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0화 〉110. 어지간해선 참교육 잘 안 하는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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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가량 지났을까.
“흠….”
에드릭은 구태여 어디 싸돌아다니는 일 없이, 철저하게 아르막티우스 가문의 저택, 그것도 방 한 곳에 틀어박혀 여가를 구가하고 있었다.
왕성에 처박혀 있을 때와 지금이나 뭔 차이가 있냐 싶겠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비유하자면 군대에서 여차저차 책 읽는 것과, 사회에 나와서 독서하는 것의 차이?
전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차선에 차선을 택한 케이스라면, 후자는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최선을 택한 셈.
원래 방안에 틀어박히는 것도 자발적이어야 힐링이 되고 자유를 느끼는 거지, 막상 상황은 같더라도 누가 시켜서, 강제로 그렇게 될 시엔… 대하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틀려진다.
그나마 극적인 차이가 있다 치면, 이곳은 전속으로 따라붙는 수행원들이 전무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그들한테도 부담이려나.”
어차피 급여 받고 일하는 이들도 아니니 상관은 없겠지만….
어쨌든 다들 어엿한 집안 출신들이니, 무급 휴가 준다고 뭐라 할 것도 아닐 거다.
오히려 자유로워졌다며 좋아하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
…집안에서 맞아주는 부류들은 그렇다 쳐도, 정작 갈 곳이 애매한 이들의 경우엔… 어떠려나 싶지만, 그런 이들은 아예 자체적으로 장기 휴가 차원에서 몇 군데 알선해서 보내줬기에 그 문제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자기 사람들은 철저히, 제대로 다독여줄 것.
그게 원한 및 불만으로 비롯된 문제로 통수 안 맞는 최적의 지름길이다.
‘그렇더라도 한계는 있지만.’
이를테면 가족 가운데 누굴 중병을 들게 하거나 사고를 일으켜 중상을 입힌 뒤, 천문학적인 치료 자금을 필요로 하게 하는 시점에 배신을 제안한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란 게 이런 거지.
그렇다고 그 내용은 자기 주인에게 이야기한다? 이건 이것대로….
들어줘도 문제고, 안 들어줘도 문제다.
들어주면 미덕처럼 보일지라도, 이후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이걸 책임져야하는 더러운 상관관계가 설립된다. 안 그러면 차별이자 특별 대우로 작용하기에, 어이없지만 이로 인한 불만이 적대적 흐름으로까지 번질 여지도 다분.
…성질머리며 성향들이 개판인 놈들이나 그렇겠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어려울 땐 편협해지기에 이 부분은 도리가 없다 봐야 할 지도.
‘인간에게 기대하지 말 것.’
머리 검은 짐승은 언제 어느 때 통수를 칠지 모른다.
욕심이 그러하고, 권리를 누린다 착각하는 시점에, 그러한 요소는 더욱 격화된다.
덜컥!
“언제 할 거예요?!”
에사나가 불쑥 침입했다.
“뭘?”
“언제까지 참으라고요 저보고? 제가 선배 때문에 요즘 일부러 사내놈들도 안 불러대면서 조마조마하며 기다리고 자빠졌는데 이걸 악용하는 건 무슨 경우냐고요?!”
“일이 중요하지 떡 치는 게 중요하냐?”
“무슨 당연한 소리를!”
이윽고 같이 들어온 릴리에나는 에드릭과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어깨를 으쓱인다.
어색할 때 드문드문 선보이는 손빗으로 머리를 정리하는 듯한 태도를 내보인 릴리에나는, 자신의 연보라색에 가까운 머리칼을 애써 다듬어댈 따름이었다.
“…….”
이거이거, 거저 얻어먹으려는 수작질이라니.
릴리에나도 내심 쌓였나 보다.
“어차피 하루 이틀 기다릴 것도 아니면 진작 주지육림 했음 좋았잖아요!”
“…주지육림하고 떡 치는 건 별 게 아니려나?”
“말 돌리지 마세요. 고기에 술에 나체 만발! 그러면 떡 쳐 대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
그건 그렇지.
“아님 뭐예요? 루다나한테 꽂혀서 그녀의 입을 먼저 맛본 다음 저흴 잡수시겠다, 뭐 그런 거예요? 미식가세요? 신선한 걸 먼저 입에 담고, 닳고 닳은, 익숙해 빠진 조림은 나중에 입가심으로 맛본다?”
“…그건 또 무슨 경우에도 없는 표현이냐?”
새삼 신기하기까지 하다.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저런 신선한 개소리가 남발되는 건지 원….
“하자~고요! 해요! 넹?”
“…귀찮은데.”
에드릭이 침음하며 흘려 넘기려 들자.
“아니 섹스를 귀찮아하는 병신이 어디 있는데요?! 고자 새끼도 그러진 않을 걸요?!”
“…….”
그건 그렇지.
새삼 맞는 말들만 해대서 도무지 할 말이 없네.
하지만.
“그러게 입을 잘 털지 그랬냐. 걸레를 물어 댄 버르장머리 때문에 이러는 거니, 그러려니 해라.”
