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화 〉75. 이 나이(?) 먹으면 치고받는 것도 귀찮다.(2)
이런 식으로 관람석 쪽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외쳐대는 이들 덕에 분위기는… 음?
문득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이걸 놓쳤구나!
여기서 치킨이며 버터 두른 팝콘이라도 팔면 대박이었을 텐데.
아님 신선한 느낌을 부가하고자 멕시코식 케밥 같은 거라도? 적당히 화끈하게?
‘돌아가는 대로 프리지아한테… 아닌가? 당장에라도… 음, 이미 늦었는지도?’
돈 벌 게 눈에 확 띄니 아이디어가 샘솟기 시작하는 와중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응?
쿵! 소리가 나기 무섭게 좌석이 들썩대며, 앉아 있던 이들마저 일어선 채 환호하는 관중 때문에, 순간 뭔가 싶었다.
“뭔데요?”
“어? 못 봤나?! 방금 귀쟁이가 저 오거 자식 단숨에 날려버린 거?”
“…….”
딴 생각하는 틈에 좋은 구경 놓쳤네.
“어떤 식으로요?”
“빨라서 못 봤는데 화살을 발목 부근에 쏘더니 오거 녀석 중심 흐트러지기 무섭게 반대쪽 다리를 후려 쳐버렸지! 오거 자식이 앗 하는 사이 바닥에 처박혔는데, 처박히기 전에 팔뚝으로 안면을 후려쳐서 뒤통수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을 훌쩍 날려버렸다. 귀쟁이 계집 주제 제법이야!”
가만 보니 지금도 두 주먹을 불끈 말아쥐며 열변을 토해대는 이 노인네는… 드워프다.
잿빛 수염이 수북이 자란 덕에 주름이 완고하지 않음에도 연배가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거봐요. 예선전에도 볼 게 없을 리 없다니까요.”
그런 드워프 옆엔 한 소녀가 히죽대며 웃고 있었는데… 뭔가가 걸렸다. 뭐라 형언하긴 그랬지만.
흐음…?
이렇듯 익숙한 기운을 풍기는 소녀가 태연히 이쪽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으며 웃더니.
“귀한 걸 놓치셨네요. 저런 건 보기 힘든 장면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모래색을 연상하게 하는 금발에 연한 갈색 바탕의 두 눈.
입고 있는 옷들도 전체적으로 모래색에 가까운데, 도시보단 오지에서 걸칠 법한 느낌의 복식이었다.
음,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떠오른 건, 인디언식 복장? 조금 다르지만 느낌이 살짝 비슷한 정도?
무엇보다 준수한 외양의 소녀는 척 봐도 호감이 가는 티 없는 미소를 짓고….
“눈깔을 어디다 두고 댕겨? 젊은 놈이… 아, 그보다 후드는 왜 눌러쓰고 있어! 답답하게!”
“춥잖습니까.”
“사람 이렇게 몰렸는데 춥기는 얼어 죽을! 난 돌프일세. 자넨 뭔가?”
“…….”
“아, 답답해 뒤지겠네! 이름! 없어? 애미애비가 지어준 이름 있을 거 아냐?!”
……성격이 불같긴 한데 이 드워프 아저씨는 조금 지나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드워프들과도 나름 교류해본 에드릭이었기에 저 지나침에 크게 당황스럽진 않았다.
반면….
“아! 죄송해요! 우리 아저씨가 성격이 많이 급하죠?! 나쁜 마음은 없으니까 오해마세요! 성미가 급한 거뿐이니까요!”
그러면서 의도 자체는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찌르려 했던 모양인데, 키 덕분에 옆구리가 아니라 어깨를 밀치는 격이 됐다.
“아, 됐고! 빨랑 이름! 아님 뭐야?! 나한텐 말하기 싫다 이거야?! 이름 없어?!”
“그런 건 아닙니다만….”
“아, 잔소리 말고! 뭐해?!”
……이런 성격이니까 틈만 나면 싸워대는 거지.
“에드릭이라 합니다.”
에드릭은 딱히 감출 것도 아닌지라 대충 자기소개를 했다.
“에드릭? 성은 없냐?”
“아저씨! 천천히 좀! 그보다… 에드릭?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알 게 뭐야! 거기 처자! 여기여기! 맥주 세 잔!”
언제 에드릭에게 성질을 냈냐는 양, 손을 휘저어 계단을 막 올라가던 판매상에게 격렬한 어필을 취하는 돌프.
“아저씨! 저 조금 있다 저기 나가는 거 몰라요?!”“목 축이는 정도인데 뭐가 문제야?!”
“아, 목소리 좀 죽여요! 다 쳐다보잖아요?!”
……재미있네, 이 친구들.
거기다 재차 예선전 경기가 시작되는 터라 다시금 신경이 아래쪽 무대 쪽으로 향하게 됐다.
“자, 빨랑 받아!”
“…예, 사양 않고.”
