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14)화 (314/454)



〈 314화 〉90. 그래서 당신은......(3)

저게 권력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실체인가, 싶었다.

두려워 않고, 경계하지 않으며, 즐기고, 음미하고, 누리며… 숨 쉬는 공기처럼 탐닉한다.
그러기에 저런 종류들을, 권력이 사랑해 마지않는지도.


여태껏 알고 있던 패왕녀의 기질이며 성질, 성향에 대해… 에드릭은 어쩌면 극히 일부, 겉핥기식으로밖에 이해를 못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저런 부류들은 전쟁을 내고, 사람의 권리며 생명이며 존엄을 짓밟고, 띄우고, 부수고, 조립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 건지도.


…그나마 그 방향성이 조금은 바른 쪽, 선한 측에 있어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어쩌면 저들이야말로, 선악 개념을 초월해 본질에 접근한, 가장 근원적인 부류들일지도.

살아가는 방식, 나름의 해답.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
그리고 이미 답을 알고 목표를 향해 쏘아진 화살.
…무엇이 목적지에 더 빠르게 도착할지는, 말 안 해도 뻔한 일일 테니.


옳고 그른 건, 그 시점의 그들에겐,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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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대대적인 발표가 이루어졌다.
국왕의 입에서 직접, 후보들 전원을 패왕녀의 부군으로 삼겠다는 내용이 발표되자, 당연 알현실 내부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더군다나….

“숲의 현자라니….”



숙덕이는 와중에 에드릭도 자신을 추천했다는 인물을 곁눈질로 바라봤다.
본래 갈색이었을, 그러나 현재는 겉감이 하얗게 색이 탈색된 건 둘째 쳐도, 소매며 밑 가장자리들이 누더기 못지않게 엉망인 로브.

거기다 후드는 너무 깊게 눌러써서 얼굴 안쪽은 음영만 짙게 내려앉은 터라, 하얗게 센 수염 정도만 어설피 내비치는 정도.

그보다….


‘저기 국왕 씨? 저거 당신 본인이라면서요?’

그런데  제3자가 따로 있습니까? 대역입니까?
국왕이 분신술을 쓰는 게 아닌 한, 왕좌에 앉아있는 본인과  숲의 현자라는 존재 또한 국왕 본인이라는 건, 아무래도 어불성설 아니겠나.


“…….”


설마 내가 숲의 현자다, 이게 이쪽을 기만하기 위한 사기였던 건 아니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사기라는 것에 왜 당연한 듯 의혹을 표하지 않은 걸까?

거기에 혹해 프리즈, 흔히 ‘긴장성 부동화’ 라 해서 긴장과 놀람, 공포 등으로 반짝 몸이 얼어붙어 버린 처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건, 다름 아닌 에드릭 본인이었다.

아니, 솔직히 왕이 툭 하고  내용을 대놓고 죽창 쑤시듯 찔러대는데 그걸 의심한다? 그 구도에서?




“…….”


묘한 즐거움을 안고 온 것에 비해,  부분은 속이 쓰렸다.

국왕의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 시점까지 저걸 의연하게,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요한 시점에, 에드릭은 국왕의 했던 발언에 대한 진위 여부를 제대로 파악  했다는 거니, 속이 안 쓰린 게 이상한 거지.


‘당장은 그렇다 치고.’

어쨌든 발표에 대한 반응에 직접적 타겟들, 즉 부군 후보들의 반응들은 더욱 각별했다.

심지어 목청을 높여 따지는 이도 있는가 하면, 어떨까 고민하는 기색들까지.

“허, 왕녀 전하 정도시면, 사내 여럿 감당하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전무후무한 일이로군.”
“아무렴 어떤가. 고대 조상신들 가운데에선 사내 여럿 부리며 남편감으로 받아들인 분도 계셨던 마당에. 힘이며 능력, 지혜만 뒤따라준다면  또한 나쁠  없겠지.”
“그러나 후사 문제가 이러면 복잡해지지 않나.”
“그래서 더 좋은  아니고?”

