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화 〉76. 치맥에 장사 없다.(3)
어차피 지금 포장마차 근무 후기(?) 들은 것만 해도 그럭저럭 만족할 만도 했고.
시도 전까진 단순히 아이한테 뭘 기대하냐 했는데, 이런 걸 자주 해봤는지 설명이 제법 들을 만했고.
“…잠이 안 오는 것도 문제네.”
이곳 세계에서 내심 오래 지내왔음에도, 저쪽 세계의 현대 문명의 이기심에 적응된 모양인지, 빛이 꺼지지 않는 세계에 머문 버릇 탓에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이러니 떡을 쳐야 하는 건데.’
못해도 껴안거나 인근에서 대화 나누다 잠들 만한 말동무가 있다면 더 좋고.
…루넨브리스가 그렇게 해주면 참 고마운데, 쓰다듬는 건 좋아하는 주제 잘 때는 엉기지 않아 내심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자고 일어날 때면 또 곁에 붙어서 잠들어 있질 않나.
무엇보다 부군 경선이다 뭐다 해서 자꾸… 본의 아니게 금욕적으로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얼마 안 남았으니.’
어차피 모 아니면 도 아니겠나.
“흐음!”
다시금 건물 벽을 타고 지붕 위로 오르려다…… 그래선 너무 눈에 띄니 적당히 걷기로 했다.
횃불과 마법등이 그나마 거리를 적당적당 밝힌 덕에, 걸어 다니며 주변을 구경하는 맛은 있었다.
낮보다 인파가 줄어든 게, 산책하기 원활해진 가장 큰 이유겠지만.
------
예선으론 3일차.
치킨 컨셉의 고기 튀김을 판매한 걸로는 딱 이틀째 되는 날.
에드릭은 대놓고 맡기 좋은 향긋한 기름이며 튀김 냄새를 풀풀 풍기게끔 바구니에 한가득 튀김들을 담은 상태로 당도했다.
오늘도 여지없이 후속 주자일 게 뻔했으니.
그럼에도 혹시나 빠르게 배치할 걸 염려해 차마 또 늦장은 못 부리는 걸 보면….
‘미리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냐… 싶겠지만, 그러면 또 뭔 수를 써서 부정행위를 저지를지 모르니 당일 선정이야 이해는 가는데….’
어차피 그러려고 작정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기왕이면 헷갈리는 쪽이 맞긴 하지.
그래야 일손이 적게 들 테고.
비합리적일 수도 있으나 원래 사람 일이라는 게 딱 부러지게 이루어지고 그런 게 아닌 거니.
“실내에 취식물을 가져오는 건….”
당연 대기실에 당도하기 전서부터 팍팍 막혔지만.
“아, 다른 건 아니고 먹고 하라고요.”
그러고는 한창 관리며 경비 차원에서 애쓰는 이들을 향해 그 바구니를 그대로 건네줬다.
“이…건?”
에드릭은 간단하게 이게 뭐며, 어디서 판매하는지만 짤막하게 일러줬다.
“하지만 이런 걸 받는 건….”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겁니다. 다들 바쁜데 식사 시간도 여의치 않을 테니, 간단하게 요기나 할 겸 한입씩 맛보고 그러세요.”
“…….”
푸짐하긴 하나 막상 먹게 되면 정말로 한입씩 정도밖에 안 될 거다.
금전을 건넨 건 아니고, 지금 시대가 김영란 법이니 단순 뇌물조차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대도 아니니….
혹여 그럴까 싶어 살펴봤는데, 어디가 됐든 경비들이 뒷돈 챙기는 건 흔하디 흔한 일이니.
카일론이라 하여 이게 예외가 될 순 없는 법.
고대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뇌물이란 건 사회를 이룸에 거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매김한, 일종에 문화에 가깝다.
……당연 좋은 의도, 의미로 형성된 건 아니지만.
특히 그런 뉘앙스 안 풍기게끔 일부러 대충 건네고 별달리 요구하는 것도 없이 쿨하게 사라져줬다.
그래도 몇 마디가 아마 나중에 알아서 효율을 발휘하겠지.
어디어디에 판다, 이 정도면 족하다.
이 정도면 알아서 홍보 효과는 톡톡히 누릴 거라 본다.
‘맛이 있을 테니.’
맛집 앞에 장사 없다.
남녀노소라고 예외일까.
더군다나 출혈이 조금 있다 하나 가격을 낮춘 덕에 대중적으로 접하기도 좋을 테고.
어쨌든 예선 3일 차는 확실히 참가 인원수가 줄어서 그런지 이쪽 순번은 빠르게 왔다.
