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54)화 (254/454)



〈 254화 〉68. 정치질, 처세술… 취향 아니면 정말 피곤하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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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결국 그렇단 말이지.
줘도  받아먹는 건 그렇다 치고….




“눈치가 빠르군.”


거기다 대놓고 타협 한번 없이 자기 뜻을 관철한다 라….



“목숨이 여럿쯤 되는 건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건가….”


아무렇지 않게 대귀족하고 딜을 걸다니, 미친 건가?
상인으로서 부를 일구며 인맥을 여럿 구성했다 쳐도, 신대륙에서 제법 날뛰었다 하더라도….



“그건 그쪽 사정이지.”

그로부터 3주 정도가 지나 총체적 보고를 받아 이를 검토하던 철왕은, 변경백이 보낸 보고 평가서를 살피며 그 당돌한 내용에 코웃음을 터트렸다.



“똑똑하나 욕망이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치장하고 바싹 낮추려 드는데… 이런 종류는 좀처럼 보기 힘들지.”



실제론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녀석이 그 예외인가? 이건 이것대로 문제다.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건가, 꿍꿍이가 있는 건가….”




신대륙에서 그가 벌인 과정들을 재차 살펴본 철왕은 그가 충분히 자기 기반을 일굴 수 있음에도, 역으로 이를 포기하고, 권리를 내려놓은 상태로 자신들이 속한 회사 구성원 간의 통합과 화합에 훼방을 놓은 것도 모자라 세력 약화까지 도모했다.

대신 원주민, 토착 세력들에 한에선 그들이 자립하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셈인데….



‘후속 지원이 따로 없는  보면 얽매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선이니, 정의니… 하잘 것 없는 것에 휘말려 정에 휩쓸리고, 감정에 휘둘리는 머저리들이 세상엔 의외로 넘쳐난다.


녀석이 그와 같은 경우인가 싶었지만, 의외로 그 와중에 자기 실속이며 이익은 그럭저럭 챙기긴 했다.

다만 모두가 지켜보기로, 더 많이,  크게 챙길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기에… 탐욕스러운 것들의 시각으론 자원봉사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크게 구상한다고 쳐보면, 그들의 잠재성에 투자를 한 셈인가.”



신대륙의 여러 구성원들은 훗날 에드릭의 은혜를 제대로 실감하고, 이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존경심이며 경외를 표할 수도 있을 터.
이미 그렇다 쳐도, 그것이 유지되는 것은 힘들 수밖에.


그러나 그는, 떠나고서도 오히려 발자취며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크게 과시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건 일종에 씨앗.
이후, 꽃이 필지 시들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잊지 않으리.


흥하든 망하든 간에
흥한다면 감사를.
망한다 치면, 그리움, 갈망, 희망이란 이름으로 그 가치가 일변할 테지.



“재미있군.”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이유를 세부적으로 적어뒀는데….



“인재는 인재로군.”


예상보다 훨씬….



“발칙한 녀석이지만….”



어느 쪽에 치우친 것도 아닌데, 다방면으로 쓸모가 있어 보인다.
인품이며 성향도 그렇지만 실속을 챙기는 면모도 그렇고, 처세, 모략에도 어느 정도 익숙한 듯도 보이는 건 물론….



“노련한 것들이랍시고 쉽사리 틈을 보이진 않겠군.”

나이가 젊은 게 유일 흠이지만, 다른 의미로 이건 미래에 큰 저력이 될 수 있을 테니….

“…….”

생각에 잠긴 왕은 그렇게 에드릭에 관한 평가 보고서를 내려놓고, 이어 다른 후보들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대기 시작했다.


언제나 유능하고, 뛰어나다 해서 중요한  아니었다.
중요한 건, 뽑는 이가 얼마나 흡족해하는가. 마음에 들어 하는가.


실질적으론 그게 전부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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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업무에 접어드니 시간이 남아나질 않았다.


