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75)화 (375/454)



〈 375화 〉112. 불건전하고 음탕한 신사 씨.

식사가 끝난  딱히   있을  만무했다.
그러나 일이라는 건 만들면 나오기 마련.
따로 물을 뜨고 퍼 나를 필요가 없기에 설거지는 금세 끝을 맺었다.
이후론 밤하늘을 올려보며, 둘은 적적한 정원을 거닐었다.


“적적하지 않나요?”

에드릭이 차분히 묻자.



“아니요. 오히려 조용해서 좋은걸요.”



하는 일은 기존과 비교해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가문의 이름을 잇게 됐다 해도, 그녀의 근본은 서녀(庶女). 적녀와 적자가 버젓이 살아있고, 안주인마저 멀쩡히 살아있던 시기의 그녀는, 사실상 시종과 별다를 바 없는 위치였다.


비록 아버지였던 이가 가끔 보살펴줬다 해도, 그조차도 일순간.
결과적으로 그녀는 방치됐다.


그녀가 이곳 집안에 눌러앉을 수 있는 연유라 해봤자, 체면 문제와 이후 있을 정략혼에 쓰일 도구 정도밖에  됐겠지.

귀족 가문에선 흔하다면 흔한 경우다.

자기 가문 구성원, 핏줄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고 보살피는 풍조며 문화가 있는 국가며 민족이 있는가 하면, 이런 식으로 썩은  차마 도려내진 못한 채 방치하는 예도 적지 않은 바.

그렇게 속에서 곪아가고, 썩어 가다 쓸모가 없어지거나, 틈이 나면 처리하고….


“그보다 이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돌아가셨는데도 어째서 다시 발걸음을…?”
“루다나 님의 처지에서 생각해봤습니다.”
“……?”
“저였다면, 대단히 쓸쓸할 거란 쪽에 생각이 미치더군요.”


악연이긴 해도 가족이 사라졌다 치면,  시원하단 생각이 들다가도, 뭔가 허무해지고, 허전해지기 마련.

거기다 그녀는 그 피로감을 해소할 여지도 없이 가문의 크고 작은 일에 엮여 시달려대지 않았던가.


오히려 지금 이 시점에 방치하듯 방임해서,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고, 진정하며 휴식기를 가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에드릭은, 적어도 떠나기 직전까진 그렇게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마차로 돌아오던 중 생각했다.



‘정말로 혼자 있는 게 도움이 되려나?’

고독이 익숙하다 해서 이를 온전히 감당할  있냐 아니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거기다 그녀는 에드릭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의지 표명을 명확하게 표출했다.

이걸 에드릭이 대강 받아 들였다면 어떠려나 싶었지만… 어쩐지 그건 그것대로 예의가 아닌 것도 같고.


진심이라면 더더욱.
거짓이라 해도… 이성과 음모, 모략의 목적으로 그런 연기를 했다 하더라도… 이런 처지에 놓이면 감성이며 감정이란 걸 좀처럼 조절하긴 어렵겠지.


흔히 죄를 범한 이가 감방에 갇힐 때 가장 참담하게 느끼는  자신이 실수했다, 망했다, 패배했다, 끝났다… 같은 게 아니라, 좁아터진 곳에서 억지로 감금당한 그게… 가장 강렬한 고통과 참담함으로 실감 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머릿속으로야 갇히게 된 시점에 그 모든  당연하게 받아들였겠지만, 막상 갇혀서 직접  부조리를 겪어보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

비슷하게, 대한민국 성인 남성들이 군대를 가서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건 의외로 군 부조리며 고된 훈련 같은  아니다.


억지로 갇혀서 부려지는 것.
예컨대 자유의 박탈.
억압, 통제.
그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거다.

물론 누구는 그걸 기회로 삼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은 방향으로 자신을 다독이기도 할 테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루다나는 그런 의미에서 입장이 다르지 않냐, 라고 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론 틀린 말이다.

애초에 그녀가 몸 성히 어딜  텐가.


결국 그녀는 내심 탈출해야 하는 장소로부터, 내쫓겨야 했던 곳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눌러 앉는 처지에 놓였다.


아니, 빠져나간다면 빠져나갈  있었겠지.
그러나 에사나가 이것저것 쳐내지 않았다면… 그조차도 불가능했을 거다.
억지로 그냥 발을 빼면 된다? 탈출하면 그만 아닌가?


그런다 쳐도 그걸 멀쩡히 내버려 뒀을까?
물론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억압하는 무언가도 사라졌고, 이제 온전히 저택 하나에 일정 자산이 꾸준히 들어오는 무난한 환경이 주어졌다.


…여기서  어떻게 탈출한단 말인가.


