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화 〉109. 음담패설 그리고 티 타임.(2)
어쨌든 마차를 타고 이동한 끝에, 여성 혐오주의자 겸 에드릭이 이곳에 당도하게 된 이유를 제공한, 대충 유명인을 만나볼 기회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크네.”
“나름 유력 가문이니까요. 잘못하다간 가세가 기울 테지만, 가신들이 어떻게든 자기들 자식 놈들하고 맺어지게 하려고 기를 쓰고는 있는데, 쉽지 않거든요. 그러니 한편으론 타 가문 내지 왕족들하고 맺어지게 해서 그쪽에 눌러앉게 하고 이쪽 가문은 냉큼!”
“…그리고 우린 그녀를 돕고 그녀가 가문을 온전히 장악하도록 돕는다?”
“의지처가 없으니 이런 후원을 통해 세를 불려가는 게 우리 같은 배후 조직 입맛엔 알맞지 않을까요?”
“배후 조직이라니.”
“선배야 어떨지 몰라도, 저는 대놓고 그런 활동 중인걸요?”
“아, 그러셔요.”
에드릭은 대강 알아 들었다는 태도를 취했다.
어쨌든 철창처럼 높이 선 정문을 거쳐 내부 정원에 당도하자 큼지막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바탕의 건물은 나름 세월을 탔는지 살짝 변색 된 기미가 있긴 했지만, 본연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 대단히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겨대고 있었다.
“운이 더럽게 없는 케이스네.”
“그런가요? 저는 대박이라 생각하는데.”
“…어느 쪽이든 자유랄 게 없으니까.”
본래는 가문에서도 괴롭힘에 구박에 소외당하고 배척당해왔는데, 그게 되려 가문의 주인이 된 이유라니, 세상 참.
“이래서 근본 없이 관광 다니면 큰일 난다니깐요.”
“…누가 외부에서 손을 썼을 가능성은?”
“그거야 이들 문제라 저희가 관여할 건 아니죠. 조사는 이뤄지고 있지만 손놓은지 오래고요. 유명 도적단이라는데 강도질 타겟으로 아주 딱 걸렸던 모양이에요. 타국으로 피신했다가 거기서 잡혀 처형당하기까지 했으니, 혹여 배후가 따로 있더라도, 알아내기란 쉽지 않겠죠.”
“…흐음.”
“신경 쓰지 마세요. 죽어 나자빠지는 게 뭐 새삼스러울 게 있나요. 그래도 여기가 우리 세계의 고대 문명처럼 제사랍시고 인신 공양에다 식인에 순장이 반복되는 그런 막장 세계관도 아니잖아요?”
“…아즈텍이냐.”
“아뇨, 춘추전국 이전 이후 대의 여러 고대 국가 포함해서 말한 건데요?”
의외로 냉소적인 구석이 있는 녀석일세.
“그보다 여긴 왜 집사니 뭐니 맞아주는 인간이 없냐?”
그도 그럴게 하인조차 제대로 눈에 띄질 않고 있는 게 퍽 이상했다.
정원도 꽤 그럴싸한데 정원사 하나 안 보이고.
“출퇴근인데 이것도 날짜 정해서 일주일에 2, 3일 정도 들리나 보던데요?”
“…그래? 가신단 있다며?”
“있다 해도 따르고 자시고는 별개죠. 가주되는 이가 불안정하니, 머리 검은 짐승답게 이빨을 드러내는 거죠. 실권이며 명분도 애매하니, 흔들면 알아서 나가 떨어지겠거니, 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그리고는 살짝 목소리를 낮추더니.
“따돌림에 참가하거나, 방관하고 외면해오던 이들인데, 그녀가 온전히 가주 위를 계승하면, 잘도 좋구나 하겠어요?”
“…찔리는 게 많으니 결국 대놓고는 아니어도, 일단 맞은편에 서서 사태를 관찰하고 있다?”
“추가하자면, 누구에게 비싸게 팔지 의논하고 있는 것도 고려해볼 노릇이죠.”
“…그러나 자기들이 그럴 명분은 없으니, 그렇게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알아서 정나미 떨어져서 꺼져 주는 게 저들로선 베스트니까요.”
“…개판이네.”
고개를 저은 에드릭.
