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화 〉75. 이 나이(?) 먹으면 치고받는 것도 귀찮다.
정신적으로 늙었다고 듣는 이유 중 하나는, 스포츠에도 별반 관심이 없고, 격투기를 포함해 어쨌든 거친 것들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아 그런 면도 있었다.
그렇다고 문화생활을 영유한다? 취미? 그런 것도 크게 없고.
아니, 만들자면 한두 번씩 맛집이란 곳을 가보고, 좋은 음악 들어가며 반쯤 낮잠, 반은 명상하는 느낌으로 한두 시간을 보낸다던가.
그러나 취미를 공부한다거나, 깊숙이 파고드는 그런 건 그다지….
게임을 한 것도 어쩌다 보니 하게 된 거고, 버릇 들여서 그냥저냥 하다 보니 열심히 했지만, 군대 들어간 직후엔 완전히 머릿속에서 잊힐 정도로 못해서 크게 아쉽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영화며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은 한 번 보면 재탕 같은 건 없는데, 재미를 포함해 책 대신 본다는 느낌도 어느 정도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진짜 재미없는 인생이네 그려.
덕분에 이세계에서도 잘만 적응하고, 크게 엇나가는 점 없이 금세 녹아들었는데, 덕분에 이런 쪽에 재능이 있단 소리를 들었는지도.
그러나 달리 말하면, 취미를 즐길 정도의 여유도 없었고, 그럴 재량도, 능력도 없었다는 게 정답일 거다.
취직 전까지만 해도 이도저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꾸준히 독서를 해둔 게 조금 사고를 다채롭게 하는데 도움이 됐고, 호기심은 많다 보니 이것저것 배울 때도 집중하는 여력이 됐는지도.
여전히 원래 세계에선 영어도 못 하는 주제, 이곳 세계에선 번역 도구의 힘을 빌린다 쳐도 무려 4개국어, 파라메라 대륙 쪽 언어까지 합하면 거진 6개국어를 자빠졌으니, 이것만 봐도 허투루 세상을 산 게 아닌 건 분명했다.
그러나 그건 이쪽 사정이고.
대회 직전이 돼서야 이 사람 저 사람 찾아와 그들을 맞이했는데, 이것만 해도 하루는 순식간에 흘러갔다.
굳이 에드릭이 손수 그들을 찾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괜히 먼저 찾아가서 위엄이랄까, 일단 갑이란 중요 포지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고, 둘째는 만나는 이들의 행적을 노골적으로 노출 시키기 위함도 포함돼 있었다.
이건 카일론 쪽에서 보면 에드릭이 불순 무리와 은밀히 자리를 가진다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요소기도 했고, 대외적으로는 자신을 손수 만나러 온다는 거 자체만으로 이런저런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기에, 알아서 온갖 소문이 퍼져 나갈 테며, 이건 에드릭의 위치와 명성을 절로 드높여줄 터였다.
이 시기엔 예외적으로 귀족이며 외국인이 오는 것조차 크게 차별하고 배척하지 않았기에 온갖 이들이 날 잡았다는 양 찾아왔다가, 순번이 늦어져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기도 했다.
“하이고, 힘들다.”
날이 저물기 직전까지 밀려든 이들을 상대하다 보니 진이 다 빠진다.
그나마 순백의 늑대 모습으로 무르팍에 눌러앉아 쉬고 있는 루넨브리스를 손으로 쓰다듬는 게 제법 위안거리로 작용은 했지만, 이조차도 한참이 지나니… 뭐랄까, 질리는 건 아니지만….
폴짝!
사람들이 떠나고, 다음 손님들이 들어올 기미가 없자 눈을 번쩍 뜬 루넨브리스가 에드릭의 무릎으로부터 탈출해 객실 내부를 뛰어다녔다.
…녀석도 꽤 지루했나 보다.
“…내일인가.”
무도 대회 예선전이 치러지는데, 그거 외에도 각종 대회며 행사들이 열린다지만, 솔직히 구경가기도 귀찮았다.
왜들 그렇게 그런 쪽에 열들을 올리는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명목으로 축제에 참가는 할 수 있다 쳐도, 개인적으론 시끌벅적한 곳에서 동떨어져서, 그걸 아주 먼 곳에서 지켜보는 쪽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다고 할까.
‘경거망동할 필요가 없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덕분에 뭔가를 적극적으로 꾀하지 못하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야욕이나 야망이 생겨나지 않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겠지.
그래도.
‘…….’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이번 부군 경선에서 확실한 성과를 거두는 것.
적어도 그게 전제가 돼야만 뭘 하든 말든 할 테니.
언제나 그렇지만 에드릭은 대승은 아니어도 소소하게 승리하고, 결정적인 때에만 이기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패배 전적만 안 쌓으면 된다.
