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화 〉68. 정치질, 처세술… 취향 아니면 정말 피곤하지.(2)
그래서 에드릭은 철저하게 이런 논리를 사전에 꾸려놨었다.
에드릭의 최초 배경은 근본 없어 보여도 막상 여러 나라의 핵심, 중진과 엮여있으며, 상인이라는 포지션도 대놓고 만들어진 포지션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맴돌고 있기도 했기에, 카일론 기준에선 아마 부군 후보로 온 놈들 가운데 가장 근본 없어 보이는 이, 그러나 가장 의구심이 치미는 존재를 꼽자면 단언컨대 에드릭이 최상위 순위에 놓여 있다 봐도 무방할 터였다.
엄한 놈, 그저 잘난 놈인 줄 알고 받았는데 알고 보니 이 녀석이 어느 나라에서 작정하고 키운 정신 나간 놈이라면?
단순 스파이, 첩자여도 문제인데, 첩자 범위를 넘어서 대세를 살피고 주름 잡으며 온갖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라면, 이건 이것대로 문제고….
선배며 주변 사람에게 들은 바, 특히 팀장님께 듣기론….
‘구 제국의 잊혀진 황족이나 혈족으로까지 의심받는다고 했던가?’
이게 사실이라 치면, 카일론 내에 기생충을 심어둔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의미로 반대가 될 수 있다.
그걸 인지하고 받아들여 역이용한다 치자.
문제는 이게 단순 의혹에 불과하단 점.
뭔가 제대로 알긴 알아야 이용을 해 먹든 말든 하는데, 막상 또 파고들면 그냥 후견인이 대단한 놈들일 뿐, 진짜로 근본 없는 녀석인 것도 같고.
‘나도 잘 모르는 판국에….’
에드릭이야 그냥 상인으로서 본사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다 신대륙 가서 깽판 좀 치고 그랬다 뿐, 솔직히 뭐가 뭔지 알게 뭔가.
최초 상인이었을 때만 해도, 백화점의 점주가 되는 순간까지조차 여기까지 자신의 위치며 위명이 오를 거라곤 솔직히 상상조차 못 했었다.
어쨌든.
“말인즉슨, 변경의 백작 나부랭이로는 자네를 품을 울타리가 될 수 없다 이 말이로군? 자네가 원하는 건 굳건한 성벽, 울타리로는 도저히 만족이 되질 않는다?”
“…아이고, 그렇게까지 확대 해석을 하시면 저로서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만.”
진지한 이야기는 됐으니, 다시 표정 풀고 웃는 얼굴로 슬금슬금, 어물쩍 넘어가고자 하는 에드릭.
이걸 상대측에서 알고서도 받아들이냐 마냐가 또한 중요한데….
“후우!”
보란 듯이 한숨을 크게 내쉰 변경백.
“…어차피 추진하지 않으면 저들이 주도권을 잡을 테니 선택의 여지가 없군. 대신 그 공은 내 쪽이 가져가라….”
“각하께서도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영지를 꾸리는 자금은, 많아도 부족한데 적으면 더 크게 실감 된다.
비축하고 비축해도, 아무리 비축해도 부족한 게 돈.
특히 대귀족쯤 되면, 단순 부농이나 부호와는 쓰임새며 쓰는 빈도, 스케일 자체가 차원이 달라지니….
무엇보다 영주는 땅의 주인이되 주인이 아니다.
대신 그 땅을 수호하고 거기서 생겨나는 모든 걸 소유하고 누릴 권리가 있는 존재.
카일론의 국왕을 제외한, 각 영토의 모든 영주는 그 땅의 주인임을 자처하고 천명할 수 있었다.
명목상 왕이 영토를 내려준 거며, 이후 영토의 주인을 승계하고 계승하며 인계할 땐 왕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지만, 대역죄며 반역을 일으키지 않은 한, 최초에 이어진 맹세며 계약, 충성의 대가는 죽는 그 날까지 이어지는 바.
거기다 추후 발생할 전쟁에 대비하고자 한다면, 군자금을 포함해 평소서부터 무장을 비롯해 훈련을 위해서라도 이는 필요할 터였다.
질 좋은 병사 양성이며, 뛰어난 전사는 예나 지금이나 막대한 이익, 즉 돈이며 대가를 통해 생성되고, 만들어진다 해도 과언은 아닌 바.
무엇보다 용병국인 카일론이라 해서, 자국민은 용병으로서 부리지 말라 누가 그랬던가?
되려 가장 많이 용병을 고용하고 부리는 나라가 무려 카일론.
용병을 포함한 여타 전투 관련 길드가 가장 활성화된 지역도 무려 카일론이었다.
타 지역에 비해 마물이며 온갖 것들이 워낙 많이 범람해야지.
그래서 워 밴드(Warband)라 해서 전시엔 전쟁 용병, 평소엔 마물 토벌, 상단 호위, 고용 사병으로서 시스템이 가장 잘 일궈진 것도 카일론이었다.
…그리고 타 지역 워 밴드, 용병 무리, 클랜들과 달리 일 없을 때 도적 무리로 변하지 않는 게, 이들의 나름의 질서이자 자부심, 규율이기도 했고.
“그대는 전쟁에 회의적인 입장이라 생각했는데, 이를 막아서고자 고의로 이런 전개를 노린 게 아니라는 건가?”
