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화 〉98.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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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주의라 해도 중앙 집권 체계가 정착된 카일론의 경우는, 중앙군의 규모가 카일론의 봉신들 반절을 합친 수보다 많으며, 훨씬 정예화된 흐름이었다.
거기다 백성들 가운데 1할, 10%가 전직 용병, 군인, 사냥꾼을 위시한 전투직 참여가 가능한 이들로, 흔히 중세 때 둔전병이라 해서 평시엔 농사짓다 전시에 동원되는 여타 병사들에 비하면 전투의 질이 훨씬 탁월했다.
무엇보다 용병들 고용 비중이 높은 여타 국가 가운데 카일론과 국경을 맞대지 않은 이들도, 용병들이 카일론으로 복귀해 경제 및 치안 문제가 불거질 정도였으니 그 비중은 무시할 수준이 못 됐다.
이 자체로 카일론에게 타겟 잡힌 국가의 지원은 일부 장해를 빚게 되는 것은 물론, 애초에 카일론과 국경을 맞대던 말던 그냥 너 새끼 뒤져라! ㅋㅋㅋ 하며 앞뒤 없는 마인드를 지닌 국가들 기준에선, 마찬가지로 알 바 아니며 오히려 가세한다는 의중을 밝히는 와중에 카일론이 대놓고 일부 너희 넘겨줄 테니 협조해라, 이렇게 배포 크게 나오면? 이건 못 참지.
평소에 철저하게 군사적 대비를 해온 나라들은 그나마 낫다.
연맹이나 동맹 등이 굳건하다면 주변 국가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수월.
예컨대 결혼 외교 급으로 굳건한 혈맹 등을 갖춰뒀다면 차라리 다행.
그러나 그런 동맹조차 결혼 대상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숨지거나 병을 앓고 숨진다면?
뭔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사라졌으며, 죽은 누구를 위해 명분 요청에 부응하자니 이것도 앞뒤가 안 맞으며, 각 나라 정치계에서 이를 용인하고 수용해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한다? 귀족들은 이권 챙기기 바쁜데 전쟁에서 얻을 게 없으며 괜스레 피만 보게 될 거란 조짐이 훤히 예상되는 곳에 구태여 병력을 파견할 리가 있겠나.
그래도 명분이 어느 정도 부합된다? 이러면 이런저런 문제로 시간을 질질 끌어 지연 시켜 판단을 재고하게 만들려 이것저것 수작질을 펼치겠지.
왕권이 막강하다면 그나마 이 시일은 단축되겠지만 아니라면? 이것도 난관이다.
당장 침략, 공격당하는 국가 기준에서는 안 그러면 다 같이 망하니 합심하려 들겠지만, 그 와중에 배신자는 또 없을까.
결국 몰아붙이기만 해도 내부적 유대가 굳건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 자체로 와해되게 된다.
그러나 나라가 뭔 허수아비도 아니고, 그게 유지되고 굴러가려면 그만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바.
그렇기에 밑바탕을 다 깔아놔도, 어쨌든 본론은 치러야 한다 이 소리.
그게 왕일지, 유명 봉신일지는 두고 봐야할 노릇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카일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가운데 분쟁이 불거져 결국 선전포고 직전으로까지 연결된 이 상황 속에서, 각 권력의 정점에 선 권력자들은, 자기 권력을 수호하고자 모든 걸 동원 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이전까지는 왕 못지않은 권세를 누린 권신도, 왕으로서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이들도 있었겠지만, 결국 전쟁이란 국면 앞에선 이들 모두 승전과 패전, 몰락과 반전의 기회를 얻을지 말지를 시험받게 될 터였다.
그리고 객관적 평가로서, 카일론의 철왕이나 그의 후계녀인 패왕녀처럼 치열하게 세상과 부딪혀 오며 온갖 고난을 극복해온 이들이 아닌 이들에게 남은 건, 근거 없는 자신감뿐.
일부는 자신의 고귀함이 하늘의 소행이라 맹신하는 막연한 권위 의식, 선민사상에 따른 자존감들이 대부분이리라.
그리고 실력도 근거 없이 자신이 잘난 줄 안 이들.
에드릭이 살던 원래 세계에도 비슷한 예는 수두룩했다.
그저 자신의 세계에서 애초부터 주어진 권리로서 약자들을 핍박하고 괄시해가며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이들은, 그들이 야만족이라 비웃던 몽골에게 처참히 박살이 나 뼈도 못 치른 예가 있듯, 카일론이란 나라는, 그들이 지닌 모든 게 허상인지 진실이었는지를 시험하는 또 다른 심판대가 될 것이다.
“음, 그 다음엔 온갖 역병의 시작인가. 대처 잘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맞나?”
