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08)화 (308/454)



〈 308화 〉89. 맹자가 당긴다.

하늘은 누가 예고했던 것만큼 맑았다.
현대 과학 기술이 범람하는 시대조차 일기예보는 오차가 잇따르기 마련.

신기하게도 고대엔 그런 기술조차 없음에도 이런 걸 잘도 때려 맞추곤 했단다.
삼국시대조차 지구 건너편에 일어나는 개기 일식 날짜마저 맞췄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가.


뭐… 마법이니 온갖 초능력, 이능들이 난무하는 이런 세계라면, 그보다 훨씬 면밀하게 날씨를 예측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달리 말하면 이를 주관하는 이들이 경외  여겨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을지도.


잘난 이들이 잘난 거지, 평범한 이들로선 이쪽 세계의 잘나신 기득권층을 무너뜨린다는 게, 더더욱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일 거다.

과연 시간이 흐른들, 이곳 세계에 시민 혁명, 민주 혁명이 제대로 발생할지도 의문이고.

일어난다 쳐도 결국 권력자의 교체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공화정이 발전해 민주정으로 이어지는 건 역사적 필연이라 누구들이 말은 했지만, 세계가 다르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다양해진 만큼, 이게 또 어찌 굴러갈지는 모를 일.


에드릭은 무수히 모인 군중들을 성 위에서 내려다보며 간만에 긴장이란 걸 해보고 있었다.


평소엔 비개방 지대지만, 왕이 중요한 연설을 한다던가, 왕실 내 행사와 같이 큰 이벤트를 벌일 때면 왕성 부지를 개방하곤 하는데, 부지 내에 자리한 여러 공간 중 가장 광대해 출전 시엔 군대가, 이와 같은 시기엔 백성들이 왕성 정면에 놓인 광대한 광장에 밀집해 위를 올려다보며, 왕성의 찬란함을 눈에 담아가며, 높으신 분의 그럴싸한 이야기를 옹기종기 모여 듣게 되는 구조인데…, 이러한 행사 자체가 전부 알든 모르든 프로파간다 효과를 불러올 테며, 평범한 이들로 하여금 특별함, 신성함을 뇌리에 새김으로서 통치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리라 본다.

…거두절미하면, 끝내주게 많은 백성들이 밀집해 있다는 소리.
사실 왕성이라 쳐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은 영역,  격차는 말도 못할 정도지만, 겉만 보는 이드로선 이를  도리가 있나.

그렇기에 광장을 정면에 둔 왕성의 전면부는, 넓이와 높이가 광대하기 이를  없는 반면, 높다란 하늘이 아닌  그 뒷면은 사실, 어찌 생겨먹었는지  도리가 없을 거다.

성안에 다시금 성채며 건물이 또 자리하고 있는 걸 처음에 알았을 때 얼마나 식겁했는지. 이거 짓느라 죽어 나간 인력들의 고난이 먼저 떠오른 건, 에드릭의 코드가 일반적인 이들과 조금 달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외운다고 외워질 게 아니니 결국 연설문은 핵심 부분만 어찌 뇌리에 박아두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연설 전까지, 마치 시험 직전까지 교과서며 공책 살피며 달달 외우는 양, 그와 유사한 행위가 불가능했기에 에드릭은 적당히 머릿속으로  내용을 곱씹으며 이어지는 과정을 틈틈이 지켜보고 있었다.

순번은 5번째로, 꼴찌는 아니되 후반부라는 애매한 시점.
…거기다 앞서 연설한 것들 내용들을 듣다 보면, 연설 원고가 조금 어설펐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휘말리면 곤란하지.’


한 녀석은 마치 자신이 당선됐다는 양 호언장담을 해댄 터라, 떨어지면 어쩌나 에드릭 쪽이 되려 불안해질 정도로 온갖 미사여구며 장담을 토해대는데, 왜 부끄러움은 이쪽 몫인지.

반면 누구는 마치 의원 유세 연설이라도 되는 양 자길 지지해주길 바란다는… 소리는 고풍스럽게 털어놨는데, 이쪽도 뭔가 핀트가 좀 어긋난 듯 보였지만, 그나마 무난하긴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인물은, 자기 자랑에 유념이 없었고, 자신을 통해 카일론이 더  나질 거란 말을 아주 노골적으로 해댔는데… 전부  근거 있는 내용들이었다.

