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화 〉97. 할 수 있는 게 돈 지X 뿐이라면….(3)
역시 본사가 이런 의미에서 적절한 채찍으로 물러 터질 여지를 쳐 내주니, 이걸 감사해야 할지, 원망해야 할지….
“보드 게임이나 만들까.”
아니지, 마작을 재현해볼까?
카드 게임은 입문이 쉬운 반면 깊이가 조금 아쉽고, 바둑은 배우는 게 너무 골치 아프다.
딱 좋은 게 체스며 장기 부류인데, 이건 운빨 요소가 적다 보니 결국 상대적 두뇌 싸움으로 전락하니 두뇌 싸움을 즐기는 부류가 아니라면 재미가 영….
그렇다고 복잡한 장기, 예를 들어 일본식 장기를 가져와서 인간들 피를 말리게 하는 건?
게임이란 게 적당히 복잡하고 배우기 어려워야 깊이가 있다 어쩐다 하지만… 글쎄올시다.
그런 의미에서 마작은 참 좋다.
더럽게 복잡한 듯 보이고, 막상 배우기까진 시간도 꽤 걸리지만 빠지면 어지간한 게임은 눈에 차질 않게 된다.
심지어 pc, 콘솔, 모바일 게임조차도 이 마작의 아성을 넘지 못할 정도인데, 제대로 빠지면 진짜 답이 없긴 하다.
‘여럿이 즐기기도 좋고.’
이게 단점 아닌 단점이지만.
1:1, 즉 2명이서 하면 의외로 재미가 떨어진달까.
‘흐음….’
단점은 패를 만드는 건데.
“…이건 뭐 보면서 만들면 된다 치고.”
일단 손맛이 좋게 하려면, 단순 나무를 깎아 만드는 건 사양해둬야 할지도.
“생각 난 김에 만들어 봐?”
손재주가 부족하긴 해도, 시간 보내기엔 아주 제격일 거 같았다.
그리고 하나 견본을 만들어 두면, 나머진 양산하면 그만이고.
퍼트리는 것도 결코 어려운 게 아니었다.
에드릭이 작정하고 유행시키고자 하면, 못할 게 또 뭔가.
아르세이유든, 카일론 내에서든, 귀족들 사이에서 즐기게 하는 걸로 시작해 유행을 만들고, 일반인들도 즐기게끔 보급해서 정착시킨 뒤, 사행성 소재로 활용할 수 있게 도박판에 이를 쭉 뿌리면?
애초에 이건 그냥하는 소리가 아니라 꽤 재미난 녀석이다.
고스톱, 화투 같은 것도 유희거리가 없는 이쪽 세계에선 꽤 잘 나가지 않던가.
아르세이유에서 보드 게임을 몇 차례 유행시켜 애어른, 남녀노소 구분않고 즐기게 만든 전적이 있기에 방식 자체는 어려울 게 없다 판단한 에드릭이었다.
…입문이 기존 것들보다 어렵다지만, 하게 만들 이유를 만들어주면 되지.
‘이것도 마찬가지로 대회 열면 되고.’
보드 게임 동기부여도 그런 흐름이었으니까.
생각이 난 김에 곧장 진행해보고자 했다.
그러기에 알리샤와 에우리에에게 오는 와중에 몇 가지 재료, 소재 등을 부탁했다.
이곳 숲에서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듯하니 어쩌겠나.
그리하여.
“코끼리 상아는 어디에 쓰려고?”
“뭐 좀 만들어 볼까 해서요.”
플라스틱이나 아크릴수지, 에보나이트라던가, 이런 거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지.
일단 비싼 건 이걸로 하고, 싸구려로 보급하고자 하는 건 대나무로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지?
고급스러워야 귀족을 비롯해 여타 녀석들에게 먹혀들겠지.
그리고 본디 게임이란, 상대를 유희에 빠뜨려 경쟁력을 낮추고, 경쟁 선상에서 제외 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주색잡기가 사람 망치는 지름길이란 소리가 괜한 게 아닌 것처럼.
그래도 대만에서 100세 이상 살아간 최장수 노인분들이 마작을 즐겨 두뇌가 퇴화되지 않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일화 자체만 봐도, 이게 상당히 머리를 굴리는데 유용하다는 점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거다.
