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91)화 (391/454)



〈 391화 〉117. 꿈도 낭만도 없는….(2)

“그러면 이제 선택을 해야지.”



잠시 상념에 젖어있던 차였다.
그녀가 훅하고 중요한 용건을 끄집어냈다.



“날 제외하고, 모든 걸 포기할 수 있겠어?”
“……정확하게 모든 거라는 게, 어떤 걸 의미하는 겁니까?”
“그 말 그대로야.”

그녀가 차분히 설명했다.

“우선 현실에서의 너. 안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왔던 모든 것.”
“…….”

그건, 어느 의미로 카일론 왕성에 입성한 시점에, 어떤 식으로든 각오를 했었던 부분.


그렇다 쳐도 결국, 완전하진 않았다.
그러기에 심각성이랄까, 사안 자체에 대해선… 조금은 심각성을 덜 느낀 감도 있었고.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가지를 더 추가했다.



“그리고, 에드릭으로서 얻어낸 모든 것들.”
“…….”
“전부 다 포기할  있겠어?”


굉장히 무거운 주제였다.
솔직히 장난인가? 단순히 시험해보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전부 포기한다고 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안이 단순한  아니야. 그냥 현실상에서 손을 놓으라는 게 아니야. 내가 요구하고자 하는 건, 네가 그 이름으로서 누려오고 겪고 느끼고 실감해왔던 모든 걸, 내려놓으란 거야. 거기엔 인연도, 기억도, 성과며 결실도, 전부 포함돼 있어.”
“…진심입니까?”


기억? 인연? 아니, 그게 가능은 하고?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그 정도가 아니면, 내가 믿을 수가 없거든.”
“…….”
“어때? 모든 걸 포기할 정도로, 네가 나에 대한 열망이 강렬하다고 봐? 네 그 애정이며 친애라 자처하는 그건, 어느 의미론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아 있을 거라 보는데. 하나는 포기할 수 있지만 전부는 힘겹지. 그걸 자처할 여력이, 네게 있을까, 과연?”
“확실히… 어려운 문제네요.”
“생각할 시간은 없어. 여기서 결정을 내려. 나가면 이후, 다신 이와 같은 기회는 없을 거야.”
“…그건 또, 엄청….”



에드릭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시험이라 치면 그냥 일단 질러봐도 좋을지도.
그러나 질러봤을 때, 실제로 그렇다 치면… 그게 가당키나 한 노릇인가.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한다?
…오히려 그쪽 메리트가 갑자기 대폭 상승한 기분이 드는 건 무슨 연유일까.

저울이 갑자기, 기울었다.
그녀를 얻고자 한다면,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단다.


그걸 전부 내려놓았을 때, 자신이 뭐가 될지는 솔직히 제대로 실감? 예측이 되진 않았지만… 애초에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포기할 정도로, 그녀의 가치가 내게 필수불가결한 요소인가?


‘그건, 아니지.’


그래, 그건 아니야. 절대로.
부모님과의 인연과 현실 상의 인연들을 전부 내려놓는 건… 어떠려나.

적어도 부모님께 손주나 손녀라도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무감 같은  가지고 있다.

친구며 아는 애들이야… 솔직히 당장  봐도 무방하고, 그게 10년 차가 된다 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지도.

하지만….

에드릭으로서의 삶은 어떠려나.
여기서 겪고 누려왔던 모든 것들은….
그로 인해 얻어왔던 인연과, 누려왔던 것들, 그 외에 결실들도….

“…….”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보면, 이건 수지타산 자체가 맞질 않는다.


그녀가, 내 전부를 포기할  있을 정도의 존재라 하더라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요소다.

애초에 자기를 포기한 시점에, 그녀를 원하며 갈구했던 것조차 사라진다는 건데, 이게 앞뒤가 맞는 요소인가?