생각 이상으로 큼지막한 나무 컵이었는데, 일회용은 아닐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주고 사라지는 걸 보니, 괜스레 이쪽이 더 걱정이 될 지경.
‘짜장면 그릇도 아니고….’
어떤 구조로 돌아가기에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거지?
“크하아아! 맹물이긴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마시는 건 또 다른 별미로군!”
맥주 냄새는 개인적으로 좋아한 적이 없지만, 어쨌든 선물 겸 한 턱 낸 것처럼 보이니 대충 입에 걸쳤다.
성미 급하고 성질이 괴팍한 것만 제외하면, 이런 면만 잘 적응하면 드워프들과의 관계는 의외로 엇나갈 구석이 없었다.
무엇보다 술 잘 마시면 친해지기도 쉬웠고.
에드릭도 그걸 헤아렸기에 받아마신 거지, 안 그랬으면 진작 거절했을 거다.
“하여간 누가 땅딸보 아니랄까 봐….”
미간을 찌푸린 소녀가 맥주를 한 모금 걸치곤 그리 푸념하자.
“이 요망한 게 누굴 땅딸보라는 거야?!”
“제가 틀린 말 했어요?”
거기다 어설픈 겉치레, 예의며 매너랍시고 눈치 보는 게 없이 팍팍 질러대는 게 퍽이나 마음에 든다.
“그래서, 형씨는 뭐하러 여기 왔어?”
“왜 왔겠어요? 구경 아님 참가 이유겠죠.”
“참가하려면 대기실로 튀어가야지 여기에 왜 엉덩방아를 찧고 자빠졌는데?”
“저처럼 순번이 밀렸을 수도요. 안 그러세요?”
“하하하….”
그저 웃지요.
“그보다 아까 에드릭이라 하셨는데, 제가 아는 그 이름의 장본인? 본인이신 건가요?”
분위기가 슬슬 달아 올라간 만큼, 관람석 주변은 온갖 소음들로 뒤덮여 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기에 에드릭도 못 들은 척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한 두 차례 정도로 끝내곤, 차분히 어깨를 들썩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봐요 아저씨! 오니까 이런 유명한 분하고도 만나 뵙게 됐잖아요!”
“엉? 뭐가 유명해? 누군데?!”
“아, 몰라요? 이번에 카일론의 왕태녀 전하 남편 후보이신 분 있잖아요.”
“그게 뭔데?!”
“아, 소리 지르지 마세요! 귀청 떨어질라!”
현실이란 참으로 기묘한 구석이 있다.
뭐랄까, 정체를 들켜서 이런저런 반응을 내심 조금은 기대했는데, 돌프란 드워프는 알게 뭐냐며 예선 경기하고 맥주에만 집중해대고 있었다.
음, 이게 차라리 낫지.
원래 사람이란 건 자기 관심사 외엔 대부분 관심이 덜한 법이니.
덕분에 이런저런 걸 물어대려던 소녀의 물음도 덩달아 막히고야 만다.
“아, 맞아. 내 정신 좀… 저는 데이시아라 해요.”
“예, 데이시아. 제대로 들었습니다.”
뭔가 친숙한 느낌이 드는 이름이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끝 발음이 프리지아와 조금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그랬는지도.
어쨌든 그런 식으로 겸사겸사 이야기를 나누며 예선전을 관람하다가, 순번이 가까워진 데이시아가 먼저 자리를 떴다.
“형씨는 참가 안 했어?”
“저는 아직 한참 남았죠.”
덕분에 거기서 다시 30분 정도 지났을까.
슬슬 일어나야겠다 하는 시점에 데이시아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의 상대도 가벼운 차림새지만 제법 잔뼈가 굵어 보이는 사내였는데, 흔한 클리셰처럼 여자아이랍시고 방심하거나 조롱하는 등의 태도는 일절 내비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무대의 분위기를 돋구고자 한다면야 그런 게 있어서 나쁠 건 없다고 보고, 또 기선 제압 목적으로 상대를 도발하는 것 자체는, 에드릭 입장에선 크게 하자가 있다거나 문제가 있다 보진 않았다.
본디 전투며 전쟁은 시작하기 전서부터 시작되기 마련.
아무리 준비 잘해도 막판에 그르치면 전부 헛일인 것처럼, 중요한 시점에 초를 치는 그러한 술책은 개인적으로 싫어하진 않았다.
‘정정당당…? 그건 기사 나부랭이들이나 그러라지.’
중요한 건 승리하는 거고, 그 다음은 승자가 패자를 능욕하지 않는 것 정도.
승부에선 그 정도.
다만 전쟁에선?
굴복하면 대우해주고, 아니면 확실하게 뿌리째로 뽑아버려야지.
그게 대외적 이미지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자신의 손으로 못 한다 뿐.
“…….”
이런 면만 보면 에드릭 자신도 선량하다거나, 선한 인간이라 분류하기는 아무래도 무리일지도.
