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5화 〉105. 모이고 또 모여...(2)
“날도 추운데 여기서 몸 좀 녹여요.”
에드릭이 중심에 피워둔 불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사양 않고!”
말이라는 건, 막상 나누다 보면 시간을 금세 잡아먹는다.
간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막상 나누면, 반나절이 금세 사라지듯.
식사를 한다 쳐도 1차, 2차는 기본.
…한곳에 짱 박혀 몇 시간 때울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건 가게에 따라 추가 주문 없음 눈치가 보이기도 한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렇게 사적으로 보기가 어려울 거 같기도 하고….”
“흐음….”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사실 여기서 이렇게 모여 있는 게 발각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에드릭은 어쨌든 카일론의 웃어른.
훗날 여왕으로 등극할 왕녀의 반려인데, 이런 식으로 호화(?)롭게 여자들 여럿 끼고 즐긴다?
…물론 현대처럼 스캔들이 나거나 하진 않겠지만, 이건 다른 의미로 도덕적, 윤리적 문제라 봐도 무방했다.
문제는, 패왕녀가 그런 쪽으론 담백하다는 거지만 그녀가 그렇다는 거지 주변까지 그럴 거라 막연히 기대해선 곤란한 노릇.
“…….”
그렇다고 안 할 것도 아니지만.
본사가 이를 싫어합니다, 같은 사태만 아니라면… 에드릭 입장에선 뭐가 됐든 자신의 욕망과 의욕을 굳이 부정할 필요까진 없다고 봤다.
“이렇게 면면만 보면 많지만, 다 상대할 수 있잖아? 다 같이 즐기는 건?”
“…낭만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한 사람 한 사람, 하룻밤을 독점하고 이러자니… 조금 양심에 찔리기도….”
“찔릴 건 또 뭔가? 아니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움을 내색하고자 하는가?”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후우…!”
“하핫… 조금만 늦었으면 입장이 곤란해질 뻔했네….”
어쨌든 가만히 앉아 불을 쬐고 있는 에드릭에게 일순 시선이 몰려 들었다.
“그래서 넌 어쨌으면 하는데?”
알리샤가 대표 마냥 물어오자.
“…저야 바라시는 대로?”
에드릭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들의 의중을 전적으로 따를 것임을 눈치껏 호소했다.
그 결과.
“…이건 살짝 예상외인데.”
팀을 나눠 무작위로 특정 방을 선택해 입장한 다음, 그곳의 여성들을 먼저 확실하게 보내버린(…) 다음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식으로… 뭔가 좀 이상한 전개가 펼쳐졌다.
“흥미롭긴 한데.”
어디에 누가 있는지 감각을 더듬는다면 파악 못 할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야 무슨 재미일까.
그러기에 에드릭은 먼저 준비한다며 자리를 뜬 그녀들이 대략 준비가 끝났으리라 생각하는 시점, 대략 15분 정도 뒤에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성안에서 모닥불이라는 게 참 감명 깊어.”
천장도 꽤 높은 덕에 연기 찰 걱정 안 해도 좋고.
날이 슬슬 어두워져 가는 만큼, 달이 차오른 덕에 위쪽에 자리한 창들 사이로 희미하게나마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는데, 덕분에 성의 처량함? 뭔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본래라면 여긴 영주가 왕 마냥 신하며 백성들을 접견하는 그런 공간이긴 한데, 이곳 영지를 뜰 당시 어지간한 건 다 가져간 탓에, 내부는 꽤 휑한 편이었다.
“딱 영주 성 클라스.”
이윽고 에드릭은 그녀들이 있을 법한 방들을 찾아 나섰다.
객실은 아니고 기존 영주들 혈족들이 머물렀을 방들도 휑하긴 매한가지지만, 적어도 밖에 천막 치고 있는 것보다야 편한지라 보수 공사 하는 구역만 아니라면 기본적인 편의 도구 등은 충실히 갖춰진 상태였다.
…가구는 나무로 된 책상과 의자 정도가 고작이지만.
그러기에 침대는커녕 바닥에 깐 거라 해봤자 짐승 가죽에다 베개, 그리고 이불 정도가 고작.
…그래도 36.5도에 해당하는 생체 난로를 여럿 낄 수 있다면….
아마 알게 모르게 지금쯤 거주하는 곳들 둘러보면, 한창 밤잠 이루기 모호한 온갖 거사들이 이뤄지고 있을 거다.
체면 때문에 밤일을 못 한다? 그건 현대인들 사고방식이지, 여건이 안 되면 애들 보던 말던 떡을 쳐야지. 암.
서양 중세를 예로 들면, 여성은 평균적으로 18개월 단위로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뭐 당시 위생이 심각하고 여건이 어쩌고 해서 애를 많이 못 낳고 수명이 적었다, 단명했다 이건 완벽한 편견이다.
다만 낳았다 쳐도 살아남는 건 별개기에, 어린 나이에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죽거나, 나이를 먹은 다음에도 얼마든지 목숨에 지장이 생길 여지는 많았기에 그 생존율이 문제였던 거지, 그런 걸 제외하면 출산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진, 사실상 부부는 결혼 뒤론 쉴 새 없이 떡을 쳐댄 셈이다.
그리고 중세 서양에선 평균적으로 여성이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성에게 시집을 가는 게 평균이다 보니, 사실상 남성은 부인을 부양한다기보다는, 떠안아 키운다는 느낌이 강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가장의 권한이 막강했음은 물론, 일각에선 폭력을 사용하고 손찌검을 다루더라도 이를 어느 정도 장려하는 문화로까지 번졌다는데, 이렇듯 나이 많고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가장과 애정을 이루기란 좀처럼 쉽지 못한 게 일반적이지만, 이 또한 각자 나름일 수밖에.
