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화 〉86. 아니, 그걸 지금 알려주면 어쩌자는 겁니까?(3)
흔히 이국에서 동양인의 이목구비를 언급할 때 자주 묘사하길 흑발 흑안을 의례적으로 언급하곤 한다.
그런데 실상, 동양인이라 해도 흑발은 그렇다 쳐도 흑안, 즉 검은 눈은 실제로 그렇게 흔하다곤 할 수 없는 게, 막상 보면 갈색에다 색소의 차이로 이조차도 꽤 다양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조차도 전체가 아니라 일부, 중심 등이 검은 정도가 일반적이고, 이를 기준으로 하면 흔하다고 설명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닐 터다.
하지만.
…흑발에 가까운 남색 머리칼과 대조되게, 그녀의 두 눈, 흰자를 제외한 동공은 명확하게 탁하고 어두워서, 본능적으로 무언가 다른 존재를 마주하는 것 같은, 막연한 공포심 비슷한 감정을 일으키는데, 이런 인상이며 외양에 편견이 크게 없는 에드릭조차 위화감을 느끼는 마당이니, 아마 이런 미신적 요소, 외양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 기준에선 저 눈과 마주하면, 여러 가지 의미로 기가 죽거나,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을 거다.
…아니, 고작 그 정도면 다행이지.
“그보다 재미있는 먹거리를 개발해냈더군.”
“재미있는?”
“축제랍시고 한탕 벌일 목적으로 판매하나 싶더니, 아예 공장 비슷하게 가게를 차려버리다니, 장사 수완이 상상 이상이야?”
“…….”
치킨 말하는 건가.
무투 대회 기간 이후론, 기간 한정으로 인정해줬던 노점 노상 행위는 예외 없이 정리된다.
여기서 에드릭은, 정확하게는 프리지아와 그걸로 재미를 본 상회, 상단의 협력과 협찬을 바탕으로 땅을 건물을 사선 아예 이걸 사업체 마냥 굴려대기 시작한 셈.
왕도 내에 에드릭이 제안한 후라이드 및 닭튀김, 고기 튀김, 양념을 곁들인 것들 포함해 이런 건 나름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가성비를 최대한 고려한 건 물론, 분쟁의 여지가 적게끔 각 주점에 이를 일정 분량 뿌리는 식으로 확실하게 협업 체계를 이뤘기에, 사실상 기존에 닭튀김을 배제하려고 날뛰어 제공 명단에서 제외된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이러한 전개를 적극 반기고 있는 현황이기도 했다.
애초에 메뉴 하나가 유별나면 절로 사람이 몰려드는 판에, 그런 적극적인 어필 요리며 메뉴가 부족한 주점이며 식당에 이를 제공해 경쟁력을 키워준다는 전략은 대충 맞아 떨어진 셈.
어딜 가든 시장 경제 개념이 개입된 장소에선 잘 나가는 맛집과 아닌 곳의 매출 차이는 클 수밖에 없는데, 술은 그래도 대부분 평균 이상, 오히려 식사며 안주 메뉴는 부족해도 술맛은 기가 막힌 곳들은 그런 의미에서 상부상조하기 딱 좋은 구도가 형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터.
그로 인한 시장 활성화를 바탕으로 서비스 퀄리티 상승도 당연한 말할 것도 없을 거고.
…물론 이조차도 상황에 따라선 도태되고, 소외되는 이들이 물론 있겠지만… 거기까지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 없다는 것 정도는 에드릭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내가 프라이드며 양념치킨 먹고 싶은 것도 그렇고.’
스트레스 받을 때 치맥이 가능하냐, 아니냐의 차이는 제법 큰 문제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모두에게 이러한 감동을 전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돈을 벌고, 인지도를 확대하고, 여기서 자선 사업으로까지 이어진다 치면?
일석삼조는 커녕 그 이상의 시너지가 발생할 터.
여기서 기존에 발전 없는 이들, 적폐, 도태된 이들을 굳이 배려해줄 정도로 에드릭이 무른 부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먹고 사는데 아주 큰 지장이 생기는 건 또 아니니.’
“기회가 보이는데 손을 안 쓰는 것 또한 그 자체로 게으른 것 아니겠는지요. 그래도 제가 직접 이러면 보기 안 좋으니, 다른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이곳 왕도 내에 직접 개입하게 만들어서, 자금을 돌게 하려는 목적도 겸하고….”
