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16)화 (316/454)



〈 316화 〉91. ‘사기’라는 건 개나 소나 다 칠 수 있단 말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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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이 넓다 한들, 조용히 앉아 숨 돌리며 이야기를 나눌 곳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둘은 굳이 왕성 밖에 마련된 작은 호수를 낀 정원, 왕실 인사며 신하, 방문한 내외 귀족들을 비롯해 개방이 이루어진 공간에까지 걸음을 이어갔다.


정원이라 해도 부지가 꽤 넓다 보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엔 큰 부담은 없었다.
거기다 의도라도 한 듯 곳곳에 의자며 테이블 등이 자리하기까지 한 걸 보면 어느 정도 그러한 용도로 쓰도록 유도한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도 그 주변은 귀족이며 단순 왕실 고용인서부터 직원으로 부림 받는 이들도 거리낌 없이 주변의 경관을 즐기며 사적인 시간을 구가하고 있었는데, 공간을 누빔에 있어 별다른 계급 차별 등은 없어 보였다.


귀족 사회라고는 하나 카일론은 딱딱한 계급제로 무장한 몇몇 봉건 국가에 비해선 비교적 이런 관계는 시원스러운 편이었다.

눈을 마주친다던가, 예를 갖추지 않는 걸로 치도곤을 치고, 심하면 그 이상의 해를 입힌다던가.

물론 무례를 저지를 시, 갑의 입장에 놓인 자가 악의를 표출하는  굳이 계급제 사회가 아니어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 그 점은 개인들이 알아서 잘 처신해야 할 테지만….


“여쯤에 자리 잡으세.”

커다란 나무 아래, 의자고 뭐도 없었지만, 숲의 현자라는 양반이 손짓하자 지면에 갑작스레 나무의 뿌리며 줄기들이 솟아나더니 자그마한 간이 의자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에드릭은 사양 않고 그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의자도 없고, 나무도 무성해 시야가 트이지도 않은지라 경관으로선 그다지….


그러기에 인적이 드문 반면, 새소리가 더 힘차게 들리는 걸 보면… 이쪽이 훨씬 자연을 구가함에 있어 더욱 유용한 듯 느껴졌다.



“그래, 궁금한 게 있을 터인데… 먼저 말해보게나.”
“…폐하께서 숲의 현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라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그건 무슨 농담입니까?”
“흐음, 거기서부터인가.”



로브를 눌러  현자의 얼굴은 여전히  도리가 없었지만….



“일국의 왕이란 자가 위대한 존재로 여겨지는데 가장 필요한 재능, 재주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대답이 필요한 문제입니까?”
“그저 생각을 묻는 걸세.”
“하아….”



에드릭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위대한 존재, 그 전제며 목적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입장이며 방식, 아무튼 여러 가지로 달라지겠죠.”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취미가 있구먼.”
“명확하게, 명백하게 정의하기 위함입니다.”


전문가들이 귀찮아서 전문 용어를 쓰는  아니다.
그들 기준에선, 되려 그게 이야기를 단순화시키기 위해서 그런 거다.
그걸 이해 못 하는 쪽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거지.



“내가 먼저 말함세. 위대한 존재라는 건, 역사에 어찌 기록되느냐겠지. 기록과 실질적 성과.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성과를 내야 할 테고. 실패조차도 위대해질  있는 게 그런 이유 아니겠나?”
“…본론으로 돌아가시죠. 제가 물은 것에 대한 대답은 아닌 줄로 압니다만.”
“틀리지 않네. 연관이 있으니까.”


이 인간은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걸까.
에드릭은 나이 먹은 인간 특유의 오지랖인가, 단순히 말하길 좋아하는 TMI인가 싶어 조금 껄끄러워졌다.

뭐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 끄는 건 딱 질색이다.
어쨌든 그는 빨리빨리 민족 출신이기에, 당면한 문제가 있다면, 그걸 해결하는 쪽으로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했고.



“설명 부탁드립니다.”
“만약 왕이  자가, 스스로 위대한 존재가  수 없다는 확신을 얻었다 치면, 어쩔 텐가?”
“…….”



그거야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 아닐까 싶은데.
애초에 누구나 그걸 원하지만, 누구도 거기에 도달하지 못 하는 게, 되려 평범한 거잖아?

그러면 전제를 살짝 바꿔보자.
애초에 위대한 핏줄을 타고 태어났지만, 그럴 수 없다는 한계를 직면했고, 그걸 스스로 인지하고 이해했다 치면?


“방도를 찾거나 포기하거나, 뻔한 결말들이 있겠지요.”
“그래, 바로 그 시점에, 방도가 있다며 누군가가 제안을 해오는 걸세.”
“흐음….”
“그러나 그 제안이 몹시도 흉악하지만, 결과적으로 목적을 달성될 테고.”
“악마의 계약이라도 된답니까? 네가 원하는 걸 얻어주되, 네 모든  내놓아라, 아니면 네가 소중히 여기는 뭔가를 희생해라, 바쳐라 뭐 그런 거요?”
“비슷하다면 비슷하지.”