“장난해요?! 제가 언제 걸레를 물었다고!”
“네 덕에 릴리에나도 못 하고 있잖아. 반성을 해라 좀.”
“또 그런 식으로 책임 회피 및 이간질이세요?”
“이간질이라니. 허허….”
아무래도 오늘은 작정을 했나 보다.
매일 같이 의례적일 정도로 줄곧 따져댔지만, 에드릭은 철벽처럼 버텨냈다.
심지어 나체로 들이대도 덤덤하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던가.
선 넘으려 들면 애써 거절하고 만류한다던가.
이쯤 되니 안 해서 짜증 내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의도적으로 안 하는 것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성욕 분출은 잠깐이지만, 이건 지금 아님 체험하기도 어려운, 그런 경우 아니겠나.
‘어차피 한다 쳐도, 확실히 묵혀서 나중에 끝장을 보는 게, 즐기는데도 좋고.’
어쨌든 참다 참다 막바지에 했을 때의 그 절묘함.
이를테면 밥을 맛있게 먹고자 고의로 하루종일 굶은 뒤, 다음날 만찬을 온종일 즐긴다던가.
운동도 어중간히 달리면 힘들기만 하지만, 너무 오래 달려 거기서 뻑 가게 되면 러너스 하이가 온다던가, 아드레날린 과다 분출로 쾌락이 쩐다 어쩐다 하는데…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약~간 비슷한 면은 있었다.
‘이를테면 그거지.’
옛날 야겜을 할 때, 공략이며 세이브 파일, 오마케라는 것도 없던 시절에 종일 매달려 생전 처음, 19금 떡씬을 보게 됐을 때의 그 설렘과 기대감, 초조감이 뒤죽박죽 돼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몰입하게 됐던 바로 그 시기.
이건 야동이나 성인물을 처음 접했을 때보다 훨씬 강렬한 체험이었다.
애초에 야동을 비롯해 여타 것들은 어차피 기다리면 그 장면이 이쪽의 노력 여하 관계없이 튀어나온다.
즉, 구하는 노력에 따른 보상 정도?
그러나 게임 속 히로인들은 일정 루트를 안 밟으면 공략은커녕 배드엔딩으로 씁쓸함만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에드릭처럼 당시 요령이 없었던 꼬맹이들은 대체로, 그러한 선택지 하나하나가 피를 말리게 했는데, 전개를 지켜보던 끝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떡씬으로 전개될 때의 그 환희란….
‘그러나 이쪽 세계 현실은 어떠한가.’
에드릭은 잘 생겼다.
떡잎부터 압도적이었다.
그뿐이면 다행인데 근본조차 확고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시작부터 마치 짜여진 것처럼 온갖 미녀와 엮였다.
이로 인해 그는 비교적 쉽게 떡씬에 돌입.
저쪽 세계, 현실의 그가 모태 솔로였던 것과는 별개로!
그 결과 본의 아니게, 공략의 즐거움을 만끽하기가 영 껄끄러워졌다.
아니, 부조리에 휩싸였다고 할까.
처음에야 게임한다는 느낌으로 뭔가 역할극에 심취해 잘만 즐겼지만, 기간이 늘고 세월이 누적되니 뭔가, 위화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배가 쳐 불러 가지고!’, ‘야 이 개새꺄!’ 하고 욕할 소리지만, 원래 세상이 그런 거 아닌가.
자크 라캉은 자신의 저서에서 ‘나’ 라는 강박증자는 대상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기에, 타자의 욕망과 그 존재성을 인정치 않는다, 라고 했다.
예컨대 외부적 대상, 손에 없는 것에 대한 무엇.
욕망의 대상물.
그리고 쉽사리 얻을 수 없고, 멀리 떨어져 있으나 보다 밝고, 빛나고, 아름답고, 유려하면서도….
어쨌든 욕망을 자극하는 그 대상에 대한 갈망은, 강박증을 더욱 부추긴다는 듯 싶었다.
성욕 측면에서 이 부분은 대체로 자의보단 타의에 의해 거리감이 멀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리고 이 부분이 맛이 가고 어긋나면, 흔히 말하는 NTR충이 탄생하는 거다.
손에 넣을 수 없으며, 손에 넣기 직전 혹은 소유하고 있던 그것이, 대상물이 타인의 것이 되어 점차 멀어져 거리감이 확 벌려졌을 때, 그건 필시 위기감, 탈력감, 좌절감, 절망감으로 번져야 하는데, 이 새끼들은 되려 거기서 쾌감을 얻는, 신비스러운 새끼들이다.
“그래서 할 거예요 말 거예요?!”
“흠, 고민 중.”
“고민은 시발!”
네가 자꾸 그러니까 꿀잼이라서 더 안 하고 싶잖냐.
얘가 사람 심리를 모르네.
아님 그만큼 여유가 없다던가? 참기 어려운가?
“말 나온 김에… 어떻게 됐어? 슬슬 소식이 전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그거 겸사겸사 해서 온 거긴 하죠.”
“그럼 그걸 먼저 말하고, 잘 했으니 해주세요! 라고 했으면 차라리 더 낫지 않았으려나? 욕구 불만이 극에 이르니 슬슬 뇌가 제대로 안 돌아가나 봐?”