새장 밖, 고통과 억압의 해방, 자유의 쟁취라 생각한 외부 세상의 장점들은 그 색채를 잃어버렸을 터.
남은 건 그저, 밑도 끝도 없는 불안과… 막막한 현실뿐.

그 시절에도 조건은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물러설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절박함이라는 건, 쥐가 고양이를 물어뜯을 정도의 환경과 조건,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좀처럼 고개를 빼내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런 것들이 아닌 절박함은, 다들 가식과 거짓에 점칠 된 절박함일 뿐.
돈이 없다고 말하지만 배는 굶지 않는다.


당장 내일  밖으로 쫓겨나지도 않으며, 하루 이틀 지나 수술을  하면 목숨을 잃는 가족이 있는 것도, 한겨울 철에 보일러가 끊겨 덜덜 떨며 잠도 제대로 못 잔다던가, 노후화된 집에서 연탄이 없이 냉골에 전기마저 끊겨 몸을 웅크리며 버텨낸다던가.


신기한 건 어떻게든 사람은 살아간다는 거다.

지금이 최악이라 여기는 그 모든 것도, 어찌 보면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동시에 최고의 행복이라 여기는 그것이 누군가에겐, 더 없는 절망일 수도.


그럼에도.
결국 선택지는 주어진다.

 보려 눈을 돌리고 외면한다 한들, 결국 눈앞까지 재차 선택지가 들이밀어 진다.
그리고 그런 선택지조차, 유통기한이 있다.

지금  순간 밖에, 선택하지 못한다는  암담함조차… 모르고 넘어간다는 건….
에드릭이 상념을 내려놓은 채, 침묵을 흩어내듯 물었다.

“여기에 계속 머무르실 텐가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러나 바뀌기 위해선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
기존의 것을 떨쳐낼 텐가.
새로이 시작할 텐가.
그도 아님, 전부 다 집어삼킬 텐가.


여기에 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다는 건, 결국 다른 것들이 오답이 된다는 의미니.


그러니 선택지가 갈릴 뿐.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맞겠지.
그게 아니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오답과 후회가 넘쳐댈 텐가.


에드릭은 그러기에 정답 오답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동시에, 가장 중요한 선택지를 간과하거나, 흘려 넘기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그리고 자신에겐 별거 아니더라도, 만약 자신으로 하여금 누군가의 중요 국면이 도래하는 계기가 주어진다면… 적어도 훼방을 놓지는 말자고.

“며칠간은 머무를 생각입니다.”
“…며칠씩이나요?”
“왜요? 1년에 며칠간은 신경 써달라 하셨잖아요. 희망 사항을 충족시키려 해드린 건데, 다른 희망 사항이라도?”
“아니요… 그건….”
“급할 거 없습니다. 차분히 생각해두세요. 이곳에 머문다 치면 에사나로 하여금  보살피게끔 손을 써둘 것이고, 그녀가 부담스러우면 따로 제 여력으로 도움을 드리죠. 그리고, 이곳을 떠난다 치면…  군데 머물러도 좋을 법한 곳을 추천해 드릴 수도 있고요.”
“…….”

에드릭의 말에 그녀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들었다.

“올바른 답,  나은 답을 찾으려 애쓰지 마세요. 하고 싶은 거, 희망하는 쪽에 우선은, 생각을 해봅시다. 어릴 적에 어리광 많이 못 부리셨을 텐데, 자유롭게 됐으니 지금이라도 그래 봐야 나중에 한이 안 맺히죠.”
“…그런 건가요?”
“아무렴요.”




어차피 그녀도 그렇게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다.
이곳 세계에서야 성인 취급이지만, 우리 세계에선 아직 민증 나오기 임박한 시점이니… 음, 거기서 거기인가?

“…….”

맞나?

겉외모는 꽤 성숙해 보이긴 하지만, 서양인 특유의 특성 때문인지,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건지는… 흐음.




‘아무렴 어때.’

그런  일일이 신경 쓸 틈도 없고.


“…….”
“눈 조금 붙였다 쳐도 아직은 피곤하죠?”
“괘, 괜찮은데….”
“걱정마세요.”



에드릭이 차분히 그녀의 머리 위에다 손을 얻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 잡아먹으니까요.”
“예?!”

뿔을 차분히 쓰다듬어주자 몸을 흠칫하고 떤다.
흠, 귀엽긴 귀엽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이쪽도 발랑 까져서 벌써 그런 걸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급할 건 없지.’




하루 정도는, 멀쩡히 잠들게 해줘도 좋지 않겠나.


실제로 에드릭은 침대에 누운 그녀를, 의자에 앉아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으로, 그녀가 안정되게 잠들 수 있도록 붙든 손으로 체내 흐름을 조정까지 해줌으로써, 아주  쉬게끔 신체 리듬을 조정해주기까지 했다.



‘잠드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사내가 있다는  어마어마한 특권이지.’