“내 흡족하게 여길 법한 말을 선별치 않아도 되니 자질구레한 건 신경 쓰지 마라. 그 정도도 모를 성 싶을까. 경제 개념이며 통계는 다스리는 자, 무릇 제왕학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래야 장사치들이 머리 굴리는 걸 제때 파악할 수 있을 테고, 재물의 유동성을 이해해야 이로 인한 갈등이며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라던가.
왕이란 건 자세히는 모르나 그것이 무엇이건 기본 이상은 짚을 줄 알아야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개입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한때 내 선생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기 어려운 소리를 주입해댄 이유도 그런 연유일 테지. 지금은 전부 피와 살이 되어 있네만.”
“네에….”
“돈이라는 건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시길, 강과 같다 하셨지. 넘치면 해가 되고, 부족하면 씨를 말리고. 그 자체로 분쟁을 일으키고, 과하면 재앙이 돼 모두를 덮쳐드는 마물이라고. 제어하되, 집착하진 말라. 어려운 이야기야.”
“…….”
“강을 제어하듯 재물을 다스리고, 짐승을 조련하듯 폭력을 다스리라 하였다. 폭력은 주체, 이는 곧 인간일지니. 우린 국가서부터 개개인들까지 전사니 기사니 이런 걸 중시한다 치지만, 실상은 폭력을 정당화하여 이를 장려하는 행위 밖에 안 되지. 이는 곧 생산을 온전히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기에, 고대서부터 약탈에 익숙해져 온 덕분이다. 저기 초원 쪽 엘프들이 그러하듯.”
그리고.
“귀경이 하려는 초원 부족들의 회유책, 관리는 그런 야성을 경제 개념으로 길들이려는 수작이었다는 것도 대략 이해는 하고 있다. 내 기준으론 내심 높게 평가하고 있네만? 아바마마께선 못 마땅해하시지만. 할 거면 동맹으로 끌어당겨 추후 있을 이런저런 일에 혈맹으로서 가담하게 하는 쪽이었다면, 아마 이런 구차한 연극을 할 것도 없이 귀경이 이 몸의 반려가 됐을 것은 자명했을 터. 혹여 이러한 추측은 따로 해본 적이 없는가?”
“…….”
그건 전제 자체가 전시 동맹 성립이란 거잖아. 전쟁 막으려고 한 내 입장은 그럼 뭐가 되는데?
거듭 패왕녀가 말했다.
“전쟁을 막고자 한 점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하는 바다. 이해도 되고. 이 몸이라고 칼부림을 매번 반기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결국 하실 거잖습니까?”
“아마도.”
아마도는 무슨.
“그런 계약이니까.”
“……계약?”
누구하고?
그렇게 물으려던 순간이었다.
“일단은 안에 들어가서 허기를 채우고 이야기하지.”
“…이미 한 잔 걸치시지 않으셨는지요?”
“고작 그 정도로는 기별도 안 가지.”
코웃음과 함께, 얼마나 걸었는지 자각도 없이 어느 가게로 들어선 둘.
그보다 여기….
‘사람이 적은데?’
입구서부터 시야가 탁 막혀 든다.
어설프게 보이는 층 내부도, 철저히 칸으로 격리된 상태.
조명도 어둑어둑해서 안에 누가 얼마 정도 있는지조차 제대로 분간이 가질 않았다.
입구만 보면 그렇게 있어 보이는 장소는 아니었는데도, 차림새가 어설프다 뿐, 태도며 행실이 무척이나 세련돼 보였다.
그렇게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옅은 미소로 둘을 맞이했다.
“카일벤 님. 어서 오시지요.”
“간만이지? 기존에 하던 대로… 아, 그보다 그거 요즘 인기인 치킨이란 것도 올려보내고. 확보는 됐지?”
“물론입니다.”
흐음, 이런 곳엔 따로 주문 안 넣었을 텐데, 역시 이런 건 어디든 빼돌리는 물량이 있기 마련인가.
이런 걸 일일이 대놓고 지적하는 것도 웃기지만, 나중에 이 문제를 약점 잡아 조질 명분으로 삼으면 되니 일단은 그러려니 해야겠다 싶었다.
