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87)화 (287/454)



〈 287화 〉81. 말 그대로 한 걸음.(3)

한편으론 철저하게 뭉개 버림으로써, 이후 적대하거나 적이 될지 모를 놈들에게 일벌백계, 본보기 차원에서 비참함을 안겨 공포 심리를 자극하는 것도… 물론 나쁘진 않았지만….

‘그걸 보며 또 반발하고, 타협 못 할 종자라며 촉을 세울 것들이 분명 또 생겨날 거란 말이지.’



에드릭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세력과, 영역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다면… 어쩌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공포가 있어야 영역 다툼, 분쟁에 있어서 철저하게 선을 그어 침범을 감히 못 하게 만들 수 있는 거니.


이렇듯 냉정해져야, 이성적이어야 제각각 필요 여하를 효율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해 결정할 수 있는 거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나, 에드릭 자신은 후배인 릴리에나가 저쪽 대륙에 있을 당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면이 강점이었다.


손해 볼 짓을 정석대로 안 하고, 이득 챙길 걸 냉정하게 추려 거기에 후일까지 도모하는 면모.

릴리에나의 경우가 따지고 보면 리더로서 더욱 적성에 알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때때로 과격하고, 도박에 가까운  싸움을 즐기며 과감성이 남달라 패하면 대패할 여지가 다분한데, 이는 규모가 큰 기업이며 회사 입장에선 아무래도 윗선에 꽂아 넣기엔 꺼림칙할 수밖에.

그래야 할 장소, 위치, 그에 맞는 인재가 필요한 곳에서야 그녀는 당연 중용 받아 마땅하겠지만….


‘내 밑에 보내진 건 아마 그걸 좀 배우라는 이유였겠지.’




애초부터 출세가 정해진 녀석이기도 했고.

자, 그렇다면 자신은 어떠한가?
어쩌면 부품처럼 단순히 패왕녀의 옆자리에 자리 잡아, 카일론의 흑막, 배후에 일각으로 자리 잡는 게 최종 목적이라 치면… 과연 자신의 존재, 여태 벌여왔던 결과며 가치는?




“…….”




솔직히 어느 쪽이든 알  아니었다.

안정적인 직장, 합당한 기회, 조금 완화된 출세 가도,  외에 리스크 적은 근무 환경까지.


지금 와서  잘 났다고 나대기엔, 에드릭은 너무 많은 실패를 봤고, 젊은 나이라 쳐도… 솔직히 그런  떠올리기엔 스스로 많이 늦춰졌다고 생각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면 정말 늦은 게 맞다.
발상에 전환으로 이제부터라도? 물론 좋기야 한데… 의욕이 안 나는 걸 어쩌라고.



“기다려줘서 고맙군. 자네는  냉정한  알았는데, 빈틈을 찔러 오지 않다니….”
“전 당신하고만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




정확하게는.
관중들, 이를 지켜보는 무수한 눈들.
여론, 평판이란 녀석과도 싸우고 있으니까.

절대적인 이미지를 구태여 만들 생각은 없다. 이건 관리하기가 무척 피곤하고, 짜증나는 부류라…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그러나 만약 에드릭 자신이 패왕녀의 부군이 돼서 내부에 잠적한다 치면, 이런 절대적 이미지는 신비성까지 더해져… 패왕녀의 배후에 자리한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런 것조차 계산하고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한다니, 아주 끝내주네.



‘이딴  고려하고 자시고 할 게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공적일 일이 되면 사람이 조금 고리타분해진다니깐.

“그 예우에 걸맞게 나 또한 전력을 다하도록 하겠다!”
“…….”



아, 네. 그러시던가요.
애초에 난 시작부터 전력이었으니까, 굳이  털어댈 필요도 없고.
그보다 말하기 전에 주먹으로 전력을 뽐내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나?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은 아니지만, 답답해서 솔직히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정말로 치열하고, 힘겹다면 내가 이런 식으로 여유를 보일 이유도 없겠지.

말하기 전에 급소를 노려오던가, 생각할 틈이 없게 격렬한 공세를 취하던가, 쉴 틈 없이 연쇄적으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해오던가, 대책이며 빈틈을 노려야 할 정도로 확고하며 강인한 능력을 뽐내보시던가!


…젠장.



‘긴장감이 없어.’



