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61)화 (361/454)



〈 361화 〉107. 나는 오늘도 일을 쉬고 있다.(2)

심지어 일전에 늘 보았던 그 특유의, 위화감 넘치는 풍채를 지닌 아바타도 아니었다.


되려 지금의 선배는 에드릭보다 훨씬 어린 꼬맹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일단 어느 귀족 가문의 자제라는 식으로 컨셉을 잡고 활동하고 있단다.


신대륙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며 그쪽에서도 자본을 움켜쥔 신생 가문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그   곳으로 신분을 꾸몄다는데, 가문 전체가 본사 쪽 출신이란다.


“위에서 느긋하게 이것저것 하라고 했다가 다시 밑바닥에 오시니 감개무량하시겠습니다.”
“너야말로 왕 대접받는 건 좋고?”
“…좋을 리가요.”



외모만 보면  에드릭 못지않은 미소년이다.
…알리샤 누님이 보면 눈 돌아가겠네.

청색 단발에 푸른 바다를 담은 것 같은 두 눈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목구비도 단정하고, 모난 구석이 하나도 없이 선이 무척 고운 게, 잘만 꾸미면 소녀라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게 느껴졌다.

…정작 원본은 아저씨라 문제지만.

“여기선 일단 칼리슈라 불러라. 남들 있을 때 실수 말고.”
“아무렴요.”


어쨌든 선배는 현재 백화점을 새로이 맡은 대표보다 윗줄에서 경영을 살피는 이사진, 그 중  귀족의 자제인 신분.

예전과는 달라도 여전히 이런저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인 건 분명했는데, 오히려 지금이 훨씬 더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은 상단원 출신이 아니라 엄연히 귀족 출신.

무엇보다 신대륙에서 한몫 건진 식으로 알려졌기에 자금을 직접적으로 굴리고,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자체가, 엄청난 특혜라 봐도 무방할 거다.


예컨대 주도적으로 돈을 굴릴 자격이 부여된 것.
정작 선배 자신은 번거로운 듯 보였지만.

“나야 관리직이 좋지, 주도적으로 뭔가 하는 건 내키지가 않아서.”
“그래도 이게  기회 아닙니까?”
“나는 기회 따위는 필요 없고, 안전빵이 최우선이니까.”
“흐음….”
“이미 알겠지만 난 여기에 가정이 있다고. 성과를 내면 그만큼 가족과 재회할 기간이 늘 수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기존의 시간조차 박탈될 여지가 생겼는데, 좋을 리가 있겠냐.”
“너무 리스크만 생각하시는 거 아닌가요?”
“나이 먹으면 원래 이렇게 되는 거야 인마.”

…몇 살 차이도 안 나면서 벌써 노년기, 명퇴를 앞둔 직장인 같은 태도는… 본사 기준에선 감정 사유일 텐데.

“그보다 팀장님 보러 간답시고 본거지마저 뜨고, 넌 그래도 되는 거냐?”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으니까 그러려니 해주세요.”
“참 힘든 길 걷는다.”



선배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보다 가는 길에 시간 좀 나지?”
“…뭔 일 있나요?”
“가는 김에 걔들 좀 보고 가라고.”
“걔들?”
“수영이 녀석하고 궁민 씨.”
“뭔 일 있데요?”
“지금 둘이 태그 짜고 있잖아. 그런데 뭔가  풀리는 거 같더라.”
“…제가 가면 풀리고요?”
“공략 대상이 여자라는데?”


오우 쉣!




“제가 지금 팀장님께 구애하러 가려는 걸 알면서, 중도에 여자를 후리고 가란 겁니까?”
“…하나는 네 사적인 거고 하나는 공적인 거잖냐.”
“……하아.”


한숨이 푸욱 새어 나온다.

“우리 부서에 저보다 여자  후리는 선배 후배들을 수두룩하지 않나요?”
“다 태생이 잘난 놈들이라, 까탈스러운 여자는 못 후리나 보더라.”
“예?”
“완전 개 사이코패스라 들었거든.”
“…….”

그런데 왜 그걸 나한테 맡기는데요?




“저라고 사이코패스 잘 다룰 거라 보세요?”
“본사가 판단하기로 그런가 보지.”
“아 진짜….”



