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13)화 (313/454)



〈 313화 〉90. 그래서 당신은......(2)

“…예전에도 짐작했지만 넌 애초부터 소원이란 걸 제대로 써먹을 생각이 없었구나.”


코넬은 기가 차는지 어울리지 않게 끌끌하고 웃으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거기다 그런 식으로 어설프게 소원을 빌다가, 이쪽이 자의로 해석해 대충 널 불살라버리거나, 잡아 먹으면 어쩌려고 그런 어설픈 짓을 행하는 거냐? 조금 더 철저하게 이행 항목을 설정해두는 게 좋을 터인데?”
“코넬이 보기에 저는 어떻습니까?”
“어떻다?”
“제가 저일 때와, 제가 제가 아닐 때, 그거 구별 못 하시진 않으실 테고. 기억이 동일 하나 근본이 다르다면, 코넬과 제 관계는 과연 같은 걸까요? 이렇게 몸 하나만 가지고 있다 쳐도? 인간이고 대부분의 종족이야 겉 외양, 외관에 사고 관념이 종속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코넬은 원래부터 어느 정도 알아볼 수는 있을 거 아닙니까? 그조차도 속일 수 있다 쳐도… 그조차도 간파할 수 있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만. 그러한 의혹을 품을 수만 있다면.”
“흐음….”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해둬야 계약 고의로 안 들어주려 파탄 내려는 명목으로 절 처리한다거나, 어쩌면 소원으로 코넬 물 먹이려 할 때, 그거 사전 차단할 수도 있을 테니… 나쁠  없죠.”

그러자 역시나? 하는 태도로 태세를 전환하는 코넬.


“호오… 생각보다  고심한 모양이구나? 그보다 나와의 신뢰 관계를 너무 맹신하는 건 아니고? 사실 내 쪽이 되려 널 물 먹이기 위한 최후의 관문이자 장벽이었다면, 이딴  의미없는 발악이라곤 생각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 못 살죠. 어차피 세상 산다는 건 결국, 놀아나는 거잖습니까? 운명이라던가,  어마어마한 대세며 흐름이며 신의 의지, 계시, 순리, 섭리…  어쩌고?
운명이니 숙명이 과연 우리를 방해하고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그건 결국 받아들이기 나름이라 봅니다. 그렇다 해서 무작정 따르고, 고개를 꺾느냐 마느냐, 이것도 본인 선택에 달린 거죠. 잠들었다가 깨어나려 몸을 일으키려 하면, 이게  힘겹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매우 당연한 현상이라 봅니다. 그래도 결국은 일어날 테고, 다시 하루가 시작될 테죠. 눈 감아 더 이상 숨 쉴 일 없이, 심장이 멈추고 몸이 식어 영구히  눈 감는 날이 오지 않는 한, 이건 뭐… 어쩔  없는 거잖습니까?”
“허튼소리는 됐다. 의도는 이해했으니 더 이상 자질구레한 소리 안 해도 된다. 말장난이 예나 지금이나 심하구나.”
“…뭐, 직업이잖습니까.”


에드릭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윽고 지켜보던 패왕녀가 다시금 말했다.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경이 하고자 하는 건, 멜크리우스 경의 원치않은 혼인을 막는 건데… 그게 끝은 아닐 테고.”
“…그러려고 노력은 해보고자 합니다.”
“그리하거라.”
“……?”
“허나 부군이 된다는 선택지는 남겨두겠다는 걸로 보이는데, 이 몸의 착각은 아닐 테지?”
“전하께서 허용만 해주신다면….”
“얼빠진 것. 부군이란  다른 여자에 눈길이 팔려 의무도 책임도 다하지 않겠다 주절댔는데, 그걸 지켜보고 용서하라? 네 녀석이 제정신이라면 그런 헛소리를 본인 면전에 대고 잘도 말해대는구나.”
“…그 부분은 면목이 없습니다.”