어쩐지 자조하는 듯한 음색이다.



“왕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실로 간단하네.”

이윽고 그가 로브를 걷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



거기엔, 풍채가 좋은 국왕이 빼빼 말랐으면, 고생이 심해 빠르게 노화됐으면 이랬을까 싶은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단순히 닮은 건가, 싶었지만 이건 그보다 더했다.

“…흐음.”


뭐하자는 거지?

“어떤 이유인지 짐작은 가는가?”
“왕 노릇 대신해주겠다,  그런 겁니까?”



잘난 놈이 잘난 놈답게?




“반은 맞췄군.”



노인은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불성실한 미소를 띄웠다.


“정확하게는 왕이 될 놈과, 될 수 없는 걸 분류하고, 선별했다고 보면 될걸세.”
“…그건 또 무슨 말도  되는 소리입니까?”
“나는 안 된다 생각했지.”

그는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되고 싶기도 했고. 그러나 그 시기,  당시엔 지금  자체로는 불가능하다 여겼네. 왜냐하면, 나는 유약하고, 우유부단했기 때문이지.”
“그거야 누구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고. 실패를 쌓아 가고, 고뇌하고 숙고해가며….



“그러나 나는 실패해선 아니 됐네. 무엇 하나도.”
“흐음….”
“그래서 이렇게 하기로 했네.”
“뭘 말입니까?”
“내 나약한 부분을 쳐내기로.”
“……?”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카일론의 왕은 강철과도 같아야 하네. 그러나 나는 유약하니, 쇠를 완성하듯 불순물들을 쳐내고, 빼내어 보다 강력한 강철을 만들고자 한다면, 나약한 면을 전부 빼내야 마땅하지.”
“…….”


그 나약함조차 결국 내 자신이다만.
 나약함을 부정하는 거야 인간으로서 흔한 경우지만, 그 나약함이 있기에 나란 인간의 성향, 성격, 개성 등이 구체화 되는 거 아닌가.
…대부분은 그게 역겹고, 짜증 날 테지만.

약해 빠진 자신이란 건, 떠올리고 마주할 때마다 혐오감과 구토감이 치솟는 일이다.
그걸 직면하고, 마주해 이겨내고 극복하면 강해지는 거고, 아님 무너지는 거고.
인생이란 게 그런  아니겠나.



“그러나 약한 면도 쓸모는 있지.”
“확실하게 말씀해주시죠. 그래서 본론이 뭡니까?”
“하, 이놈하고는! 눈치도 빠른 놈이 모르는 체하는 거더냐?”
“저 눈치 안 빠릅니다. 무작정 과대평가하지 말아 주셨으면 싶군요.”
“허, 고놈….”




현자는 어딘가 유쾌하면서도, 내심 괘씸한 놈을 접한  콧방귀를 껴댔다.



“그래, 속 시원하게 말해주마. 국왕과 나는 하나였는데, 어떤 놈이 사기를 쳐서 둘로 나뉘었고, 우리 둘은 그 뒤로 각자 역할에 맞게 서로를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지내오고 있지. 대충 이해가 되느냐?”
“…….”

무심코 에드릭은 주변을 살폈다.



“걱정 마라. 여기 아무도 접근 못 하게 단단히 둘러뒀으니까.”
“……허.”


뭔 개소리인가 싶었는데, 판타지니까 가능하다 치면… 이건 이것대로 어이가 없을지도?


“그게 뭐 왕실의 비전이라던가, 그쪽 핏줄의 고유 능력? 개성 뭐 그런 겁니까?”
“헛소리하기는. 인간이 제아무리 특이한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느냐? 과거에 마족이니 악마 취급받던 녀석 중에 그런 놈들이 있을지 모르나, 인간이 가당키는 하고?”
“결국… 그 제안이란 걸 해온 누군가의 능력, 아무튼 그런 거라 이겁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카일론 국왕과 현자님은 본래 하나였는데, 강인한 면… 왕에 어울리는 성품, 그릇, 개성, 성향을 지닌 이는 왕위를 차지했고, 그게 아닌 불순물이라 자처한 현자님 자신은, 지금 이곳에서 저와 마주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까?”
“그 반대라면?”
“반대?”
“왕 돼서 뭘  건데? 의미가 있나?”



의미?


“강인하다 생각하던 그 욕망이 떨어져 나가고서 느끼게 된 건데, 그러한 욕심과 집착으로 얼마나 쓸데없는 망상에 빠져 살았는지 이해가 되더군. 덕분에 녀석은 적극적으로 왕으로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행하고 있으니, 나로선 고마울 따름이지. 귀찮은  덜어줬으니까.”
“아니 그게 뭔….”
“자네 세계엔 위대한 왕의 운명과, 왕 아닌 진리를 쫓는 운명을 지닌 성인의 일화가 있더라 들었네. 자네는 혹시 알고 있는가?”
“…….”

