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397)화 (397/454)



〈 397화 〉119. 나는 달을 바라본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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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또 뭔데?”
“공주님이래잖아.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대?”
“여기에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다고. 거대한 닭이 대소환수로 뛰쳐나오며 의사소통을 해대는 게 정상인 계층인데.”
“그렇다 쳐도 여기에 있다는 거 자체가 이상한 거잖아. 이곳에 있는 시점에 자기 세계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는 건데.”
“왕위계승이니 이딴 게 뭐 중요해? 세속적 사고방식에서 좀 벗어나지 그러냐?”
“너야 여기서 나고 자란 출신이라 그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복도에서 이야기하는 소년 소녀들을 향해 훌쩍 접근한 애송이가 그들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무슨 이야기들 하는 중?”
“깜짝아. 넌  언제 왔어?”
“이제 보니 기척을 죽이는 훈련을 받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애송이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막 이야기를 나누던 소녀 하나가 잘 됐다는 투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걔하고 친하게 지내던데.”
“걔?”
“아르스피엘.”
“그런 이름이었나?”
“…그걸 모르고서 여태 붙어 있던 거야?”
“그냥 알이라 부르래서.”
“남자도 아니고 그게 뭐야.”



뭐 이름이 중요한가. 서로를 안다는  중요하지.
애송이는 별로 신경 쓰는 기색도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조금 전에 공주님이다 뭐다 하던 거 같던데.”
“아르스피엘? 걔가 어느 세계의 왕족 출신이라 해서.”
“흠, 공주님이라는  역시 흔한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한 세계에 나라가 백여  있다 치면, 그 백여 나라에서만 오로지 나오는 건데.”
“…백여 개인  자체가 너무 많지 않아?”
“동화 속 이야기처럼 나라 하나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까.”
“흠, 일리 있군.”



애송이 녀석이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여댄다. 비좁은 발상, 편견으로부터 벗어난 듯 홀가분한 표정마저 더 해져갔는데….



“그래서 요즘 얼굴 못 봤는데 어디 가기라도 했대?”
“일이 있어 불려 나간 거 같은데? 우린 걔하고   마디 나눠본 적 없어서 뭐가 뭔지 몰라.”
“친하게 지내 왜?”
“그쪽이 붙임성이 없는데 어쩌라고.”
“흠….”

막연히 한 반에 묶였다 해서, 굳이 친하게 지내고 이러쿵저러쿵할 필요는 없지.
 점에 한에선 애송이도 이해했는지, 추가적인 말을 이어가진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오다가 보긴 했는데.”


애송이가 즉각 캐물었다.



“어디서?”
“그 전에 외부인이 와서 교도님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목소리 커지고 그러던데.”


저기서 말하는 교도는 우리 식대로 표현하면 선생님에 가까운 포지션.
다만 선생님인 동시에 교관 느낌도 다분.

“그래? 상담실 쪽이 어디였더라?”
“넌 그나저나 외부인인데 잘도 여기 돌아다니는구나?”
“법적으로 하자가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내가 수업이나 실기 중에 난입해서 깽판 놓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그러고는 싶을 테지만, 애송이 녀석이 당장 아는 거라던가, 뭔가 특출난 게 없으니 관종 기질을 보이기도 그렇겠지.


민폐며 망신살만 뻗치는 건, 관종짓이 아니라 그냥 뻘짓. 상대들이 오오! 하고 감탄하고 떠받들거나 경외하게 만들거나, 선망과 우러러보는 시선을 독차지하는 게 목적인데, 그 반대되는 요소로 관심을 끈다? 실제로 그랬다간 이불 킥이 아니라 한강 다이브 마려워질 거다.


상담실 위치를 들은 애송이는 곧장 그리로 향했다.

이미 한참 전이라 그곳에서 이벤트가 발생할 리 없을 게 자명했음에도, 녀석은 마치 맹목적으로 그곳을 향했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담당 교도가 누구인 걸 파악해 그가 머무는 쪽으로 향했을 거다.
적어도 그쪽은 실패할 확률이 적으니까.
기반 사정을 파악하기도 좋고.

관계에 있어 우위란 정보의 비대칭성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다.
상대는  아는데, 나는 상대를 모른다.


이러면 거래며 협상, 설득을 비롯해 모든 행위로부터 우선권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지.

그런 상황에서도 우위를 점하고자, 겉을  꾸미고, 항상 멘탈적으로 문제없는 태도를 구축하며, 그들 스스로가 우위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지 못하도록, 접근성조차 격상 시켜버린다던가.

제아무리 약점 쥐고 있으면 뭐하나. 그가  나라의 왕이라더간, 대신이라 치면? 접근조차 못 하니 가진 소스를 활용하기도 어려울 테지.

그러니  경우는 직접적인 것보단, 간접적인 방법을 택하게 될 테지만… 그조차도 기본 격이랄까, 최소한의 여지라는 게 필요했다.


황금을 거지가 쥐고 있으면 훔치거나 어디서 주운 걸로 의심받고 되려 빼앗길 여지마저 생긴다.


그러나 부호가 황금을 가지고 있다는 거에 대해, 대부분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이건 꽤 중요한 부분이다.


‘…….’




라고 생각하는 게, 나이를 먹었단 증거겠지.
이건 도저히 어쩔 수가 없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좋다고 보는 게 맞겠지.

피곤해지긴 했지만, 그러기에 실수를 덜하게 되는 걸 테고, 오히려 더 나은 결과와 예상 범위에 걸맞은 성과를 얻어내는 걸 테니까.

그러기에 한편으로 아쉬운  있다면….
예전처럼 순수하게, 미지를 깨우쳐가는 즐거움과 재미가… 증발해버렸달까.


지금도 그렇다.


