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58)화 (258/454)



〈 258화 〉70. 정말로 무서운 건 언제나...

“의도….”



변경백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지금 자네가 있는 이곳이 어디인  잊었나 보군.”
“…백작 각하의 영토 내부이자, 백작 각하께서 머무시는 공간이란 점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명백하게 이쪽이 피해자인데, 지금 피해자를 질타하냐는 태도였다.
“그렇기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요.”
“뭐라?”
“이러한 만행을 방치하고, 허용하실 정도로 호락호락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충분히 이해하고 숙지하고 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자네는… 날 과대평가하고 있군.”

저 정도 위치에서 자기 본거지를 습격당했다는 건 그 자체로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다.


하물며 당해도 인정은커녕 적의 비겁과 만행, 무도함을 질타하며 분기탱천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너무 침착했다.
겉으로 보면 화를 억누르는 것처럼 보이나….



“평소였다면 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셨겠지요. 감정적으로 화를 표출하는 것도 물론 선행됐을 테고요.”
“…주인 된 이가 감정에 휩쓸려 정작 중요한  놓쳐서야 되겠는가?”
“주인 된 자가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는 것 또한 올바른 처세는 아니라 생각되옵니다만.”
“…….”

이쯤 되면 변경백도 느꼈으리라.
대체 뭘 믿고 저렇게 대놓고 자신을 추궁해대는지.
아마 머릿속이 복잡할 거다.
그리고, 복잡하기에 그 자체로 설득력이, 논리가 맞아 떨어져 간다.


만약 그가 무고하며 억울한 입장, 진정한 피해자라 치면… 평소 백작이라면 망연자실하거나 침착성을 유지하기 앞서 열불을 터트리며 상황 파악에 나섰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왜 굳이 자신을 이쪽에 불러 대화를 나누고자 했는가?
혹시 에드릭 자신이 이에 대해 죄다 설명해주길 바랬는가?
아니면….
역으로 심문 및 추궁을 위해?


그 말은 달리 말하면 에드릭 자체를 범인이라 가정하거나 의심 여부가 확고하다는 전제가 깔리는데, 여기에도 걸리는 게   가지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에드릭이 취하는 포지션은 제법 의미가 있었다.




‘의심받기 전에 의심의 창대를 내질러라.’



애초에 에드릭 자신이 의심 받을 이유가 없는 게, 내버려두는 거 자체가 에드릭으로선 뭐가 됐든 이득이었다.


즉, 열심히 일해서 형성한 판을 스스로 깨뜨려 손해를 유발 시킨다? 무슨 이유로?
그러면 정치적 문제나 그 이후 발생할 문제로 인한 또 다른 이익을 위해서라는 건데….

상대 측에서 이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을 터.
거기다….




‘이상하게 주변 가신들이 다 외부로 나가 있는 것도 그렇고.’

에드릭이 당도한 이래 영주성 내에 있을 핵심 가신들은 여전히 그의 눈에 좀처럼 띄질 않는 형편이었다.


애초에 영주 혼자 의사 결정 다 하며 어쩌고저쩌고? 그건 소규모 영지며 봉토를 지닌 영주 나부랭이들 이야기지, 변경백 정도 되는, 대귀족 기준에 부합되는 이는  못지않게 아래에 깔아두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영지가 넓다는 건 그만큼 할 일이며 신경 쓸 일이 많다는 건데….

실제로 은연중 탐문을 비롯해 정보를 취합해 본 바, 에드릭이 오기 전에 그들을 외지로 파견 보낸 전황들이 포착됐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게 파스티나였고.
인수인계 다 받고, 배울 거 다 배운 상대로 업무에 종사했기에 불편함이며 어려운 점은 없었겠지만….


“귀족의 가장 큰 힘이면 관계고 체면이고 상호 존중, 상호 이해, 이를 바탕으로 한 정보 교류, 이익 분배, 독점 공유죠. 정상이라면 자식들까지 데려와 절 소개하고 친분을 다지게 하는 게 정상이었을 겁니다. 제가 부군이  시, 이러한 태도는 그리 좋지 않을 거란 건 누가 봐도 명확하니까요. 괜히 적대적이고 반감을 느낀들 서로에게 불필요한 피로감만 생겨나게 될 것이고….”
“본론만 이야기하게.”
“…애초에 제가 부군이 되지 못한다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한 게 아니신지요?”
어느 정도가 아니라, 확신을 가졌을지도.
“애초에 국왕께선 저하고 파스티나,  각하의 여식과 이어 묶어두려 했는데… 그 본 목적이 흐트러진 게 우선 첫째라고 저는 봅니다만… 어떻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군. 쓸데없는 억측을 늘어놓고자 한다면, 이만 가보게. 더 이상  말도 없고, 자네가 지적한 대로 이제 슬슬…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테니.”
“여기서 이런 말을 하면 제 밑천이 털린다는 걸 알지만… 저번에 베푼 은혜가 있으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창문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변경백을 똑바로 직시한 에드릭이 차분히 말문을 텄다.