현지에 책임자, 관계자를 모집하고, 뒤이어 당도하는 몇몇 상인들, 관련 업자들과 일정, 절차 등을 조율하고….
그 외에도 한참 동안 진행될 일 없던 만남을 성사시키기까지.

두 개의 왕국, 하나의 공국, 그리고 유목 부족 연합 간의 모집을 통한 의견 수렴  협약 체결을 위한 회의까지 치르니, 한 달은 금세 흘러갔다.

파견 날도 급작스러웠지만, 왕도로 복귀하라는 명도 급작스럽게 진행됐다.
덕분에 일은 더욱 바빠졌으며, 마지막 날엔 회포를 푸는 명목으로 영주령 내에 대대적인 축제까지 벌어졌는데….

“책상물림이 지겨워 그쪽 일은  집어치우려 했는데, 결국 이리 묶이는구나.”
파스티나가 간소한 차림새로 푸념하며 흑맥주를 들이키는데, 피로가 꽤 누적된 듯 보였다.
“책상에서 끄적이는 건 잠깐이죠. 나중엔 아예 현장에서 오고 가고 난리도 아닐 테니, 그때쯤 되면 앉아서 쉴 틈도 없을걸요.”
“과연 어떨까.”
“그리고 백작령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이런저런 갑질을 행사할  있으니, 제법 좋은 위치라 생각됩니다만, 틀린가요?”
“그건 기껍긴 한데….”



어차피 파스티나는 백작령 내에서도 거쳐 가는 사람에 불과했다.
정략혼으로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주는 것도 안 받는다며 뛰쳐나왔던 전력이 있기도 했고.




“괜히 저 때문에  묶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너 때문은 무슨.”



괜히 에드릭 자신 때문에 이용 목적으로 영주령에 붙들린 게 아닐까 해서, 그에 대한 보상…까진 아니더라도 어쨌든 은혜를 갚는다, 신세를  걸 보상한다는 명목으로 에드릭은 그녀에게 이번 무역 기획의 책임자 역을 맡기고자 했다.

험한 일을 하고, 사람 부리는데도 익숙하면서도, 이런 정치며 처세에도 제법 능해진  물론, 다국가를 오고 간 경력이 있다 보니 사고가 편협하다거나 닫혀 있지 않는 게 무엇보다 주효했다.

거기다 그녀는 유목 부족이라 해서 딱히 적대적이거나, 이종족이라 해서(특히 엘프) 그들을 비하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일절 내보이지도 않았는데….


유목 부족 가운덴 인간의 비중이 오히려 소수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유목 부족의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종족 멸시 및 무시, 그로 인한 갈등 문제가 꽤 컸는데, 에드릭은 이 문제를 단순 감정적 문제, 편견의 문제를 떠나 정당한 경쟁 심리로 탈바꿈시키고자 꽤 돈도 뿌리고, 발품도 많이 팔아야만 했다.


그리고 파스티나도 용병으로 외부를 이곳저곳 싸돌아다니며, 어쨌든 고용되는 입장이다 보니 여타 갑질에도 능숙하게 대응하는 법을 익혔을 거고, 그러기에 주변 갈등이나 시비가 불거질 때, 이를 조율하고 관리하는 법도 제법 능할 거라 판단했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다.


실제로 일을 맡긴 뒤로도, 예상보다 훨씬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믿고 맡기기도 좋다 여겨졌고.


이는 자연스레 변경백의 점수를 따는 요소로도 작용했는데… 딱히 의도한  아니지만 좋게 보면 좋지 아니한가.



“그보다 저 녀석은 어쩔 셈이냐?”
“…데려가야겠죠.”



식탁에 고개를 파묻고 고기며 샐러드를 흡입하듯 삼키고 씹어대는 루넨브리스를 보며, 에드릭은 침음했다.

뒤에서 보면 무슨 새하얀  뭉치가 꿈틀대며 식탁 위에 고개를 파묻은 것처럼 보이겠지.


