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화 〉116. 이런 걸 기대한 게 아닌…데?
“흐음.”
수림에서 말을 걸어온 이의 안내에 따라 안쪽으로 인도됐다.
인간은 아니다.
안내인은 겉으로 보면 변온 동물에 가까운 파충류와 유사한 형태의 이족 보행 종족.
그러나 이조차도 지상이라 그런 거지, 실질적으론 어인, 물고기 인간에 가까운 형태였다.
…크툴루 신화에서 나올 법한 그거 말이다.
유심히 관찰하면 비늘로 보이는 것도 물고기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럼에도 이게 각이 지고, 투박해 보이는 연유는, 아마 물속이 아닌 지상 위를 활보하기 용이한 형태가 저것인 탓이겠지.
실제로 건조한 비늘 덕에 그의 주변 온도며 체내 기온 등은 무척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흔히 리자드맨이라 불리는 도마뱀 인간, 그리고 용인이라 불리는 파충류에 가까운 인외종이 있는데, 겉만 보면 그렇게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기에 이질감은 크다.
…애초에 그 활발한 아르세이유에서조차, 저런 종류의 어인은 눈 뜨고 찾아보기 어려웠으니까.
“허락도 없이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사연이 있나 보군.”
“…이곳 주변엔 머무는 이들이 적은 겁니까?”
“다른 섬은 어떨지 몰라도 이곳 주변에서 마음 편히 있는 이들을 몇 없지.”
그런가.
“찾고자 하는 이가 인간이라면 적어도 이곳 말고 다른 섬으로 가야 할 거다. 많고 많은 섬 가운데 목표한 이를 찾는다는 건 짧은 시일 내론 불가능한 노릇.”
“…방도가 없을까요?”
“나로선 잘 모르겠군.”
그보다….
“외부인임에도 의외로 경계하지 않으시는군요?”
“악의를 가진 이였다면 육지를 밟기 이전에 수장됐겠지.”
당연하다는 듯이 꺼림칙한 소리를 한다.
“많고 많은 대륙의 국가들이 이곳 주변을 얼씬 안 거리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별다른 과장이나 과시 없이,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푸른 비늘을 번뜩이며 앞서가는 그의 뒤를 따라, 점점 옅어져 가는 안개 사이로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들을 둘러보며, 에드릭은 계속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모르더라도, 그가 아는 이는 방도를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여 뒤를 쫓고는 있지만… 어떠려나.
“반대로 너야말로 경계심이 옅구나.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이 저 깊숙한 무저갱이거나 심연의 저편이라면 어쩌려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내 뒤를 따르는 거지?”
“그땐 뭐 어떻게든 되겠죠.”
자신감에 앞서 방도가 없다면 결국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경계만 일삼다 간만 봐서야, 원하는 걸 어찌 얻을 텐가.
호랑이 굴 안에 보물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어찌 됐든 들어가야지.
그나저나….
‘루넨은 아직 못 따라온 건가?’
아님 중도에 무슨 일이 생겼거나?
이런 식으로 합류 못 하는 일이 드문 건 아니기에 별걱정은 안 한다만….
‘루넨도 자기 안위를 챙기는 정도는 문제없겠지.’
인간의 형상일 때도 이미 어지간한 기사 나부랭이들은 맨손으로 두들겨 팰 정도다.
거기다 본체로 변하면 최소 그보다 수배는 강해질 테지.
거기다 센스도 좋아서 임기응변도 좋고.
이는 흑성 기사단과의 훈련, 그에 따른 평가로 고스란히 알려진 상황.
그조차도 녀석의 본심이냐 하면… 과연 어떠려나.
대략 한 시간 넘게 빠른 걸음으로 뒤를 따르고서야, 비로소 뭔가 사람 사는 곳 같은 구역을 발견했다.
집이라 해봤자 별거 없었지만, 수림 내부에 자리 잡은 걸로 보면 뭔가, 인간이나 여타 종족이 산다기보단 엘프들, 요정족이 사는 거처며 구역으로 느끼기 적합해 보이는 환경이었다.
거기다 여기도 우선, 당장 눈에 띄는 무언가는 아무것도 없었고. 다들 내부에 있는 건가?
“이쪽이다.”
나무 하나를 타고 날렵하게 오르는 그의 뒤를 따라, 슬쩍 몸을 가벼이 만들어 부양해 뒤를 따르자, 그가 새삼 이색적인 걸 목격한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린다.
“날 수 있는 건가.”
“아뇨. 그냥 몸을 가볍게 한 거뿐입니다.”
수기가 왕성하며 묘하게 습도가 높기에 맨몸으로 움직이기보단 이런 식의 움직임이 더욱 편리한 건 어쩔 도리가 없을지도.
뭔가 이곳은 환경 자체가 이상했다.
섬이라는 환경과 말도 안 되게 우거진 수림.
나무들이 많은 탓인가, 해수 특유의 소금기 어린 짙은 향이 수림 안으로 들어서자 청량한 향으로 뒤바뀌어 간다. 어쩌면 바다 냄새가 나무의 그것에 여과돼 다른 식으로 바뀌거나, 그냥 수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것들이 과다한 건지도.
결과는 같아 보이지만 둘은 환경적 요인 자체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무엇보다 여긴 볕도 안개에 뒤덮여 제대로 내려오지도 않는 곳. 그러다 보니 이끼를 비롯해 음습한 느낌이 더해지는 게 상식적으로 맞음에도, 마치 새벽녘 오솔길처럼 시원하면서도 으슬으슬한… 아무튼 그런 분위기며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어쨌든 큰 나무 위에 어쩐 영문인지 애완견을 길러도 될 법한 마당 딸린 집이 발견됐다.