몽골이 유럽을 휩쓴 뒤 그로 인해 발생한 온갖 부조리가 흑사병 창궐을 유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스페인 독감 유행에 있어 세계 대전의 비중을 어느 정도 간과할 수 없단 점도 그렇고.
대략적으로 에드릭은 이후 있을 사태 등을 간단하게 예측해보고 있었다.
애초에 알그리타 대륙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던 세계였다.
크고 작은 분쟁, 국지전, 전투 등.
애초에 카일론 용병이 각광 받을 이유가 치안이며 보호, 보안을 위한 게 아닌 게, 그럴 거면 용병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그쪽 인력을 동원하는 게 맞겠지.
용병에게 치안을 부탁하는 시점에 그 나라는 막장이란 소리다.
그러나 그런 예가 또 아예 없는 건 아닌 게, 나라 규모는 아니어도 일개 영지 규모에선 흔히 있을 수 있는 방식이긴 했다.
그게 장기적으로 굳어져 아예 거기에 눌러앉게 되는 예는 엄청 모범적인 예지만, 대부분 근본 없는 용병에게 맡겼다가 죄다 털리고 죽임당하는 예도 파다하기에, 그런 의미에서 출처가 확실하며 신의가 있는 카일론 용병은 그런 역할로도 제격이었다.
용병이라고 다 같이 전투에 미친 전투광들이 아니다.
일부는 전투엔 참가 안 하고 관리, 보급을 통한 병참 및 공병 못지않은 역을 하는 이들도 있고.
여차하면 그들도 싸울 수 있겠지만.
이것도 물론 요령이 있고 경험이 투철하니 가능한 업무들이기에, 이들 가운데 처음부터 전투에 학을 뗀 예가 아니라면, 대부분 노련미가 돋보이는 이들에 해당했다.
그리고 이들이 소수일 때와, 다수일 때의 차이도 또 큰 게, 단순 단원에 끝나지 않고 용병단 째로 오는 예가 있는데, 이름 높은 용병단은 그만큼 수가 늘수록 비용이 급증하기 마련.
애초에 소수보다 다수일 때가 막강한 건 당연한데, 용병단원들은 자기들끼리 손발을 오랫동안 맞춰 왔을 테니, 다수일 때의 시너지는 배로 치솟는다.
미숙하고 미련한 것들은 소수든 다수든 거기서 거기지만, 전쟁이란 건 본래 군진, 진형을 얼마나 잘 꾸려 유지하느냐의 싸움이기에, 그게 가능한 용병단들은 대체로 몸값이 천정부지 띌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사상자도 많았지만.
예컨대 등을 보이지 않고, 패주하기도 전에 몸을 빼거나 설혹 패주한다 쳐도 무작정 도주하고 탈영하지 않는 이들이 예컨대 정예라는 거다.
실력이 어설퍼도 그것만 지킬 수 있다면, 대체로 1인분 이상은 하는 놈으로 여겨주는 게 이쪽 업계다.
“카일론이 대대적으로 용병 장려, 우대 정책을 펼쳐 외부로 파견 내보낸 것도 그런 이유겠지.”
그러면서 외부인들을 끌어들이고, 다양한 종족들이 카일론으로 오게끔 밑바탕을 깐 걸 테고.
애초에 다종족이 자유로이 화합한다는 걸 어찌 소문을 낼 텐가.
그런데 카일론은 인간과 인간 아닌 종족이 합심해 용병 활동을 행한다 치면? 따로 입을 안 놀려도 소문은 마구 퍼질 텐데 국가적으로도 이러한 소문을 퍼트리는데 노력하면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철왕 자신은 그런 의미에서 전쟁을 미친 듯이 벌여 깽판 치며 영토를 무작정 늘리는 게 아닌, 내부를 확실하게 다지고 기반을 깔아 패왕녀가 활개칠 판을 제대로 깔아준 거라 봐야 했다.
영토를 무작정 넓히면 뭐하나. 관리가 안 되는데.
그러나 현재의 카일론은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해졌으며, 적어도 패왕녀 당대와 그 후대까지도 그 문제를 해결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실을 아주 단단히 다진 상태였다.
애초에 봉신들에게 지방관을 파견해 그 지방관이 왕을 대행해 봉신, 권신들을 감시 감독하는 시점에 말 다한 거지.
본래 봉건 영주의 권역 내에선 참견하지 않는 게 봉건시대 왕의 기본적 덕목이자 의무.
그러나 왕이란 자리에 앉으면 아무래도 자기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고, 그 이상으로 영역을 넓히려 들기 마련.
