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90)화 (390/454)



〈 390화 〉117. 꿈도 낭만도 없는….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지만….
뭐랄까, 예상보다 훨씬… 막막했다.



‘시뮬레이션은 수십 차례 해봤잖아?’



다만 예측이며 예상  어느 것도 이번과 유사한 전개는 들어 있지 않았기에, 긴장인지 당혹인지 모를 심경으로 에드릭은 차분히 감정을 추슬렀다.


“전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작은 마이너스.
본래라면 이런 유약하기 이를  없는 헛소리를 내뱉어선 안 됐음에도, 좀처럼 패기라던가, 평소처럼 여유를 부려대기가  껄끄러웠다.
이건 뭐랄까, 생리적으로… 힘들다?



“배워 생각지 아니하면 망할 것이오, 생각하되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로울지니.”
“…….”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이다.
명언? 격언?
아니, 이 경우엔….




“학이불사망 사이불학태(學以不思亡 思以不學殆). 논어 맞지요?”
“역시 유교의 나라답게 이런 쪽으론 빠르게 받아넘기네요?”
“우연에 일치입니다.”



진짜다.
애초에 암기력은 쥐약이고.


저건 그나마, 논어 내에서 머릿속에 확고히 박아둔 내용  하나니까, 그나마 바로 끄집어 낸 거지.

에드릭은 사서삼경을 훑어본 정도지, 그걸 깊게 파고든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 중 기억해 둘 걸 추려서 가끔씩 살피는 정도?

 와중에도 비중의 대부분은 사서인 논어와 맹자, 그 다음 중용 정도일까.
그러자 묘하게 당장 필요한 문구가 떠올랐다.



“행원필자이 등고필자비(行遠必自邇 登高必自卑).”



에드릭이 그리 말하자, 윤미라 팀장 또한 잠시의 텀도 없이 곧장 이에 대한 풀이를 입 밖에 냈다.

“먼 곳을 가고자 하면 필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며, 높은 곳을 오르고자 하면 필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이다. 중용이로군요.”
“…….”



의외라면 의외랄까.



“그걸 지금 언급한 이유는?”
“지금 당장 해야  게 뭔지를 떠올린 겁니다. 겸사겸사, 말씀하신 내용을 토대로 주고 받음의 예를 실천한 거고요.”



학문의 높낮이를 겨루고, 나누고, 주고받음은 이쪽 업계에선 흔해 빠진 삐리리니.
늙고 병든 유교 드래곤들이 좋아할 개 버릇이다.


“어린아이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든 그들이 무엇이라도 손에 넣을  있게 내버려두는 거라 하죠.”
“…이번엔 루소입니까.”
“신기하네요. 에드릭이어서 두뇌 기능이 본체일 때보다 기민하게 돌아가는 건가요?”
“교육은 기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데 있다고 하지요. 전부 본사 교육 및 연수의 덕이라고 봅니다.”
“그 말도 루소가 한 말이죠?”


교양 넘치는 주고받음이다.
한편으론 겉치레가 지나쳐 낯짝이 절로 부끄러워질 지경이지만.


이것도 나름 중2병이라면 중2병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 상위 호환에 해당할 터.
그러니 이 경우, 고3병이라 해두자.


“승자는 실수했을 시, 자신이 잘못했다 말하며, 패자는 실수하면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핑계를 댄다 하던가요? 승자는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하지만, 패자는 적당히 얼버무린다는데… 꽤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단 자각이 들지 않나 모르겠군요?”
“…….”



이번엔 무려 유태 경전 ‘디 아스포라’ 내용인가.
살짝 눈을 치켜 뜬 에드릭이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누구의 눈도 두려워 않고, 누구의 혀도 의심치 않는 것이 순진성의 가장  특권이라 하였죠. 그걸 본받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할 따름입니다. 알지 못하고선 바랄 수 없다 하지만, 알아버렸기에, 바라게 되었고, 그런 만큼… 믿음을 가지려 노력할 따름이지요. 믿음을 가지는 건 곧 날개를 다는 것이란 말처럼요. 반대로 믿음이 고갈된 사람만큼 비참한 인생이 없단 말도 있잖습니까?
이스라엘에게 골리앗은 너무 거대해 죽일 수 없는 존재였지만, 다윗에게 골리앗은 너무 크기에, 빗나갈 수 없는 존재였다고도 하지요.  심경이 이와 같습니다.”



영국 문학가 새뮤얼 존슨의 명언과,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명언, 그 외에도 몇몇 말들을 첨가해 하나가 아닌 종합 선물 세트로 문구를 구성해 읊어봤다.


품위 있고 격조 높은, 교양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언어 구사란, 따지고 보면 말을 각지게 하든 쭈욱 늘리든 부러뜨리든, 결과적으로 상황과 환경에 맞게 이를 테트리스 마냥 잘 우겨 넣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도 티키타카, 상대가 그럴 역량이 기본은 갖춰져야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거지만.



“뭐 좋아요. 교양이 생각보다 풍부하다는 건 잘 알겠네요. 그 점은 매우 만족스럽네요.”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분 만족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




아무튼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에드릭은 그게 좀처럼 추측이 되질 않았다.