왕이 딱히 만류를  하다 보니 내부는 시장판 못지않게 시끌벅적하게 변해갔다.
신하들이며 귀족들, 중신이며 권신들, 너나 할 거 없이 이 사태를 전혀 예측 못  태도들이었는데, 연기인가 아닌가를 면밀하게 살피던 에드릭은 이 와중에 한숨 돌리는 이들을 목격했다.

‘안도감인가.’

애초에 권신이자 봉신으로서 직위며 신분, 권한이 확고한 이들은 크게 문제 될  없지만, 바람 부는 거 하나조차 경계하며 몸을 사리고, 눈치를 봐야 하는 약소 귀족들의 경우, 이번에 선을  게 기회인 동시에 패착이 될 수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무마되는 게 어느 의미론 마음이 놓였는지도.


그래서인지, 실제로 각 부군 후보들에게 적극적으로 들러붙던 이들 대다수가 안도하는 눈치들이었다.

물론 권신들 입장에선 이게 썩 못마땅한  보였지만.

자기가 선을  이가 부군이 된다거나, 최소 공작을 펼쳐 정치적으로 도움을 준 이들 기준에선, 이번 일로 출혈이 적지 않았을 테니 얻는 건 없이 쏟아붓기만 했으니, 못마땅한 게 당연할지도.

…그렇다고 저들이 완벽하게 해를 입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어쨌든 후보에서 탈락한 건 아니니까.

그러나, 기대했던 정치적 영향력, 효과 등을 보기란 요원해졌다.
부군이 두셋이어도 문제가 심각할 판에 그 이상이니 오죽하겠나.



“이야기가 다르잖습니까?! 한 사람만을 뽑는다 하셨는데 이 어찌?!”



후보  하나는 여전히  결정이 납득인 안 가는 듯 대놓고 국왕을 노려보고 따져대고 있었는데….


“하면 자네는 돌아가면 되겠군.”
“…무슨?”
“감정적으로 어리광부리는 모자란 놈은 필요 없다. 막바지에 와서 이런 추한 꼴을 드러내다니. 실망감이 크구나.”
“큭!”


언제나 하하호호 웃는 옆집 할아버지와 같았던 분위기가, 단번에 돌변했다.
표정이며 태도엔 별다른 위화감이 없었지만, 눈빛과 몸가짐이 일변하자,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자 알현실 내부에 긴장감이 맴돌았는데, 마치 긴장 타야 될 시기라는 걸 재빨리 캐치라도 한 듯, 카일론 측 귀족, 권신, 궁정 신하들 모두가 허리를 바로 세우고 왕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는데, 이를 눈치챈 몇몇 부군 후보들도 자연스레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아 간신히 실책을 범하지 않은  보였다.


불만은, 최초에 따져댄 인간 외에도 있었던 모양이니.




“가고자 한다면 만류할 이유가 없지. 얼마든지 권한을 포기하도록 해라. 단 이번만 용인해주마. 다음은 없으니 신중히 택하도록.”

이쯤 되자 후보들 모두가 시선을 나누며 이 사태에 대한 당혹감을 교환해대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에드릭은 그저 시선을 45도 정도 낮춘 채, 카펫이 갈린 바닥 부근을 졸린 듯 바라보는 걸로 대강 상황을 모면했다.

‘눈에 띄지 말고 묻어가는 정도면….’




다행히 따져대는 녀석이 총대를 멘 상황이다 보니, 녀석 자체는 진퇴양난의 처지가 돼서 곤란해 보이는  싶었지만, 그게 알맞게 어그로를 끌어준 셈이라 에드릭에게 몰려드는 시선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개중에는 당황않고 차분한 태도를 고수하는 에드릭을 향해 의혹과 의구심을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에드릭도 미처 거기까진 짐작 못  채 상황을 관찰하며 이 다음, 뭔 사태가 벌어질지를 추측하는데 정신이 팔린 상황.