“이전부터 상황은 폐하께서 쥐고 흔들고 있단 건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각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었지요. 그리고 제가 구상한 것은 필시 전부 이득이 되는 요소지만, 폐하께선 이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방향으로 이를 다루기로 마음먹으셨을 테고요. 그러면 결국  사태를 와해 시키거나 날려버려야 할 텐데, 그러자니 또 껄끄럽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상대들도 만만한 건 아니니 결국 손해를 감수한다는 모습을 내비쳐, 다른 이익을 도모하려 하셨을 겁니다. 흐음… 그래요. 이를테면…… 무역  주도권을 카일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양도한다던가.”

카일론이 가장 신경 쓰는 상대국은, 바트리온.
예컨대 바트리온만 견제 혹은 피해를 입힐 수만 있다면… 무역을 통한 전체의 이득 중 태반을 잃더라도, 이는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 사안.


무엇보다 초원  부족의 활성화와 안정은 추후 강대한 적대 연합 형성의 지대한 역할을 하는 셈인데, 이걸 또 잘못 와해 시키거나 막아서면 그쪽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뿐더러, 이미 이익에  돌아간 이들은  가능성을 엿봤기에 따로 투자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체적으로 이쪽 무역망은 이제, 뚫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럴 거라면 오히려  마음 먹고 줘버리면 되는  아닌가.
대신….
주는 만큼, 뜯어내면 그만이고.
여기엔 공식적 협약이나 협조, 계약보단 뒷거래가 주를 잇겠지.


거기다 엘피나 공국은 여전히 부군 경선에 참가한 강력한 후보  하나로 언제든 혈연으로 엮일 여지마저 있는데, 이건 다른 의미로 카일론에게 있어 위협적이진 않으나 무시하기엔 애매한 압박으로 작용할 거다.

그러니 한편으로, 에드릭이 탐탁지 않다는 걸… 어떤 식으로든 한 차례 보여줘 저들의 기대감을 충족 시켜 이득을 꾀할 필요성이 있을 터.

여기까지 나오면 결과적으로 바트리온을 제외한 엘피나 공국, 초원 부족의 암약으로 인한, 동맹이 은연중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게 과연 끝일까?
여기서 카일론이 얻을 이득은 고작 바트리온을 원활히 견제한다 정도.

따로 국경을 넗히거나 평야 지역을 점하거나, 그럴 여지를 남기거나, 국가적 영향력을 공고히 하거나 퍼트린다던가, 하는 이익은 무엇 하나 없었다.

놓고 만 보면 자멸책이다.
어제의 동맹은 언제든 적국으로 바뀔  있는데, 불안정한 동맹을 위해, 바트리온을 압박하고 견제할 명목으로 본래 얻어냈을 막대한 이득마저 내려놓는다?

무엇보다 왕이 그걸 시킨다고 이쪽 일대의 주인인 변경백이 이를 순순히 수긍하고 수용해?

그러면 여기서도 왕은 변경백에게  이상의 이익, 메리트를 안겨줬다는 의미다.
그게 아니면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손해 보는 장사며… 변경백이 이런 속사정도 모르는 상태로 이 사태를 방관했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바.


…간단하지만 무식하게, 그냥 마음에  드는 세력들이 자체적으로 암약해서 난리를 쳤다? 분탕을 쳤다? 그럴 수야 있는데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 치면 반드시 뒤에서 부채질을 한 녀석들이 있을 터.


그리고…….



‘이건 바트리온 내에서도 덫에 해당할 거다.’



처음엔 혹시나 했지만, 추가적으로 몇몇 본사 인맥을 통해 주변 정보, 관련 정보를 수집하며 얻게 된 내용들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불을 끈 직후 파악한 단편적 정보라 머릿속이 복잡할 때기도 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여기까지 오고 말하는 아중에 그럭저럭 정리가 끝났다.

물론 아직, 완전한 건 아니고… 단순 억측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형태로나마 억측이랍시고 완성된 게 어디인가.

“정치엔 아군이고 우군이고 없죠. 국가도 없고요.”
“아까부터 자꾸만 이야기를 이상하게 전개 시켜 나가는데….”
“정리해드리면, 우선 마시장을 비롯한 무역의 주도권은 초원 부족에게 넘긴다. 큰 건수기에 그만큼 우리 지시를 따르게 하기 용이하겠죠. 협약도 있지만 애초에 카일론이 이를 허용치 않으면 무역 자체가 와해될 여지가 있다는 건 저들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크게 이를 밀어주고, 엘피나 공국에서마저 이를 용인하며 받아들이게 이끈다. 그러면 남은 건 바트리온인데… 그들 없이 이런 식으로 몰아주기로 들어가면… 과연 바트리온은 이 사태를 어찌 생각할까요?”
“말도 안 되는 억측이다. 애초에 그러한 정황이며 상황 자체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그들이 역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러한 파괴 공작, 암살 인원을 파견한 거라면….”
“초원 부족 쪽에서 손을   맞을 겁니다. 위장 자체는 산맥 쪽 도적이며 몰상식한 것들로 치장했겠지만요.”