비록 마음가짐은 이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직까지 빈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뿐, 내심 상거래며 장사에 있어선 에드릭도 경쟁자로 정의된 이들에 한에선 제법 가차 없는 면모를 보이곤 했다.
사람 좋다는 이미지는 친분이 두터운 이들에게 떠넘기고, 정작 적이며 경쟁자에겐 두려움을 심어줘야지.
마키아벨리식대로, 아군에게조차 친분보단 두려움, 경외를 사야 한다는 쪽도 내용상 공감은 가지만….
‘입장이 다르니 그건 아니지.’
난세에다 혼란기, 거기다 군주라는 포지션이라면 모를까, 굳이 내가?
그런 게 필요한 건 패왕녀 쪽이지, 에드릭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두려움이며 경계를 품는다는 건, 그만큼 원한을 살 여지도 생기는 거니.’
어쨌든 관심을 받는다는 거 자체가 에드릭에게 있어선 어떤 식으로든 부담이었다.
“시작하는구먼!”
어느새 구운 옥수수를 깨물며 새로 리필한 맥주를 들이키고 있는 돌프를 보며, 에드릭은 그러려니 싶었다.
그리고 아까 전, 데이시아에게서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은 연유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기에 잘은 몰랐지만, 그녀의 주변을 기점으로 모래 먼지가 모여들어 주변을 휩쓸었다.
“정령술이다!”
“저런 치사한 짓을!”
“야! 싸움에 치사한 게 어디 있어?! 이기면 장땡이지!”
관람석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의견이야 아까서부터 분분했으니 유별날 것도 없다.
도끼를 다루는 이가 창을 든 상대를 만나자 호리호리한 창 따위를 들고 멀리서 찔러나 대는 놈팽이 소리를 하는가 하면, 단병 잡은 놈이 븅신인 거지! 하며 무대에 오른 이들이 진지하게 상대를 보며 투기와 의기를 다지는 것과는 별개로, 난잡하고 추잡하게 이런저런 입씨름을 해대는데, 역시 이쪽 세계든 저쪽 세계는 키보드 워리어들의 여포 짓은 예외가 없나 보다.
이윽고 모래 먼지로 무대 위 시야를 장악하기 무섭게, 갑자기 바람이 후욱 불어 모래 먼지를 걷어가더니.
“저건…?”
“뭐야? 언제 저기 갔대?”
관람객들의 놀란 반응이 이해가 가는 게, 모래 안개가 생긴 뒤로 그것들이 흩어지기까지 5초를 조금 넘긴 정도였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상대의 배후를 잡은 거였다.
두 개의 단도로 턱 아래쪽과 목덜미 부근에 바짝 밀착한 상태였는데, 앞뒤로 조금만 움직여도 목에 상처가 날 것만 같아 보는 이조차 괜스레 모골이 송연해진다고 할까.
어쨌든 예상대로 데이시아의 승리로 상황은 일단락되었고, 에드릭은 그걸 끝으로 마찬가지로 예선전에 참가하고자 자리를 떴다.
“형씨도 힘내시게!”
“예.”
맥주잔을 흔들며 건투를 비는 드워프의 배웅을 등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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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프리지아는 시간이 안 됐기에 구경은 못 했기에 구태여 물었다.
“어쩌긴. 그냥 그러려니 한 거지.”
“탈락한 건 아닐 테고, 어떻게 진행됐는데?”
“그냥 대충?”
“…말해주기 어려울 정도로 추했어?”
“…….”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하냐? 사람 민망하게….
“그보다 푼돈보다 조금 더 벌 수 있는 소재가 있는데, 손이 빈 사람 몇 명 구할 수 있을까?”
“…또 뭘 하려고?”
“음식 좀 팔게.”
“…….”
프리지아가 눈매를 구기며 이번엔 또 뭔 이상한 소릴 하려고… 하며 혼잣말로 중얼대다,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빈손 없어. 자칫 잘못하면 나도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해야할 참인데 뭔….”
“그럼 사람 좀 구하던가.”
“…아니, 그걸 굳이 해야 돼?”
“기회가 있는데 방치하는 건 나태한 거지. 이건 단순 푼돈을 버는 거 이상으로 너나 내 상업적 평판을 굳건히 하는데도 나쁘진 않을 걸?”
“…일단 들어는 보자.”
이익에 민감한 상인답게 냄새가 풍기니 관심은 가나 보다.
일손 부족에 이미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와중에 뭔가를 더 덧붙인다는 건 사실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 거지.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비로소 더 큰 성과로 이어지는 법.
…무리수를 던져 폭망하고 폭삭 주저앉을 수도 있다던가, 과하면 체한다는 옛말이 있다지만, 원래 이쪽 세계는 시간이 금인 거고, 기회를 놓치고 말고는 온전히 자신의 몫!
하고 말고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달린 문제였다.
과거고 현재고 이는 예외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