“다 재끼고 본론으로 가보자. 자, 다시 한번 묻겠는데… 나하고 교양 상식 겨누자고 온 게 아닌 건 확실하지?”
“…당연하신 말씀을.”

그녀가 자신을 대함에 있어 말을 이토록 단호히 놓은 예는 적지 않다.
사적으로야 한두 번 그런 적은 있지만, 그조차도 상황에 맞춰 흘러나오듯, 다분 장난기 어린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 아니… 당장 여기 들어온 직후서부터 그녀는 주도권을 잡으려는 요량이었는지, 어쨌든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적절한 위압, 분위기 경직을 주도하며 상사로서, 윗사람으로서 단호히 말을 까버렸다.

그리고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예컨대 그거다.



‘나도 널 편히 대할 테니, 너도 본심을 털어놔라.’




헛소리하지 말고.

아마 뭔가 있어 보이게 논어며 루소 문구를 논한 건, 에드릭 자신의 두뇌 회전 및 긴장 완화를 다분 의도한 걸 테지.

실제로 처음 들어섰을 때보다, 에드릭은 한결 편해진 상태였다.
긴장하면 보통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닌지도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다.

그러기에 호흡 조절이 불가피한데도, 그걸 눈치 못 채서 그 자체로 신체 밸런스가 무너져감에도, 끝까지 눈치 못 채다가 신체 상태가 위태로울 때쯤 돼서조차, 긴장으로 컨디션이 무너졌다 착각한다던가.


뭐든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다.

익숙지 않은 상황, 환경으로 심박수가 빨라지고, 혈압이 평소와 다른 흐름을 띄는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러나 호흡만 어쨌든 제어하면, 기본은 간다.
괜히 크게 심호흡하게 함으로써, 평정 및 침착을 유도하는 게 아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를 느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

그런데도 막상 입 밖으로 끄집어내려니, 여간 심각한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고백이란 걸 작정하고, 작심하고 해본 적이 있긴 했던가?
단순히 헌팅 목적으로 사탕발림, 입을 놀리고 혀를 놀리는 거하곤 심적 부담이, 무게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거나 그냥 해주십시오.”
“…….”
“…….”



응? 뭐지?  갑자기 이런 개소리를 직구로 쏟아낸 거지?
아니, 이렇게 멋대가리 없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흠.”




차마 반응을 살피기 무서워 애써 시선을 주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대 반응이 궁금하긴 마찬가지여서 별수 없이 에드릭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윤미라 팀장에게로 시선을 줬다.



“그게 끝인가?”
“…….”



전~~~혀 동요하거나 어색해하거나 당혹스러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아니, 이미 여기까지 온 시점에 어떤 개소리를 할지는 다 알고 있었을 테니까, 되려 여기서 과장되거나 과민 반응? 과잉? 아무튼 그런 모습을 비치는 쪽이 되려… 이상하려나?

“그럼 이쪽에서 질문. 왜 그런 마음을 품게 됐는지부터 이야기해보는 건? 어쩌면 그 감정이며 기원 등이 누군가에 의해 형성됐다거나 혹은 상황과 환경, 여러 것들이 총체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유도했다거나 하는 등의, 그런 의혹은 없나?”
“…….”




무슨 의도로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뭔가 해냈다 하고 내심 생각하던 게 전부 물거품이 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오히려 그거 고백 한 번으로 손자 손녀를 떠올리는 거야말로 성급함을 떠나… 좀 문제가 있는 거겠지.

그래, 차라리 이게 났다.
마른침을 삼킨 에드릭이 잠시간 머리를 굴리다 결론 내린 내용을 이야기했다.

“전혀요. 만약 그런  있다 치면, 팀장님께서 그러셨다고 보는 게 맞겠죠.”
“흐음, 그건 또 흥미로운 접근이군.”



고백 현장의 그 으리으리? 쌉싸름? 달짝지근?


아무튼 그런 것과 뭔가 오글 대고 움츠러들고… 별의별 뭐시기로 낯부끄러워야 했던 이 상황이, 좀처럼 그런 분위기를 일절 허용 않는 것처럼 냉정하게, 차분하게 이어져가는데, 이쯤 되면 취업 면접 볼 때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퍽 화기애애하진 않았다.


‘그래서 긴장감은 나날이 줄어가고 있다만.’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에드릭으로선 되려 편했다.
이런 분위기는, 이쪽이든 저쪽 세계에서든 늘 겪어왔던 분위기니까.


에드릭으로 살아가며, 아바타라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발생하는 모든 게 어딘가 동떨어진 느낌으로 체험하고 체감하고… 그런 건 전혀 아닌지라 언제나 직접적으로 모든 걸 감당하고 극복해야만 했기에, 모든 건 실전적이며 실질적인 시련이자 업무에 연장.

그러기에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하는, 왠지 그래야만 될 거 같은  흐름은 썩 나쁘진 않았다.



‘낭만이 없어서 좀 그렇지만.’


뭐 이 나이 먹고 백마  공주님이 찾아오길 기대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려나.
에드릭으로선 어떨지 몰라도, 저쪽 세계의 안  씨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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