아무튼 안내를 받아 위층 구석진 부근의 방으로 안내된 둘.
안내된 방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는데, 침대만 없다 뿐 분위기는 완전… 그런 쪽에 가까웠다.
아니, 정확하게는….
‘본래 그런 용도로도 쓰이지만, 여긴 다수가 모의를 하든, 작당을 하기 좋은… 그런 공간이려나?’
정리하면, 야합 벌이기 딱 좋은 공간이다.
불길하다면 불길하지만….
심지어 내부를 밝히는 등도 랜턴 불이 아니라 마법으로 형성한 조명.
…거기다 자체적으로 빛의 세기를 세밀히 조절까지 가능한 초 호화품.
“자, 그러면 용건이 있으니 만나자고 했을 테고, 밤은 기니까 한 번 할 말 있으면 마음껏 해보도록.”
…다른 의미로 오해를 살 법한 표현이었지만, 에드릭은 구태여 음란마귀를 철저히 배제한 채, 후드를 걷어내곤 한숨과 함께 앞서 앉은 그녀의 맞은 편에 자리 잡았다.
우선은… 그러니까….
그래,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군.
그래도 혹시나 싶어 방음 목적으로 수기를 얇게 펼쳐 차단막을 형성한 에드릭.
거기서 다시, 혹여 마법 도구나 방청, 도청 등이 가능한 게 있는지도 꼼꼼하게 살폈는데….
앉은 채 긴장한 척하고 있기에 얼핏 보면 몰라야 정상임에도….
“너무 구질구질하게 그러지 말거라. 다 배려해서 은밀한 곳으로 이끈 거 아니겠나?”
그녀는 마치, 에드릭의 이러한 잔재주며 술수를 전부 파악하기라도 한 듯, 손을 휘휘 저으며 관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엿듣는 쥐새끼가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나? 잡아다가 뿌리를 뽑을 여지가 생기거나 이용 가치를 따로 셈 쳐도 되니. 억지로 틀어막고, 몸을 너무 사리면 도리어 의구심만 커지는 법.
원래 잠금 상태가 철저하면, 도둑놈 심보로는 어떻게 해서든 자물쇠를 따고픈 게 사악한 인간 본성이 아니더냐? 그릇에 걸맞게 행동하라.”
“……참고하겠습니다.”
비밀 엄수가 얼마나 중요한데, 노출될 여지 자체를 두라? 역으로 이용해 먹으려고?
나 참, 얼마나 잘났기에 그런 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걸까.
아니면 이조차도 허세? 나 잘 났다, 대범하다… 라는 식의 일종에 블러프?
“생각이 많아.”
패왕녀가 자신의 미간을 길고 가는 검지로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왕과 마주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은 자세로 임하라. 이 몸이 귀경을 최대한 동등하게 대우하려 할 때의 가치, 그 소중함을 자칫 간과 말고.”
“…….”
“사자며 용이 쥐새끼하고 맺어졌다는 예는 일찍이 그 어느 신화, 동화에도 없는 법. 무슨 의도로 이런 구질구질한 것까지 설명해주는지, 귀경은 몸소 알아듣겠는가?”
“예. 이렇게까지 배려해주는데 모른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겠지요.”
솔직히 예? 저는 잘… 하고, 모르는 척, 바보인 척하고 싶은 충동이 뒤따랐지만….
저 인간한테 그런 기색을 내비쳤다간,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안 봐도 눈에 그려졌기에, 에드릭은 애써 신중한 태도며 경계의 기색을 완전히 손 놓아버렸다.
저런 당당한 태도, 위압감 넘치는 태도조차 연기일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이야기의 주도권을 상대가 잡고 있으니까, 억지로 이쪽 멋대로 나가기도 좀 그렇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
언제는 주도권 잡고, 갑으로서 늘 대화를 이끌어 간 것도 아닌 마당에.
오히려 을 쪽이 훨 익숙하다.
에드릭으로서의 삶보다, 에드릭 이전, 을로서의 삶이 훨씬 더 강렬하고, 오래됐으며, 익숙해져 있기에.
