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9화 〉116. 이런 걸 기대한 게 아닌…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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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찾는 거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영역이 아주 광범위하진 않았기에 더욱.
다만 거리가 한산하고, 차만 오고 가는 광경은 다른 의미로 호러틱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지만, 이건 다분 상식이라 굳어진 인식에서 비롯되는 부조리 탓이겠지.
세상은 어둡기 그지없으나 비교적 조명이며 가로등이라던가,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 덕에 칠흑 같이 어두운 정도는 아니었다.
되려, 다른 의미로 상당히 보기 좋은 풍경이랄까.
“나무에서 빛이 나온다뭉멍?”
“…신기하냐?”
전선 하나 안 달려 있는데, 멀쩡히 선 가로등이라던가, 가로수라고 자리 잡고있는 것에서조차 빛이 뿜어져 나온다. 자체 발광인지 그러한 조형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택시라도 잡아 타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몸으로 때우기로 결정.
그렇게 30분 가까이 건물 사이를 지나다 짜증 나서 옥상으로까지 올라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어 다니니, 금세 도착하더라.
“흐음….”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큰 부지에 자리 잡은, 세로보단 가로 방향으로 자리 잡은, 광대한 영역의 건물이었다.
일단 입구 쪽으로 접근하자, 문 앞 인근에 기계로 된 사족 보행의 기계의 얼굴 부근에 뚫린 구멍 사이로, 라이트가 번뜩 켜진다.
[이곳은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분은 통과가 불가합니다. 용무를 말씀 부탁드립니다.]
“…….”
어쩐담?
에드릭은 고민 끝….
“허가의 기준은?”
[고유 출입 코드를 제시해주셔야 합니다.]
“흠….”
잘은 몰라도 일단 스마트폰을 꺼내 슬쩍 내밀어봤다.
그러자 얼굴 부근에서 스캐너 비슷한 빛이 한 차례 스마트폰을 비치더니.
[예약 및 허가받지 않은 코드입니다. 착오가 있으시다면 다시 한 번 출입 코드를 발급받으시길 권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무시하고 그냥 들어가면 어떻게 되려나.
“코드를 받는 방법은?”
[발급 권한은 본처의 주관 사항이 아닙니다.]
“알아. 그러니까 어디서 누구한테 신청, 요청해 발급받느냐 하는 걸 묻는 거다.”
[질문의 의도는 이해했으나, 답변 불가합니다.]
“…….”
뭐가 이리 빡빡하냐. 귀찮게….
에드릭은 우선, 혹시나 싶어 선배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용케 또 연락은 가능했는데, 심해? 아무튼 바닷속이라 해서 통신이 안 될까 걱정했으나, 잘만 됐다.
이거 하나로 한 가지는 또 분명해졌다.
‘이 또한 오버 테크놀로지.’
아님 내가 모르는 단순한 뭔가라던가.
선배는 자신도 뭘 모른다 말했으나, 일단 알아보겠다며 기다리란 메시지로 답신했다.
“흐음.”
이러고 있기도 그러니 어디 둘러나 볼까 싶지만, 솔직히 둘러볼 장소가 딱히 없었다.
‘휑해.’
심각할 정도로.
마치 기계 이외엔 무엇 하나, 생명체가 없는 듯한 기분이 들 지경.
건물 안에 머무는 이들이 대다수겠지만, 전체적으로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없는 식인지라, 빛만 뿜어져 나올 뿐, 무엇 하나 파악할 수 없었다.
어느 의미론 프라이버시 수호 목적으론 적절한 조치이긴 싶지만….
‘삭막함은 더해진다만.’
어떻게 오는 내내 단 한 놈이 얼씬대질 않는 걸까. 신기함을 떠나 좀 으슬으슬했다.
얼마 안 가 선배에게 문자가 다시 왔다.
결론만 놓고 보면.
[임시 코드 확인, 로비 한정 입장 허용합니다. 통과하십시오.]
“로비라….”
뭐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어디냐.
그렇게 기계의 배웅인지 감시인지 모를 무감정적인 시선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홀, 적막하게 내려앉은 침묵이 불빛과 함께 재가동되듯,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 생기조차 전자기적 활동들에 불과했지만.
데스크 쪽으로 접근하자, 입구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기계 로봇이 얼굴 구멍을 반짝이며 전자음으로 물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허수계 통합 물류 센터 遐遐06442bu 지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허수계 통합 물류 센터? 거기다 저 이해 못 할 지점명은 또 뭔데?
“내부 관계자 미팅을 위해 왔는데… 확인 가능한가?”
[성함 및 직함 명을 말씀해주십시오.]
“…….”
무심코 루넨브리스 쪽을 힐끔 바라보곤.
“멜크리우스 란 이름을 지닌 여성은 있는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흠….”
잠시 고민 끝에.
“윤씨 성을 지닌 여성, 직함은 팀장…이다만. 아, 외적 지원 탐방 보조 및 해결 부서 팀장인데….”
[확인 완료. 담당자에게 연락 후 통과 허용 여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대략 2분 정도 지났을까.
[확인했습니다. 6번 입구로 들어가 19번 엘리베이터를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
시키는 대로 데스크 쪽을 지나 6번 입구로 들어서자, 19번이라 쓰여진 엘리베이터 입구가 활짝 열려 환하게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건 뭐 회사 들어가는 느낌인데.’