그러나 봉신 기준에선 그 선을 침범하면 당연한 듯 반발을 하기 마련인데, 그게 과하면 왕 자리에서 쫓겨나느냐, 마냐라는 위험천만한 게임이 시작된다.
쥐도 궁지에 물면 고양이를 물기 마련.
그리고 권력이란 건 원래, 가족하고도 나누는 게 아니라 했다.
하물며 가족 아닌 외인이 참견을 가한다? 그가 만만해 보이면 결국 싸우자는 거밖에 안 되고, 무섭다 치면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칼을 갈게 되는 게 또한 인지상정.
…그러나 카일론, 특히 카일론 왕가는 강하며 명분 및 영향력도 확실했다.
그러나 타국은 어떠할까?
무작정 침략이 아니라 명분 싸움 외에 여타 것들, 정치 외교까지 엮어 괴롭히고 약화 시킨 뒤 압도적 무력으로 침탈한다면… 흐음.
작정하고 사정을 파악하기로 하고 살펴보니, 카일론의 준비가 얼마나 탄탄했는지가 여실하게 드러나고, 증명되고 있었다.
군사적 정보, 사안 등은 본래 아무에게나 털어놓는 그런 게 아니었지만, 에드릭이 이를 파악해 상인의 촉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판단한 철왕이, 에드릭의 이런 태도에 관련인을 파견해 반나절 가까이 계획을 꼼꼼하게 일러준 까닭이었다.
그리고 에드릭은 그에게, 그들로서는 보거나 판단하기 모호했던 부분은 자신의 시각과 의견을 종합해 전달해줌으로써 서로 윈윈의 결과를 얻어내는 식으로 무작정 빚을 지는 사태를 방지했다.
“정치가 참으로 골치 아파.”
가족을 비롯해 일가친척들과의 관계에서조차 이것저것 따져야 하니.
아주 중요한 것들, 핵심 등은 일러주지 않았을 테지만 그건 에드릭도 마찬가지였다.
감추는 게 있으면 이쪽도 감춰야지.
아니, 알려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고, 이쪽은 입만 다물면 그만.
먹고 삼킨 시점에 주고받는 개념은 의미가 없어지는 거다.
이로 인해 추후 선 제공, 호의를 베푸는 예가 사라질지는 모르나, 애초에 그런 요행을 바라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그러니 시작부터 철저하게 공과 사를 나누고, 주고받는 룰을 정해주는 게 중요했다.
감정이라던가, 정, 친애나 호감 등에 속거나 휘둘려 헛소리 나불대게 하는 건 첩자며 간첩들이 정보를 파악하는 최우선 수단인 것도 괜한 게 아니고.
뭔가 중요한 걸 품고 있으면 그걸 자랑하고 과시하며 토해내고 싶기 마련.
…거기에 술과 여자, 금은보화, 칭송 등이 곁들어지면 굳게 닫힌 문이 열리는 건 큰 어려움도 아니었다.
“일단은….”
거기다 에드릭이 잠자코 있다 해서 이러한 정보를 외부에 뿌릴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물론 전부를 누설하면 바로 용의선상에 오를 테고, 애초에 판을 깨서 훼방 놓을 생각도 없기에 에드릭으로선 이 기회를 잘 살려 이득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돌리는 게 아무래도 타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연관된 이들, 선후배들에게 이러한 정보를 풀어 이득을 볼 수 있게끔 일부 필요 정보 등을 제공하는 식으로 선배이자 후배로서의 은혜를 베푸는 것도 좋겠지.
동시에 이걸 바탕으로 도움을 얻고, 자신에게 투자 및 협조를 자청하게 한다던가.
도움을 주는 이, 떡고물을 안겨주는 인간에겐 오지 말라 해도 파리가 달라붙기 마련.
모기가 인간에게 기웃거리는 이유는 피가 있기 때문이다.
피가 흐르지 않았다면, 과연 모기 새끼가 인간을 거들떠나 봤을지….
“그나저나 슬슬 소식이 올 때가 됐는데….”
무작정 방구석에 눌러앉아 있는 게 아니다.
비록 공간 자체는 큼지막해서 애들끼리 축구를 시켜도 될 규모로 넓다곤 하나, 쓸모가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너무 넓어서, 어두워지면 누가 있는 게 아닌가 괜스레 가슴을 졸이게 된다.
그나마 감각이 넓혀져서 파악이 가능하니 불안 요소는 덜하지만, 혹시 모르니. 나도 모르는 뭔가가 튀어나올지 어찌 예상하랴.
“…본래라면 결혼 뒤 신혼이랍시고 한창 뜨거울 시기인데.”
어째 옆구리만 시린 게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아니, 비정상 맞지. 뭘 고민하냐.
바보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