‘화투는 질려. 포커며 카드 게임들도. 여타 보드 게임들도….’
그러나 실력과 운빨, 심리전을 포함해 온갖 것들이 적용되는 이건 여러 가지 의미로… 종합 선물 세트인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바둑은 너무 어려워서 솔직히 지금 와서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현대에서도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던가. 하는 사람들 기준에선 이 깊이만 한 게 없다지만….
‘갈수록 수는 줄어드는 추세고.’
역사와 전통 어쩌고도 좋지만, 결국 상업성, 대중성, 유희성을 잃으면 시장에서 사장되기 마련.
알리샤가 특수한 가방에 보관해둔 상아를 방구석에 쏟아냈다.
그 외에도 조각용 칼이나 물감, 그리고 여타 연마재까지.
…능력으로 전부 다 처리할 순 없기에, 결국 인간의 최대 장점이자 혜택인 도구 사용에 의의를 둬야지 별수 있겠나.
“음, 작업은 밖에서….”
안에서 깎고 갈고 어쩌고 하면 내부 개판되는 건 일도 아닐 테니.
그리하여 다른 이들이 에드릭이 사전에 일러준 계획에 따라 이곳저곳을 오가는 사이.
에드릭은 상아를 깎아 우선 직육면체에다 일정 크기로 이를 깎아내고 만들기 시작했다.
수압 절단기 느낌으로 상아를 절단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기에, 후다닥 만들 수 있었지만….
“흠.”
그림을 새기는 쪽에서 난관을 맞이했다.
‘손재주가 메롱인데.’
조각칼로 대충 간을 보려다 포기.
결국 능력으로 어찌 해보려 했지만 역시 이쪽도 난관이 지속됐다.
…그러기에 아예 그리기 쉬운 느낌으로 새로이 문양을 짜내고자 우선 바닥에다 스케치 삼아 이것저것 무늬를 그려보다가… 아예 허공에다 물로 이것저것 무늬를 그려 넣고… 그걸 그대로 패에다 댄 상태로 깎아대면 어떨까 하는 쪽으로 잔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역시 뭔가를 시도하면 방법이 튀어나오기 마련이지.”
어쨌든.
“그보다 중국식이냐 일본식이냐 하는 건데.”
에드릭은 일본식으로 입문해 중국식도 겸사겸사 배우게 된 케이스였다.
엄청 깊게 한 건 아니고, 어찌어찌 인터넷 게임으로 접하다가 한창 빠져든 케이스였는데, 읽던 소설에서 마작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접했다가 빠져든 부류였다.
…근데 당장 취업에 매달려도 모자란 판에 그런 거에 빠지면 대체 부모님께 무슨 면목인가 싶어서 결국 포기했었지만.
의외로 접은 뒤엔 그다지 생각나지도 않았고.
그런 면에서 보면 에드릭은 비교적 중독적인 무언가에 덤덤한 자신의 성향이 새삼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것도 유전이라면 유전인데.’
부모님 두 분 모두가 중독 같은 거하고는 거리가 먼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계셨으니깐.
그렇다고 뭘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대부분 잠깐 하다 말았다고 하셨으니까.
심지어 아버지는 무려 마카오며 라스베이거스에서 카지노를 맴돌면서 여행 경비를 버셨다고까지 했는데, 이건 아직도 미스터리다. 어떻게 안 털리시고 되려 경비를 마련하셨을까?
어머니는 한창 일본 여행 당시 사고 싶은 걸 못 사서, 파칭코를 해서 역으로 사고픈 걸 사면서 여행 경비 등을 충당했다는 소리를 듣곤 도저히 뭐랄까, 이해가 안 가는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오죽하겠나.
‘오히려 딱 벌고 손절한 부분에 존경해야 할지도.’
그 정도로 벌었다면, 분명 수십 단위가 아니라 백 단위는 넘을 텐데, 잘도 따고 그대로 빠지셨구나 싶었다.
…없는 돈 부풀려 딴 거 자체도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그래도 이건 못 참지.’