“…수틀리면 보는 앞에서 사내들 여럿 불러다가 해대는 수가 있어요.”
“누가 뭐래? 하던가. 대신 난 그 이후로 절대 너 손 안 댈 거지만.”
“아니 시바 왜요?!”
“남이 노크한 집에 들어서는 취미 없다.”
“미치셨어요?! 선배가 무슨 처녀충이에요?!”
“…나는 네 그 경우에 없는 말솜씨에 새삼 두려움을 느낀다.”
“이게 뭐요?!”
욕을 섹시하게 하는 여자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미지 자체가 그게 아닌 여자가 그러면, 신선한 충격을 느낄 순 있으나, 그게 남발되면… 뭐랄까.
‘싸구려틱하지.’
욕도 적절하게, 사리에 맞게, 시류에 알맞게 해대면 뭔가 그럴싸하며, 통쾌함을 불러오곤 한다.
하지만.
아닌 놈이 자꾸 해대면… 흐음.
“누가 유교 드래곤의 핏줄 아니랄까 봐.”
“유교 드래곤은 무슨.”
어쨌거나 보고 차원에서, 열불을 토하는 에사나는 옆에 재껴둔 채.
“제가 설명하죠.”
릴리에나가 차분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뭐 정리하자면 이거다.
에드릭이 수작을 부려놨고, 그들의 대응을 지켜보는 가운데, 결국 예상과 한 치의 오차 없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
여기서 에드릭이 직접 나서서 깽판 치면 좀 그러기에, 에드릭은 적절히 수를 썼다. 자기 소재가 들통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에사나 가문인 아르막티우스 가의 이미지 및 평판에도 전~혀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방식으로.
“찾아보면 어디든 틈은 있기 마련이니까.”
“음모론에 심취한 분 답네요.”
“나는 약과지.”
실제로 에드릭은 정치며 음모 쪽엔 약하다고 새삼 실감했다.
그 확신은, 카일론 왕성, 궁정 내부에서 시달린 뒤 더욱 강해졌다.
거긴 뭐… 하품까지는 그러려니 하지만 숨 쉴 때 코를 약간이나마 벌렁거리는 것만으로 죽을 죄로 만드는, 빌어먹을 것들 천지인데 오죽하겠나.
심지어 쓸개도 내어줄 것처럼 하는 것들이 다음날은커녕 문을 나서기 무섭게 태연하게 통수를 보란 듯이 쳐대는 행각도 부지기수고.
…오히려 그걸 따지는 놈을 븅신 취급해대는 그 관례며 행실, 문화가 솔직히… 더 소름이 끼칠 지경이지만….
‘그게 당연한 거라면 그러려니 해야지.’
그게 원래, 세상 삶 아니겠나.
아니, 삶이라기보단 사회 및 구성, 집단에 대한 적응?
어쨌든 에드릭은 아말리온 가문을 나름의 방식으로 흔들어봤고, 역시 예측한대로 사상누각에 가까워진 그들은 순식간에 흔들려 무너지기 일보 직전에 달했다.
“막바지에 가서 구해준다니, 정말로 쓰레기 같은 발상이네요.”
“…왜 그걸 나한테 그래? 엄밀히 따지면 너 때문에 여기 온 건데. 이것도 다 네가 시켜서 하는 일이다만?”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책임 소재를 저한테 돌리시다니… 진짜 쓰레기네요.”
에사나는 장난스레 욕설을 퍼부으며 에드릭을 자극했다.
“원래 가진 놈은 쓰레기일 수밖에 없는 거지.”
남들보다 앞서고, 높이 오르고, 잘 달린다는 건, 없는 자들에겐 그 이상의 불우함, 탈력감, 절망감을 만끽하게 해주는 거니까.
경쟁에서 늘 승리해온 자는, 뭐가 됐든 개새끼다.
자신이 영광을 누리는 그것이, 따지고 보면 패배자가 토해낸 꿈과 희망, 이상 등을 제물 삼아 영락을 누리는 거니까.
…그래서 그는 경쟁에 가급적 참가하길 꺼려하는 거다.
그러나, 살아가는 건 결국 경쟁과 분쟁, 투쟁에 연속.
그가 마음 편히 집에 틀어박혀 여가를 즐기는 것조차, 누군가에겐 불만과 절망을 자극하는 무언가에 불과할 테니.
“…부조리한 세상이야.”
“부조리를 일으키는 분이 잘도.”
에사나의 독설에 에드릭은 애써 딴청을 피웠다.
“날씨가 좋네.”
“얼씨구.”
…빨리 루다나 일 끝마치고 달래줘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에드릭은 에사나의 저런 반응이, 퍽 기꺼웠다.
저렇게 초조해하다 못 견딜 시점에, 딱 하고 박아주면… 얼마나… 멋진 신음 소릴, 교성을 연주해낼지, 그걸 떠올리니 괜스레 아래쪽에 피가 쏠리려 했지만.
“크흠!”
지금은 참기로 다짐하곤,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