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1화 〉110. 어지간해선 참교육 잘 안 하는데….(4)
-------
좀처럼 적을 안 만든다는 건, 달리 말하면 주의가 깊을 수도, 겁이 많을 수도 있다는 건데.
에드릭은 둘 다에 해당했다.
우선 쓸데없는 일로 심력 낭비하는 건 그가 지양하는 바가 아닐뿐더러, 괜스레 적을 늘려 나중에 쓸데없이 발목 잡히는 경우는 곧 죽어도 사양하는 바.
그러기에 얽히려면 확실하게 얽히고, 아님 말자 주의가 확고했다.
네까짓 게 뭐라고!
라는 오만방자한 마음가짐은 좋지 못하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왕은 뭐 뱃가죽에 칼이 안 박히는 축복이라도 걸려 있나? 따로 죽창에 면역이란 보증 증서가 마련된 것도 아닌 마당에.
민주자본주의 시대의 산증인인 덕에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에드릭은 원한 관계에 대단히 민감한 편에 속했다.
사서 고생한다, 알아서 문제를 만들어 걱정한다 뭐다 하더라도, 에드릭으로선 그게 정상이라는 판단을 도무지 간과할 수가 없었다.
‘맞잖아? 틀려?’
아님 당한 걸 당연히 여기며 술주정이나 해대며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비관만 하다 죽는다?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라 해도, 아니면 어쩔 건데? 그놈이 뒤늦게 분노나 증오심으로 각성이라도 해서 갑자기 그럴싸한 인물이 되면 어쩔 건데?
애초에 그런 경우 자체를 안 만들어도, 누군가는 날 싫어할 테고 증오할 텐데 굳이 내가 사서 그런 짓을?
에드릭의 이러한 태도는 연애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기 사람, 특히 여성의 경우 살을 섞고 친애의 감정을 표현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좀처럼 상대를 배척하거나 배격하고, 외면하는 일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물론 애초 목적이 씨를 받는 경우라면, 말 그대로 원나잇 느낌으로 즐긴다 쳐도.
그러나 이건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에드릭의 총애와 환심을 사기가 어렵다는 말과도 일치한다.
애초에 모두에게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매너남이란, 다른 의미로 누군가에게 특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니.
사실 이것도 어장 관리다 뭐다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에드릭은 좋아하는 대상이 너무나도 명확하기에, 더더욱 이러한 선을 잘 지키고 있는 거라 스스로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루다나는 조금 이례적인 경우에 속한다.
만약 팀장님과 같이 반한 대상이 없었다면, 에드릭도 순식간에 눈이 돌아갔을지도.
아니, 그 전에 이미 패왕녀 홀릭을 자처하고 나섰겠지만.
“그렇다곤 해도 이건 양쪽 모두한테 못마땅한 전개일 거라 생각되는데요.”
릴리에나가 에드릭의 옆구리에 달라붙은 채 자기 생각을 밝히자, 에드릭은 그녀의 어깨 위로 팔을 두른 채, 천장을 올려다보며 가벼이 응답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루다나는 내게 자신을 맡긴다 했어. 그리고 집안따위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말도 했고. 그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도 포함해야지.”
“…동시에 이게 최선이다?”
“저들도 나쁠 건 없겠지. 가문을 접수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 결과 곧장 물어뜯기게 될 테지만, 삼일천하여도 천하를 손에 넣은 건 맞지 않나. 아님 손에 넣기 앞서서 알아서 자제심을 발휘했다면, 모두가 웃으며 좋게좋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테니, 이건 따지고 보면 아말리온 가문의 가신들의 흥망을 시험하는 심판대라 봐도 무방할 터.
동시에 루다나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일 테고.
“호구처럼 이용해 먹어줄 이유가 없잖아.”
어차피 아말리온 가문이 지닌 이름값이 영향력 따위가 에드릭에겐 별반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따로 영지가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있더라도… 이 경우는 처리 곤란하겠지.
그러니 여기선… 영지전이라거나 관련 명분 확보를 위한 포석 정도로 여기면 될 테지만, 이건 카일론 쪽에서 이용해 먹기엔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즉….
“본사 쪽에 넘기면 알아서 잘 커버치겠지. 여기처럼.”
