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화 〉115. 숙제는 잘 풀어왔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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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라 하기엔 뭔가 산이 높다.
올려다보면 까마득한데 안개를 고려한다 쳐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유령 섬이 따로 없네.’
이런 곳에 멀쩡히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었다.
한 치 앞은 아니더라도, 열 걸음 이상부턴 기척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시야가 턱 걸린다.
심지어 공기도 뭔가 무겁고, 호흡도 원활하지 않은 건 둘째 쳐도, 전체적으로 감각에 혼선이 생겨난다.
덕분에 능력을 바탕으로, 어쨌든 안개인지라 능력을 통해 이를 자신의 영역화하는데 일조하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려울 게 없었지만….
‘묘하게 제어가 안 되네.’
심지어 안개도 소금기가 잔뜩 낀 바닷물로 비롯됐다기보다는… 뭐랄까. 부자연스러운데 천연적인 거라는, 실로 역설적인 형질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그 때문에 이쪽 제어가 덜 먹히는 걸 테지.
그럼에도 오감으로 헤아릴 때보다 최소 수배는 살피는 영역이 넓어졌다.
그거 하나로 꽉 막힌 듯한 감각도 비교적 원활해졌다.
고산지대도 아닌데 공기가 무거운 건, 안개며 습도 문제 때문인가 싶을 정도.
거기다 섬인데도 기암괴석과 산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곳 환경을 접하는 이들의 사고며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대충 짐작이 됐다.
‘바다라는 끝도 없이 넓은 공간, 그러나 안개로 뒤덮여 있기에 실체를 모르지. 한 치 앞도 분간 안 되지만, 세상은 끝도 없이 넓을 테고, 배를 타고 이곳저곳 들쑤시다 보면, 자연스레 세상 넓을 줄 알 테고.’
이런 환경에선 농사를 한다 쳐도 한계가 다분할 터.
사냥은 어떨까. 인구수가 적당하다면야 충분히 감당 가능하겠지만 넘쳐나기 시작하면 그조차도 불가능.
그 말은, 섬 내부에 이런저런 갈등이 빗어질 수밖에 없단 이야기인데, 여기서 천적 및 경쟁자의 존재 유무가 꽤 중요했다.
그게 아님 결국,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 식으로 이권 다툼, 쟁탈전이 벌어지며 그로 인한 경쟁 심화로 자체적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던가.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경쟁이 심화 되면 굳이 넓은 땅 위에서 치고 박지 않더라도 살벌한 분위기가 유지될 수밖에 없는 바.
특히 바닷사람들은 환경 때문에라도 험하다. 지상에 머무는 이들보다 기후 변화에 민감하고, 자칫 잘못하면 멀쩡했던 세상이 단숨에 지옥으로 돌변해 자신들을 뒤집어 엎어 놓으려는데, 긴장이 안 생길 수가 있을까.
그러기에 한편으로는 저항하려 든다.
원래 염병 떨면 뭐가 됐든 악이 받쳐 들이받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보다 여긴 어떻게 온 거냐?”
에드릭은 대략 네다섯 걸음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의 주위를 맴돌며 따르는 루넨브리스를 향해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우웅?”
마치 그걸 왜 물어보냐는 양 한 걸음 거리로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
녀석의 늑대 귀가 팔랑대며 역으로 호기심을 분출하는데, 에드릭으로선 조금 난감할 따름이다.
‘짐작이 안 가네.’
호위 및 수호 목적인가, 아님 감시 및 개입의 목적인가.
루넨브리스 본인의 의지인가, 시켜서 하는 건가, 둘 다인가.
아무쪼록 상정 외 사태라 추정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듯 싶었다.
그렇다고 녀석한테 힌트를 얻기도 그렇고.
“…….”
뭐 일단 이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이 다음이다.
여기서 대체, 어떻게 팀장님을 포함해 관련인을 찾느냐는 건데.
스마트폰을 통해 본사 사람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파악하려 해도, 이쪽은 다들 대외비 혹은 관여하거나 얽히지 않는 여지가 큰 탓일까, 다들 제대로 된 정보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에드릭의 인맥의 한계일지도.
본래라면 이런 불안정한 모험, 여정 같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발을 담그지 않느 게 그의 모토지만….
‘이건 중요하지.’