마작의 중독성에 대해선 무수히 많은 사료에서도 입을 모아 그 강력함을 피력해대고 있으며, 그 강력함은 가히 마약의 그것과 쌍벽을 이룬다 할 정도.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라 해서, 사소한 것들에 벌금이며 강력한 법을 통해 규제를 때렸던 그조차도 마작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포기 선언을 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일단 아는 게 익숙한 게 일본식 리치 마작이라… 중국식으로 하면 룰 설명해줄 내가 미흡하니, 역시 당장은 이쪽인가.”
룰은 그쪽을 채택한다 쳐도 어차피 마작패에 새기는 무늬며 문양 등은 이곳 세계에 어울리는 요소로 죄다 손 보는 편이 좋을지도.
용어 등도 그렇다 치고… 흐음….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면 누군가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보통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누군가가 이미 하기 나름인데….
‘내가 모르는 곳에선 이미 있다던가?’
뭐 그러면 또 어떠랴.
에드릭은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직원 관련 모임 등을 찾아봤고, 실제로 모임이 있기까지 했었다.
‘근데 왜 안 만들었지? 퍼트리지도 않고?’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판타지 세계에 너무 몰입해서 이쪽 삶에 물든 건지도.
…사실 탐험하랴, 싸우랴, 정치질하랴, 뭐랴 하면 뭔가를 발명하는 쪽엔 머리가 굳는 게 그렇게 드문 경우는 아니다.
그렇다고 세계를 변혁, 혁신을 이룩하는 개발품, 발명은 또 안 되니 더더욱 사고가 축소될 테고.
“…또 괜한 생각.”
기왕 만들기로 한 거, 머리 비우고 팍팍 만들어 보자.
만들기로 작정하니 며칠도 안 돼서 상아로 만든 마작 패 초기 본이 완성.
이 다음엔 대나무를 바탕으로도 만들어 보고, 심지어 돌로도 만들어봤다.
그렇게 대략 열흘 가량을 마작 패 완성 및 룰과 용어 확립에 투자한 에드릭.
그리고 이걸 해본 알리샤 에우리에, 루넨브리스까지 추가해 4인이 완성되니, 아주 살판 게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룰 설명 등 대략 10판 정도까지는 고만고만했는데, 그 이상 해보며 대충 상황을 파악한 여럿은, 처음부터 두뇌 회전이 빨리 돌아가는 인재들임을 증명하듯, 곧장 용어며 룰을 숙지해 말 그대로 게임을 즐기듯 아주 신명나게 이를 즐기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됐다.
덕분에 그로부터 3, 4일은 정말 먹고 자고 숨 돌리는 시간 외엔… 심지어 떡 치는 것조차 잊은 채 게임 삼매경에 빠질 정도였다.
…어쩌면 난 엄청난 녀석을 지옥 저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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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샤가 에드릭에게서 받은 상아로 된 마작 패를 들고 아르세이유로 돌아갔으며, 에우리에도 상아로 된 마작 패를 들고 마법사들에게 이를 전파하고자 자리를 비운 지 대략 3일째.
“한 번 만드니 크게 어려운 건 아니네.”
남은 상아로 이번엔 조금 크기를 줄여 모자란 재료에 걸맞은 마작 패를 만들어낸 에드릭.
그래도 그럭저럭 크기며 무게가 맞아야 집고 떨구고 굴리는 맛이 나는 거긴 하다만….
“덕분에 시간을 잘 보냈는데….”
이 와중에 카일론은 속전속결로 상황을 종식 시켜버린 터라, 슬슬 복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잘 지내나 보군.”
그렇다고 공사다망한 왕녀 전하께옵서 친히 방문하리라고는 예측 못 했는데….
“그보다 그것들은 무엇이더냐?”
“아, 이거 말입니까?”
마작을 알려줘 왕녀전하를 타락 시켜보고픈 심정이 불쑥 치민 에드릭은, 잽싸게 루넨브리스를 불러와 앉히고, 왕녀 전하를 보필 및 호위 목적으로 딸려온 흑성 기사단원 한 사람과 그녀를 앉히고, 이 게임의 방식과 룰, 목표 등에 대해 검증된 간략 설명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게임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