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86)화 (286/454)



〈 286화 〉81. 말 그대로 한 걸음.(2)

세계가 하나가 아닌 시점에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짐작하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언젠가 한 번 기회가 되면 술 한잔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팠는데, 앞서 실력을 먼저 겨루게 되니, 이 또한 흥겨운 일이 아닐쏘냐!”
“…….”




하이고.
저런 부류는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족속이다.
친하다고 치면 나쁠  없는 관계긴 하나, 때때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할까.




‘게다가 운이 더러우면 빨리 퇴장하는 부류들이기도 하고.’

저런 성향으로 오래 장수하며 잘 나가고 있다는 건, 실력이 어지간히 뛰어나다거나, 저런 대인적 기질 뒤에 이를 떠받들어줄 합당한 지능이 갖춰졌음을 의미하는 건데….

레오란 아실리체프.
용병업계뿐 아니라 몇몇 국가며 도시에선 나름 영웅으로 불리는 괴물 같은 사내였다.

거대한 체격과 이를 보조하는 근육으로 형성된 탄탄한 육신까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팔뚝이며 다리, 특히 복근이 청동상 마냥 튼튼해 보였다.

괜한 소리가 아니라 주먹만으로 어지간한 담벼락 정도는 가뿐히 깨부수고, 무너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박력을 지닌 녀석이었다.

…심지어 걸어만 와도 어지간한 중무장 기마병이 달려드는 것보다 더한 압박감, 기세를 풍겨대는데… 저걸 정면에 마주한  가운데 당당하게 인간 전차와 같은 놈과 마주 대응할 수 있는 사내며 전사가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제 몸에 자신감 넘치는 놈들 특유의 개 버릇…으로 녀석도 팔과 다리가 훤히 드러난 복장을 채용하고 있었는데, 사실상 하의도 그곳 위주를 가리는  고작, 상의조차 배가 고스란히 드러난… 말 그대로 노출 지향적인 복장이었기에… 개인적으론 무척이나 껄끄러웠다.

에드릭도 또래에 비하면 제법 탄탄한 몸을 지닌 입장이었지만, 그는 근육을 선호하진 않았기에 조금 마른 듯한 체형을 꾸준히 유지하곤 했는데, 눈앞에 저런 비대칭에 극치와도 같은 존재가 자리하니, 빼빼 마르다 못해 뭔가… 상대적 측면에서 무척 빈곤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실제로 과한 체격, 근육이 대세로 굳어지는 전사들 특유의 편견으로 치면 에드릭은 엄청 마른 편이었다. 전사로선 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애초에  전사도 아닙니다만?

“후후후!”



그럼에도 에드릭이 여태 보인 바가 있기에 오히려 단순 냉병기로 날뛰는 전사들 입장에선 기가 죽을 법도 했지만, 역시나 이놈은 예외였는지 도리어 재미있는 경기를 눈앞에 둔 것처럼 눈을 번쩍여대고 있었다.


…아니, 과장 하나  보태고 정말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눈에 불을 켠다는  이럴 때 쓰는 표현이구나 싶을 정도로… 너무 적절했던 터라 에드릭도 입으로 하이고! 하고 난색을 표할 정도였는데.


“오늘 한 번 제대로 즐겨보게 되겠군. 내 기대가 아주 컸네! 전사들과 전투도 가슴이 뛰긴 하나! 이런 경우에 벗어난 무언가도 충분히 즐거울 거라 생각하는데, 자네는 어떠한가?”
“…전 싸우는 걸 그리 즐기는 형편은 못 됩니다.”
“호오, 그런가?”
“승패에 집착하는 경향이 커서, 이겨도 마음이 불편하고, 지면 뭐… 더 못마땅하겠죠.”
“승패는  따라오는 거 아니겠나? 이런 나조차 패배의 고배를 마시지 않은 예가 없었거늘.”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걸 좋다고 받아 들일 이유는 없겠지요.”
“흐음, 그래. 자네에 대해 대강 알 것도 같군.”



알 거 같으면 헛소리 말고 빨리 본론으로 가면 될 것이지….

어쨌든 하기로 한 이상,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목적을 달성할 것.
에드릭은 그거 외에 사적인 감상, 감회 등은 모조리 묻어두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였다.

PVP, 리스크가 적당량 따라줘야 게임도 재미가 있다는  맞는 말이지만, 그 리스크가 실질적인 삶에 패착으로 작용할 정도가 되면, 에드릭은 도무지 즐길 기분이 안 들었다.

