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19)화 (319/454)



〈 319화 〉92. 누가 이랬더라. 최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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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왕족에게 부인, 남편 등이 생긴다는 건 대단히  이벤트에 해당한다.


때때로 이걸 모태로 귀족들에게 축하 명목으로 성의를 보이라는 취지로 기부며 후원을 빙자한 모금 행사를 펼쳐 재정을 충당하는 예도 있을 정도로, 평민이 결혼할 때도 시끌벅적한 판에 귀족도 아닌 왕족이 결혼하는데 얌전히 넘어가는 것도 이상한 일.

제아무리 검소한 왕후장상이라 한들, 체면은 어쩔 도리가 없기에 어지간히 체면상의 하자가 있어 대놓고 혼인을 표방하지 못하는 게 아닌 한, 대체로 이러한 행사를 모두의 성원과 축복 아래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건, 부군이 여럿 생겨났다 해서 예외가 될 순 없는 법.
당연하지만 에드릭도 이후 행사가 어찌 진행되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숙지 ‘당해야’  했다.

솔직히 결혼식하면 떠오르는 건 번거롭고 귀찮은 것들뿐.
구태여 비싼 예식장 가서 사람들 불러 모아다가 난리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과거엔 이런  일종에 우리 잘 살고 있다, 잘 좀 봐달라, 그 외에도 양측 부모님 체면에 기왕 하는 거 화려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로 어쩌고 저쩌고….

이건 에드릭이 원래 세계에서 그런 쪽하고 인연이 거의 없었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에드릭 자신은 도저히 이런 걸로 시끌벅적하게 남들에게 우리 행복할게요! 하고 난리치는 게, 영 못마땅하긴 했다.

‘속이 좁은 건가 싶으면 그건 아니다만.’



그냥 귀찮을 따름.
뭐 이런 식으로 공식 행사를 거쳐 쉽사리 관계가 파탄날 여지를 박음질한다는 명목이라면야, 이해는 되지만 그건 또 아니니….


이혼율이 미쳐 날뛰는 시국을 가장 냉엄한 시선으로 지켜보며 다음 타자 대기조로 머무는 세대가 바로 에드릭의 세대가 아니었던가.


비록 에드릭의 부모님은 세간에 드물 정도로 잘들 살아가고는 계시지만, 원래 세계의 에드릭, 안태민의 친구 가운데 이혼한 가정과 이혼 직전인데 자식들 보고 사실상 반 별거 느낌으로 각방을 쓰는 부모님을 둔 녀석까지.


…얼마 없는 친구놈들 가운데서도 벌써 이 지경이며 그 친구놈들 대부분이 결혼에 대단히 회의적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에드릭도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눈에 불을 켜고 여자 뒤꽁무니를 쫓지도 않았었고.
성욕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 시기엔 그랬다.


여자에 미쳐 날뛰는 놈들은 말 그대로 거시기에 뇌를 파먹힌 것 마냥 여자를 쫓기 바빴는데, 예전엔 대체  저러나 싶다가도, 결국 그런 놈이 여자친구를 사귈 확률이 높고, 결혼에도 골인하는 걸 보면….

‘뿌린 대로 거두리?’




아니, 뭔가 다른데….

애초에 안태민으로서의 자신은, 냉정히 따지면 본사 입사 전까지는 매력 포인트라고는 거의 없는, 자신감도 결여된 흔한 취준쟁 지망하다 시들어가는 부류에 해당했기에, 포텐셜을 기대하기란 더욱 요원할 따름.

그 유명한 맥도날드를 대형 프렌차이즈로 탈바꿈시켜 퍼뜨린 이가 그걸 시작한 나이가 52세에 당뇨에다 건강 상태도 대단히 안 좋았다고는 하나, 그는 영업으로 대단히 잘 나가는 인물이었던 걸 생각하면, 에드릭… 아니, 안태민은 말 그대로 돈도 못 벌고 경력조차 없이 무작정 나이만 먹어가고 있던 셈.

실리콘밸리의 괴물들과 비교하는  더더욱 언어도단일 테니 생각을 포기하는 편이 깔끔하리라 본다만.