따지고 보면 에드릭의 삶 자체가 그로서는 반쯤은 연기, 슬슬 익숙해지며 진실이 되어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위화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잊을 만하면 현실 세계 버릇이 종종 튀어나오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좋습니다. 그럼 일단 본론부터.”
일단 지르고, 궁금증이 과해질 때쯤, 2차 포격을 가한다.
“왕녀님하고 제가 같은 핏줄을 잇고 있다는 건 아시는지요?”
“경이야말로 몰랐나? 의외로군.”
“…….”
“…….”
어, 음. 너무 호쾌하게 인정하시네?
덕분에 말문이 잠깐, 막혀버렸다.
…어쩌면 나 혼자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가? 으음!
“아바마마께선 겉으론 사람 좋은 태도를 고수하신 지, 그 시기가 꽤 되셨지만, 막후에선 누구보다 음험하게 일을 처리하시지. 그분이 친히 불러왔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따로 말씀은 안 해주셨지만, 전부 그럴싸한 연유가 있을 테고. 매사 모든 행동에 이유, 연유가 있으신 분이시니까.”
“…정사며 공무는 왕녀 전하께 일임하신 지 오래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러니 더욱 자유로울 테지. 잡무이되 미루자니 껄끄러운 것들을 전부 이쪽에 팽개쳐뒀으니.”
“…카일론도 꽤 규모가 큰데, 서류 처리며 인가하고, 확인하고 이런 것들 다 따지면 이렇게 싸돌아다닐 만큼 시간이 썩 널널하진 않으실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부분이 우리나라의 합리성이지. 이런 자질구레한 건 공신들에게 일임하고, 그걸 맡기는 게 또한 영광된 일이라는, 관례 같은 게 있거든. 그러면서 종종 이를 바탕으로 이권을 챙긴다던가, 일부는 눈 감아 주되, 너무 크게 욕심을 부릴 시, 피로서 그 죗값을 치러 권위와 위엄을 공고히 다진다. 일일이 하나하나 다 신경 쓸 정도로 왕의 역할이 만능은 아니지 않나.
설혹 그렇게 애쓴다 쳐도, 못 살피는 이들, 방치된 이들, 간과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규모가 커지고, 영역이 넓어진다는 건 그런 의미지.
전부 다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것도 욕심. 고로 정말 필요한 것에 필요한 일손을, 적절한 수와 합리적인 방식으로 처리해 최대의 성과를 거두는 합리성.
통치란 결국 타협을 얼마나 잘하고, 얼마나 손해를 덜 감수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누가 지느냐가 관건 아니겠나. 그리고 책임 소재를 묻는 거야말로, 통치자의 주된 역할이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들로부터.”
“흐음….”
“정말 번거롭기 그지없는 일이야. 안 그런가?”
그 말 그대로….
“무엇보다 착각해선 곤란하지. 자리가 높다 하여 모두가 이 자리를 탐하고, 이 몸을 끌어 내리며, 권위와 기휘에 도전하려는 도전자라 생각한다면… 이 짓 오래 못 해 먹지.”
“…….”
“그러니까, 귀경의 핏줄을 이해하고 누군가가 왕위를 옹립하려 한다거나, 엉뚱한 생각을 한다 하여도, 그 앞길을 가시밭길일 터. 결국 귀경처럼 똑똑한 이가 그런 처참한 길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갈 정도로 고난을 즐기려는 취향은 아닌 걸로 보이네만.”
“…그 부분은 정확하게 맞히셨습니다.”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한다. 그건 좋지. 허나 아바마마와 이 몸의 차이점은, 그 점이기도 하니까. 애초부터 믿지 아니하는 자와, 믿는 척하되 방치하여 칼을 가는 자. 어느 쪽이 우위고 뭐고는 그렇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니까.”
“…꽤 사적인 이야기를, 허울 없이 말씀해주시네요.”
“어차피 귀경과의 관계는 극과 극. 지금 와서 이것저것 따지고 뭔가를 계산하고… 의미가 없지.”
“…….”
“귀경 말고도 타 후보들도 예외는 아니네만, 알다시피 귀경하고는 다른 의미로 엮인 게 있지 않나.”
“…예를 드시면요?”
“…….”
입술을 다문 채 입꼬리를 말아 올린 그녀는.
“애초에 경은, 마음에 둔 이가 따로 있지 않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