아르막티우스 가문처럼.
…뭐, 이 경우 족보를 조작해 방계를 등장시켜, 아말리온 가문의 주력이 된다 치면… 여기서 루다나의 처지는 어찔 될 건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그녀는 지금 새로 꾸리는 영지로 보낼 셈인 거죠?”
“…아마도?”
케사린 령으로 보내면, 알리샤 누님이 알아서 살 곳을 마련해줄 거라 봤다.
적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게 해줘야지. 뭣하면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는데 지장 없게 배려해줄 생각은 있었다.
어쨌든 귀족 가문 하나를 통째로 내놓게 만드는 상황이니.
그녀가 거기에 집착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접근이 이루어졌겠지만, 첩 소리까지 입 밖에 낼 정도였으니, 에드릭도 한 번 믿어보겠다는 심경이었다.
‘아니더라도 이미 버스는 떴나지만.’
그땐 그냥, 원망 거하게 듣고 말지.
…이렇게 보면 나도 나쁜놈 다 됐네.
어느 의미로 이건 에드릭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악의적 술책이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지적을 해대면 도무지 부인할 여지가 없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취지는 좋았는데.”
“정말로 좋았다면 그녀가 여기서 바로 서게 돕는 게 맞지 않고요?”
에드릭을 그녀의 어깨 아래에 풍만하게 자리한 가슴을 쓰다듬으며, 침음했다.
“어색하니 가슴 만지지 말고요.”
“…안 돼?”
“하아.”
가슴 앞에선 한없이 초라해지는 게 사내의 본질 아니겠나.
에드릭도 예외는 없었다.
특히 릴리에나의 가슴은 명품 중에 명품!
그녀의 가슴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세상만사가 풍요로워진다.
어느덧 그녀의 뒤편에 앉아 그녀의 어깨에 턱을 내려놓은 채 양 가슴을 움켜쥔 에드릭.
…천국이 따로 없군.
거기다 반가우리만치 익숙한 포근함이다.
손에서 느껴지는 말랑말랑함은 둘째치고, 적당한 무게감이 앞쪽을 짓눌러오는 덕에, 애써 참아왔던 성욕이 폭발할 것처럼 치솟으려 하나….
‘여기서 발정하면 에사나가 발광해대겠지.’
그걸 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에드릭은 광대한(?) 설계를 위해 일단은 자제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만 만지고 땡 치게요? 누구 좋으라고?”
“…….”
아무래도 욕구 불만인 릴리에나의 그쪽에도 불이 붙었나 보다.
그러기에 에드릭은, 아랫도리를 놀리는 대신 손으로 그녀를 몇 차례 가게 함으로써, 임시로 그녀에게 붙을 불을 소화 시키느라 잠시간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사실, 손장난도 이런 식이면 꽤 맛있긴 하니… 별미라 쳐도 나쁘진 않았지만.
제아무리 성감대가 거시기에 쏠려 있다 하더라도, 취향을 비롯한 여타 것들로 인한 심적 만족도도 무시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나.
어쨌든 그렇게 몇 차례 릴리에나를 보내며, 그녀의 가슴과 허벅지, 부푼 사타구니 부근을 매만지며 그쪽 감성을 달래고 있던 와중이었다.
덜컥!
“내내 이럴 줄 알았어! 둘이서만 재미 보고!”
“착각하지 마라. 난 적어도 좆 대가리는 안 놀렸다.”
“…….”
속된 말로 개빡친 얼굴로 내부로 들어선 에사나가 유심히 우리 자태를 살피며 상황을 유추하더니….
“시발, 진짜네.”
마치 다 잡은 범인을 덮쳤는데 결정적 증거가 안 나와 분개하는 형사처럼, 에사나는 땅을 힐이 세워진 구둣발로 툭툭 걷어차며 울분을 달래고 있었다.
“…….”
개꿀잼!
너는 곶통 받아 날 즐겁게 하려무나.
그러게 왜 그렇게 난리를 떨었니. 얌전 좀 떨면 어련히 잡숴주셨을까. 큭큭!
“…그래도 손으로 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슬슬 장난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해주시죠?”