에드릭이 별다른 저항, 변명 없이 순순히 고개를 꺾자 패왕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일 경과를 듣고, 부군이 된다 치면… 그걸 밑천으로 경의 뒷배들과 승부를 보려던 참이더냐? 낙선했다 치면 그걸  명목으로?”
“…….”
“한데 경의 뒷배가 과연 그 정도로 어리숙하진 않을 터인데… 그걸로 괜찮겠느냐?”
“…할 수 있는데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명의 은인에, 사모하는 이라서?”
“…….”
“음흉한 구석이 있는 만큼 솔직한 점은 마음에 드는군. 음흉함이 권력과 이권,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게 아니니, 그건 그것대로 재밌구나. 특이한 종류의 성향이로다, 경은.”
“그저 면목이 없을 따름입니다.”




어쨌든 이걸로 대놓고 혼약 대상자에게  좋아하는 상대 있고, 계약 결혼은 할  있다… 라고 밝힌 건지라, 사실 따귀를 맞고 조인트를 꺄여도 백번 할 말이 없는 상황인 건….


“멜크리우스 경은 본인에게도 귀중한 자원이자, 친우며, 부하다. 그런 그녀가 원치 않은 일에, 자기 의지와는 다른 이유로 엮여있다면, 능히 도움을 베푸는  무릇 옛 전우이자 주인으로서 도리겠지. 그러한 목적이라면, 허하지 못할 것도 없는 바. 귀경의 무례를 일부는 용서토록 하마.”
“…감사합니다.”
“일부니 안심은 말거라. 어느 쪽으로든, 경의 그러한 다짐, 의지를… 용인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거란  이해하도록.”

하물며.



“그들이 우리보다  윗줄에 앉아 세상을 주름잡는 이들이라 치면… 이건 이것대로 재미난 일이로군. 왕이 왕으로서 반역한다, 세상에… 보이되 보이지 않는 흑막에. 흐음… 개척 군주며 터무니없는 힘과 명성을 품은 경을 그토록 소심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존재라 하니, 가슴이 뛰는구나. 창칼로 겨누는 전투도 흥미가 깊지만, 이러한 수 싸움도, 본인은 내심 반기는 바기도 하니.”
“…….”



변태세요? 변태십니까?!
그래도 이걸로 패왕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 그 의도는 분명하게 정해졌다.



“미리 밝혀두겠지만, 아바마마가 괴이한 생각을 품지 않은 한… 결과가 크게 바뀔 일은 없을 거다.”
“…….”
“그래서, 이 건을 아바마마한테 이실직고하진 않았겠지?”
“…제가 머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요.”
“하하, 하긴!”




이걸로 하나는 확실해졌다.
패왕녀는 확신하지 못했다.
에드릭 자신이, 철왕과 담판을 지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그리고….




“넘겨짚기 치고는 훌륭했다. 현재 남은 후보들 모두는, 내심 하나하나가 국익을 위해 품고 있어 손해볼 게 없는 이들이지. 궁정 신하로 받아들일 것인가, 영토를 할당하던가, 그걸로 못 붙잡아둔다 치면… 이런 식으로라도 써먹자는 게 아바마마의 의지다.”
“…남편 여럿 생기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남 말하듯 이야기해봤자.”

서로 마주 보며 웃던 에드릭과 패왕녀.
그리고 에드릭이 대뜸 물었다.


“그래서, 그쪽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



맥락 없는 질문에 왕녀가 웃는 얼굴째로 의구심을  밖에 냈다.

“무얼 말이더냐?”
“그러니까, 어디서 오셨… 아니, 출신에 대해 묻는 게 조금 이상하다면… 흐음….”
“…….”
“국왕 폐하와 역시 같은 맥락이신 겁니까?”
“또 넘겨짚기인가. 방심할 틈이 없구나.”



패왕녀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러지 않으면 좀처럼 알아내기 힘드니까요.”


어쨌든.