에드릭 자신이 강하고 자시고를 떠나… 파라메라 대륙에서 뒹굴던 당시 피 튀기며 살이 뜯어지고 찢기고 갈라지고 베어지는  맹렬함이, 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터져가며 실제로 죽을 수 있다는 그 실감, 가진 것들 전부를 잃을 수 있다는 그런 위협감이, 언제고 예고 없이 상실할 수 있다는 그 절박함, 그런 긴장감이 없다는 게… 왜인지 지금 에드릭 자신을 은근히 열 터지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싫다고.’

치열함에 중독되고 싶지 않다.
그건 솔직히 좀….


“하아압!”

아, 진짜.

레오란의 몸으로부터 강렬한 빛이, 거대한 열기와 함께 그것이 사방으로 뻗쳐가며 주변에 자리한 얼음들을 일제히 녹여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녹아내린 물들은 곧장 강렬한 열기에 기화돼 흔적도 없이 수증기로 변해 허공으로 뻗어간다.

…마음만 먹으면 저 수증기조차 호흡기로 찔러 넣어 신체 내부를 진탕 내버릴 수도 있는데.


‘할까?’

아니야, 이왕 이렇게까지 왔는데, 거기서 이래 버리면 얼마나 멋대가리가 없냐.
그럴 거면 아예 시작부터 짓밟아버렸어야지.

내적 갈등을 대강 덜어낸 에드릭도 슬슬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열심히 했지만  됐다… 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론 범접할 수 없었다.’

라는 흐름으로 가야, 서로가 손해  보는 이미지를 성립하며, 대회가 무사히 마무리 될 테니.

패배자에게 비참함이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게 싫다 하여, 승자인 자신의 이미지가 무뎌지고, 헝클어지는  또한 에드릭은 원치 않았다.


…대단히 이기적인 발상이지만, 세상의 굴레가 그따위로 만들어져 있다 해서, 거기에 순순히 따르며 영광의 길을 에스컬레이터 타듯 오르는 건, 솔직히 마음에 썩 내키지도 않았기에.


노력한 이들은 그에 합당한 결실을 맛보길 소망한다.
그러나 노력만  했다고 모든 게 면죄부일 순 없는 거니.
또, 그걸 강렬히 희망하고 갈구한다 해서.


‘그게 늘 지켜지고, 이뤄진다면, 세상에 불행한 새끼가 어디 있을까.’



마치 전신이 황금처럼 불타오르기 시작한 레오란과 달리, 에드릭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그런 그를 지켜보며 차분히 다음 수를 준비했다.

이윽고.



“자!  전력이다!   받아보거라!”



그러니까….



‘그딴 중2병 짓 좀 하지 말라고!’

마음 같아선 진짜! 어휴!

아까보다 체격이 훨씬 커진 덕에, 이젠 정말로 인간이 아니라 오우거 가운데서도 체격이 훨씬 거대한 종이, 과장 하나 안 보태고 거인족이 달려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녀석은 어마어마한 박력으로 에드릭을 향해 거침없이 쇄도해왔다.

‘애초에 화려한 건 불꽃놀이 구경 정도면 족하지.’

불구경도 좋지만, 거기에 녹아나는 재산 피해와 연기로 생겨나는 환경 오염 문제 때문에라도, 순수하게 즐기긴 어렵다 치고.



‘그래도.’




인간들은 죄다 동태 눈깔이라, 화려해야  가치를 높게 매겨주니….



‘도리가 없지.’

그러나 무작정 화려하면 마찬가지로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
여기선 고오오급스럽게….


에드릭이 손을 휘저어 손바닥 위로 상당한 크기의 물방울을 형성했다.
동시에 그것은, 물방울로부터 하나의 형태를 구현하기 시작하니.




“저건 대체?”
“뭔가 하고 있다?!”
“이번엔 또 무슨 기적을….”



이윽고 최초의 물방울이었던 그것은 뱀의 형상을….

정확하게는 에드릭이 눈여겨 보아왔던 알헤디나의 형상, 동양권에 널리 퍼진 날개 없는 뱀 형태의 용의 형상을 이룩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점점 크기가 부풀어 오르더니.

이윽고….
경기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맹렬한 크기로 규모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건.