“패왕녀께서 전쟁을 비롯해 앞선에서 활동하실 테니, 저조차도 같은 맥락이면 내실을 다지고 내정을 책임지는 이들이 불안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그런 이들과 형식이더라도 같은 편이라는 내색을 취해야 불만을 조금이라도 완화 시키고 그럴 수 있겠죠. 전쟁 중에 언제나 문제는 내치, 내정이 항상 걸림돌로 작용해 이길 전쟁도 패하고, 후퇴하는 일은 역사적으로도 흔한 경우니까요.”
“흐음….”
제아무리 상무 정신에 입각해 전쟁 및 무력으로 빌어먹고 사는 나라라 한들, 시대가 흘러 안정화를 이루면 굳이 위험 부담을 감수 안 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는데… 굳이 이곳 세계 역사가 아니어도 에드릭은 대한민국의 과거 역사만 살펴도 그런 예가 너무 많아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게 귀족 층에서 그래도 문제인데, 왕실조차 그런 식으로 굴러가게 되면?
…백제 꼴 나는 거지.
백제는 멸망 이전까지 꽤 오랜 시간 대비 기간이 있었으나, 결국 당나라 눈치 보면 친화 정책을 추구하다 결국 나당 연합에 무너지는 꼴이 됐으니.
만약 합심해서 백제 전역에서 이에 대응했다면, 적어도 한 차례 공세로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는 추측 설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멸망 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통합은커녕, 자기들 밥그릇과 안위에만 신경 썼다고 하는데… 그 시대에 안 가봐서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한데 시대가 달라졌다고 큰 차이가 있을까?
이를 증명하듯 고구려며 고려, 조선 때라고 예외가 있는가? 그건 아니란 거지.
“전쟁을 치르는 일선도 중요하나, 뒤쪽에서 이를 보조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러려면….”
에드릭은 빙그레 웃으며 변경백을 빤히 직시했다.
“화합을 구축하여 관계를 굳건히 다지는 것도, 필요하겠죠.”
단순 맹세며 관례, 도덕 윤리 개념을 떠나….
다시 한번 더.
이익 구조를 기반으로 말이다.
한 번 받은 걸로 평생 충성한다? 참으로 고결하고, 본받을 여지가 크며, 세상엔 그런 존재를 일컬어 충성스럽다, 충신이다, 뭐 다 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겠지만….
‘망국의 충신은 비참하지.’
역사가 위해주고, 드높여준들, 당대에 암 걸려 뒤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뭔 의미가 있나.
역사적 작품을 여럿 남겼으나 당대엔 죽고, 사후에 그걸 고가로 매기며 그걸로 돈놀이해 대는 부호들이며 귀족들, 잘난 놈들의 먹잇감으로 잘만 조리되고 이러는 걸 보라.
…죽더라도 이름을 남겼으니 그는 행복하지 않을까?
미친 소리가 따로 없지.
나라가 굳건하면 자연스레 하지 말라 해도 충성들 잘만 하게 된다.
속내가 어떻든 간에 겉으로는 철저하게.
…인간 본성을 믿을 바에 시스템으로 굴리는 게 훨 낫지.
이런 문제로 완벽을 추구하는 건 글러먹은 예다.
인간인 이상, 부조리, 불명확, 불확실한 건 당연한 거니… 그저 상황에 맞게 최선이 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리일 거고.
그러면서 피해자, 그로 인한 희생자들의 수를 줄이는 게, 나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라고, 에드릭은 생각했다.
“왕녀 전하의 부족한 점을 그대가 감당하겠다 이 말인가?”
“부군이 된다 치면 그래야겠죠. 아니라면야 뭐….”
에드릭은 편히 웃으며.
“다음에 거래 차 들렸을 때, 편히 얼굴 마주 보며 서로한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데도, 나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안면을 트고, 친해지고, 서로 술잔을 기울이고, 식사 자리에 참가해 환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초대받아 그 저택이며 성채에 머물 수 있다는 것.
별거 아닌 거처럼 보여도 이런 건 대단히 중요한 요소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대는 그러한 인맥이 더 큰 부를 일으키고, 불러오고, 만들어내는 시대기도 했고.
누구 이름을 알고, 누구에게 말 한마디 전달할 수 있는 것, 글자며 문자를 적을 수 있다는 것,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단 것만으로 기회가 돼서,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에드릭은 말했다.
“어느 쪽이든 각하께 손해가 가는 일은 없으실 겁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어느 쪽이 서로에게 도움이 크게 될지, 한 번 정도만 생각해주시면 저로선 감읍할 따름이겠지요.”
“…허,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할 수 있군. 말만 놓고 보면 간청하고 애원하는 걸로 들리는데… 속뜻이 전혀 다르니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군.”
“그럴 리가요. 저는 순수한 의도로 진실 되게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내 뒤를 받쳐주고, 도움을 주면 당연 나도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거다.
뭐… 안 그래도 아쉬울 건 없으니 척은 지지 맙시다. 나중에 언제 엮여서 도움 주고받을지 모르니.
다른 의미로 원한 관계로 맺어질 시, 뭔 사태가 벌어질지는… 알아서 판단하시기를.
브레나임 백작에겐 아마 이런 식으로 들렸나 보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구태여 이걸로 보복한다거나 뭐 복잡하게 원한 관계를 맺을 필요까지는 없겠지.
…번거롭기도 하고.
어쨌든 속이 답답해지지만, 얼굴은 내심 웃어야만 하는 시간을 끝으로, 다음 식사 시간에 참가를 예약하고서야 에드릭은 백작의 집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허이고.”
먹고 살기 힘드네.
…난 언제쯤 꿀만 빨며 살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