에드릭이 이곳 세계에 와서 조금 예외였던 건, 중세 판타지 세계라 해도 그 각박함, 빌어먹은 여건이 완전히 완화되고 개선됐으리라 예상하진 않았었다.
그러나 그가 알던 현실 세계의 중세와 이곳의 중세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 봐도 무방했다.
“…일일이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지.”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 어쨌다 해도, 결국 뉴턴은 주식 시장에서 참패해서 쪽박을 차며 이런 말을 했다 하던가.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아무리 환경에 종속되고, 부려지고 어쩐다 쳐도, 결국 문명은 이성체들이 만드는 거니.”
대놓고 인간이라 단정 못 짓는 건, 이성을 지닌 종족이 비단 인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
한때 엘프며 각종 종족들이 인간을 부려먹던 시절도 있었을 거다.
그리고 사이클이 돌아 이젠 인간이 그랬고, 이제 다시 사이클이 회전해 그 균형이 깨졌다.
고인 건 썩고, 썩은 건 도태된다.
그러나 썩고 썩어, 잘 썩으면 그건 훗날 깊게 깊게 내려앉아, 기름이, 석유가 될 테지.
그런 식으로 다시 그 존재는 급부상해 세상을 주름잡고 말 테니. 이런 조화가 에드릭으로선 도무지….
“하여간.”
떡 치는 걸 생각하다 왜 중세 생활 여건에서 석유로까지 생각이 번지는가.
이게 바로 의식의 흐름이란 건가.
피식 웃은 에드릭은 이윽고 어느 입구에 도착했다.
외부에서 보면 성채는 퍽 작아 보이지만, 막상 내부로 들어오면 이게 마냥 작은 건 아니다.
…중세에선 이 정도 성채면 사실 왕성급이라 해도 무방하나, 이곳 판타지 세계에선 이조차도 영주성 단위.
“뭐, 그렇다 치고.”
이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아싸!”
주먹을 와락 움켜쥐는 다프넬과.
“현명하다!”
손뼉을 짝하고 마주치며 기쁨을 표현한 마이기신.
이렇게 두 엘프가 호의와 기대감에 젖은 얼굴로 막 내부로 들어서며 문을 닫은 에드릭을, 지긋이 주시해 오고 있었다.
“크흠!”
뭔가, 너무 기뻐해서 괜스레 이쪽이 절로 민망해진달까.
할로윈 때 사탕이나 초콜릿 받는 아이도 저 정도로 좋아하진 않을 텐데 말이지.
…이것이 바로 떡질, 극상의 기대치를 부풀리게 만드는 에드릭의 존재감의 위력?
사실 틀린 말도 아닌 게, 에드릭의 떡 솜씨(…)는 아르세이유에 있을 때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워낙 튼실한 거시기와, 좀처럼 쇠할 여지가 없는 정력, 꾸준한 단련 덕에 그럴싸하게 자리잡힌 몸매라던가, 파트너에 대한 확고부동한 친애와 애정 표현, 그 외에도 누적되고 쌓여가며 능숙해진 온갖 테크닉이라던가.
그래서 에드릭이 신대륙으로 나간다 했을 당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한숨을 자아냈는지, 한동안 이 문제가 여러모로 회자 될 정도였다.
“자, 에드! 오랜 만이니 한없이, 원 없이 해줬으면 싶은데….”
“내가 저번에 직접 해본 바로, 우린 얼마 못 버틸 테니 다브헤너는 걱정 안 해도 좋다.”
“…….”
뾰로통한 표정으로 마이기신을 힐끔 노려본 다프넬.
“허허….”
에드릭은 마이기신의 말에 뿌듯함과 낯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어쨌든 그녀들이 앉아 있는 늑대 가죽이 넓게 깔린 이부자리로 향하다가….
‘근데 루넨브리스는… 괜찮으려나?’
무심코 늑대 가죽을 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회색 늑대라서 망정이지 흰색이었으면, 괜한 죄책감? 떨떠름함을 느꼈을지도.
같은 초원 엘프라곤 하나 다프넬은 생전에 만났을 때와 크게 차이가 없는, 소녀의 외양을 하고 있다면, 마이기신의 경우는 농익은 여성, 건강미 넘치는 초원의 기개가 느껴지는 활기가 넘치는 그런 분위기며 외양을 하고 있었다.
체격서부터 차이가 확연했는데, 덕분에 뭐랄까….
‘조금만 닮으면 자매 덮밥….’
“크흠!”
괜한 생각을.
아니, 살아가며 한 번쯤 그런 경험 겪고 그러잖냐? 라떼는 한창 일하던 시기에도 모녀 덮밥을….
‘…….’
흠흠, 긴장이 풀렸군. 주의해야지.
내심 진득하게 즐기는 것도 썩 나쁘진 않다고 봤지만, 기다리는 이들이 여럿 되기에 에드릭은 구태여 신사적 태도를 거두고, 곧장 야성적인 태도로 그녀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바로 하는 거냐?!”
애무고 뭐고 없이 곧장 발기한 성기를 들이대자, 마이기신의 얼굴에서 환희와 기대감이 반반 섞인 듯한 표정이 상기되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반면.
“흐응… 많이 급했나 보네?”
다프넬은 묘하게 서운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론 만족스러운 것 같은, 조금 미묘한 표정이다.
…뭐 어지간하면 다프넬하곤 과격한 체위나 행위로 연결 안 되게 주의를 한 영향도 완전하게 배제할 순 없을지도.
처음부터 과격하게 팍팍 해댔다면 애무도, 전희도 없이 곧장 박아대는 흐름으로 연결되는 이 전개가 위화감을 조성하진 않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