‘…아주 자신감들이 과도해.’

시대적으로, 거기다 모든 백성의 근본이자 가장 윗줄에 앉게 될 이가, 소심하고 겸손을 표하는 건… 의외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거다.

거기다 상무 정신이 특출난 이곳, 카일론에서 야성미를 뽐낼지언정, 요조숙녀와 같은 얌전한 태도는 백성이며 귀족, 너나 할 거 없이 마이너스 점수 먹기 딱 좋은 행태일 테고.

성대한 박수가 광활한 영역을 거쳐 울려 퍼지자, 그제야 에드릭도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 싫다.’




집에 틀어박혀 아무 생각 않고 퍼 자고 싶다.
조금 추가하자면, 고기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술 한잔 기울인 상태로, 양치질도 안 한 채 배덕감에 잠겨 폭풍 수면에 빠지고픈 심경.

…어쨌든 눈앞의 상황은, 에드릭이 제일 꺼려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사회를 맡은 귀족이 눈치를 주자, 에드릭은 별수 없이 앞으로 향했다.

확실히 돌출된 부근이라 나아갈수록 보이고 실감 되는  압권이었다.
테라스 형식으로 된 전망대는  자체로도 대단히 넓었는데, 막상 눈 아래에 놓인 무수한 백성들의 존재감, 그 외에 시선을 조금만 들면 왕도의 정경이 고스란히 펼쳐진 그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로 감탄이 나올 법한 광경이긴 했다.


…그럼에도, 가슴 속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건 뭔 이유인지.

‘이딴 거에 감동할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어느 의미론 불행이지.
언제부터 이런 광경을 보며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게  걸까.

아마 사적으로 이곳에 올라 이 자리에서, 이런 특별한 시기가 아니었더라도, 에드릭은 순간적으로 감탄은 할지언정, 별다른 감동을 느끼진 못했을 거다.
…이유가 뭘까?
덕분에 어쭙잖은 긴장감이 단번에 수그러들었다.

그보다 왜….

왕이랍시고 이런 위치에서, 백성들을 마치 개미 보듯 보면서, 잘난 듯이 이야기를 해댈 수 있는 걸까?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싶었다.
그리고 이걸 좋구나 하며 누려대는 녀석들은, 이걸 위해 왜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배제하고 무너뜨리고, 죽이고, 배신하고….

…그렇게까지 난리를 피우는지.




‘…그거야 그들 사정이지.’

민트 초코 맛대가리 없다 해서, 치약 맛이라고 그거 맛있다고 먹는 놈들을 지탄하고, 매도하며, 배척할 순 없는 법이니.

…자기 편이 아니면 배제하고, 묵살하려 드는 놈들이 많긴 하지만, 그거야 원래부터 그런 거니… 뭐라 따지기도 그렇고.

“흐으음.”




입을 닫은 채 크게 심호흡  번.
날숨이 코를 통해 길게 뿜어져 나온다.


“…….”



의외로 여기에 서니, 달달 외워뒀던 원고는 뭐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사실 중요한 것도 아니지.
어쩌면 연설문 쓴 것조차 자기 만족 겸, 생각 정리 차원에 불과했을지도.

 믿고 그리 녹초가 되어가며 그걸 적어뒀는지.
…차라리 컨닝을 하는 요령, 잔머리라도 제대로 굴리던가.

프롬프터가 없는 만큼, 알아서 잘 주절대야지.
이윽고 심호흡이 2차례 정도 끝날 무렵, 다시금 호흡을 멈춘 에드릭은.



“제 소개는 생략하죠. 다들 아실 테니.”



시작부터, 이 시대 인간들 기준으로 파격적인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 핏줄, 어디 출신, 어디에서 뭘 했고, 어떤 업적을 쌓았으며, 어떠한 영웅적 생애를 지내왔고….


그딴 건 자서전에나 쓰세요. 아무리 팩트 체크가 불가한 시대라지만,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애초에 그 잘난 이야기 듣자고 저들이 여기 온 걸까?
글쎄올시다.

그러기에 에드릭은 곧장 핵심을 찔렀다.



“저 자신은 솔직히 말해 부군이 되고 안 되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운을 떼자,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해졌다.