어쨌든 일생에 단 한 번이라 한들, 배우자를 찾겠다는 의지는 남녀를 불문하고 삶에 있어 가장 강력한 동기이자 목적이 아니겠나. 에드릭도 사내자식이며 남들 이상으로 잘, 행복하게, 멋지게, 만족스러게 살고픈 욕망 하나만큼은 확고했기에, 이 문제에 대해선 자신도 예외 없는 미개한 중생이란 사실 정도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시도하지 않으면 굴러 들어오지도 않는다.
배며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건 말 그대로 요행을 기대하는 것뿐. 그게 로또 당첨 기대하는 거하고 무슨 차이가 있을까.
‘게다가,’
이런 건 시기라는 게 있는 거다.
타이밍.
들키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들켰을 때 주춤하면 그 자체로 신선도가 떨어진다.
…냉동고에서 꺼낸 아이스크림 같달까.
넣어둔 시점엔 녹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상온으로 꺼내놓은 시점부터 매 순간 녹아들고 있는 거다.
그러니 다 녹기 전에 먹던가, 양도하던가, 다시 냉동고에 집어 넣던가 해야지.
그러나 현실은 그런 게 아니기에, 꺼내놓은 시점엔 반드시 결정 및 행동을 취해야 한다.
아주 운 좋게 녹기 직전의 아이스크림이 자발적으로 이쪽의 입안으로 진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이 과연 몇이나 될까.
“…….”
지리멸렬한 공상이네.
“루넨.”
“웅?”
“따라올 수 있지?”
에드릭의 몸이 허공에 붕 뜨기 시작했다.
안개가 무성하기에 반대로, 에드릭은 기존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난이도로 쉽게, 원활하게 공중을 활보할 수 있었다.
안개는 흔히 지표면에 뜬 구름이라 일컫는다. 구름과 안개의 생성 및 구성은 같으며, 어쨌든 둘 모두 본질은 물이라는 점엔 예외가 없다.
안개도 종류가 다양한데, 옅은 안개라 하여 박무(薄霧)라 하여 이건 크게 가시거리가 감소하는 형태는 아니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새벽 안개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보다 짙은 걸 농무(濃霧), 한자 뜻 그대로 짙은 안개, 자욱한 안개를 의미하며 이대부터 가시거리가 급격히 하락한다.
그 외에도 안개에 물기가 묻고 느껴지다 못해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우면, 정도에 따라 연무(煙霧)라 하며, 바닷가며 해안가 인근에서 발생하는 안개는 해무(海霧)라 일컫는다.
그리고 현재 에드릭이 느끼기에 안개 종류는 농무에 가깝되 해무와 연무가 뒤섞인, 아무튼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그런 안개였지만, 그러기에 이곳이야말로 에드릭은 다른 어떠한 지역보다 더한 권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라 자부했다.
그가 굳이 홀로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은 이유기도 했고.
‘접한 정보 자체는 몇 개월 전이니까.’
그가 전신을 안개화 할 수 있도록 고심하고 노력해 능력을 개발 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어차피 할 일도 당시엔 별로 없었으니까.
궁성 생활이라는 건 언뜻 보면 화려해 보이나, 극한의 비효율, 불합리투성이다.
덕분에 예법은 많이 늘었지. 카일론은 예법 자체가 간소하기 이를 데 없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소모됐다.
아르세이유에서 백화점 운영할 당시에도 예법 및 매너 훈련을 따로 했었는데, 구 제국을 포함해 공통권이라 대충 얻어 맞는 경향이 있었지만, 카일론은 완전 딴 세상 개념이기에 사실상 새로 배우는 거에 가까웠다.
…익숙해진 다음엔 대충 살기 시작했지만.
‘우선은….’
허공에 몸을 띄우고, 기척을 죽이고, 안개에 녹아들며 계속해서 고도를 높여갔다.
대체 이 망할 안개는 어디까지 가는 걸까.
루넨브리스가 못 따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살짝 있었지만… 뭐 녀석이라면 알아서 잘 따르겠지.
그렇게 오르고 오르다 수백 미터는 족히 올라감에도 여전히 안개가 짙다는 점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건 인공위성이 있더라도 못 살피겠네.’
얌체 짓 하기 아주 딱 좋은 공간이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고 올라….