품에 머리를 기댄 릴리에나가 무성의한 어조로 닦달하자, 에드릭은 고개만 그럭저럭 끄덕여줬다.
“때가 오면 뭐….”
하지 말라 해도, 눈물 콧물 질질 짜며 울부짖게 해주마.
“그래서, 일단락 된 건가?”
“…그래요.”
에드릭의 물음에 에사나가 곧장 긍정을 표했다.
“슬슬 구원 타자랍시고 한 번 모습 비춰야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왜?”
“예? 내가 왜냐니요? 이 사단을 누가 만들었는데요? 그거 아니에요? 불량배나 양아치들한테 여자 겁박하게 하고는 짠 하고 등장해서 그것들 도망치게 해서 환심 사고, 뭐 그런 개 양아치스러운 전략 아니었어요?”
“……내가 개 잡놈도 아니고, 그런 양아치 짓을 왜 하냐?”
“아니, 그러면 정말로 사단 낼 속셈이셨어요?”
“이름만 남으면 되잖아? 아님 뭐야? 본사는 아말리온 가문의 모든 걸 고스란히 양도? 소유하고 싶었던 거야?”
“아뇨, 그 정도까진 아닌데… 설마 선배 뭐 잘못 듣고 오신 거 아니세요?”
“뭐가? 난 들은 거 별로 없는데. 그냥 가서 네 곤란함 해결하는 차원에서 여자 후리라는 식으로만 들었는데.”
“…이상하네. 난 제대로 전달했는데.”
“너야말로 나한테 저쪽 가문 공략해야 한다는 듯 말했잖아. 내가 착각한 건 아닐 텐데?”
“맞긴 한데… 이 정도까진….”
“선배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니 넌 잠자코 있어.”
이때 한차례 달래준 게 효력을 발휘하는 건지, 릴리에나가 에드릭을 비호하기 시작했다.
“이거이거 벌써, 아래쪽 적셔줬다고 벌써 빨아대고 자빠졌네. 추한 계집 같으니!”
“…하아.”
한마디 쏘아붙이려던 릴리에나가, 됐다는 양 절레절레 도리질 쳤다.
“말을 말지.”
“말을 만다며? 왜 또 그런 잡소리를 하시나아~? 찔리는 게 있구나아~?”
“닥쳐 좀!”
옆에 있었으면 등짝 스매싱이라도 매겼을 것처럼 인상을 찌푸린 릴리에나.
“그래서 정말로 방치할 속셈이세요?”
“루다나가 정말로 내 첩이 될 각오를 하고서 그 소리를 한 건지를 파악해야지. 귀족 가문 사이에 헛소리가 얼마나 처참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도 알아둬야, 나중에 뒤탈도 없을 테고.”
“…아니, 선배는 그거 너무 까다롭게 적용하는 거 아니에요? 세상은 그 뭐냐, 그렇게 복잡하고 철두철미하지가 않아요. 대강대강, 대충대충 사는 거지 뭘 그렇게 번거롭게….”
“그럼 헛소리를 안 했으면 됐잖아. 나도 일단 카일론 쪽 왕족에 편입된 입장이거든? 그런 나한테 첩 소리를 하는 게 단순 아부나 희망 사항을 대강 표현한 거다? 이거야말로 선 넘은 거지.”
“그냥 교태 한 번 떨 수도 있는 거지 뭘 그거 가지고….”
“응 아니야. 난 안 그래.”
“존나 유교 씹선비시네요.”
“…….”
그게 저런 추악한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선을 과하게 넘은 짓이었나? 너무하네 진짜. 이 망할 후배 같으니라고.
“제가 보기엔 그냥 선배가 가진 힘으로 깽판 치는 걸로 밖에 안 보이는데….”
“그게 나쁘냐?”
“예?”
“나쁘냐고. 네 식대로 말하자면, 좆 대가리가 거대한데, 거대하다고 안 쓰냐 그럼?”
“큼!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어지네요. 그죠! 있으면 적극적으로 놀려야죠!”
“그거나 이거나 뭔 차이인지 난 잘 모르겠다만.”
“…깡패 논리 그 자체네요.”
“왜? 자본가가 돈 지랄하는 게 뭐 새삼스러울 건 없잖아?”