그래도 복장은 이전과 달리 철저하게 상·하의 모두 손목 발목을  가리는 남성복을 입게 했는데 처음엔 얼마나 불편한지 마구 벗어대고 난리도 아니어서 방에 처박아두기까지 했었다.


여성복을 입히자니, 움직임이 워낙 표홀하고 민첩한데, 주변 눈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터라 치마며 원피스를 걸쳤다는 자각도 없이 고지대며, 성채 위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어 많은 이들의 눈을 즐겁게… 아니, 꺼림칙하게 해서 이거 주의 시키는데도 조금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그나마 시장을 건설할 초원 부지를 살필 때며 넓은 평야에 오니 아주 좋아 죽겠다는 듯 이곳저곳 네발로 쏘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니, 애완견이 따로 없기도 했고.


“그 뭐냐. 대단하신 분이 어쨌든 같이 다니라며 동행 시킨 거니… 뭔가 이유가 있겠죠.”
“…그 대단하신 분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는데.”



파스티나는 몰라도 변경백은 뭔가 짐작이 가는 듯 했는데, 그건 어차피 왕도로 돌아가면 차차 알게 될 테니 큰 문제 안 일으키도록 잘 지켜보라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뭉멍?”

거기다 저 특이한, 특유의 표현도 그렇고.
목소리가 워낙 사기적으로 좋아서, 들을 때마다 절로 미소가 그려지지만….


“아무것도 아니니 잘 먹어.”



끄덕끄덕하고 머리 위에 귀를 펄럭이며 다시 먹거리에 신경을 집중하는 루넨브리스.



“수인도 아닌데 인간의 형상에… 특이해.”

수인이라 함은 말 그대로 이족보행하는 짐승  자체.
애초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털에, 특유의 손발톱에 꼬리에….
아무튼 그게 일반적인 수인의 형태.


그런 의미에서 루넨브리스, 저 녀석은….



‘실제 판타지 속 모에 요소로 부각되는, 그쪽 수인인가?’

말 그대로 열도  만화며 라노벨, 미연시에서 튀어나올 법한 녀석이다.
 놈에 모에 요소라는 걸 아주 덕지덕지 달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미적 의식이 다르다 보니, 절세 미녀며 미인인 건 알지만 내심 꺼림칙해하는 분위기들이 보통.

거기다 이종족을 혐오하거나 배척하는 이들은 저렇게 예쁘고 아름다움에도 대놓고 눈살 찌푸리고 욕지거리를 토해내니, 이건 이것대로 신기했다.

그나마 이종족과 어울어지는 카일론이라 해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특히 브레나임 령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이러한 배척 심리가 두드러진다는데, 유목 부족 및 산맥에서 대놓고 산적질, 도적질해대는 것들에 대한 적대 심리가 작용해서 그런 거라는데….

‘거기까지 고려하면 한도 끝도 없지.’


어쨌든.

에드릭도 준비해온 반투명한 녹빛을 띄는 도수 낮은 샴페인, 일종에 스파클링 와인을 입가에 기울이며 대충 분위기를 즐겨대고 있었다.

원체 취할 정도로 술을 안 마시다 보니, 주변에서도 이제 술을 안 권하게 됐다.
권할 때면 서약 문제로 대충 떠넘기듯 거절해오기도 했고.
종교적 문제라 하면 다른 의미로 걸고 넘어질 수 있기에, 개인적 서약을 들먹이면 이건 이것대로 편했다.


예컨대, 권해도 숫자 제한을 두고, 잔을 반만 채우게끔 만드니, 마셔도 크게 부담 갈 여지도 없고.