드디어 안개가 옅어지는 일대에 도착.
수분 입자가 고체가 돼서 타닥 닿아 부서져 가는 게 몸소 느껴진다.
그보다 주변이 살짝 트이자, 마치 지면이 새하얀 구름으로 뒤덮인 것 같은, 실로 몽환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그리고 그 사이에 불쑥 솟아 있는 큼지막한 산이 하나.
‘…어메이징하네.’
혼자만 이질적으로 선명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그것은 검회색 느낌으로 굳건히 서있었다.
안개들의 도움으로 꽤 고도로 올라왔다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산 꼭대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심지어 꼭대기 부근엔 진짜로 구름 같은 게 뭉글대다 못해 얼어붙은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
왜인지는 몰라도 올라가고 팠지만, 더 이상 고도를 높이는 건 무리.
몸을 증기화 시켜 떠 날아가듯 올라가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지만, 익숙지 않은 짓이라 시도하기가 조금 애매했다.
왜 오르고자 하는가.
이유? 저기에 산이 있기에.
뭐 게임에도 그러 거 있지 않나.
멀쩡한 길 안 가고 굳이 산을 타고, 안 올라가져도 올라갈 때까지 점프키 연타하며 어떻게든 등산하려 드는, 뭐 그런 거.
생각해보니 오픈 월드 게임하는 내내, 그는 등산을 즐겼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그쪽 게임에서 발생하는 각종 메인 이벤트를 건너뛰게 되기도 했었고.
가도로 가야 하는데 산을 타고 타 지역으로 넘어갔으니까.
근데 그게 또 좋지 않나.
고작 산줄기 하나 넘었을 뿐인데, 새하얀 눈발이 휘몰아치며 하얗게 물든 주변 경관이 비경처럼 쭈욱 늘어져 있는 광경은….
“올라갈 수는 있는 건가.”
설마 저쪽에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 있다 해서 주변을 게임 맵 보듯 싸잡아 살피기란 무리였기에, 결국 에드릭은 다시 고도를 낮춰 루넨브리스가 자신을 쫓을 수 있게끔 거리를 조절해야만 했다.
“응?”
에드릭 자신은 아까 전 장소로부터 몇백 미터 떨어진 부근, 뭐 그 정도 오차 밖에 안 나는 부근까지 내려왔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려오기 무섭게 안개가 옅어지며 푸른 수림(樹林)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아니 섬에서 이런 곳이?’
대수림이라 하긴 부족하나, 녹음이 안개와 함께 뒤섞여 꽤 멋진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
무엇보다 나무의 짙은 존재감 덕에 이곳으 조금 더 공기? 산소가 풍부하단 느낌이랄까.
‘그보다 광합성도 못 하는데 잘도 높이 자라났네.’
아닌가. 광합성이 힘들기에 굳이 더 우거진 느낌으로 솟아난 건가.
거기다 인위적으로 뚫린 인도 비슷한 길이 놓여 있다.
포장은 안 돼 있지만 길을 터 둔 느낌은 다분.
그러기에 에드릭이 그곳에 딱 내려앉아 차분히 그 길 위에 발을 내딛자.
“멈춰라.”
기다렸다는 듯이, 안개 속에서 경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흠, 다행히 길을 물어볼 누군가가 등장해주셨다.
상대가 적의를 지녔든 어쨌든, 안 나와서 이 잡듯 뒤지고 다니는 쪽보단 이쪽이 훨 낫지.
그러기에 에드릭은 일단, 상대가 적대하는 방향에 이르지 않도록 순순히 멈춰선 채, 차분히 입을 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길을 좀 묻고자 하는데,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신지요?”
당연히 개소리로 취급되기 십상이지만, 이런 걸 밝혀서 굳이 손해볼 건 없었다.
적어도 에드릭이 여기서 일일이 생명의 위협이니 뭐니 경계하며, 더욱 참신한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심상치 않은 짓을 벌이지 않은 한은.
상대가 방심해도 좋고, 괄시해도 좋다.
경계해도 물론 나쁘지 않고.
어느 쪽이든 에드릭 자신은, 나쁠 게 하나도 없는 구도였다.
힘이며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 상대를 겁박할 능력이 있다는 게 이래서 좋다.
뭐든 간에 주도권을 잃을 염려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