루넨브리스가 묘하게 얌전한 건 분위기 탓인지, 그도 아니면….
‘가만? 근데 대동해도 되는 건가?’
혹시나 싶어 녀석을 바라보자, 뭣 모르고 따라오는 눈치다.
‘…알아서 거르겠지.’
어쨌든 녀석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
문이 닫히고, 3초 정도 지나 문이 열리자, 어이없게도 주변 경관이 바뀌어 있었다.
‘……전혀 올라가고 내려간 기미가 없었는데.’
뭐지? 차원 이동기냐?
어쨌든 엘리베이터를 나서자 마찬가지로 서 있던 기계 로봇이 얼굴 방향에 붉은 등을 반짝이며 제동을 걸어왔다.
[애완 종족은 따로 맡겨두시길 권장 드립니다.]
‘애, 애완 종족?’
동물도 아니고…?
“루넨, 저쪽 가 있으렴.”
“어째서냐뭉멍?”
“가면 맛있는 거 줄거야.”
“가겠다뭉멍!”
뭐, 알아서 처리하겠지.
…이러니까 뭔가 나쁜 짓하는 거 같지만, 기분 탓일 거다.
룰루랄라 하며 기계 로봇을 따라 이동하는 루넨브리스.
그러자 녀석이 지나쳤던 입구의 투명 문이 닫히고, 이어 반대편 투명 문이 오픈됐다.
“체계적이어서 좋아.”
되려 이쪽이 부담 안 돼서 좋다.
어쨌든 복도를 따라 쭈욱 나아간다.
잿빛 카펫이 틈새 없이 늘어진 복도는, 뭔가 어긋난 것도 같고 뒤틀린 것도 같지만 용케 걷는데 지장은 없었다.
공간이 휘어지는 건 기분 탓은 아닐 거다.
‘그냥 여기 자체가 제정신이 아니네.’
보다 보면 뇌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똑같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뭔가 봐선 안 되는 걸 보는 기분?
애써 그 기현상을 무시한 채 나아가던 중… 문제는 어디가 목적지냐 하는 거다.
복도는 무한정 뻗어가는데, 정작 문은 널려 있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안 간다.
‘설마 여기서 헤매거나 미아가 된다거나….’
혹시 이 모든 게 공명의 함정?
“…….”
개그하나.
실제로 계속 걷다 보니, 특정 문이 번쩍이더니, 갑자기 공간 째로 문이 있던 방향이 뒤틀리며, 그 문이 정면에 떡하니 자리 잡는 게 아닌가.
이런 건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데.
“스펙타클해.”
감탄스러운 건지 혐오스러운 건지, 난해한 건지 스스로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헷갈렸다.
공간 자체가 사람을 골리는 느낌인데, 그게 대단히 을씨년스럽고, 음습한 느낌을 받는다.
바닷속이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어쨌든 떡하니 코앞까지 당도한 문을 침을 꿀꺽 삼키고 열자.
“흠.”
안은 평범한, 그것도 상당히 넓은 규모의 사무실 공간.
그것도 홀로 쓰기엔 대단히 기괴할 정도로 넓어서… 뭐하는 곳인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바닥은 전체가 파란 카펫이 깔려있었고, 책상 데스크는 마치 칠흑처럼 어두웠기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생각 이상으로 큼지막한, 새하얀 노트북.
그리고 그걸 두들기고 있는 건…….
“뭐해, 안 들어오고.”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멤브레인 키보드 자판을 타다다닥 두들기며 그리 권하는 윤 팀장.
에드릭은 크나큰 위화감을 느꼈다.
‘본체잖아?’
아바타가 아니다.
현실에서 보았던 팀장님 모습 그대로.
특유의 옷차림도 여전.
그보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치 수년 정도 못 본 듯한….
아닌가? 그보다 더 오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은 남색 머리칼.
그 아래로 새하얀 피부와, 푸른 두 눈이 언제나 그렇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짙은 속눈썹에 드리워진 모습은, 틀림없는 그녀.
짙은 블랙 와인 색상의 자켓과 스커트로 구성된 투피스 정장.
상의 안은 연분홍색 블라우스가 적절히 녹아들어 있는 그 모습.
그것은 분신도 쌍둥이도 단순 인형 같은 것조차 아니었다.
말 그대로 본인 그 자체.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대체 왜 그녀 본체가 여기에?
아니 그보다 에드릭 아바타로 현실까지 오는 게 가능은 한가?
그 반대는? 그녀가 이쪽 세계에 본체로 왔다? 이건 가능하고?
멜크리우스란 이름을 달았을 때의 외모나 아예 다른 아바타를 연상했으나, 이건 대체… 뭘까 싶었다.
―타다닥! 탁!
이윽고 키보드를 두들기다 엔터 키를 경쾌하게 탁치며 작업을 마무리 지은 양, 노트북을 닫은 그녀가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 차분히 에드릭을 주시해왔다.
웃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차갑고, 한편으론 긴장감이 맴도는 듯한….
“자, 바로 본론으로 가보자. 여기 온 용건, 목적. 그리고….”
뭘 얻고자 하는지, 네가 무얼 포기할 수 있는지 등도.
“전부 짚고, 넘어가 보자. 시간 난 김에.”
그녀는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아마 알겠지.
알면서 그러는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불안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