“전혀 제지하지 못 하고 있어!”
“저게 대체 뭐지?!”
“뱀인데 손이 있다!”
“거대 괴수인가?!”

레오란의 공세를 자동적으로 막아내다 못해, 아예 개입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강렬한 반발력과, 반동, 반탄력을 형성해 그의 맹렬한 육탄 공세를 무마 시키기까지 하고 있었다.

“크으윽!”




거기다 물로 된 용, 수룡의 크기가 부풀어 오를수록,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열기조차 끝도 없이 몰아치는 맹렬한 냉기와 사방으로 쏟아지고 밀려드는 막대한 수기(水氣)에 레오란의 본신 기력도 급속도로 소모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정말로 끔직한 권능이군!’



여태 적수가 없다시피할 정도로 자신감이 늘 넘쳤던 레오란으로선, 에드릭의 이러한 반칙과도 같은 무제한적인 능력, 사실상 권능에 가까운 압박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건 적극적으로 그를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라, 단지 수룡의 규모며 부피가 불어난 여파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레오란을 더욱 어처구니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쯤 되자 그도 에드릭의 의도가 뭔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있었다.



‘여기까지라는 건가. 이런 나를, 힘으로 짓눌러버리겠단 것인가?’


저항은 무의미하다.
마치 그렇게 선고를 내려오는 듯 느껴지는  어째서인가.


……하지만.

“그렇다 한들! 내 도전을 어찌 피하리!”


목에 화통을 삶아 먹었나.
에드릭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한편으론 이해했다.


나였어도….
저 정도로 힘이 넘치면, 누가 억지로 짓누르려 하면… 절대 참지 않고 날뛰었을 테니까.


‘어차피 그걸 가정하고 보인 거고.’

그래야 더욱, 시각적 효과를 부각 시킬 수 있을 테니.



‘열심히 해라.’

이건 에드릭조차 나름 대출혈을 감수하고 보인, 일종에 브랜드 마케팅 겸 저열한 호객 행위와도  차이가 없는 쇼맨십에 가까운 행위였으니.

즐기고자 한다면, 화려하게, 눈에 띄게, 소문 팍팍 잘 나게!
……저열하고, 저렴해지더라도, 그게 효과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어필 요소를 부각 시키는 게 바로, 홍보며 광고, 마케팅이란 거니.
거기서 긍정적이면 더욱 좋은 거고.

애초에 이 정도가 아니면 평범하게 이 많은 관중들, 관람객들에게 어찌 이런 권능을, 위업을, 능력을 선보일 수 있을 텐가.

누군가는 이를 바탕으로 약점, 하나의 데이터, 정보로서 그를 압박하고, 공략하는데 사용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가치 넘치게 효과를 띄우면 되니, 아쉬울 건 없다.’


애초에 실전이라 치면, 이딴 짓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이윽고 거대한 수룡이 최후에 이르러 맹렬한 빛을 뿜어대는 레오란을 향해 그대로 몸을 내던졌다.


고공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는 거대한 수룡의 위압감, 박력은 지켜보는 이들조차 기겁하고, 절로 오금을 저릴 정도였으니.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는 레오란은, 말 그대로 불굴의 용자 그 자체.
마치 세상 전체와 맞붙고자 하는  명의 용자로서, 그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하나 깜빡거림 없이 그것을 향해 호탕하게 목청을 드높였다.

“좋다! 여기다! 이리 오라아아―!”



승리가 레오란에게로 돌아간다면, 이보다 더 찬란한 인간 찬가가  있을까.
에드릭은 속으로만 짓는다던 한숨을, 은연중 겉으로 내비치고 말았다.

아, 그래도 뭐, 상관없나.
어차피 지금, 날 지켜보는 관중따위, 있을 리도 없을 테니.


…있어도 번거롭고.

수룡과 인간의 충돌.
이윽고 세상은, 강렬한 폭음과 빛, 주변을 싸그리 뒤덮을 규모의 막대한 수증기가 사방으로 치솟고 퍼져가자.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이긴 거지?”

모두의 기대와 함께, 주변은 다른 의미로 고요와, 침묵에 휩싸여 모두의 심장을 움켜쥐듯, 기대와 희망, 흥미를 동반한 채….

이윽고 서서히, 안개처럼 자욱한 수증기가 옅어져 가며, 승패의 결말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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