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93)화 (393/454)



〈 393화 〉118. 만약에….

인간을 정의하는 건 무엇인가.
과학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추상적이든 직접적이든 뭐든 간에.

인간을 지칭함에 있어 그것이 인간이란 종을 의미하는지, 인간 개개인을 의미하는지, 그런  분명히 하지 않으면 답은 엇갈릴 수가 있다.


바늘구멍에 실을 넣는 것은 철저해야만 한다.
정확하게, 뚫린 구멍을 향해 실을 집어넣어야만 한다.
조금만 빗나가서도 안 된다.

이렇듯 세밀하고 세세하게 짚고 넘어간다 치면, 거시와 미시 세계는 극과 극을 내달린다.

현재까지 밝혀진 양자역학에 따르면 자연계는 오로지 플랑크 상수까지만 확대 가능함을 피력했다.

허나 플랙탈은, 거시 기준의 플랙탈은 무한대로 확대가 가능함을 주장한다.
둘이 주장하는 바는 결과적으로 극과 극을 달린다.

이 또한 인간의 기준이자 한계.
중력파 이전에 시간과 공간을 떨어뜨려 놓았듯.

보다 근본적이고, 정확한 경계에선 이렇듯, 무언가를 정의 내림에 있어 분명한 스텐스를 확정 지어야만 한다.


그러기에 인간이란 종을 이야기하는 것과, 인간 개개인을 이야기하는 건, 완전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그런 맥락으로 봤을 때, 인간으로서의 우리, 인간으로서의 개개인, 인간으로서의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왜 나는, 나로서 존재하며,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가.


“모든 건 결국 뇌가 만든 환상이지. 우린 빛에 의해 구성된 세상을 보고 있고, 그걸 실제라 느끼지만, 조금만 더 떨어지고, 기준점만 달라져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아닌 세상을 살고 있는 거야.”
“흐음.”


에드릭은 고심했다.
평소 이런 고민을 깊게 하진 않았는데, 여기서 이와 맞닥뜨릴 줄이야.




“연관이 있으니 하시는 이야기겠죠?”
“…그래.”


윤미라, 그녀는 말했다.



“결국 중요한  내가 인간이냐 아니냐가 아니야. 가장 중요한 건, 관측자로서의 나를 자각하고 있으며, 그게 가능하냐 아니냐의 여부. 그걸 위해 육신에 우리가 얽매여야만 하며, 감정을 느끼고 오감에 의해 이를 실감하며, 희노애락 등을 통해 이러한  더욱 확실하게 규정하고, 자각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따지면, 그것만 가능하다면  이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게 현재 네가 사용하고 있는 아바타, 화신체가 구성된 근본적 이유야.”
“흠….”



여기서 아바타 이야기인가.
밑밥이긴 하겠지만, 이후 무슨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괜스레 불안해진다.
겁쟁이인 에드릭으로선,  이야기가 좀처럼 적응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보다 아까 하셨던 약속은 그럼 어떻게  건가요?”
“어떨 거 같아?”
“흠, 확신이 안 드네요.”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불안은 계속 심화 되어 간다.



“네 의지가 아니라, 동전에 의해 정해진 거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이 또한 운명이겠거니 해야지. 거기다… 여기까지  거 자체가 답은 도출된 셈이기도 하니까.”

뭔가 기존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아니지, 이쪽이 평상시의 그녀인 건가.

말도 편하게 하고 있는데, 의외로 자주 듣다 보니 위화감은 적었다.
그래 봤자 하루는커녕, 반나절도 채 안 됐지만.


“말씀해주시죠. 그래서, 이제부터 뭐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또… 제가 잠결에  건요?”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볼 참이야. 우선 두괄식으로 깔고 가면, 너나 나는… 시작부터 사기를 당한 셈이야.”
“……시작부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그녀.
…절로 다리 부근으로 시선이 쏠린다.

“꿈결이라 기억이 희미하다던가, 그러진 않고?”
“완전하진 않지만, 대강 떠오르긴 합니다.”
“어디까지 유추가 가능한지 어디 들어나 보자.”
“우선….”

잠시 주저하던 에드릭은, 그녀의 눈짓에 마지못해 응답했다.



“저쪽 왕녀 전하, 알브레시아스와 팀장님과의 관계가, 어느 누구들과 비슷하다는 게 유추가 되더군요.”
“비슷한 게 아니야. 동일하지.”

 부분에 대해선 별달리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차이가 있다면 둘은 서로를 증오하고, 우린 아니란 거지.”
“…그녀는 알고 있답니까?”
“아니. 아직은.”

예컨대 이거다.
카일론의 패왕녀로 드높은 그녀와 팀장님은, 사실상 시작이자 기원이 같았음을.
마치 카일론의 철왕과 숲의 현자 마냥.

철왕은 자신의 쓸데없는 것들을 떼어낸 거라 말하지만 실상은 어떠려나.
그런 면으로 보자면, 패왕녀의  완벽에 근접한 모습은 일견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왜냐면 카일론의 왕은 스스로 이를 선택한 거지만, 알브레시아스의 경우는… 나도 그렇지만 우린 서로 그런 걸 모르고 자랐으니까.”
“선택한 게 아니라, 그렇게 강제됐다? 분리당했다 그겁니까?”
“그래. 다만 차이가 있다면, 자아며 이성이 완전히 성립되지 않은 시점이라, 허물이라 해도 그게 불확실하며 불투명했다는 거지. 솔직히 용케 그럼에도 떼어냈다고  정도야. 거기다 그녀의  초인적 성향과 자질을 보면… 더더욱.”
“흠….”

기가 막힌 노릇이다.
 이것만 해도 놀랄 이야기긴 하지만, 한편으론  긍정적인 진실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잘 풀어가면 양쪽 그녀 모두와 알맞게 살아갈 여지가 있다는 거니까.’