아니, 이 경우는 그럴 기분이 못 든다는 게 알맞은 표현이겠지.
도박 중독자와는 전혀 반대되는 경향.
자신의 생명, 인생마저 판돈으로 걸어야 만족하며 즐길 수 있는 그들과 달리, 에드릭은….



‘스릴 따위 엿 바꿔 먹으라지.’


가진 게 많으면 사람이 소심해진다 하는데, 가진  없더라도 사람은 소심해질 수밖에 없다.
가진 게 없기 때문에, 더더욱.
반대로 가진 게 많더라도 적극적으로 나대고, 들이대는 이들이 어디 없을까.
오히려 가진 게 많기에 그걸 마치 총탄 삼아 남발해대는 게 또한 그들일진데.

경기 시작종이 울리기 무섭게, 레오란이 지면을 박살 내가며 박력 넘치게 에드릭을 향해 몸을 내달렸다.
그 모습이 말 그대로 움직이는 인간 전차 그 자체.
거대한 곰이 전력으로 뛰어온들 이 정도 박력은 어림도 없을 거다.

하지만.


돌연 허공에서 물대포가 터져 나와 그의 전신을 후려쳤다.
예고도 없이 전신을 후려친 덕에 몸이 쭈욱 뒤로 밀린 레오란.

“하압!”




그런데 웃기는 건, 그걸 떨쳐내며, 정면으로 맞아가면서까지 전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는 점.


맨몸으로 맞으면 몸이 두 동강이 아니라 박살이 나서 찢겨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량임에도, 그는 성벽처럼 굳건하게 이를 맞으며 버텨냈다.


그뿐인가. 한걸음 한걸음, 정면으로 이를 대항하듯 맞아가며 전진하니, 관중들의 환호성이 함성에 가깝게 뒤를 잇기 시작했다.

“와아아! 최고다!”
“역시 용자 레오란!”
“얍삽한 건 정면으로 쳐부숴야지!”


에드릭은 짧게 탄식했다.



‘요령 피우는 뺀질이가 된 기분이네.’

활잡이가 활 쏘며 거리를 벌리거나, 원거리에서 먼저 공격하는 걸 치사하다고 비난하고 지탄하는  무릇 무식하기 짝이 없는 족속들의 징징거림이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게 또 정당하며, 의롭다 착각하는 것들이 대다수인데, 이해가 아예 안 가는 건 아니다.




‘멀리서 촉 달린 나무 쪼가리에 컥 하고 뒤지는 거하고, 정면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맞아 뒤지는 거, 어느 쪽이 덜 비참한지는 말할 것도 없으니.’


최소한 죽을 자리에 죽고, 사람이며 전사답게 죽으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용맹 무쌍하게 전장을 호령하고 깽판 치길 원했던 족속들이 화살에 맞아  하고 뒤지면, 원통함 때문에 지박령이나 안 되면 다행이지.


그러나 전쟁이든 전투든 간에, 피해는 적고 상대에게 일방적인 리스크, 데미지를 강요하는 방식이 결국 시대를 거쳐 승리를 이룩한다.


우리  세계로 치면, 애초에 근거리 전투는 로망에 일환일 뿐, 실질적인 전투가 벌어진다 치면, 근접전에 들어간 시점에 패배를 떠올려야  정도로, 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투 방식으로 책정된 지 오래라는 거다.

미사일, 공습, 포격, 사격 등.
애초에 총이라는 건 원거리든 근거리든 예외 없이 치명적인 병기다.
또한 사용자 개인의 리스크를 최대한 덜 수 있으며, 다용도 다목적인 건 말할 것도 없고.



‘전쟁에 로망이 깃든 시점에 망하는 거다.’


결국 남는 건 살육과 패배를 강요함으로써 생겨나는 일방적인 박탈, 상실, 몰락.
세상에 애당초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없게 설계돼 있다.


1등은 예나 지금이나 한 놈 뿐이지만, 모두가 최고를 꿈꾸는 시점에 이건 어찌 됐든….



‘왜 이게 싫어진 거지?’



예전엔 에드릭 자신도 게임이든 몇몇 시험, 시합, 경기에서도 1등을 위래 본의 아니게 날뛰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학창 시절 운동회 때도 우리가 이기고자 발악하고, 악을 쓰고….
언제서부터 이런 걸 혐오하게  거지?