이후 승리한 이는 발을 빼면 그만이고, 패배한 이들은 패자부활전 조 발표를 파악하고자 남아야할 테니, 관람객의 수가 딱히 적은 것 같지도 않았다.
‘동시에 여기가 다른 의미로 등용문이라 했던가.’
비록 예선이라 쳐도 그럭저럭 쓸만한 인원, 인재를 추리고자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 하는데, 사실상 이날이 그걸 낚아채는 첫날이란다.
내일 결과를 보고 접선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야… 어차피 고용주들이 알아서 판단할 노릇일 테고.
또 상단이며 귀족들 가운데 호위 병력 및 단순 인재를 추리기 위해 이날은 그런 이들이 몰린다더라.
본선 진출자들이야 몸값이 확 뛸 테니, 몸값이 낮은 이들을 위한 고용 시장이라 하던데.
‘합리적인데?’
큰마음 먹고 출세하러 왔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와중에, 그럭저럭 좋게 보여 고용이라도 되면 어디인가.
나중에 들은 바로, 나름 우리 식대로면 과거 시험까진 아니더라도 어쨌든 눈에 띄어 출세하려는 명목으로 왔는데, 낙선한 선비 마냥 쓸쓸하게 그 먼 길 돌아가는 건 서러우니, 이런 식으로나마 기회가 생기도록 몇몇 귀족들이 어찌어찌 전통적으로 어쩌고저쩌고….
‘알게 뭐냐.’
유서 깊고 뭐고 간에… 관심사가 아니면 어찌 됐든 지루할 수밖에.
그보다는 돈 벌리는 치킨 장사 쪽에 훨씬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쩔 도리가 없긴 한데….
“이런! 하필 예선에서 그대를 만나게 될 줄이야.”
반쯤 졸다가 불려서 딴청 피우다 무대 위에 올랐는데, 과장된 몸짓과 음성으로 켄타우로스족 사내가 길쭉한 막대를 든 채 아는 채를 해왔다.
“그대는?”
이런 게 말하면 알아서 자기소개 샬라샬라 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소신은 너울가지언덕 출신의 인마(人馬)족인 루멜루스라 하오!”
목청도 크다.
종족 빨 + 타고난 체격에 단련까지 했는지 군살 같은 건 일체 보이질 않았다.
하반신이 말이고, 상반신의 하복부조차도 잘 단련했는지, 탄탄하게 자리매김했는데, 거기다 기름칠까지 해서 전신이 아주 그냥 반들반들,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러군.”
후드를 따로 눌러쓰지도 않은 터라 에드릭을 알아본 이들이 금세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관람석이야 원체 요란하나, 한층 더 요란해진 듯 싶었는데….
“운이 좋게 그대의 활약을 지켜보았소. 소신에게 같은 수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오!”
단호하게 외치며 막대를 양손으로 붙들어 자세를 잡는 그를 보며, 에드릭은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뭔가 미안한데.’
유감스럽지만….
파라메라 대륙에서 질리도록 맞붙고, 상대하고, 대련까지 일삼아왔던 이들 중 하나가 켄타우로스족이었다.
‘무리엘은 잘 있으려나.’
에드릭의 거근조차도 무난히 소화해냈던 켄타우로스족의 그녀, 그런 그녀의 튼실하면서도 매력적인 말의 하반신과 터질 듯한 가슴의 감촉이 문득 떠올랐다.
“쩝.”
너무 딴생각하는 건 상대에게 실례지.
이윽고 심판이 수를 세기 시작하곤, 시작 종을 울리기 무섭게.
“하압!”
단호하게, 민첩하게 내달려오는 그가 자신의 굽을 박차며 맹렬하게 돌진해 왔는데….
딱 에드릭에게 도달하기까지 2걸음 앞둔 시점에 그의 앞발이 마치 무언가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듯 중심을 잃고야 말았다.
“헙?!”
동시에.
선 채로 지면을 스르륵 미끄러져 온 에드릭이 그대로 안면에 물 폭탄을 먹여버렸다.
미끄러지는 와중에,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올려 막았지만, 팔에 막힌 물은 형체를 잃은 그대로 팔을 타고 밀려들어 그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쳐왔다.
동시에 일부 물기가 코와 입, 귀로 들어가 혼란을 야기했고.
그 틈을 이용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하는 그의 중심을 재차 무너뜨려 버렸다.
쿠웅!
“커헉!”
적당한 시기에 코와 눈, 입을 통해 물기가 흘러나오게 한 터라 아주 고통스럽진 않았을 거다.
중요한 건.
“…….”
상대를 넘어뜨리기 무섭게 닿은 지면 째로 무대 일부를 냉각시켜버렸다.
동시에 상대의 머리 부분이 자리한 곳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부근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콰직!
“헉!”