어인족 사내는 무심히 집 문 앞까지 향하더니, 손으로 문을 두들겨댔다.
“케이센. 손님이다.”
잠시 뒤 문이 삐걱대며 오래 전 만들어졌음을 증명하듯, 낡고 헤진 경첩음을 내며 열렸다.
“손님? 여기에?”
“그래. 손님.”
아무래도 손님이라는 게 외부인, 외지인을 뜻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익숙지 않은 말을 들은 것과 같은 반응.
어인의 키가 상당했기에 문에서 나온 이가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가 슬쩍 옆으로 비켜서자 의외로, 털이 무성한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마저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저게 무슨 동물이었더라?
‘아.’
나무늘보, 맞나?
그렇다 쳐도 동물의 생김새를 닮은 거지, 손발을 보면 딱히 그 나무늘보 특유의 특징 같은 건 온데간데없어 보인다.
…늘어지지도 않고.
“여긴 무슨 일로?”
“내가 아나. 직접 물어봐라.”
그러곤 더욱 몸을 물려 케이센이라 불린 수인과 마주 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준 어인.
“귀찮은 짓을….”
혀를 차며 에드릭을 향해 걸어나오는 수인.
“그래, 무슨 용건인가?”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내심 일이 이렇게 꽉 막힐 줄은 몰랐는데, 이거 참.
“흠, 보아하니 짝을 찾으러 온 거군?”
“……?”
짝?
“아닌가? 맞는 거 같은데?”
“…….”
맞긴 맞지.
문제는 그걸 어떻게 알아냈느냐 하는 거다.
독심술? 사전 정보를 획득했다던가? 그러면 저 능청은 연기?
“당황하지 말게. 그냥 냄새가 나서 그런 거니까.”
“냄새요?”
“모든 수컷과 암컷은 각자의 짝을 찾을 때 특유의 향이 풍기기 마련이지. 음, 호르몬이라면 대충 알려나?”
“…….”
모르겠습니다만?
“수컷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그야 제가 수컷인 건 사실이니까요.”
“여기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왔고, 망설임이 없다는 것도 그 증거일 테지.”
“제가 누구 찾아서 암살하러 왔다거나, 뭔가 물어볼 게 있어 찾는다던가, 하는 경우는요?”
“그러면 오기 전에 수장됐을 테니 그건 더더욱 말이 안 되고.”
왜 어인하고 비슷한 소리를 하는 걸까.
“여긴 뭐 안 좋은 의도를 가지면 접근 불가능한 지역인 건지요?”
“섬에 위해를 가하거나 그쪽 구성원에 악의를 가진 이들은, 알아서 걸러지기 마련이지. 아, 물론 섬의 구성원이어도 섬에 악 영향을 끼칠 여지가 있다면, 그 또한 걸러지고.”
“…여기 해적들이 그렇게 악명이 높다던데, 그들은 그럼 죄가 없는 건지요?”
“죄를 논하는 게 아니야. 적아를 논하는 거지.”
“…….”
뭐 에드릭이 섬에 별다른 악의며 그런 의도가 없는 건 맞으니까.
“우선 이름이나 불어보게. 외부에서 쓰는 성명이 이곳 성명과 같진 않겠지만, 참고는 해둘 테니.”
“…그걸로 그녀한테 위해가 가해지는 경우는 없겠죠?”
“의심이 참 많군.”
인간다워.
하며 끌끌 웃는 수인을 향해, 에드릭은 마지못해 설명했다.
“멜크리우스, 라고 대륙에서 그런 이름을 썼습니다. 여성이고요.”
“여성… 젊은가?”
“그렇죠.”
“자네와 같은 인간이겠지? 흐음, 인원이 확 좁혀지는군.”
…얼마나 공통점이 적으면 인원이 확 좁혀지는 걸까.
“외부로 파견 나가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네.”
용케 또 속내를 읽어낸다.
그보다….
‘여긴 안으로 사람 안 들여 보내주나?’
차 한 잔이라거나, 최소 물이라도 한잔… 이런 매너나 개념이 아예 없는 건가?
딱히 필요한 건 아니지만 문 앞은 커녕 이젠 문 앞에서 떨어져 집 앞마당, 나무로 된 공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기분이 참으로 묘해진다.
“아, 그리고 직위가 나름 확고하다 들었습니다.”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있는 놈들이란 거니 그 점은 염려 말게.”
“…결혼, 약혼 문제로 불려왔다는 것도요. 대략 이곳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던 시기가….”
말하고 나니 쑥쑥 튀어나온다.
“흐음, 그 공통점을 추리면 딱 둘인데.”
거 봐라. 금방 찾게 생겼다.
그보다 이거, 너무 수월한 거 아닌가?
더욱 신기한 건, 말을 듣는 것만으로 그가 대략적으로 정보를 유추하고 있단 점. 기억력이 비상한 건가.
“각 가문의 안내인들을 불렀으니, 도착하면 이야기 나눠보게.”
“…부르셨다고요?”
“더는 필요한 게 없지? 그럼 이만 가보겠네.”
하고 문을 열고 후다닥 사라지는 나무늘보 양반.
“…….”
에드릭이 무심코 어인을 향해 이리 물었다.
“저 분 원래 저러십니까?”
“용건이 끝났잖나. 하루에 대부분을 늘어지는 이다. 이렇게까지 말해준 것도 훌륭한 배려지.”
“아하.”
나무늘보가 맞긴 했나 보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저희 통성명도 안 하지 않았나요?”
“어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아, 예….”
왜인지 좀처럼 이름을 묻지도, 누구냐며 따지지도 않더니… 이유가 있었다.
내 이름 알려줄 생각 없듯, 네 신분이며 목적도 딱히 알 바 아니다.
…신기한 족속들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