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24)화 (324/454)



〈 324화 〉94. 급전개도 이런 급전개가 있을까.(2)

“그건 제가 결정할 사항은 아닌 줄로 압니다.”

일전에도 밝혔지만 사태가 이렇게 됐다 해서 입장이 달라질 순 없는 거지.
선택권은 에드릭 자신이 아닌, 언제나 왕녀 전하에게 있음이오.


“…그 전이나 이때나 태도는 변함이 없구나.”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그녀가 방을 나서기까지….



“흐음….”

에드릭은, 혹여 자신이 실수한 건 아닐까 싶어 다시금 고뇌에 잠겼다.

“아, 그리고.”



드물게 스스로 문을 다시금 연 패왕녀가 얼굴만 슬쩍 들이밀며 소식  가지를 덧붙였다.

…문과 침대 사이 거리가 꽤 됐기에 절로 귀를 기울인 에드릭.



“깨어났으니 특별히 개인 호위 인원은 필요 없겠지?”
“…예. 아무래도.”

어지간히 대단한 암살자여도 에드릭의 이목, 감각을 속이고 접근하기란 요원할 따름.



“하면 즐거운 시간 보내도록.”




예?  즐거운 시간요?


에드릭이 의아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문이 닫히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 더 누울까 싶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길 얼마나 흘렀을까.
허공에서 번쩍하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덜컥하고 문이 열린 것도 덤.



“…….”



별다른 동요 없이 에드릭이 누운 침대로까지 걸어온 누군가를 때마침 상체를 일으켜 맞이한 그였다.

“누님 안 떠나셨나요?”
“…응.”


그보다 왕성, 왕궁 내에서 순간이동이라니….
동시에 새하얀 머리칼을 흔들거리며, 이전보다 훨씬 머리카락 길이며 머리숱이 늘어나 풍성하게 변한 루넨브리스 또한 적절하게 에드릭이 자리한 방안으로 합류했다.

“무사했구나 뭉멍?”
“…….”




은근슬쩍 에우리에 쪽으로 시선을 준 에드릭.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처자…까진 아니더라도 소녀가 뭉멍 거리고 있으면 분위기가 묘해질 법도 했지만, 에우리에는 별다른 내색을 않고 있었다.


“알리샤가 걱정했어.”
“크흠! 어떻게 알고 걱정을….”
“소식은 내가 전해주고 있었으니까.”


무심한 듯 보여도 감정 표현이 서툴다 뿐, 에우리에는 걱정했다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풍기며 어느덧 침대에 누운 에드릭에게 다가와 몸을 기대올 정도였다.

…사실상 기댄다기보단 불안해서 붙드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반면….

“……?”


루넨브리스는 별다른 걱정은 안 들었는지, 침대 인근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정말 개처럼 앉아 있네.



“루넨이 몸에는 문제가 없다 알려줬다.”
“그래요?”
“…실제로도 그러했고.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원인은 불명. 그러기에 특수한 정신 공격 내지 중독 증세, 신변 이상 등이 언급됐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아하….”
“그래서 의심 정황이 있는 용의자 대부분이 이 문제로 붙들렸다.”
“그건 아까 전 왕녀 전하께 들었습니다.”

패왕녀가 굳이 이제 몸  나았으니 오해도 풀렸겠다 나가서 으쌰으쌰 하자! 하며 적극적으로 외부 활동, 상황 공개를 추구하는 듯한 태도며 의견을 내비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겠지.


아마 에드릭이 싸돌아다니거나 나돌아다닐 태도를 내비쳤다면, 대충 말로 안에 처박혀 있으라 말하지 않았을까?



“정말로 괜찮은 거?”
“예, 멀쩡해요.”
“…….”



 멀쩡해도 멀쩡한 척하리라 생각한 건가.
…그런 과도한 관심은 다른 의미로 땡큐다만.



“그건 그렇고 왕성에 용케 들어오셨네요.”



무단 침입은 아닐 거다.
…정황 자체가 그러하니.



“안 되나?”
“아뇨, 허락만 받으셨다면야 얼마든지. 제가 집 주인이라면 상관은 없는데… 알다시피 여긴 저희 집이 아니잖습니까.”
“이상한  따지는구나.”




아니, 이상한 게 아닌데요?




“알겠으니 움직이자.”
“움직이자고요?”

어딜?
말없이 손을 건네는 에우리에를 보며, 에드릭은 대강 상황을 파악했다.


‘방에 처박혀 있는 것도 좋지만….’



기왕 깼으니 엄한 곳에 가서 시간 떼우고 오라, 그 이야기인가.
아니, 어쩌면 에우리에 누님이 자체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려 드는 건지도.
물으면 간단 해결되겟지만, 에드릭은 잠시 고민하다 별수 없이 손을 뻗었다.


털썩!


“…….”

루넨브리스가 풀썩 뛰어올라 에드릭의 다리 위에 올라탄 건 덤.
그리고 실제로 눈  번 깜빡거릴 시간에, 주변 환경이 단숨에 일변했다.



“여기는….”
“조용하게 머물기 좋은 곳이다.”




조용하게?
대충 몸을 일으켜 창문을 통해 외부로 시선을 두자, 보이는 거라곤 녹음이 무성한 나무들이 저물어가는 노을에 점차 색이 옅어져 가는 풍경들이 전부.


땅거미가 지는 지평선 따위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 흔적, 정황 파악엔 그다지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예컨대 높이가 조금 된다.