녀석이 무턱대고 상담실을 찾아갔지만 당연히 그곳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시간이  지났다니까.”




자책하거나 좌절하는 거 없이 애송이는 주변인들을 향해 이것저것 물어가며 다시금 목적지를 달리한다.

상대가 어디 있는지 통화나 문제로 물을 수 없다면 결국 발로 뛰어야지.
그리고 이곳저곳 기웃거린 끝에, 애송이는 다시 도서관에 도달했다.

안으로 들어선  녀석은 혹시나 싶어 책상 주변을 살폈지만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기 있었네.”
“…….”

처음 만났던  자리,  구석진 자리에서 다시, 녀석은 그녀와 재회했다.

뭐지? 이 청춘 드라마, 만화 같은 느낌의 재회 장면은?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큰일이 있었다며?”
“…….”
“뭔데? 무슨 일인데?”
“…….”
“어차피 나는 들어봤자 금방 잊어먹잖아? 속 시원하게 이야기 좀 해봐. 한다고 누가 와서 뭐라 안 하니까.”

그쯤 되자 소녀도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삼킨다.




“너는 정말로….”
“응? 뭐가?”
“…….”

옅은 한숨을 내쉰 소녀는.

“어째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그럴 수 있는 거야?”“뭘 아무렇지 않아? 뭐가?”
이해를 못 한 듯 입술을 매만지며 고심에 빠진 척하는 애송이.
“전부 다 잊으니까 세상 근심 없다는 거야?”
“아, 그거 말하는 거야?”


이에 애송이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대야.”
“반대?”
“다 잊으니까, 뭐라도 해보려는 거지.”
“뭘?”
“전부 다.”



녀석이 말했다.




“저쪽에서 난 그저 그런 떨거지에 불과하지. 그러나 여기선? 뭔가 특별한 여지는 있잖아? 크든 적든.”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라고 장담해?”
“장담?”
“확신하냐고?”
“…그걸 나한테 당당하게 물어보는 게 이상한 거잖아.”
“그러면 안 돼?”
“응?”
“안 되냐고?”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소녀가 그리 말하듯 표정을 굳힌다.



“뭐 손에 불이 안 나온다던가, 마법? 그런 재능도 없고, 그렇다고 몸이 특별하게 강하거나 머리가 비상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고 쳐.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뭐 꿀릴 게 있냐는 거지. 뭘 가지고 지녀야만 당당하고, 아니면 지금의 너처럼 구석탱이에 움츠리고 있어야 하냐?”
“너 말을 왜 그런 식으로….”
“거기다 너 공주님이라며? 그토록 잘나신 분이 뭐가 아쉬워서 움츠러들고 그래?”
“네가 나에 대해  안다고 그러는데?!”
“모르지.”
“뭐?!”



소녀가 아연실색한다.
아니, 뭐가 저렇게 당당하게 모른다는 소리를 무턱대고 해대는 거지?

“네가 안 알려주니까 모르고, 네가 말  해주니까 모르지. 나는 계속 물어봤잖아. 말  한 건 내 탓이 아니야. 네 탓이지.”
“이, 이걸 내 책임으로 돌리려는 거야?!”
“안 돼? 네가  안 했잖아.”
“하!  기가 막혀서!”
“가만히 이런 곳에 처박혀서 누가 손을 내밀어주길 기대하는 거야말로 문제라는 거야. 반대로 생각하라고.”
“반대?”
“네가 먼저 접근해.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밀고.  기대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이 고독이 좋아요. 외로움이야말로  운명! 진심으로 그러는  아니지? 그랬다면 애초에 내가 오는 시점에 더욱 매몰차게, 계속 무시하고 외면하거나 아예 자리를 떴어야 했지. 근데 아니잖아? 그렇다고 누구 때문에 상처를 입어서 인간 관계? 아무튼 신뢰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뭐 이런 예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조차도 아닌  같고.”
“네가  안다고 자꾸 나한테 설교야?”
“설교가 아니라 조언인데.”


애송이는 팔짱을 풀더니 끄응 하며 미간을 주먹으로 꾹꾹 눌러댔다.




“네가 정말로 대인 관계에 진저리가 났다면, 나 또한 적당히 기웃거리다 말았을 거야. 아, 물론 외모가 취향이라 정말로 사귀게 만들겠다! 라는 목적으로 들러붙은 건 아니니까 그 부분은 오해 말고.”
“…그걸 구태여 말하는 이유가 뭔데?”
“말했잖아. 이건 안 꾸민  잘못이라니까?”
“꾸미고 말고가  잘못이 되는데?!”
“타인에게 긍정적 반응, 관심이며 호감을 얻고자 하면 예쁘고 아름답고 멋져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 예를 들어줄까? 고양이며 강아지 좋아해? 애완동물.”
“…….”
“반대로 흉측한 마물, 괴물이 있다 쳐. 걔들이 실상은 초식 동물 못지않게 평화적이라 해도, 외모가 흉측하고 위협적이기에 그것들은 토벌당하지. 맞아 틀려?”
“…….”
“무언은 긍정의… 뭐였더라? 어쨌든 반발하기 어려우니 침묵한 거지? 그래서 결론을 봐봐. 애완동물로 분류되는 애들은 인간들의 오래된 동료이자 동반자, 가족이 됐다 쳐. 반면 마물, 맹수, 괴물들은? 사냥 및 퇴치, 처리당해야 마땅한 존재로 여겨졌지. 그것들이 뿌리 뽑히거나, 입장이 달라질 때까지 계속.”
“그거하고 이게 같다는 거야?”
“넌 아는 게 많은데 가장 기초적인  왜 모르냐? 주입식 교육이니 교도소에 가까운 교육 환경은 마구 까더니, 정작 너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한 기초 인간관계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같은데.”
“…….”

아, 이번 건 조금 빡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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