“번역 기능이나 마법 등에 영향받지 않는 전제… 받으면 더 이상하겠지만 아무튼 그걸 놓고서도, 총이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기신 것도 이상하고요.”
“…그런 도구가 없는 건 아니지 않나.”
“대포는커녕 화약도 제대로 못 쓰는 시대인데 이걸 아는  이상하잖습니까? 단어 수립도 제대로  이루어졌고, 제가 노포라 했습니다, 쇠뇌라 했습니까?”
“…….”
“총이란 단어도 존재 안 하지만, 개념을 알고 이해해두고, 미리 숙지하고 있다면야… 모를 일도 아니죠.”
“일전에 아바마마께서도 이야기했지만, 본인은 그쪽 세계 지식에 대해 아는 바가 적지 않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알지만 시대상에 벗어난 걸 활용은 못 하니, 알기만 하실 테고 말이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가?”

입꼬리를 올리는 패왕녀를 향해, 에드릭은 의도와는 살짝 어긋났음을 실감하곤 대충 속내를 꺼내 들었다.



“제 핏줄이 카일론,  제국 쪽과 이어졌다는  이해한 직후 번뜩 떠오른 겁니다만… 왕녀 전하도 같은 식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흥미로운 접근법이군. 이세계인이라 자처한 네가 아까 이야기한 대로, 혼을 넘기고, 수용하며 육신의 제어권을 얻고… 그래, 그러한 발상으로 이 몸도 비슷하다거나, 그러한 가정으로서 본인도 동일한 계통일지도 모른다?”
“몰라도 사실 크게 상관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논하게  김에, 나중에 오해가 없도록 미리 알았으면 했던 건지라, 기분이 상하셨다면 용서하시기를.”
“…또한 그걸 통해 본인이 그러한 식으로 숙지를 해둬서 사전에 올 접근에 대해 방비하거나 경계로 삼아라, 그런 이야기인가?”
“…그걸 이야기하시면 의도에서 한참 벗어나지 않습니까.”
“내 성에서, 엿듣고 훔쳐 드는 이를 경계해 이런 잡다한 술수를 논하는 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구나. 신중함이 과해. 아까 전까진 방비했지만 지금서부터는 고의로, 흘릴 작정이다 이건가? 엿듣건 말건 상관이 없고?”
“…거기까지 파악하셨습니까.”
“얕은 수작이지 않더냐.”


갑자기 하던 짓 멈추고 엄한 짓을 하면,  이유가 있는 법.
적어도 그녀에겐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내심 티  나게 엿듣는 이들의 머릿속, 그들이 입에 물 사과에다 독을 풀 생각이었는데….



“아는 이가 들었을 때와, 근본 지식이며 정보가 부재인 채 들었을 때, 해석 내용이 전혀 다른 의미들이니. 일부러 그러한 의도로 흘린 걸 보면… 네 녀석도 권력이니 권세에 관심 없다 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거짓이로구나. 그러한 행태 자체가, 권세를 부르고, 음모를 부추겨 권력의 틈바구니에 눌러앉게 되는 기질인  모르는 건 아닐 것인데….”
“지키기 위한 힘과 지식, 재주와 요령은 필요한 법이죠.”
“권력의 가장 중요한 성질 중 하나가 모이지 않고 흩어지려는 성질이지. 그걸 지키는  자체가, 이미 훌륭한 지배자, 통치자로서의 역량 아니더냐.”
“…힘 있는 자가 일방적으로 때리면 맞을 순 없잖습니까.”
“맞아야지.”




……?

“굴복하지 않는 자는 적이다. 그게 바로 권세, 권력, 지배자, 압제자의 권능이자 권리이다. 그걸 거부하고자 한다면, 똑같은 위치에 서야지.  그러더냐?”
“…….”
“네 놈은 권력의 본질을 착각하고 있다. 뭐…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 부분은 차근차근 일깨워주도록 하마.  그토록 어리석은 부류서부터, 지혜롭고 유능하며, 자비롭고, 똑똑하고, 정의로운 이들조차, 권력을 손에 넣지 못해 추해지는지조차. 소화  할  삼키면 탈이 나는 것인데, 이건 소화라는 게  수 없는 성질이지.”
…그러기에 무한정 씹어 삼키며 즐길 수 있으니, 그만큼 별미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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