“질문은 설명이 끝난 뒤 딱 한 차례만 허하겠다.”



그리곤 분위기를 환기 시킨 철왕은 즉각 옆쪽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집사장이자 백작에 해당하는 신하가 목청을 가다듬곤 왕을 대신해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부군인 자는 궁정 신하이자 명예 백작 위의 직위를 얹어준다는 거며, 왕성 혹은 왕실 부지 내에 머물 땅과 공간을 허용함은 물론, 왕실 행사를 비롯해 중요 행사 시에 이에 참석 혹은 주관할 권리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는 건데, 이게 참 모호한 부분이다.

…진짜로 혜택이라 하기도 그런 문제고.


거기다 민감한 사항임에도 대놓고 왕녀와의 동침 문제를 언급했는데, 이에 대해선 왕녀 스스로가 선택한다는 식으로 결론이 나자, 일부 부군 후보들의 표정들이 아주 대놓고 썩어들어가기까지 했다.


선택지가 물론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부군 위를 포기하며 카일론에 남길 원하면 남작 위를 주며 영지를 할당한다는데,  부분에선 귀족들이 제법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뜩이나 이미  주인들이 정해져 그게 한참을 이어간 추세라, 자체적으로 영토 분쟁을 바탕으로 땅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판국에, 새로운 분쟁 거리가 굴러 들어오는 건 그들로서도 썩 달갑지만은 않을 터.

참고로 다 포기하고 그냥 카일론을 떠난다? 그럼 웃돈 얹어주는 정도가 고작이란다.

…이미 베풀 만큼 베풀었기에, 외인에게 더 이상의 사치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건지도?

당연 에드릭처럼 애초부터 기대한 거 없이, 되려 사업적 접근을 바탕으로 일을 꾸려왔다면 내심 아쉬울  크게 없을 터.

그러나 부군 후보들도 귀족들이 선을 잇는 거 이상으로, 자신 측 지지자며 편을 만들고자 이곳저곳에 뇌물을 뿌렸다 치면, 사실상 그냥 카일론을 뜨는  쪽박 차고 꺼지라는 의미이니, 쉽게 받아들일  없는 건수인 건 명확했다.


…이걸로 국왕은 잘난 권신, 봉신들과 엄한 생각 품은 부군 후보들을 동시에 물 먹였고, 되려 약소, 군소 귀족들에겐 피해며 여파가 닿지 않게 만든 셈.


여기서 마치 도박하듯  후보에게 이것저것 간이며 쓸개며 내준 녀석은, 투자처를 잘못 정해 떡락한 주식에 꼬라박은 개미처럼 망연자실하고 있을 테지만, 어쩌겠나. 본래 도박이며 투기라는  그런 건데.

어쨌든 집사장의 이런저런 설명이 끝난 직후, 국왕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대한 것과 다른  현실에. 허나 한편으론 자신이 될 거란 확신을 품는다 한들, 자신 또한 탈락하여 패배의 고배를 감당할 수 있다는  고려한다면, 이건 되려 기회일 터인데… 다들 자기 확신들이 대단들 하군. 하면 만약 한 사람을 뽑는다 쳤을 때, 과연 누가 뽑혔을까? 이걸 일러준다면, 조금은 위안이 되겠는가? 어떤가?”


 관심 없는뎁쇼.
에드릭은 속으로 그냥 얌전히 끝냅시다, 하고 염을 외듯 속삭였다.


하지만.


“전 들어보아야겠습니다!”
“그건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제가 마지막에 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들은 좋지 못하다.  사람 남는다 치면 결과야 뻔하지 않나?”
“후후후!”



에드릭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이 시국까지 와서 저리 당당하게, 내가 킹왕짱이다! 하고 선포한다고? 이것들은 간을 별주부전 토끼가 말한 것처럼 뭐 어디 깊숙한 곳에 묻어두기라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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