저택 내부로 들어선 뒤 익숙하다는 양 안을 활보하는 에사나를 따라 특정 방에 들어서자.
“…….”
에사나는 노크 몇 번 하더니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불쑥 문을 열어 제겼다.
“나 왔어 자기! 내가 자기가 좋아할 법한 선물을 가져왔는데, 선물 상자 풀어볼 준비 다 됐어?”
“…….”
질색하는 감정의 파동이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아직 방안으로 들어서지 않은 에드릭으로선 안쪽 상황이 어떤지 알 도리는 없었다.
“…내가 멋대로 들어오지 말라 안 했어?”
“어머나, 항상 적을 만드는 그 태도는 좋지 못하다니까 그러네. 품을 수 있는 건 품고 그래야지. 그러니까 가신들이 널 배척하려 드는 거 아니겠니? 내 조언 그 사이 잊어먹은 거야? 섭하게?”
“…….”
선배! 센빠이! 하며 웅얼대던 것과 달리, 지금은 명확하게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한편으론 간드러지듯 느끼하게 일변한 태도를 내보인 에사나의 지금의 모습이, 에드릭으로선 의외지만… 더없이 편하게 느껴졌다.
‘공적인 게 역시 좋다니깐.’
사적인 건 뭔가, 대응하기가 예나 지금이나 번거롭단 말이지.
…살을 섞어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니니 이것도 장담하기 좀 그렇고.
“자자, 선배! 얼른 들어와 보세요. 들어오기 전에 심호흡 좀 하고요! 괜히 넋을 잃거나 정신 빼놓지 맙시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나저나 저 새끼는 왜 남 앞에서도 평소처럼 날 대하는 거지?
선배? 아마추어? 왜 우리 쪽 용어를 태연하게 써대는데?
“크흠!”
잔기침으로 목을 관리한 에드릭은 어쨌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
“…….”
아르세이유에서 철영 선배가 했던 이야기의 조각이 얼추 맞춰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문으로도 대단하다고는 익히 들었고, 에사나며 릴리에나도 그렇다고 동조를 했지만, 실제로 보기까지 이를 실감하기란 요원했는데….
눈이 확 트일 정도의 미녀라는 것에 대해선, 도저히 부인할 수 없을 정도.
…온갖 미녀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다면, 아마 한동안 넋을 빼놨을지도.
같은 여자가 보면 질투할 만도 하네.
이건 심지어 귀엽다 쪽도 아니라, 아예 타협할 여지도 없다.
아름답다 개통은 보통 여성들이 외모 비교에 있어 타협 자체를 논외로 여기게 할 정도로, 아주 극단의 상대적 불평등을 이룩하는 요소.
그런데 심지어 몸매도 우월하다.
몸매 밸런스도 좋아, 가슴도 커, 골반도 ㅗㅜㅑ….
…사기네?
어지간한 미녀 아니면 그녀를 접할 시, 백설 공주한테 독 사과 먹인 왕비가 느낀 열등감이란 그 빌어먹을 감정을, 아주 실시간으로 절절히 실감할지도.
“자! 소개할게! 이쪽이 그 유명한 카일론의 패왕녀 전하의 부군! 에드릭 코넬… 경이긴 한데, 이젠 경이 아니라 전하겠지? 코넬이란 성도 아마 나중에 가선 바뀔 테고. 지금도 사실 그렇게 부르는 게 맞지만….”
“잠깐 있어봐. 누구라고? 아니 정말로… 그 전에 네가 어떻게 이런 분을…?”
눈앞의 소녀는, 의외지만 에사나와 조금 유사한 면이 있었다.
어느 부분이?
비주얼적인 면이.
키는 비록 에사나 쪽이 컸지만, 녀석은 모델급이라 사실 평균적인 여성들의 키로 보면 상당히 큰 편에 속했다. 현대인에 익숙한 에드릭으로선 조금 크구나 싶은 느낌이었지만.
그러나 그녀는 어떠한가.
연푸른빛을 내는 실내 단벌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어깨가 고스란히 노출된 그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은발에 가까운 머리칼은, 에우리에 누님과는 조금 다른 색감의 은색이었는데, 유심히 보면 이건… 잿빛에 가깝다고 봐야 할지도.