현자의 말을 듣다 문득 떠오르는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야기였던가?

본디 전륜, 전차를 굴리는 전륜성왕의 업과, 반대로 법륜을 굴리는 부처의 업을 이어갈 거라는 뭐… 맞나 모르겠는데 그러한  개의 운명을 점지받았고, 그러기에 당시 석가모니의 부왕은 아들이 위대한 대왕이 되길 기대했기에 왕이 누릴 수 있는 온갖 것들, 권력의 성세, 천하 만물의 쾌락, 비할 수 없이 주어지는 영예 등을 솔선수범해서 교육하며 이를 일깨우게 하도록 노력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결국, 출가하여 전륜이 아닌 법륜을 택했으니, 부왕이 그 일로 어마어마하게 상심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내게 제안을 해왔던 자가 이를 빗대어 내게 이런저런 선택지를 안겨줬지. 자, 그래서 나는 무엇을 행했을까?”
“…….”
“국왕이 뒤늦게나마 내 뒤를 쫓으려 하는 이유도 그거지. 그냥 자기 자리에 만족이나 할 것이지, 귀찮게  이쪽 길로 눈독을 들이는지. 그놈의 강욕이 비록 내 것이긴 하나, 역시 극복하지 아니하고 분리한다는 건 이런 걸 테지.”
“…당신은 이미, 먼저 다른 세계의 지식들을 엿보고, 살피기 시작했군요?”
“엿보다 뿐인가? 직접 누려도 보고, 겪어도 봤지. 그리고 나는, 그러한 지식들을 녀석이 통치를 잘 할  있게끔 전달해줬고. 지혜와 더불어. 녀석은 이해가 안 갈 테지. 도대체 자신의 나약한 걸 덜어냈다고 생각했거늘,  나약함인 내가 자기보다  잘난 것처럼 느껴지는가. 그거야… 남에 밥그릇이  커 보이는  욕망의 특성이기도 하니, 내심 어쩔  없다 생각은 하네만….”
“밥그릇….”

비유가 아니라 그는 정말로 밥그릇이란 단어를 썼다.
그리고  단어가 유추하는 바는….

“자, 그러면 문제. 나는 왜 널 추천했고, 지금 왜 네 앞에서 이런 소리를 해대고 있을까?”
“그건…….”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뜬구름 잡는 소리를 떠나 이쯤 되면 이건… 선문답에 가까울지도?


“힌트를 주지. 자네가 이것저것  걸로 염려하는 이들이 늘었고, 예정과는 다른 사태가 유발됐다는 것? 본래라면 자네가 그 아이의 부군이 되어야 했고, 이건 어지간한 변수가 없는 한 그대로 이행되었어야 마땅했는데, 바뀌었군. 어떻게 바뀌었다 생각하는가?”
“그건….”

 탓은 아닐 텐데?
유력 후보였다는 자각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본래는 그걸 이용해 깽판 칠 생각도 충분히 고려 대상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건 다른 의미로 카일론에 대단한 민폐가 아니겠나.

얻고자 하는 걸 얻으려면 타인의 희생, 피해를 강요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곤 하나, 기왕 할 거면 조금… 완화 시키는 방향도 있지 않을까?


그러기에 패왕녀에게 이런저런 블러프, 허장성세를 보이며 딜을 넣었다.
그러나… 애초에 일처다부를 하고자 한 건 왕일 텐데?

애초에 패왕녀에게 그런 식으로 찔러봤을 때, 결국 그녀도 그런 식으로 답을 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에드릭은 철왕을, 국왕을 따로 만나지 않았으나, 만난 척해서 찔러봤었고, 어쨌든 막바지에 패왕녀는 그럴 거라 시인하지 않았던가?



“어느 부분에 착각이 가해졌는지, 내심 알겠더군.”
“…….”

착각?



“엿들은 것 같아 미안하게 됐지만, 자네가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에 비밀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여기게. 아무튼…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본래는 자네가 부군이 되었어야 했다니까? 그런데 그게 바뀌었군? 그걸 바꿀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거야 국왕 폐하하고…….”

……응?
아니, 설마….

“눈치챈 거 같군.”

히죽거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린 숲의 현자.


“그 결정이 바뀐 건, 바로 자네가  아이와 불청객 하나를 끼고 시시덕거린 뒤, 그 아이가 직접 왕을 찾아가 그 제안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바뀌게 된 거다.”
“예? 아니, 왜요? 그럴 이유가….”
“오, 이유가 없나? 정말로? 확신하나?”
“아니 그게….”

정말로 짐작이 안 가는데?
그보다 뭐야? 그러면  때문에 일처다부로 밀어붙였다고? 내 제안을 듣고? 메리트를 느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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