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화 〉100. 땅 샀는데 집들이 하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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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서두르자고요!”
알리샤가 열 대 이상 되는 마차 행렬을 일일이 말에 탑승해 돌며 독려하고 있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이런 행렬은 도적이라던가 도적의 탈을 쓴 용병 및 자유 기사 등에게 먹음직한 사냥감으로 내비칠 수 있겠지만….
“어째 한 놈이 시비를 안 거네.”
“벗겨 먹을 기회도 안 주고.”
일부러 보란 듯이 호위하는 게 아니라 마차 구렁이 위에나 따로 안쪽에 틀어박혀 농땡이를 피우는 등.
제발 그런 놈들 나타나 주길 바라는 그들로선 이 행렬이 퍽 지루할 따름이었다.
알리샤도 어쨌든 용병업계에선 알아주는 이로, 그 정도로 이름을 드높이다 보면 인맥이라는 게 형성되지 않을 수가 없는 바.
하물며 그녀는 사교성도 좋은데, 무려 그녀가 취급하는 포션, 물약은 남녀 모두가 떠받들고도 남을 상품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그녀가 구두쇠처럼 구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돈보단 소재며 재료 쪽에 더 눈독을 들이다 보니, 정작 돈 되는 건 동행했던 이들에게 건네주거나 한 움큼 더 얹어주는 통에 그녀는 같이 동행 할 파트너로서 무척 선호되는 존재였다.
문제는 조금 험한 곳, 인적 드문 곳, 위험지대, 미개척 지역을 주로 가려 한다는 거였는데, 덕분에 그녀와 연관된 이들 가운데 어중이떠중이들은 알아서 걸러지곤 했다.
안 걸러지면 뭐, 죽거나 살기 위해 아등바등 날뛰어야지.
그녀가 사람 좋다 해서 자원봉사자는 아니기에, 웃는 얼굴로 제 역할 못 하면 그냥 놓고 가거나 졸지에 사라져버리는 등, 그녀도 에드릭 못지않게 웃는 얼굴로 터무니없는 짓을 마구 행하는 부류였다.
…그러니까 죽이 잘 맞는 걸 테고.
세상이 난세며 혼란스러울수록 그런 것들이 판을 치기 마련인데, 그러기에 의외로 그런 부류들은 촉이 대단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저 정도 행렬을 무방비하게 끌고 가는데 별문제가 없다?
그래서 본래 악독하거나 무시무시한 도적들은 각 잡고 애매한 영역을 차지해 그곳을 주 무대로 활동하거나, 실력에 자신이 넘치면 온갖 곳에 수배가 뜨기에 유목민들 마냥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니는 거다.
그런데… 그 정도 규모의 도적단이라는 건 의외로 국가에 거슬리는 선을 넘는 정도인데, 그 정도 규모가 되면 보통 눈감아주거나 오히려 정치 권력과 맞물리는 사태로 번지는 일이 그리 드문 예는 아니었다.
…아예 작정하고 일부 빈곤한 국가들은 도적의 탈을 쓰며 적대국이나 상대국을 조직적으로 약탈하는 일도 있을 정도고.
그리고 알리샤의 동료들은 바로 그런 존재들이 좀 와줬으면 했다.
쇠로 된 사슬 갑옷만 몇 벌 챙겨도 그 벌이가 얼마나 짭짤한지… 무기도 그렇고.
시대가 시대다 보니 쇠는, 특히 순도가 높다거나 잘 만든 건 여러모로 팔아먹기 용이했다.
그리고 도적이 제아무리 무능한들 무기들은 제각각 갖추고 있을 테고.
…도적질도 무기가 없으면 일부 나그네며 여행객들에게 강도 짓 하는 게 고작이며, 그조차도 무기가 없으면 협박이나 협조 가능성이 대폭 줄어들기 마련.
무기를 든 도적? 어느 의미로 자기 밥그릇 챙길 정도의 역량은 갖춰진 케이스일 거다.
도적 두목만 그럴싸한 무기를 갖춘 건, 어느 의미로 지극히 정상적인 도적단인 거고.
“그거 뭐냐? 협곡이나 숲길로 가면 좀 좋았을 텐데.”
“그러다 마차 바퀴 빠지고 매복 당하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지. 조금 돌아가도 역시 이게 맞아.”
평화적으로 그런 곳을 가며 입장료, 통행료를 건네는 예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도적한테 통행료 주랴, 각 나라, 영주 땅 밟을 때마다 통행세 건네고 이러면 이건 이것대로 미칠 노릇.
그러니 받는 관문이며 오고 가는 구간이 국법으로 정해졌다던가, 하는 게 상식인데 세상 일이라는 게 꼭 그렇게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형성된 건 아니지 않나.
그 땅 주인이 깽판치겠다는데 뭐 어쩌라고?
이거 피드백해달라며 어디 지붕 없는 바닥에 눌러앉아 한 두달 각 잡고 멍 때리기라도 할 참인가?
그럴 바엔 그냥 푼돈 혹은 손해가 좀 돼도 그냥 더러워서 내고 후딱 갈 길 가는 게 훨 낫지.
그러기에 행상인, 소규모 행상의 경우는 길눈이 얼마나 밝느냐가 사실상 성과며 실적으로도 이어진다.
가도, 큰 길이며 포장된 길 위를 달리는 건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거다.
또 포장은 안 돼 있어도 널리 쓰여 알아서 다져진 큰길도 그렇고.
허나 알려지지 않은 지름길이라던가, 남들보다 빠르게 더 안정적인 루트를 설계해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막강한 장점이라 할 수 있으니.
장사 쪽 재능이 미흡하다 해도, 길눈만 있으면 이런 쪽을 토대로 직업을 갖추던가, 안내인 등으로 말년을 보내는 식으로 재주가 쓰일 수 있으니.