“카합!”



대기를 뒤흔드는 외침에 에드릭이 눈을 부릅 떴다.




‘벌써….’



눈 깜짝할 사이인데, 벌써 열 걸음도 채  남은 거리.
마음만 먹으면 아주 작정하고 달려들겠네?

실제로도 그랬다.

추진이 한 호흡 정도 더디더니, 다시금 굉음을 내지른 레오란이 단숨에 물대포를 받아내며 정면으로 철갑이 끼워진 주먹을 날려왔다.


하지만….


“으윽?!”

녀석을 몰아내고자 쏘아진 물대포 덕에 주변은 이미 흥건하진 않으나 경기장을 가득 채워 발목을 적실 분량의 물이 채워졌고,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에드릭의 앞을 기점으로, 레오란을 향해 맹렬하게 물을 뿜어댄 대용량의 물이 레오란의 전신을 한가득 뒤덮은 상황.

그것들이 일거에 얼어붙어, 그냥 어는 게 아니라 급속 냉동까지 겸해 단숨에 얼어붙자, 주변은 순식간에 혹한지대로 돌변해 버렸다.

철갑이 코앞에 멈춘  안도하는 건지, 체념하는 건지 모를 얼굴로 직시하던 에드릭은.



“흐음.”

뭐라  차례 비꼴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저열해질 필요는 없지.
굳이, 그런 패착을 단순히 분풀이, 감정적 충족 차원에서… 혹여나 생겨날 적의를 심어댈 이유가 없으니.
도발 차원에서 한 차례 지껄여주는 건 어떨까 모르겠지만….




‘집중.’



하기 싫은 일을 하면 뭐가 됐든 신경이 분산되기 마련.
공적인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짜증이 나는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단…하군!”



거기다.
아직 끝난 것도 아니고.


두께가 상당한데도 벌써 근력으로 이를 부수려는 양 몸에 달라붙어 한기를 줄줄이 토해내는 거대한 얼음 위로 서서히 실금이 그어지기 시작하는데….




‘너야말로 대단하지.’



만약 내 아바타, 내 신체가 그런 식으로 특수했다면, 지금처럼 몸을 마구 사렸을지… 솔직히 조금 의구심이 든다.

아니, 그랬다 치면 애초에 이런 역할로 부려지지도 않았겠지만.
에드릭은 레오란의 머리 위에 재차 물을 부어버렸다.




“허업!”

상식적으로 상대가 바보가 아니라면, 필시 수중에서 호흡을 이어갈 어떤 대책을 세워놨겠지.
 그러면 시작서부터 지고 들어가는 건데….

그리고 그걸 고려했다 쳐도, 에드릭이 굳이 그걸 안 써먹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보기엔 안 좋기에 에드릭은 머리 위에 대량의 폭포수 마냥 물을 쏟아부음과 동시에, 레오란의 머리 주변으로 재차 수중막을 형성해 한 치의 공기도 스며들지 못하게끔, 확실하게 물로 그의 머리 주변을 둘러버렸다.

거기서 다시.

콰드드득!

레오란의 전신을 기점으로, 일대를 거의 요새의 성벽 두께 못지않은 규모로 재차 얼리고,  얼려 완전히 밀폐를 시켜 버렸다.

평범한 사람이면 저런 식으로 갇힐 시, 사실상 몇 분도 채 안 돼서 동사할 터.
체온 문제도 있지만 질식까지 겸해서, 총체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

그럼에도 에드릭은 그걸로 만족 않고, 그 상황에서 차분히 거리를 벌려 상황을 지켜봤다.

“흠….”




그렇게 몇 십초가 흘렀을까.
돌연 주변을 얼린 빙하 못지않게 솟아난 거대한 얼음들이, 갑자기 부서지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온이 올라가고 있군.’



특히  주변을 기점으로.
얼음이 부서지는 모습이 마치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부서지는 모습과 무척 유사했다.

그리고 다시  십초 뒤.

콰드득! 쿠웅!


“크하!”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무사히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
“대단하다!”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그는 어쨌든, 소문의 용자처럼 역경을 딛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저런 식으로 이미지 관리  시켜주고,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추하게 발버둥치게 해줘도 좋았지만….


‘그건 하책.’


뭐가 됐든 적을 만들어선 곤란하지.
그게 비록 얼마 안 되는 기간이라 할지라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