설마 감당 못 하니 짬 처리를 시키거나 부서 내에서 짜고 치는 건 아닐 테고. 폭탄 돌리기? 크흠….



“무엇보다  여자가 에드릭에게 관심이 많다나 봐.”
“문제는 저는 일단 유부남이란 거죠.”
“아직 얘는 없지.”
“아니, 그걸 그렇게 말씀하시면….”
“팩트잖아?”
“…….”



에드릭을 일단 내용이나 들어보자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된답니까?”
“가면 걔들이 알아서 알려줄 거야. 정보 수집은  끝냈는데, 자기들이 시도하긴 어렵다니까.”
“…여자들 간의 친분이 훨씬 유용할 거라 봅니다만.”
“여성 혐오증 있다고 하더라.”
“예?”



여자인데?



“아니 남성 혐오증은 흔할 수 있다지만 여자가 여자를 혐오한다고요? 그건 또 무슨 경우랍니까?”
“어릴 적부터 어머니한테 미움받고 학대까지 당하고, 자기 언니들한테도 그렇고, 이후 오가는 곳마다 여자들이 득달같이 괴롭혔다더라.”
“…거 신세하고는.”
“거기다 좋아하던 남자는 맺어지기도 전에 빼앗겼고.”
“…….”
“심지어 잘 되기까지 바랬는데 맺어진 여자 쪽이 사이코라 남자를 피 말려서 자살하게 만든 뒤로, 완벽하게 여성 혐오가 극에 이르렀다는데?”
“팔자 한  기구하네요.”

이쯤 되면 재수며 악재 수준이 아니라… 그냥 인과라 봐야 하려나? 숙명?



“거기다 다른 애들도 스케줄 있는데, 무엇보다… 넌 아직  봤겠지만 신입 후배 중 하나가 시도했다가 아주 개털려서, 엄두도  내고 있다더라. 애초에 남자들이 그녀한테 기웃거리고 구애하는 것도 일상이라 어지간한 녀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던데.”
“…….”



 정도면 내가 알만한 유명인 아니려나?
애초에 자기 일이나 주변 외엔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는 에드릭이라 쳐도 그 정도면 조금만 알아봐도 다 아는 이름일 것도 같은데, 전혀 짐작되는 이가 없었다.

“내가 말한 정보를 토대로  가지는 분명하게 알겠지?”
“……예쁘다?”
“눈 돌아갈 정도라던데. 여자가 봐도 짜증날 정도로? 여자들이 괴롭혀댄 이유가 아마도 질투며 시기심 때문이란 게 학계의 정설일지도 모르겠던데….”

그딴 걸 학계에서 정설로 삼는다면, 걔들 더럽게 할  없는 녀석들일 거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거절한다 쳐도 이쪽이든 저쪽에서든 미운털 박힐 테니, 여기선 미움받을 용기를 우선 삼가도록 해보죠.”
“대신 조건이 있다?”
“당연한 말씀.”


에드릭은 씨익 웃어 보였다.
또한 선배도 짐작했다는  피식 웃더니.

“그럴 줄 알고 준비해뒀지.”
“아무렴요.”




에드릭은 그가 건네는 얇은 수첩을 건네받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로 가게?”
“몇 군데만 들리고요.”
“하여간 빨라. 조금 숨 좀 돌리고 그러지?”
“숨 돌린다고 누가 떡을 하나 더 주진 않잖습니까?”
“그도 그렇지.”


소주잔과 비슷한 크기의 투명한 잔을 꺼내 술잔에다 연녹색 술을 쪼르륵 따른 선배가 에드릭을 향해 이를 건넸다.



“샷 한 잔 정도는 문제 없지?”
“…뭐, 예의상 주시니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의는 무슨.”


귀한 술이라는  알기에 에드릭은 거절 않고 그대로 한방에 들이켰다.

서부 시대에서 총알 하나로 술 한 잔을 교환, 일종에 구매하던 시기가 있다.
샷이라는  그 시기에 정립된 용어.


선배는 에드릭에게   정도의 용량을 건네준 셈.
도수가 꽤 높은 터라  정도로도 청량함? 으슬으슬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크으… 여전히  술맛 느끼는 쪽엔 재능이 없는 거 같습니다.”
“아직도 맥주가 오줌물처럼 느껴져?”
“그보다  쓰레기 같은 느낌요? 아, 그거 어디더라? 브레나임 령에 흑맥주는  쓸만합니다.”
“검은 핏물?”
“아시나요?”
“맥주계에선 유명하지. 대륙 산 9대 맥주  하나잖아.”
“그래요?”