여자만 보면 눈 돌아가서 덮치려 드는 뻐킹할 새끼들보다 훨씬 신사적이고, 멋지지 않나.

 하루라 쳐도, 이러한 인상은 선입견으로 굳게 새겨져, 에드릭에 대한 신사적 인상을 더욱 굳건히 다져지리라.


거기다 이미 반쯤 콩깍지가 씌인 상황이니, 게임으로 치면 일종에 경험치 버프 10배를 받은 채 레벨업을 위한 사냥을 하는 격이라 보면 된다.


여기서 에드릭이 어떤 식으로 그녀를 대하냐에 따라 그녀의 성향, 성격 등이 변화를 맞이하겠지.

난폭하게, 가혹하게 그녀를 육노예(…)로 만들었다면, 그녀는 가학적이면서도 음탕하고, 선정적이면서도… 아무튼 그런 식의 능동적 성향으로 돌변해 갈 터였다.

어느 의미로 삶을 주도적으로 살게 만들고자 하면 이게 좋을지도.
그러나… 그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돌이킬 수가 없어진다.

순수를 유지한다는 건,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중요했지만, 개인에게도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에드릭은 생각했다.

독하고, 단호하고, 목청 크고, 자기 주장 확고하고….
뭐 살아 가는데는 이런  아무래도  손해를 보기야 하겠지.
그러기에, 저런 성향들은 대체로 속병이 생기고, 타인에게 피해도 덩달아 주며, 이기적이게 바뀌게 되겠지만.

루다나가 아예 그쪽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어쩌면 자신 앞에서만 얌전한 척 애쓰는 걸 수도 있지.

그러나, 그게 뭐가 나쁜가.

좋아하는 이, 사모하고 연모하는 이 앞에선 좋은 모습, 바른 모습만을 보이고픈 건, 본능에 가까운 거 아닌가.
그게 점수를 따는 비결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시점에만 느낄  있는 애틋함, 초조함, 두근거리는  기분이란 게 있으니.

비록 이 모든 게 간접적이고, 반쯤 동떨어진 체험이더라도, 에드릭에게 이는 매우 중요했다.



“흠….”




이게 정말로 가상 현실 게임이었다면야,  정도로 디테일하게 타인을 배려할 필요는 없었겠지.

그러나, 현실이기에 느껴지는 실감, 체감.
그로 인해 상대에 대한 친애를 진심으로 가지며, 이를 공유하고 일방적으로 밀어 넣고, 주입 받을 수 있단 건… 참 남다른 체험이 아니겠나.

“오지랖은 아니지.”

따지고 보면 이기적인 거다.
진심으로 반하지도 않을 거면서, 상대로 하여금 진심으로 반하길 기대하며, 자신만 바라보길 은연중 기대하며 잘해주는 거니까.

지독하고, 이기적인 거다.

“…….”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든 루다나를 넌지시 내려다보며, 에드릭은 앉은 채로 멍하니 적막과 자그마한 소녀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이것도 음악 감상이라면 감상이려나.’



절정의 미소녀가 자신 앞에서, 편하게, 무방비하게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다.

…변태라 불러도  말은 없지만, 에드릭은 그 소리만으로도 꽤… 기분이 좋게 느껴졌다.


욕망하는 걸 바로 쟁취하는 것도 쾌락이 쩔긴 하지.
그러나 욕망을 억누를수록 뛰쳐나오려는 경향이 커지고, 그러기에 억누르고 억눌러서.

…막바지에 잠금을 풀고, 욕망이 터져 나오는  광경을 음미하는 거야말로,  다른 절정을 이루는 여락이 아니겠나.

에드릭은 참거나 인내하는 게 아니다.
더한 쾌락, 즐거움, 자극을 느끼기 위해, 이 모든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절차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


음주가무, 사치향락…  즐겨서 손해 볼  없지만 그게 질리면 어쩔 텐가.

그러니 권력자들이 가학적 성향으로 변질되고, 타인을 괴롭히고, 빼앗고, 탈취하고, 쟁취하며 악의적은 즐거움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걸 테지.

창고를 가득 쌓고, 타인이 자기 앞에서 재롱을 부릴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게 만들고….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보게끔! 떠받들게끔!



“…….”


근데 그건 좀… 유치하잖아?
초딩도 아니고.

아닌가? 그냥 내가 머저리인 건가?
뭐 아무렴 어떤가.
취향이 이러니, 알아서 스스로 존중하는 수밖에.
누가 뭐라 하면 후려 패버리면 그만이고.

사방이 뚫린  위에 올랐을 때, 어디로 가든 알 바냐.
애초에 오답이 없다 정의한 삶이다.
그러니, 어딜 가든 답을 찾아내거나, 만들어갈 따름이다.

그러면 된다.
지금도, 이후로도.
…죽어 없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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