애초부터 산맥에 숨어 도적질이며 패악질을 일삼는 것들은 카일론 내에서도 두고두고 짜증나는 요소기도 했다. 목격자들 중 일부로 그들의 복색이며 차림새와 유사함을 강조하기도 했고.



“그리고 이를 주도한 건 바트리온이다, 그들의 목적은 협약을 무효화시켜 모든 걸 없던 일로 만들고자 한다… 라는 명목이라 해두죠.”
“…….”


변경백은 침묵했다.
허나 눈빛으로 그 다음 내용을 촉구하듯 침중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리고 초원 쪽 대족장은,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명목으로, 바트리온의 간악한 것들에 혹해 초원 부족의 명예와 자존심을 팽개친, 적대 부족, 말  들어먹는 것들을 대대적으로 박살  명분을 취득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바트리온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바트리온 내에 상인 집단, 길드, 가문들에 대한 대대적 압박이 이어지겠죠. 누구인가. 어쩌면 귀족들도 이로부터 자유롭진 못할 겁니다. 이에 대한 의구심, 의혹을 떨쳐내지 않은 한 바트리온은 카일론과 초원 부족 둘의 합공을 받게  거며, 이 문제는 추후 생겨날 협약 문제에 대해서도 이들의 무제한적 양보를 이끌 여지를 남기겠죠. 이게 안 받아들여진다면… 전쟁 명분도 생기니…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겁니다.”


피해자 코스프레.
어쨌든 카일론은 피해자다.
이거 자체가 이미 강력한 명분이다.
어이가 없겠지만 피해자인 증거가 명백하다.
그 명백이란 기준으로 어이가 없긴 매한가지지만.

무엇보다 양국의 이러한 문제, 갈등은 종교가 나서서 양국 간의 조사관을 비롯해 동등한 입장에서 체계적인 수사를 거쳐 이러한 분쟁을 중재해야 하나, 카일론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다간 역풍을 맞을 수가 있다.
초원 부족?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바트리온은 카일론과 달리 국교로 모신 교단이 확고했기에 이게 또 안 그랬다.


결국 자국 내에 분쟁에라도 나서서 이를 중재하고 파악해야 하는 형태로 번질 테고, 이조차도 방관하면 국가에 그만큼 관여해 목줄 잡아대며 이익 챙겨대면서 그조차도  한다? 그럼 너희가 하는  뭐냐 소리를 듣게 될 거고….

‘그리고 종교쟁이들도 귀족들 못지않게 상인이며 부호, 심지어 귀족들에게조차 여러모로 잘 뜯어대는 족속들이기도 하니….’



바트리온  본사 직원, 그쪽에 자리 잡은 상인이 전해온 소식 자체만 봐도, 주변 흐름이 굉장히 위축되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 여기가 습격 당해  사태가 터진지도 모르는데 벌써?
이건 즉….

‘바트리온 쪽도 엮여있다는 거지.’




만약 그럴 시, 카일론 국왕이나 그 참모진들이 수립한 계획에 그럭저럭 이득이랍시고 저울질해서 자기들 입맛에 맞게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과연 어느 정도 되는 인물이겠는가?


여기서  하나의 억측.


애초에.

바트리온을 압박한다는 이 사태 자체가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 쇼일 수도 있음을.



‘애초에 제대로 된 동맹이 바트리온이라면?’

말을 하다 잠시 멈췄음에도, 변경백은 구태여 추궁해오진 않았다.
예컨대 바트리온을 형식적으로 압박, 이런 준 국가적 위기를 야기한 이들, 정적을 몰아내고 압박하는데 이용하도록 사전 교섭을 취해놨다 치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큰 그림이 아닌가.
너무 확대해석한 건가? 과장되게?

바트리온은 왕권이 그렇게 강한 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왕인 자, 혹은 그 주변에 그러한  잘 받쳐주는 이가 있고, 이를  다독일 이가 있다면?

…한 번쯤 꿈꾸어볼 법하지 않나?


그리고 평야 지대를 다 같이 곡창 지대로서 활용한다.
초원 부족은 마시장으로 자본 및 식량 확보가 용이해지고… 나머지 국가들도 마찬가지….


그러기 위해선 결국 3개의 나라와 하나의 부족이 잘 엮여야 하는데….

‘오히려 이게  좋은 건가?’


너무 확대해석하는 게 아닐까, 순간 머릿속이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애초에 체력적으로도 살짝 몰려 있는 상태라, 확실하게 판단이 서질 않았지만….
에드릭은 결국,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촌극이 따로 없군요.”
“그런가?”



의외로 변경백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이미 알 만큼 알았나 보군? 하며 여유를 부리는 듯해서 짜증이….

“그래서 파스티나는 어찌 됐습니까. 그것만 알고 넘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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