그러기에 한편으론, 거창하게 결혼식을 행하는 것에 거부감까진 아니어도 번거로우며 귀찮다 느끼는 이유는, 평소 습성도 있겠지만… 잘 나가고 있다는 걸 과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여건과, 과시하고 나대는 것을 악덕으로 취급하는 자신의 음습한 신념이 더해진 결과가 아닐까 하고, 에드릭은 냉정히 왜 이딴 걸 귀찮고 짜증 내 하는가를, 나름 객관적으로 추론해보고 있었다.

“하아….”



거기다 다른 부군 녀석들하고 도매 급으로 딸려와 관계자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옷을 맞추기 위해 치수를 재고 스타일을 설명받는다던가, 뭘 주의하고 어떻고 등을 숙지하는 건  두 시간 가지곤 택도 없었다.


남아 있는 녀석들 가운데 자진해서 남았다 치더라도, 그걸 진심으로 희망하던 녀석은 거의 없다시피 한 터라, 다들 표정들이  좋지 못했기에 분위기는 더욱 꿀꿀  수밖에.

또한 부군 후보들 가운데 단연 왕따가 있다면 그건 에드릭 본인.
자처한 거긴 해도, 레오란이 사라지니 확실히 말을 거는 이조차 없게 됐다.



‘그게 더 좋긴 한데.’



인간 심리상 기이한 건, 내가 그걸 의도했더라도 어지간히 자기 주관이 확고하지 않은 한, 무리들이 자신을 씹어대거나  좋은 시선으로 흘깃하고, 눈치를 주면 괜스레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어릴 적엔 표독스럽고, 어울리지 못하기에 억지로 고독을 자처하며 자기방어에 힘쓴다지만, 속으로는 울먹이며 나도 놀아줘! 하는 게 일반적인 건, 성숙지 못한 터라 어쩔 도리가 없을지도.


어차피 기대하고 갈구해도 기대치를 얻어내지 못하는 걸 알기에, 더욱 움츠릴 수밖에 없는 불우한 운명이란.


그러나 나이를 먹어서도 이러면 대체로 진상이라거나, 이쯤 되면 원래 저런 녀석, 저런 성격이다… 라는 식으로 해석해주면 차라리 고마울 지경.


여기에 더러운 협잡이 가해지면, 4가지가 없다던가, 버르장머리가 없다던가… 조차도 차라리 양반.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괴상한 시나리오를 짜와서 음모의 숨결을 불어넣는다던가, 자기들끼리 교우며 유대를 다지고자 작심하고 씹어댈 거리를 찾아 기분 좋게 안주 씹듯 씹어댄다던가.

…생각해보니 단순히 방구석 히키가 되고 팠는데, 쓸데없는 놈들하고 엮일  생각하니 벌써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초전에 잘해야지.’

처음에 길을 잘못 들이면, 잘못 들면 두고두고 얕보이고 씹힐 테니 별수 없지만, 낌새만 주어지면 일벌백계(一罰百戒)하듯  잡고 한 놈 조져야지, 별수 없겠다 싶었다.

아무튼 시달리고 시달린 끝에 빠져나와 새로 배정된 왕성 내에 자리한 객실에 머무르자니, 뭔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 떨떠름해졌다.


거기다 늘 오면 반겨주듯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던 루넨브리스의 출입이 전격 금지된 터라, 결국 루넨브리스는 흑성 기사단원의 열혈한 성원과 함께 그들 사이에서 구르며 그들과의 친분을 다지고 있었다.


크게 기대를 안 했지만, 루넨브리스는 인간 형체일 때의 전투력도 상당해서 어지간한 단원 하나 하고 막상막하로 티격태격할 정도는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무기가 없는 상태로 그랬는데, 병장기를 순차적으로 다루다 보니 실력이 급증했단다.


…호위라 생각하면 이건 이것대로 대단하겠구나 싶지만 무도 대회에서조차 우승한 에드릭에게 정면으로 싸움을 걸어올 정도로 정신머리 없는 녀석은 없을 터.

그러면 결국 주의해야할 건 권력자들의 영원한 동반자라 불리우는 죽음, 그걸 은밀히 가져다 주는 암살자 놈들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원래 암살이란 건 쉽게 할 수 없는 법이다.