인생에 패배 전적은 쌓지 않는 게 가능은 하냐 싶겠지만… 그러니 나대지 않고, 무리수를 던지지 않으며, 선을 안 넘으려 노력하는 거고.
말이 쉬운 거지, 이거 어지간한 인내심, 절제심, 금욕적 태도로 무장하지 않은 한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돈이 쌓이고, 힘이 생겨나며, 명성이 쌓이면 무릇 누구든 그걸 휘둘러보고 싶어지고, 누려보고 싶어지며, 과시하고 싶기 마련.
…그런 면에서 그런 보잘 것 없는 거에 휘둘리지 않는 건, 나름 타고난 천성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러한 천성이… 현실에 있던 당시엔 남들과의 경쟁에서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는지도.
승부 욕이 없는 건 아닌데, 굳이?
뭔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근데 그렇게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런 수지타산이며 이점을 따지다 정작 나이 먹을 때까지 취직도 못 하고 알바만 뛰어다니던 게 어디 살던 누구시더라?
그래서, 그런 경험이 있기에 에드릭은 사리기는 무척 사리되, 기회를 낚아채기 위한 노력, 그에 관한 결단을 결코 무르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하기 싫은 것과, 못하는 건 다른 거니.”
하기 싫어도 할 수 있고 필요하면 한다.
못하는 것, 시도한다 쳐도 피해라던가, 기회비용 소모가 극심하다? 그럼 미련 없이 접어야지.
포기도 빠르게 해야 피해며 손해가 적은 법이다.
또 쓸데없는 거에 괜히 눈독 들여 거기에 빠져들어 기회비용을 소모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수지타산에 안 맞고.
그러한 상념을 품으며 멍 때리고 있던 차였다.
방을 이곳저곳 맴돌던 루넨브리스가 다시 인근으로 다가와 다리 부근에 머리를 비벼댔다.
“…배고프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메마른 얼굴 위로 절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래그래, 먹는 건 중요하지.”
생각해 보니 사람들 보느라 간식거리나 입에 댔기도 했으니….
식사 예법은 철저히 익혔으나, 덕분에 식사하기가 영 껄끄럽다.
…그냥 처먹으면 되지 뭘 이것저것 따지는지.
그러한 예법이 생겨난 연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알게 뭔가.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 하겠지만, 겉만 익숙하지 먹는 걸 즐기지 못하는 시점에 익숙하고 나발이고….
먹을 때는 먹는 거에만 집중해야만 한다. 그게 진정한 예의 아니겠나.
날 위해 죽어 내 입안으로 들어가게 될 고기에게 애도를.
그런 만큼 철저히, 맛있게 요리해야 하며, 맛있게 먹어주며 그 감사함을 곱씹는 게, 먹는 자의 도리 아니겠나.
…더불어 먹히는 자의 무고함, 한탄, 비참함 등을 한 차례 되뇌이며, 이러한 패배자가 되지 않고자 초심을 다지는 계기로 삼기도 해야 할 것이고.
먹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고, 거기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잃는 것서부터 초심은 무너진다.
마음껏 숨 쉬고, 몸이 건강해 아픈 곳이 없으며, 먹는 것에 감사하며, 피로할 때 편히 누울 수 있다는 것.
…이걸 매 순간 헤아리는 인간은 결코 초발심, 초심을 잃은 여지가 없을 거다.
그래도 한순간 허파에 바람 들거나 방심하고, 뻘짓하면 한큐에 가는 게 인생이지만.
그렇기에… 아직까지 에드릭은 이곳 세계에서 큰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노력하고 주의에 주의를 거듭하는데도 문제가 생기면, 그건 에드릭 자신의 문제라기보단 외부적 문제라 봐야 할 거고, 외부적 문제는 그 요인을 처리하면 그만.
“우선은 무도 대회인가.”
필수적으로 참가해서 성과를 거둬야 하는 건 그쪽.
그리고 에드릭은, 남들에게 티를 안 냈다 뿐, 자기 나름대로 치열하게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 오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노심초사하며 사리는 인간이 호위가 특별히 존재하지도 않는데, 하물며 무력을 무기한 발전시킬 여지가 생겼는데, 과연 그걸 무시하고 당장에 가진 것에 만족해 안주하기만 하려 했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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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들었는가?”
“뭘?”
“부군 후보 중 남은 세 분이 예선전서부터 참가한다고 하시던데.”
“참가 안 하는 후보들은?”
“샌님들이라 다른 쪽으로 점수를 따려나 보지.”
“카일론에서 샌님들이 위치할 장소는 없을 텐데?”