그녀를 추구하고 갈구해왔던 나 자신조차 잃어버린다는 건데, 설혹 얻는다 쳐도 이게 진실 된 걸까?


“어려울 건 하나도 없어. 등을 돌려서 여길 나가는 거야. 그러면 우리 관계는 그대로 이어지겠지. 너는 이곳에서 무수한 인연을 쌓아왔어. 그리고 현재엔 무려 카일론의 차기 여왕의 부군이기도 하고. 그녀는 심지어 관대며 매력적이기까지 하지. 강대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무수히 많으며, 당장 원한다면 네 독립적인 나라를 세우는 것조차 너는 가능해. 실제로 그걸 위해서 중립 지대에 영지를 꾸리고 있잖아? 무엇이 아쉬워 그 많은 걸 포기하면서까지, 날 추구하려 들지? 그건 너무 아쉽지 않나?”
“…….”


오히려 저렇게 말하니, 뭔가 의구심이 치민다.

그러나 그녀가 이야기하는 건 전부, 그녀가 했던 말이 사실이란 전제로 놓고 보면, 죄다 맞는 말들.

예컨대 그녀는, 선택을 수월하게 하게끔 장려하고 있는 셈이다.

네 잘못이 아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는 식으로.




“하아.”



쉽지 않네.


단순히 모든 직위와 권리를 내려놓으라 했다면… 그래,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에드릭의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놓으라 했어도… 그래, 거기까지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라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의 자신마저…?
이러니 사안의 심각성이, 느껴지는 위기감이 차원을 달리했다.
목에 칼이 들어온 게 아님에도, 긴장감에 입안이 바싹 말라갈 정도.

“겁이 많다는  그만큼 신중하고, 무모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거지. 평소대로 한다 치면, 여기서 해야할 선택은 뻔하잖아?”

어느 의미론 얘를 달래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까마득한 연상의 누나가, 자기 좋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는 투.



“골 때리네요.”



차분히 숨을 고른 에드릭은.

“기억을 잃고,  존재를 비롯해 모든  잃는다 치면, 제가 팀장님을 얻게 되는 건가요?”
“그걸 얻었다고 정의할  있다면, 글쎄.”
“확실하게 말씀해주시죠. 무엇보다… 얻었다 쳐도… 팀장님 자신이 저에 대한 애정이며 친애의 감정을 품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 아닙니까.”
“그럴지도.”
“…이러면 너무 불합리한 조건 아닙니까? 애초에… 이걸 거래랍시고 제시한 거 자체가 형평성을 떠나 그냥 좀….”
“원하는  얻고자 하면 뭐든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 그게 싫다면 포기하는 수단도 선택지에 추가해야 할 것이고. 포기하기 싫다면, 결국 어쩔  없는 거잖아? 뭘 망설이나? 나와의 인연은 직장 상사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을. 넌 아쉬울 게 없어. 그저 내가  이리로 데려오고, 선도한 거에 따른 선망이 흔들다리 효과처럼 네게 착각을 불러오고 있을 뿐이지. 따지고 보면 그게, 첫 사랑이라면 첫 사랑일 테고. 맞아 틀려?”
“…….”
“무언의 긍정으로 받아들이지.”



생각해보면 터놓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긴 했었나 싶었다.


술자리며 회식이며, 그 외에도 여러 차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단둘이 있을 때조차, 의외로 난… 그녀의 진심이며 진의를 무엇 하나 알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좋아한다고 느꼈다면, 이건 말 그대로 반한 게 맞다.
사랑엔 이성적인 논리나 공식 같은 게 없다는 말이 있다.

좋아하게  이유, 개연성, 맥락, 인과.
그딴  타당해야 뭔가 앞뒤가 맞고 어쩌고….

하지만, 그걸 일일이 따지는 이 가운데 과연 몇이나  논리며 이론의 형태에 맞춰 누굴 좋아하게 되고, 어떤 식으로든 사귀는 단계로까지 이어졌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근데… 이거 미연시로 치면 공략 부재로 인해 배드 엔딩으로 직행하는, 그런 흐름인 건가?’