그건  몰랐네.


가끔가다 쓰레기 같은 맥주물 들이킬 때,  특유의 검은빛깔과 불쾌하지 않은 쇠 비린내가 생각나곤 한다.


“나중에 기회 되면 얻어올게요.”
“좋지. 순간이동 기능도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으니, 오가는데 큰 부담도 없겠다… 세상 참 좋아지고 있어. 안 그래?”
“그럼요.”

이미 그쪽 정보도  퍼진 모양이구나.


인프라, 기반을 다 갖추고 홍보 마케팅을 하면 한참이다.
그러니 갖추기 전에 홍보하고, 갖춰지기 무섭게 판매한다.


특히 이곳 세계는 여전히 정보 이동 속도가 느지막하니, 늦어도… 최소 1년 전에는 싹 다 뿌려놓고 인식을 박아둬야, 나중에 서비스 도입되자마자 이용하게끔 닦달을 하건 신호를 보내건 소식을 전하는 쪽이 귀찮음이며 번거로움도 덜할 테고.

케사린 영지가 활성화될 법한 시기, 계획대로라면 내년 중순쯤 되면 영업 돌리기엔 충분하겠지.


어차피 시작부터 완벽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무리.
대기업도 아니고 그걸 기대할 바엔 하나하나 시행착오 겪어가며 해두면 그만.


어차피 기대 가치는 압도적이니, 빠르게 선점하는 게 중요했다.
일종에 스타트업, 벤처 기업 느낌이 좋다고 에드릭은 생각했다.

시작부터 너무 거대한 자본, 영향 등을 바탕으로 밑밥을 깔고 가면, 온갖 견제를 비롯해 각 나라며 권력자들의 손짓에 파리 잡히듯 때려 잡혀질 여지가 있으니, 개척을 하는 와중에 그것들의 견제와 훼방을 걷어낼 장치를 갖추는 것도 필수였다.

대한민국이 스타트업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경직된 사고? 고정관념? 도식화된 비 실전적 교육 현황? 창업 교육  투자 인프라 부재?


대기업의 슈퍼 갑질, 길들이기,  자르기도 있지만, 망한 시점에 무엇 하나 보장해주는 게 없이 희생만 강요하는데 있을 거다.

망해도 그 경험을 되살려 새로이 사업을 구상해 성공하는 예는 허다하다.

그러나 시작부터 성공해 글로벌 기업, 중소기업을 넘어 대기업에 범주에 이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 그런 예도 드물고.

그러기에 실패해도 어느 정도 안전선을 보장해줘야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데, 이게 부실하면 시도는 나날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장이 제아무리 척박해도 성공하는 이는 그곳에서 기회를, 길을 개척해 나아가기에… 그 흐름을 막연히 불가능한 이유, 안 되는 이유로 꼽기도  모호하긴 했다.


‘단지 구멍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가 문제지.’




바늘구멍이면 솔직히, 개나 소나 평균치를 이루기란 불가능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스타트업, 벤처 기업에 대한 기대가  이유는, 그 가운데 하나만 제대로 대박을 쳐도, 망한 백여  이상의 기업의 손해를 그대로 커버친다는 점.


어느 의미로 그 이상의 미래 가치를 창출하기까지 한다는 점인데….

“미래를 살아갔기에 그나마 보이는 게 있긴 하지.”

미래를 살아가도, 공부 안 하고 주의 깊게 살피지도, 사고하지 않는다면… 보고서도 기회를 놓칠 일들이 허다하겠지만.


“불공평해, 참으로.”




공평하길 원하는 이유는, 적어도 내가 불공평의 대상이기 때문.

반대로 내가 불공평의 정점,  혜택과 가치, 이익을 누리고 있다면… 그 시점엔 공평과 평등이야말로 그들 기준에선 불공평의 극치에 해당할 거다.



“누구나 꿀을 빨고 싶어한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위로 갈수록 비좁아진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피라미드를 오르락내리락해왔다.

고대서부터, 지금, 아마 미래에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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