내부는 나무로 이루어진 듯한 재질들이 한창인데 방안은 평면이라기보단 구석이 굴곡지고 구부러진 것들 투성이라 자연스러운 틀 안에 인위적인 공간을 형성해둔 듯한 정경이다.


그러니까….

창문을 열어 고개를 훌쩍 빼서 건물이 어떤지 살피자, 마치 커다란 나무 안에 자리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그게 맞겠지.

“그래서, 당분간 여기서 머물라 이거죠?”
“…….”

에우리에가 느릿느릿 고개를 주억거렸다.



“왕녀 전하께서 그러시랍니까?”
“응.”
“이유는 물어보셨나요?”
“네가 알려준다고 들었다.”
“…….”

이런 걸 떠넘기시는 겁니까? 하이고야….

정치적 문제, 모략이며 음모에 가까운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에드릭은 순간 고민에 빠져 들었다.

“그래도 그건 나중에 들어도 좋으니 우선은 쉬어라.”
“…….”



멀쩡하다 말했지만 역시나 숨기거나 걱정  끼치고자 감추는 걸로 여기나 보다.
그 세세하다면 세세하고, 입장을 헤아려주는 배려심에 내심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건, 어느 의미로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고민이라던가 눈치  필요 없이 헌신과 사랑, 관심과 배려를 베풀어주는 관계란… 너무 좋지 않나 모르겠다.

그리고 이걸 이어가기 위해선, 더더욱 본사에게 무턱대고 거슬러선  될 테고.
본사 쪽 인사들이 구태여 퍼포먼스하듯 자신을 불러다가 과장이란 감투까지 씌워준 이유.

흔히 이런 착각을 할 수도 있을 거다.
내가 중요한 입장, 대단해졌기에 눈치 보며 대우를 해주려는 거다. 그러니 그쪽 눈치 덜 살피고 이제 하고 싶은  싹 다 해보자!


…라는 게 바로 호의가 지속 되면 권리인 줄 착각하는 부류인데, 토사구팽의 대명사인 한신의 경우도 당대로 따지면 죽으려고 발악한 예라 여기는 것도 그런 맥락.


나라며 진형이 휘청거리는 판에 대뜸 ‘왕 되게 해주소!’ 하고 협박에 가까운 강짜를 부린 시점에 유방이 빡친  그렇다 쳐도, 그조차도 결국 유방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인내하곤 차후 항우를 날려버린 이후에 신하들이 저거 족쳐야 한다고 이를 갈아댈 때도 유방은 나름 한신을 비호해 목숨만은 부지시켜주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난 돌은 정 맞는데, 마치 때려달라는  온갖 어그로를 마구 끌어댔는데 하필 능력도 출중했겠다 싶어 결국 유방의 부인 되는 여후가 손수 나서서 족치게 만들기도 했었고.

이러한 예시를 교훈으로 삼고자 했을 때, 에드릭 자신은 한신 같은 국사무쌍  괴수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본사 기준에서 과연 그 정도로 메리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신의 존재감이며 여파가 대단하리라 결코 착각하지 않았다.


과욕은 만용을 불러오며, 그런 하찮은 욕망에 취해 뻘짓 저지른 놈치고 제대로 일이 풀린 예가 없지.


…따지고 보면 이번 사태는 현실이든 이쪽 세계로든 간에 에드릭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예로 해석도 가능했다.




“…….”



그리고 거기에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면 좋을지를 택하는 것도, 에드릭의 몫일 테고.


또한 본사는 그만큼 선을 어느 정도 넘더라도, 널 버리거나 책하여 네가 손에 넣은 것들을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을 테니, 알아서 선을 지켜라, 라고 당근과 덜 아픈 채찍을 휘두른 격.


…말이  통하면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있지만, 말귀를 알아먹으면 문화 시민답게 대화로 해결해야지.


말인즉, 에드릭은 아직 말이 통하는 부류라 판단했단 이야기다.

동시에 이런 문제로 악심을 품거나 적대감을 불사르며 괜한 불안 요소를 야기하지 않을 거란 계산이 섰을지도.




“…….”



전부 다 과민 반응 못지않게 이것저것 고려하고야 마는 에드릭 자신의 생각이지만, 아마 틀리진 않을 거다.

그러나 철왕, 카일론 측은 또 이야기가 틀리겠지만… 이건 아마 에드릭과 카일론 쪽에 동시에 이런저런 제안이 갔고, 철왕 혹은 패왕녀가 이를 기반으로 선택을 강요받든 제안 받았든 해서… 선택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이러면 숲의 현자가 일전에 말한 숙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상황이 갑자기 개편됐는데, 그 문제가 아직도 유효할까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상 한곳에 당분간 틀어박히게 되다 보니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무척이나 한정적으로 돌변했다.


이 상황에서 괜스레 모습을 드러내서 사실 여부를 따지거나 화제로 만들면 그건 그것대로 카일론 측에 반기를 드는 격이 돼버렸는데, 에드릭 자신이 정의의 수호자며 화신 같은 존재도 아닌 만큼, 그래야할 이유가 또 없기도 했으나….


‘밀어붙인 사업들이 좀 걱정이네.’

벌려둔  꽤 많은데 에드릭에게 문제가 터진  이를 수습할 인력이 얼마 없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


담당자들이 다 있다곤 하나 에드릭이란 후광이 사라진 시점에도 제 역할을 톡톡히 이어갈지도 살짝 걱정이 들었다.

‘흐음… 이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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