무심코 그걸 떠올린 것도 개그다만.
조금  확실하게, 지속적으로… 올바르게 공략이란  시도했으면… 지금보다 나은 선택지가 주어졌을까?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적어도 이 선택지는 그녀가 돌발적으로 정한 게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 예감? 아무튼.



“자, 빨리 선택하시지? 이쪽도 시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니까.”
“세상에 절대적인  없다지만… 제가 여기서 도로 나간 뒤 다음에 다시 이런 기회를 맞닥뜨릴 상황이, 정말  차례도 있을 수 없는 겁니까?”
“응. 그거 하나는 확신을 담아 말해줄 수 있어. 이번이 내게, 프로포즈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야. 시간이 꽤 넉넉하게 주어졌었잖아? 그 시간을 제대로  살린 건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지?”
“…….”

뭐, 따지고 보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만약 그녀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면….


변명이야 수 시간, 수일 내내 입 한 번 안 쉬고 놀릴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이건 시작부터 불리한 전투였다.
그걸 충분히 자각하고서, 여기까지 온  아닌가.

‘하아.’



그렇다 쳐도 쉽지 않네.
좀처럼 침착하기가 어려웠다.

가슴이 뛰는 건 둘째로 쳐도, 눈앞이 암담해진달까.
언제 자신이 이토록 집착? 애착 같은 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되려 현실에 그닥 관심도, 뭣도 없으며 그러니 집착한다던가, 애착을 가질  거의 없다 생각했는데… 이 지경이 되니 별 것들이  떠오른다. 주마등도 아닌 주제….



“간단하잖아. 입으로 답을 하건 행동으로 답을 하건. 혹시나 제3의 선택지를 떠올리려 하는 거 같은데, 예외는 없어. 그러니 기개를 보여라. 때때로 원하든 원치 않든,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지. 그게 지금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가진 게 별로 없다고 여태껏 생각해왔지? 그러나 정작 잃어야되는 시점에 오니 어때? 전혀 아니지?
“오히려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덜어낼 엄두조차  날 거야. 안 그래?”
“…그렇네요.”

에드릭은 숙고했다.
시간도 얼마 없다.
그러나 걸린 사안은 너무나도 중대했다.

그렇기에.
 10초만 더 고민하기로 했다.

그렇게 10초 뒤.



“동전 하나 주시겠어요.”
“…설마 그거 던져서 결정하겠다고?”
“저는 겁이 많아서 제 스스로 책임질 뭔가를 제 스스로 선택하진 못하겠습니다. 저한테는 양쪽 다 중요합니다. 이거 하나는 진심입니다. 그러니… 제가 선택하길 포기하렵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비겁함을?”
“아뇨, 비겁한 게 아닙니다. 뭐가 걸리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오히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취한 겁니다. 어느 쪽이 걸리든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후회도 안  거고요. 그러나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면, 이건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후회가 남습니다. 그러니… 제가 선택 않고, 주어진 결정 하나만 보고, 그것만 결정하렵니다.”
“…단순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은 윤미라는,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 하나를 에드릭을 향해 손가락을 튕겨 내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적절한 속도로 다가오는 동전을 가벼이 낚아챈 에드릭은.

“후우! 그러면 일단….”

툭하고 동전을 높게, 수직으로 띄운 에드릭.
이윽고 떨어지는 동전을 바닥에 추락하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드릭.

“아.”


그러다 뭔가 떠오른 건지, 무심코 손을 들었다.


“그나저나 어느  앞이고 뒤죠? 아, 다시 던질게요. 그거 우선 정해야 할  같아서….”
“…….”

긴장한 건지, 되려 긴장감이 덜한 건지.

피식 웃는 윤미라를 보며, 에드릭은 가벼이 코를 훔쳤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래,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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