네비게이션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전 시대엔 지도 아님 안내인들이 득세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다.
결국 무난히 목적지에 도착한 알리샤 일행과 마차 행렬.
그들이 도착한 곳엔 썩 허름해 보이는 성채 하나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한때 어떤 영주가 영주 성으로 썼다가 말아먹고 방치되고 어쩌고 하다가 폐허 비슷한 땅으로 전락했는데, 강이 메마르고 가뭄이 드는데 전쟁까지 벌어지고 어찌 수습하려던 중 역병까지 몰아쳐 사실상 사는 이가 전무하게 된 영역이란다.
설상가상으로 그 주변엔 꽤 이름이 알려진 악독한 마물들이 싸돌아다니는 건 덤.
특히 야밤에.
알리샤가 작정하고 인맥을 동원해 용병 시절 동료들을 죄다 모아 가능한 인원을 동행하게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인적이 드무니 아예 성채며 영지 내에도 숨어 있나 본데.”
“짐 푸는 건 좋은데 일단 경계는 철저히 하고… 날 저물고 있으니까 우선은….”
알리샤가 따로 나서지 않아도 전문가인 그들이 알아서 대응 방식을 수립해 각 관계자에게 숙지 시켜대는 모습이었다.
“성도 보수하고, 성벽 헐거워진 건… 나중에 확장한다 치면 허물 곳도 있고 하니 그건 나중에 정하기로 합시다.”
“돈이 문제죠. 돈만 있다면 뭘 못하겠습니까?”
“재료들 공수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주변을 보니 목재로 쓸 나무가 충분해 보이지도 않고. 평야인데 강도 없고 호수도 없고… 이건 완전 말이 평야지 개활지잖습니까? 그렇다고 농사를 하기도 알맞은 땅은 아닌 듯 보이는데….”
“예전에 여기 주인은 어떻게 살았답니까?”
드워프, 난쟁이족을 포함해 관련 인부며 건축가들이 한곳에 모여 주변을 살피며 지도와 이것저것 대조해보며 논의하는 모습들까지.
“…나무를 심어두면 좋으려나.”
“기왕이면 정령목으로요?”
“그게 좋겠지?”
엘프들도 뭔가 신바람이 난 듯 휘파람을 불며 주변을 훑어대는 모습들이었다.
그 외에도 인간을 제외한 무수한 종족들이 우후죽순, 또 반나절 단위로 순차적으로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도착.”
“왔어?”
주변 정리를 일단락하며 슬슬 잠자리에 들 때쯤, 천막 안으로 들어선 에우리에를 보며 알리샤가 반가움을 표시했다.
“간 건 어떻게 됐고?”
“응, 괜찮게 됐어.”
에우리에는 마법사들에게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역을 맡았기에 어느 의미론 알리샤 이상으로 피곤했을 터.
그리고 해가 뜨기 무섭게 알리샤는 용병 동료들에게 이곳의 문제에 대한 걸 대충 듣곤, 이어 본격적으로 영주 성채며 일대 부지를 살피고자 무장을 갖추고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뭔가 모험하는 느낌 들어 좋네.”
“…….”
에우리에는 두 눈을 꿈뻑이며 졸린 걸 애써 무마하려는 듯한 기색이었다.
“오우….”
“저, 절세 미녀….”
그리고 용병 가운데 사내자식들은, 에우리에의 신비스러운 외양에 얼을 빼놓은 나머지, 여성 동료들에게 발을 밝히거나 옆구리, 볼, 귀를 꼬집히고 쥐어뜯기며 온갖 상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건 아니잖아.’
피부가 뭘로 만들었길래 저렇게 하얗지? 아니, 너무 하얗잖아?! 눈도 아니고!
‘눈은 또 어쩜….’
뭔가 근본적으로 신이 자신들과 그녀를 편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아주 짙게 생겨날 지경.
에우리에의 존재는 그녀들 내면에 자리한 신앙심 자격에 대한 시험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성채며 영지 부지를 싹 다 훑어본 그녀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흠….”
한때 브레나임 변경백의 딸로 파스티나라 불렸던 그녀지만, 현재는 브리앙르로 다시 용병 시절 이름을 쓰고 있는 그녀가 일단의 무리를 끌고 그곳에 도달했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초원 엘프와 인간 남녀들 여럿, 말과 짐 마차까지 포함하면 상당한 수에 해당했다.
“목초지로 쓰기엔 적합해 보이는 땅이로군.”
얼마 안 가 소와 양을 몰고 온 몇몇 이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바헬루스는 여기서 며칠 지난 다음, 카일론 왕도를 떠나 파라메라에서 동행한 몇몇 이들과 함께 이곳에 도달했다.
“뭘 준비하나 했더니….”
바헬루스가 방문했을 때쯤엔 제법 그럴싸한 규모로 사람들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장원 급으로 자급자족이 전부 이루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사람이 유입되면 또 모를 상황.
거기다 현재는 초라하나 의외로 시장을 비롯해 물물 교환이 성행하는 흐름이었다.
용병에 마법사들이 기웃거리는 거 보면 그쪽도 연관이 있어 보였는데….
그들뿐 아니라 상공업 관련 업자들이 꽤 많이 눈에 띄는데, 대략 물으니 이곳에 지부를 둔다는 내용들을 딱히 감추는 기색도 없이 늘어놓고 있었다.
‘경계심들이….’
이건 감추고 은닉해 벌리려는 게 아니라, 대놓고….
“그런가.”
바헬루스가 납득한 듯 은은하게 입가를 늘어뜨리자.
“뭔가 짚이시는 구석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냥저냥.”
바헬루스는 대충 얼버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