그보다 머리에 매달린 뿔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좌우로 나온 뿌리는 위로 곧게 솟아 있었는데… 저거 붙잡고 입으로… 크흠!
‘아니 미쳤나?’
왜 갑자기 그런 쪽으로 연상이 되는 건데?
순간적으로 저걸 붙잡고 입안에다가….
‘아, 미친.’
아무래도 때 아닌 음란마귀가 씌었나 보다.
욕구 불만인가? 그건 맞긴 해도 이건 좀….
“크흠!”
애써 당혹스러움을 기침으로 무마한 에드릭은, 차분히 그녀에게 접근해 가벼이 예를 취했다.
동시에 그녀의 시선에서부터 긴장감, 경직된 몸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뻣뻣함이 에드릭에게까지 전달될 정도로, 그녀는 대리석처럼 와락 굳어져 있었다.
이건 다른 의미로 충격을 먹은 듯한 반응인데.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편하게 대해주시길. 저는….”
“아, 알고 있습니다. 에드릭 님에 대해선….”
그보다 이 여자, 꽤 호의적인 태도 아닌가.
붉게 물든 두 눈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아, 저기… 죄송합니다.”
“뭐가요?”
“저기, 눈이 조금… 소름 끼치셨죠?”
“……?”
뭔 소름?
에드릭이 의아한 듯한 태도를 내비치자, 살짝 긴장한 태도로 다시금 묻는 그녀.
“괘, 괜찮으신 건가요?”
“선배는 인간 아닌 야수마저 덮치는 사나이인데, 거작 눈깔 좀 빨갛다고 널 무서워할까.”
“너는 조금… 말을 가려서 좀 하면 안 되냐?”
“왜요? 뭐 문제라도?”
…설마 이 와중에도 뻔뻔하게 저러다니. 이 새끼는 공과 사라는 구분이 없는 건가? 아님 그럴 필요 없는 컨셉질이라던가?
“친하신가 보네요.”
“선배니까요.”
“…그런 거 아니니 염려 놓으시길. 저쪽이 일방적으로 저러는 거뿐입니다.”
“일방적… 그럼 벌써 잠자리까지….”
“아, 그렇지 않아도 하자고 비벼대는데, 안 하겠다고 버팅기고 계시거든. 괘씸하게….”
“??”
아주 허물이 없네 그려.
아니, 그보다 저 여자한테 개털려서 날 불렀다고 하는데, 그런 거치고는 꽤 친해 보이는데?
아닌가? 내가 있어서 괜히 눈치 봐서 에사나를 못 밀어붙인다던가?
“아, 제,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아말리온 가문의… 임시 가주 대행인 아말리온의 현 적정녀, 루다나 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루다나….
그보다 뿔이 좀 신기하네.
의외로 뿔 달린 종족은 이곳 대륙에서도 아주 흔한 편은 아니었다.
뿔이 달린 이들 가운데서도 종족들이 각양각색인 터라.
형식적으로 뿔이 달린 종족도 있는가 하면, 뿔 자체가 힘의 근원인 종족도 있고, 그 속에선 마족이라 불리는 종족도, 단순 인외종, 아인이라 불리는 종족들도 있는데, 이게 워낙 다양해야지.
아마 뿔이 달렸음에도, 이 문제가 대대적으로 회자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은닉? 인외종 선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끝냈다던가?’
악마라 소문이 퍼지는 것보단 야만, 열등종 쪽이 훨 낫겠지.
그나마 과거 구 제국 괄할권이 아니었기에 이에 대한 혐오나 배척이 조금 덜한 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만… 흐음.
“그보다 약속 지켰으니 내 뜻대로 하는 거다?”
“…….”
“뭔 약속을 했는데?”
에사나의 말에 의문을 품은 에드릭이 불쑥 물었다.
그보다 이런 게 있었으면 미리 알아서 이실직고를 했어야지….
“아, 별건 아니고 선배 첩이 되라 했거든요.”
“……뭐?”
이 새끼가 엿을 거하게 처드셨나. 아니, 술을 거하게….
“말이 되는 소리를….”
“전 괜찮습니다.”
왓?
“……?”
누가 좀 대답해줘라.
지금 이 상황,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게 맞긴 한 거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