아닐까, 하고 에드릭은 생각했다.
‘아직도 이해가 안 가지만.’
왜 술 마시고 어깨동무하며 노래하고 부대끼고 하면, 금세 친해지는 걸까.
…이것만큼은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쨌든.
술이 들어간 덕에 분위기가 훨씬 더 완화돼 아까처럼 짜증과 신경전보단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들이 이어졌다.
그 덕에….
“너 자지가 그렇게 실하다며?”
“존나 쩐다는데… 다브헤나가 네 거 맛보고 다른 건 생각도 안 난다고 하는 거 보면, 대단한가 봐?”
“나도 한 번 맛봐보자.”
“스릅! 몸도 약골들 마냥 빼빼 마른 것도 아니라 좋네. 그래, 사내 새끼라면 다부진 맛도 있어야지!”
“피부도 곱고, 예쁘장한 게… 크흡!”
…음담패설 및 집단 성추행이 발발했다는 게 문제인데.
“시간은 많으니, 우선 마저 먹고, 마신 다음에 이야기하죠.”
“그래그래! 성격 화통해서 좋네!”
“내가 먼저다?”
“뭔 네가 먼저야?! 나하고 먼저하기로 했는데!”
“언제?! 아니, 이 새끼가 잠깐 정신 팔린 사이 선수를 쳐?! 이런 망할 년을 봤나?!”
“소란 피우면 그분들하고만 안 합니다.”
“…….”
“…….”
술 취하면 보통 이렇게 말해도 소귀에 경 읽기인데, 용케 다 알아듣네.
이쯤 되면 취한 척을 하는 게 아닐까 내심 걱정될 정도였다.
‘상관은 없지만.’
솔직히 말하면 에드릭도 잔뜩 기대하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성욕이 왕성하다는데, 과연 한계까지 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솔직히 사내로서 여자 여럿은… 뭐 이미 경험상 이뤘다 쳐도… 100인 분에 가까운… 그런 결실을 이룬다는 건…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거다 보니, 묘하게 끌린다고나 할까.
‘미친 거지.’
그래도 미친 만큼 잘 먹고 잘 싸면 좋은 거 아니겠나?
에드릭도 참가해서 적당적당 스킨십(이라 부르고 노골적 성추행이라 쓰는) 전개를 이어가며, 은근히 그녀들의 터치를 즐기며 그럭저럭 배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섹스도 어쨌든 체력 소모가 엄청난 만큼, 다 먹어야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양분이 돼서… 다른 의미로 마음껏 먹어치울 수 있을 테니.
그나저나 손놀림들이 너무 노골적인데.
대놓고 몸을 만져대고 끌어안고 더듬어대는 통에….
‘나쁘지 않네.’
성격들이 괄괄해서 그렇지만 성격이 그렇다 뿐 외모며 외양은 파라메라 대륙의 거인족이며 그쪽 이들에 비하면 선녀들이 따로 없다.
그녀들하고도 부대끼며 잘만 즐기고 지냈는데, 초원 엘프 정도야….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파스티나를 향해 은근슬쩍 시선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대놓고 주진 않았지만.
‘자, 어떠려나.’
다프넬이야 이미 한껏 즐기라며 대놓고 호언했기에 오히려 지켜보는 맛이 있다며 히죽거리고 있었지만… 파스티나는 아닐 거다.
아마 겉으로 내색만 안 했다 뿐, 속에서 열불이 치솟고 있을지도?
…흐음, 이게 상처가 안 됐으면 하지만, 어떠려나.
그녀와의 관계가 질척질척하게 전개되지 않게 하려면, 선을 긋게 하는 게 아무래도 좋단 말이지.
…이건 이것대로 미묘했지만.
아무튼 식사를 끝마친 엘프들이 뒤늦게 올라오는 소주의 강력한 취기에 비몽사몽하는 모습을 보며, 에드릭은 그녀들을 정령술을 이용해 침실이 놓인 방으로 인도해가기 시작했다.
물론 개중에, 얼굴을 붉어졌으나 비교적 멀쩡한 이들하고는, 아주 묘한 시선을 교류하는 걸 잊지 않고 말이다.
‘초원 엘프의 맛, 한 번 제대로 봐볼까.’
내심 군침이 돋는다.
간만에 제대로 포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