“…이건 뭐 마법진 그리고 악마한테 도와달라 요청하니, 도움을 받을 필요 자체가 없게끔 모든 경쟁 요소를 싹 다 밀어버리는 방식도 아니고.”
“…세상에서 제일 똑똑해지게 해달라니까, 녀석보다 똑똑한 놈들을 죄다 말살해버린다던가?”
“제가 보기엔 딱 그 짓인데요?”
“그럴 리가.”
그리고 이런 에드릭과 에사나의 대화를 관찰하던 릴리에나는.
“이런 쪽으론 죽이 정말 잘 맞네요. 누가 보면 수년은 같이 부대끼며 일한 것처럼 볼 정도로.”
“아닌가?”
“그러게요?”
“……신기한 년놈들이시네요.”
릴리에나는 참견하길 관둔 듯 더 이상 이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어쨌든 에드릭은 자본과 기타 영향력을 발휘해 아말리온 가문의 약점 되는 걸 자체적으로 분석, 이를 물어뜯고 싶어 하는 경쟁자들에게 자체적으로 그들을 찔러댈 수 있도록 그럴싸한 명분과 구실을 안겨줬을 따름이다.
…아마 아말리온 가는 지닌 바 이권을 여럿 뜯기게 되겠지. 방비를 잘못하다간 죄다 거덜나게 될 테고.
사업체가 여럿 있다지만, 주인 된 자가 없다면야, 강탈당할 바에 헐값에라도 처분해서 본전을 챙기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고.
귀족이 이권을 쥐고 있다 해서 이건 무적인 게 아니다.
원래 경쟁이란 건, 비슷한 놈들끼리 피 터지는 것.
그런 의미에서 아말리온은 현재, 무주공산에 가까웠다.
그러니, 이러한 것에 확신을 가지도록 등을 떠밀 소스만 제공하면?
에드릭이 굳이 손 안 써도, 단기간에 기회랍시고 온갖 하이에나들이 득실댈 테지.
이로 인해 수작 부릴 수 있는 건 다양했지만, 여기선 에사나의 수완을 지켜보는 것도 퍽 나쁘지 않았기에 에드릭은 큰 그림을 그려 지시만 내린 상황.
그러기에 바쁜 건 에드릭이 아니라 에사나를 비롯한 아르막티우스 가문 쪽 사람들.
릴리에나도 이 상황에선 방관자 겸 가끔 조력하는 선이었는데, 이 또한 에드릭의 심경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본사 후배라 해서 무작정 밀어주고, 도와준다?
같이 일하는 놈이 트롤러가 아닌지 여부는 적어도 판단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건 릴리에나 때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코넬을 붙여 유흥가로 보내 주색잡기에 담가버린다던가.
여러 일을 마구 시켜 사태 대응을 지켜본다던가.
다행히 릴리에나는 에드릭과 같은 일벌레. 그러기에 죽이 잘 맞았다.
…의외로 사상이나 사고관에선 차이가 극심했지만.
출세지향적인 그녀와, 안정주의에 가까운 에드릭.
그런 의미에서 에사나는 어떠한가.
…여전히 감이 안 잡힌다.
아마도 쾌락주의에 가까운 주제, 뭔가 사이코틱한 기질을 보유한 탓일지도.
그런데 지금 보이는 건 뭐랄까, 무작정 남의 집안 거덜 내는 거에 가책? 안쓰러움을 느끼고 있는 건데, 이건 과연 동정심이나 측은지심에서 비롯되는 건지, 단순히 감수성이 풍부해서? 아니면 다른 의미로 이익 구조를 따져 뭔가 수지타산에 안 맞아서 이쪽의 판단 루트를 살짝 틀고자 의도를 따로 했다거나?
“…머리 좀 그만 굴려요.”
릴리에나가 용케 그런 점을 파악해 지적해왔지만.
“미안, 버릇이라서.”
에드릭은 차분히, 그녀의 젖가슴을 손으로 주물럭대며,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음, 슴가를 주물러대며 고뇌에 빠진다. 이거야말로 성공한 자의 유쾌한 유흥이 아닌가 하는, 빌어먹을 감상에 젖어 들며, 에드릭은 사고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