예선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구역에서 나누어져 치러지는데, 본래는 한 곳에서 일일이 행해야 했지만, 장소 문제 플러스 인파가 너무 몰리는 것도 그러하며, 무엇보다 예선을 비롯해 각종 대회들이 벌어지는 곳에도 다양한 인파를 분산시켜 그곳 주변의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인 탓인지, 이런 식으로 개최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에드릭도 예선 참가를 위해 오긴 왔지만, 순번이 꽤 뒤에 해당 된 걸 그제야 파악하곤 관람석에 적당히 엉덩이를 걸쳤다.
“하아.”
후드까지 눌러쓴 상태긴 한데, 못해도 한두 시간은 넘게 기다리고, 이후 대기실에까지 가서 또 대기할 걸 생각하면, 벌써 혈압이 막 오르려 하는데….
‘현실은 역시 잔혹하지.’
보통 이런 게 소설이며 만화였으면 얼렁뚱땅 넘어갔다가 바로 예선 시작! 따땅! 끝! 와아아! 하고 끝나겠지만, 어림도 없지.
“…….”
그래도 여행이란 건 본디 길을 헤매는 바 없이 오가면, 보고 듣는 것도 딱 그 정도 선에서 끝나기 마련.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예상외 상황이 발생한다던가, 길을 잃고 이곳저곳 헤매면, 예상치 못한 경우를 맞이하니, 이게 또 묘미 아니겠나.
‘예상 범주 밖의 일은 쉽사리 겪을 수 없….’
사회자가 한창 떠들다 예선이 시작됐는데, 문득 누군가의 모습에 눈에 꽂혀 들었다.
‘……?’
엘프인 건 그렇다 치는데, 털가죽으로 몸을 두른 건… 으음, 현재가 겨울철이긴 하니 유별난 건 아니지만….
‘저거 초원 엘프 아닌가?’
반면 상대는 푸른 피부의 거구를 지닌 그린 스킨.
흔히 오우거로 불리는 종족인데, 오우거도 그린 스킨 말고 온갖 피부색이 가지각색이고, 나름 오지며 척박한 험지에선 국가까지 이루고 살아가는 이들인데, 카일론 내에서도 그 규모가 그리 적은 편은 아니었다.
일부 오우거 부족의 경우엔 나름 용병업으로도 유명했는데, 카일론에 그런 식으로 반쯤 정착해 위용을 뽐내는 이들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
거구를 감싸는 충실한 철제 갑주들을 보아하니, 저자 또한 그런 부류에 속하나 보다.
‘실용적인데.’
관절 부근을 철저히 감싼 갑주며 목덜미에다 가슴팍에 복부 부근까지 촘촘하게 감싼 사슬 갑옷과 투구까지 눌러쓰고, 그걸로 모자라 입마개까지.
‘저건 좀 반칙 아닌가?’
급소 타격 불가.
예선은 철저히 제압을 목적으로 진행된다는데, 어지간한 중상, 즉사할 정도의 상처가 아닌 한 대기하고 있던 치료사들이 회복은 시켜준다 하니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카일론의 특이점 중 하나가 신전 쪽 사람 아님에도 치료술에 능하다는 거라는데.’
아마 그게 아니었으면 카일론도 진작 대륙을 휩쓴 종교가 자리잡았을 터.
가뜩이나 싸움박질 험한 국가인데 치료 및 회복 문제는, 여타 나라들보다 훨씬 중대한 사항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일종에 병·질환에 한에선 여전히 소브릴 교단, 정교회 쪽에 비할 바가 아니라지만, 적어도 외상을 비롯한 직접적인 상처며 부상은 이쪽이 더 유용하다는 모양이다.
‘흐음….’
무대는 반원형 경기장이었으며, 3팀이 칸을 나눠 예선을 치르는 흐름이었는데, 장점이 있다면 그 광경들이 한눈에 들어왔다는 거였다.
관람객들이 앉은 위치도 층 단위로 나누어졌기에 시야가 가려지는 이런 경우는 없었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체격을 나누어 좌석을 배치한 탓일 텐데, 어지간한 희망 사항 아니면 이런 문제로 골치를 썩는 것처럼 보일 여지는 없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맥주 있습니다! 시원한 맥주! 겨울철 살얼음 둥둥 뜬 맥주 한 모금 들이키면 온몸이 쏴아아악~!”
“구운 옥수수 팔아요! 구운 옥수수!”
“저어어어기! 대륙 끝에서 가져온 명품 숏다리! 숏다리! 안 먹어본 사람 오크 고블린 엘프 드워프 수인, 용인들은 있어도! 한 번만 먹고 땡 치는 이는 누구 하나~ 없는 그 맛! 한번 먹어보면 중독돼는 바로 그 맛!”
……숏다리?
설마 내가 아는 그 숏다리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