“여러분들 또한 그렇잖습니까? 사실 나랏님이 누구든 그게 중요한  아니죠. 나랏님이 누군지 몰라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세상. 평화도 그렇지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 날 필요로 하는 곳, 그리고 내 가족들이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친우들과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배 터지게 먹고, 자고, 하고 싶을  하고. 이것만 된다면 나라에 누가 왕이든 귀족이든 뭐든 무슨 상관입니까?”

웅성거림이 더욱 심해진다.
어쩌라고 새끼들아?



“그러나 그게 안 되면 우린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그리고 기도가 안 통하고, 그걸로는 부족하다면, 힘들다고 느끼면 우린 누구에게 의지합니까? 아이가 어머니 아버지에게 의지하듯, 어머니 아버지가 없을 시엔 형이며 누나, 언니에게, 그조차도 안 되면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도  수 있겠군요. 먼 친척, 사촌보다야 가까운 이웃을 찾는 이유는? 또한 우리가 그들에게 순수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그런 시대가 아니다.

적어도 배를 곪지 않고, 사는 곳에서 내쫓길 처지가 아니라면, 대체로 기본적인 여유들을 지니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옆집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던가, 좋은  있으면 하나라도 나눈다던가.

개중에 아닌 놈들도 있겠지만, 그거야 그들 사정이고.


“그러나 과연 그걸로 해결이 되겠습니까? 마물들이 대거 몰려온다 칩시다. 마을 사람들이 뭉쳐 어찌 막아낸다 한들, 피해가 없겠습니까?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아버지며 어머니가 죽을 테고, 친구가 다치고 죽을 수도, 살던 집이 부서지고 무너지거나, 불타서 재가 될 수도 있겠죠. 마물이 아니라 도적이라면요? 그것들이 사정 봐줘 가며 약탈하고, 살려줄 놈 살려주고 그런답니까? 전혀요.”



다시금 주변을 살핀 에드릭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고, 구원하고, 지킬 건 자기 자신이며, 가족이며, 동료들 뿐입니다. 그러나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어쩌겠습니까? 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달라 요청하고, 지켜달라 요청을 하겠습니까?”


사실 대답이야 뻔하다.
이러한 전개, 말 흐름은 사실 에드릭이 기꺼워하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위에, 여러분들을 지켜준다는 이들에게 달려가, 그러한 위험, 어려움을 말해 도움을 요청하겠지요. 힘 있는 자에게 어려운 일을 부탁해 도움을 요청하고, 그는 그것을 들어줌으로써 보답을 받으며, 우리는 그런 그들에게 응당 경의를 표함이 마땅하죠. 그가 만약 악한 마음을 먹고 우릴 핍박하고, 갈취하여 강도와 같은 무뢰배 짓을 한다면, 그때는 정말 대책이 없잖습니까?”



그러기에 그들은 정당하며, 정의롭고, 축복받은 이들이라 할  있을 겁니다.



“존경받는 이들이란 그런  테지요. 존재하는 것만으로 마음에 위안이 되고, 언제나  존재를 본받고자 분투하고, 노력할  있도록 돕는 이들. 태양이 우리에게 볕을 내리쬘 때, 어떠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또한 달이 빛을 내뿜을 때조차,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지요. 그러기에 우린 그것을 올려다보며 경외를 표하고, 언제나 변함없이 그곳에 있을 거란 믿음을 안고, 그들을 의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일부러 빗댄다.
통치자의 잔혹무도함, 부조리함은 건너뛰고, 얼버무리고, 좋은 점, 당위성, 정당성을 입에 담으며, 심지어 이를 비유해 더욱 높은 영역으로까지 상승시킨다.


군중을 선동한다는 건, 예로부터 지배자, 통치자의 필수 스킬에 해당했다.
그 대표주의자가 히틀러였고, 나폴레옹조차 그런 연설을 바탕으로 군중이며 아군을 휘어잡는데 능수능란했다 했으니까.

…동시에 그리스 민주정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이러한 선동, 이를 악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의 위험을 당대 철학자며 지성인들은 손꼽곤 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얼마나 그들로 하여금 공감을 얻고, 수긍하게 하며, 납득하게 만드느냐.


…그런 의미에서 여태 에드릭이 했던 이야기는, 통치자 입맛에 퍽 알맞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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