이 지경까지 와서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확실한  이번 내기에 승리했기에 적어도 이제, 그걸 시도할 여지가 생겨났다는 게 퍽 중요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에드릭은 그러했다.
솔직히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아, 그래도 우선 순위는 팀장님 쪽 비중이 크긴 했기에, 그녀가 만약 전부 포기하고 자신만 선택하라 했다면, 에드릭은 망설이진 않았을 거다.


다만 거기서 에드릭과 안태민, 현실과 판타지 쪽 전부를 버리라 했기에,  정지에 가까운 혼란이 왔던 거지.

 제안은 솔직히 말해 엄청 무서웠다.
자신이 오해했으면 좋았겠거니 하고, 막연히 기도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겠죠?”
“그 정도는 충격적이지 않다는 거구나?”
“현실과 이계가 있는 시점에 그보다 충격적인 거 따윈 있을 수 없죠. 본사라는 게 버젓이 있다는 시점에 그보다 더한 미지와 환상,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그 점이 참 감탄스러워. 예나 지금이나 너는 적응력 하나만큼은 대단했지.”
“그, 예나 지금이나, 가… 제가 취업해서 처음 부서에 발령 났을 때는 아닌 거죠?”
“이해한 듯하니 다행이야. 구태의연하게  설명해야 하나 싶어서 고민 중이었는데.”
“두괄식으로 해주시죠. 아까처럼.”

미괄식은 싫다.
하나하나 구구절절 듣다가 막바지에 결론 나는… 이거 지루하고 질려서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기질이 속에서 울부짖어대는데, 버텨날 재간이 있을까.

괜히 요즘 웹 소설들이며 튜브 영상들이 극 초반에 인생 다 걸고 매달리듯 콘텐츠를 마구 쏟아붓는 게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봐. 네 인생에 기억의 누락이나, 뭔가 허전하고 부족하다 느끼는 건 없어?”
“…아마도요?”
“뭐 그게 맞겠지.”




아니, 물어보셔 놓고 그러시면….


“정확하게 회사 입사 이전에 우린 만난 적이 있어. 그것도 꽤 까마득한 옛날.”
“…전혀 기억에 없습니다만.”
“없어야 정상이지. 돌려보낼 때, 다 삭제됐을 테니까.”
돌려보낼 때?
“본사에서 내보낼 때, 기억을 지운다 이야기했지?”
“그렇죠.”
“그런데 거기에 과연 위화감이 안 남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개인은 그렇다 쳐도 그 주변은? 본사가 비록 세상에 격리된 느낌으로 분리돼 있다 쳐도, 모두에게 의심을 사지 않는다는 건 많이 수상하지 않아?”
“…그거야 본사가 지닌 초월적인 뭐시기를 떠올려보면, 전부 그럴  있겠거니 싶더군요.”
“세상은 만화나 영화가 아니라서 운 좋고  알맞게 필요한 부분만 기억이 지워지고, 알아서 잘 굴러가는, 그런 구성이 아니야. 세상은 철두철미하지. 그러기에 모든 것엔 예외가 없어.”
“…….”
“걱정마렴. 네가 이번 이전에도 우리 회사에 입사한 적은 없으니까.”
“그거 다행이네요.”




내가 백수 건달로 삐걱대던 게, 여기서 퇴사한 여파나 영향이었으면… 눈앞이 까마득해질 뻔했으니까.

나도 모르게,  인생 전반이 무언가로 이도 저도 아니게 헝클어지고 망가진 걸 어떻게 온전히 받아들이겠나.




“고등학생 때라 했던가.”



응?




“우리가 만난 건 딱 그쯤이었지. 아, 그렇다고 너만 유달리 특별했던 게 아니야. 그때, 너 말고도 꽤 여럿이 왔었으니까.”
“흠….”

혹시….



“용사랍시고 소환됐다던가?”
“판타지 소설을 많이 봤구나.”



내가 사실 기억은 못 하지만 전설의 이계 소환 용사였다던가, 하는 로망은 이걸로 기각됐군. 매우 아쉽구먼!

“사고 같은 거지. 굴러 들어온 거니까. 그러나 알다시피 세상에 우연은 없어. 우연처럼 보이는 거였을 뿐.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나는 말단 중에 말단이고 이도저도 아니었지. 뭐, 알브레시아스가 혹여나 죽거나 문제가 생기면  대안책으로서 그 자리를 떠맡게 될 여지가 있는 걸 제외하면, 정말 이도저도 아니었으니까.”
“공주님은 아니셨단 거네요.”
“재투성이 아가씨조차 못 됐지.”



신데렐라를 말하는 건가.

“다만 의지만 있다면 여건은 좋았으니까 모든  배울 수 있었지. 다행히 전 세계를 둘러봐도 손꼽힐 이들이 그곳엔 수두룩했으니까.”
“그래도 결국 숲의 현자 노인 휘하로 가신  아닙니까.”
“어쩔 수가 없었지.  비호해  대신 책임을 져주기로 했으니까. 양육 및 교육 또한 그분에게 할당된 거였고.”
“…꿈에서  것만 떠올리면 엄청 악의적인 존재로 느껴지던데요.”
“당시의 기억으론 아마 그게 맞았을 거야. 지금도  인상에 변함은 없지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
말을 일단락 지은 그녀를 향해 에드릭이 물었다.


“정리하면 제가 고딩 때 이세계로 넘어왔고 거기서 팀장님을 만났다 이겁니까?”
“그래.”
“그게 끝은 아니겠죠?”
“물론.”




여기서 그녀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끄집어냈다.

“너는 거기서  번 죽었어.”
“……?”



이건 또 뭔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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