“그리고 본래 자리가 있어야 결혼하기도 좋고, 좋은 남자 낚기도 좋을 거 아닙니까?”
“나한테 온다는 선택지는 없나 봐?”
“함부로 결혼 말고 정착말라고 저한테 조언 주신 분이 있어서요. 저주 걸려 금세 갈 거라 하더라고요.”
“정말로?”
“…제가 결혼했다 치면, 이미 그럴 상대가 제법 많았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러면 패왕녀의 부군이 되는 건? 그것도 같은 맥락 아냐?”
“그건 조금 다를 수 있다 해서요. 뭐가 다른지는 저도 궁금하지만… 밑져야 본전이기도 하고….”
“너도 어디 정착해서 그냥 편히 살고, 역시 그러고 싶은 거야?”
“…글쎄요.”

정착을 딱히 바라는 건 아니다.
그냥, 꿀 빨면서 잘 먹고 잘살면서  싸고… 음, 그런  누리고픈 거지.
그것도 스트레스 크게 안 받는 환경에서.


그럭저럭 감당 가능한 범주의 스트레스는 삶의 윤활류가 될 수 있으니,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서도….




“너도 엮인 게 많은가 보구나.”
“그래도 그럭저럭 만족하며 잘살고 있으니까요. 할 수 있는데까지, 멈추기 전까진 나아가는  삶의 본질 아닌지요?”
“어려운 소리는 됐고. 가뜩이나 피곤한데 머리 아프게 하지 마.”
“하하하.”

에드릭은 자그맣게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건 그렇고… 모레쯤에 떠나는데 그때까지는 조금 숨 돌리고 그러지?”
“가면서  돌리면 되죠.”

마찬가지로 순간이동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내용은 동일했기에, 가는데만도 한참이니 그 기간에 겸사겸사 쉬어야지.




“…그럼 뭐야? 일만 하다 가겠다고? 서운하게?”
“그래서 오늘 이렇게 시간  거잖아요.”
“…내고 자시고가 뭐가 있어. 매번 붙어 있는 거야 마찬가지인데.”



원하는 게 다른 거라는  명확히 인지는 하고 있다.
그러나 항상 주변에 눈이 있고, 바쁘다 보니 허튼짓(?)을  했다 뿐이지….

“그러니 오늘은 후딱 자리 파하고, 간만에 좀 즐겨보죠.”
“…엘프들하고 질펀하게 해대서 질렸나 싶었는데, 아니었어?”
“오! 이게 질릴 수가 있긴 하고요?”



질릴 수야 있긴 하지.
그러나 그런 만큼, 기력이 충만하면 늘 떠오르고 생각나는 게 이쪽 아닌가.


거기다 에드릭은 마음만 먹으면 행할 수 있기도 했기에… 제어하고 스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정말 헤프게 아랫도리를 놀려댈 여지가 다분하기도 했고.


초원 엘프와의 질펀한 과정, 결과들이 소문으로 퍼지자, 여자들이 오죽 많이 푸시를 걸어왔어야지.

그리고 그런 접근을 에드릭은 대부분 웃는 얼굴로 만류하거나 거절해왔다.
이유?


…제아무리 헤픈 게 미덕이자 자랑거리가 되는 세계며 시대라 하더라도, 선이라는  있어야지.


무엇보다 파스티나를 우대하고 존중해주는 의미로, 에드릭은 어쨌든 눈치를 본다는 걸 대놓고 피력하며 적절히 정조(??)를 지키는 태도를 줄곧 어필해오고 있었다.

사실상 여기에 온 이래, 초원 엘프 사절단 외엔 파스티나하고 밖에 관계를 안 맺은 셈이기도 했고.

“그래, 적극적인 건 마음에 드네. 그럼 말 나온 김에 일어날까?”
“바라시는 대로.”

조금 남은 내용물을 전부 입안에 털어 넣자 달짝지근한 맛이 혀를 스치고  안으로 흘러든다.

그럭저럭 기분 좋은, 뒤끝 없이 달콤한 여운을 만끽하며, 에드릭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축제는 한창이다.

그리고 당연, 축제 당일엔 그렇고 그런 이들이… 주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거기에 한 발 걸쳐보는 것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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