조금만 가까웠어도 얼굴이 저 무대 지면 마냥 부서질 뻔했던 걸 대충 실감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그의 눈에선 어느덧 전의라는 게 모조리 증발한 채였다.
“하아….”
그 뒤론 아쉬움의 한숨. 후회인지 낙담인지 모를 표정이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대결이 일어난 직후, 심판의 패배 선언까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종료됐다.
“일어설 수 있겠어요?”
“으음… 예.”
에드릭이 손을 뻗자, 그걸 의지해 몸을 일으키는 몸을 일으키는 그가 지면에 달라붙은 피부 덕에 살짝 고통스러운 듯 아미를 찡그렸다.
“매섭군요. 물의 정령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건 생전 처음 봅니다.”
“…정령 다루는 사람들 자체가 흔치 않을 테니까요.”
애초에 이런 메커니즘으로 쓴다는 거 자체도 기이할 테고.
앞서 무대에 오른 직후 상대 보폭을 예측해 일정 지면을 얼려 놨다.
처음 돌격하다 미끄러진 게 그거고.
거기서 쓰러졌다면 또 끝났겠지만, 그럴 리 없이 본능적으로 자세를 가누려 했는데, 당연 그걸 내버려둘 이유가 없겠지.
사실상 상대가 쓰러질 걸 가정하고, 이미 에드릭도 돌진하던 터라 상대로선 대비하기가 여간 까다로웠을 거다.
방패를 들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아니었기에 이 부분은 유감.
막대를 봉 돌리듯 돌려막는 뭐… 그런 영화나 만화에서 보일 법한 테크닉은 자세가 멀쩡해도 힘든 판에 넘어지는 와중이니 더더욱 무리고.
그래도 저들이 얼마나 정력적인 걸 알기에, 일단 물을 입과 코로 밀어 넣어 저항할 여지 자체를 끊어버렸다.
익사의 고통, 그로 인한 당혹감은 익숙해져도 껄끄러운 법인데, 물 하나 없는 곳에서 익사 직전은 아니어도 순간이나마 그런 체험을 하면?
접시 물조차 코와 입이 잠길 정도면 충분히 익사가 가능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정도만 돼도.
그렇게 순간 무기력화 된 시점에 넘어뜨려 얼어붙은 지면에 몸을 부착시키곤, 확실한 위협을 가한다.
피부며 가죽, 털이 뜯겨 나갈 정도로 냉각한 건 아니었기에 아마 몸을 일으켰다면 털이 뽑히고 피부가 조금 아픈 정도에 그쳤을 거다.
그러나 그로 인한 저항감과 순간적인 폭력 행사.
음… 예선 자체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는데, 같은 수법 안 걸린다기에, 조금 더 테크닉을 가해줬다.
누가 보면 간단해 보이겠지만, 나름 상대가 안 다치면서 효율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그걸 헤아리지 못하고 다시 덤벼들 거까지 고려한 대비책까지 상정한 거였는데, 다행히 이쯤에서 포기해줘서 다음 수를 보일 필요까진 없었다.
여기서 더 저항했으면 한방 조금 아프게 먹여줄까 했으니 이 친구 입장에서도 나쁠 결과는 아닐 거다.
다만.
“원 없이 싸우기라도 했다면 아쉬울 게 없었겠지만, 이건 많이 아쉽구려.”
“그러니 달려들기 전 대비를 잘 했어야죠.”
켄타우로스족, 반인반마 종족의 화급함이야 성난 야생마의 그것과 유사한 터라, 그걸 자제하는 게 쉽진 않겠지. 이해는 한다.
어쨌든.
“승자! 에드릭 코넬!”
환호성이 폭죽 터지듯 빗발친다.
에드릭은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곤, 다시금 루멜루스의 체격 차로 어깨를 건들기가 애매해, 팔꿈치를 툭툭 두들겨주곤 '본선에서 또 보죠.' 하고 그에게 나름 희망적인 덕담을 남겨주곤, 그대로 자리를 떴다.
에드릭이 사라지기 전까지, 환호성은 계속해서 울려퍼졌는데, 그의 이름을 호명하고 외쳐대는 터라, 에드릭은 본의 아니게 낯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별거 아닌데 괜히 좀 그러네.’
순수하게 기쁜 내색을 내비쳐도 되고, 쇼맨십 삼아 화려하게 호응해도 좋았지만….
이곳은 카일론.
그리고 이곳 사내들은 대체로 폼생폼사들이기에, 에드릭도 거기에 맞춰주고자 했다.
차갑고 고독한 전사의 이미지가, 여기선 잘 먹혀 든다는 조언에 의거해서.
“…….”
차갑고 고독?
나하곤 영 안 맞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