일반적인 판타지에서 암살이 엄청 흔하게 언급되곤 하는데 대부분 내부 동조자 없이 암살하라 하면, 어지간히 안전불감증이 극에 이른 머저리가 아닌 한, 그걸 성공한다는 건 거의 얻어걸리는 정도밖에 안 되는 확률인데… 생각해보니 그런 예가 현실에도 없는 건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사라예보 암살 사건의 경우, 불운과 우연이 마구 겹친 예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선 암살 주도한 것들은 20대 극단주의, 민족주의적 노답들이 대강 꾸린 머저리들.

당연하지만 황태자 부부를 포함한 경호 일행은 당시에도 철저히 방비했음은 당연지사.


그런데 시작부터 꼬이는 게, 사건 당일 사라예보 시청 방문이 예정된 황태자 일행, 향하던 중 폭탄 테러 발생으로 수행원들이 해를 입는다.


황태자 내외는 무사했고, 테러범도 바로 잡힘으로써 나머지 암살자들은 암살을 포기하고 후퇴.

시청 방문이 끝난 직후, 황태자가 다친 수행원들 병문안을 가야겠다 주장하며 군 주둔지로 가지 않고 병원으로 향함.

그리고 병원까지 향하는데 샛길로 가기로 한 걸 운전 기사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이 문제가 트러블이 돼서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후진했는데, 바로 이 시점에 차가 멈추어 선다.

그리고 암살이 실패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자주 가던 카페로 향하던  이걸 불운하게도 목격.

다시 암살 시도를 범한 프린치프가 황태자의 차를 보고 총격을 가했는데, 황태자 내외가 목과 머리에 총을 맞아, 방탄복을 걸쳤음에도 이게 아무런 효용을 발휘 않고 얼마 안 가 숨을 거두게 된다.


…이런 걸 보면 죽을 놈은 뭔 짓을 해도 죽는 건지도.


아무튼 그런 식으로 며칠을 보낸 에드릭은 기어코 왕녀는 못 보더라도, 국왕과의 접견은 그럭저럭 허락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사실상 이번 만남이 꽤 중요하겠지.’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왕에게서 들어둘 것들이  많았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현실로 복귀해 이것저것 뒤죽박죽이었을 상황이 본사가 선수를 쳐버려 단번에 상황이 뒤집힌 터라, 에드릭은 차후 단계를 위한 대책 마련에 머리가 쉴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지닌 바 정보가 미흡해 이걸 메꾸고자 개인적으로는 부지런히 짱돌을 굴리고는 있었지만….

“안으로 드시지요.”


국왕의 집무실, 그곳 입구 문 앞에 자리한 기사들 둘이 에드릭과 그의 수행원을 발견하곤 절도 있게 예를 갖추곤, 노크와 함께 말로 에드릭이 당도했음을 알리곤, 허락하는 음성이 들려오자 차분히 문을 열어줬다.



“왔는가?”



집무실이라곤 해도 사실상 병상에 누워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 철왕인 만큼, 내부는 생각보다 단출했다.


애초에 집무실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 왕이다.
맡은 것들도 많고 담당하며 직접 손보고 명이며 지령을 내리는 입장이다 보니, 헤아릴  많은 만큼 한 곳에 너무 틀어박히지 않는 습성이라 했던가?

아무튼 거긴 반쯤 누울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일전에 방문했던 곳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는 집무실 공간이었다.


요일 별로 살피는 분야가 다르다 보니 이런 식으로 효율을 위해, 집중을 위해  처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게 효율적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일처리야 뭐… 개인 성향과 방식이 있으니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겠지.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무탈은 무슨. 얼굴  지 얼마나 됐다고.”

콧방귀를 뀌며 손사래 치는 철왕.
어쨌든 이 인간도, 본성을 드러내면 대단히 심플해 지는 구석이 있었다.
허례허식을 혐오하다시피 하는 면도 그렇고.



“같잖은 소리는 됐고. 바로 본론부터 넘어가지. 네가 해야  말과, 짐이 해야  말, 그것들에만 집중하자고.”




…귀경, 경이라 하더니 갑자기 부르는 명칭이 달라졌다.

음, 이건 왕가에 편입이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왕족의 혈통이란 걸 인지하고, 공식적으로도 그렇게 됐기에 이리 부르는 건지… 에드릭은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눈치를 살피느라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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