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02)화 (402/454)



〈 402화 〉121. 그렇게 오늘날, 달은 기운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흔히 말하는 미연시에서 이런 구도가 잡혔다 하면, 대개는 H씬.
즉, 19금씬, 떡씬으로 연결되는 게 정상.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생각해보니 둘 사이는 거기까지 도달할 만한 인과 관계가 튼실하게 구성돼 있지 않았다.


아, 그래도 한여름밤의 꿈이랍시고, 후다닥 해치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라고 불쑥 생각하는 건, 내가 그만큼 타락했기 때문일까.

침대에 나란히 앉아 손을 한손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누가 접하면, 그 달짝지근하며 달달한 것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에 절로 시x을 입에 담고 있을지도.

실제로는 그리 달달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둘 사이의 장벽이 금이 가다 못해 허물어지기 직전이라는 건 확실했다.
둘 사이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반대로 시간이 부족했기에 단숨에 그 거리며 높이를 뛰어넘어, 저러한 관계로까지 이어진 건가 싶지만….

‘그런다 한들 뭐가 바뀔지.’



아직, 중요한 건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
잠시간의 여유, 만족, 위안을 얻고자 함인가.

아님 흑심을 품고 그렇고 그런 기정사실을 만들고자? 호감과 성욕 사이의 줄다리기에 패해 본능에 입각한….


이윽고 떨리는 입술을  아르스피엘.

“난….”

가만히 들어주던 애송이는, 좀처럼 말을 못 하는 그녀를 보면서도 싫은 내색 한 점 없이 차분히, 진지하게 이어질 내용에 경청하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좀처럼 단계가 이어지지 않자.




“어차피 오늘 들으면 난 전부 잊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해봐. 어려울 거 하나도 없잖아?”
“…….”




참으로 무책임한 소리지만, 한편으론 말문을 열기 편해지게 만드는 소리일지도.
받아들이는 이가, 어찌 받아들였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라는 건 항상 의도와 달리 왜곡된다거나,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젊고 어릴 때는 더욱이나.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떤 점이?”
“…….”

어느 시대엔 이미 성인 소리 듣던 나이.
어느 시대엔 아직 애라며 보살핌을 받는 나잇대.

거기에 옳고 그름따윈 없다.
그저 환경적 요인과 현실, 그 외에 각자의 처지가 있을 뿐.



“평소대로 하면 되는 거지, 어려울 게 있나? 아니면 그, 할아범의 무언가를 계승하고 이어가는 게 어려운 거야?”
“그건….”




딱 까놓고 말을  하는  무슨 이유일까.

“나는, 재주도 능력도, 뭐 하나 잘하는  없으니까.”
“아하.”



흔한 고민이군.


무기력한 것, 타고난 것도 없고, 자질이며 재능, 재주도 부족하니… 주변에 비교 대상이 있다 치면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저열해지고, 좌절하고, 거기에 절망할지언정 차마 체념조차  한 채 울분을 넘어 울음을 삭혀야 하는….


젊을 적엔 순수하게 그걸로 감정 분풀이가 가능한 시기다.

나이 먹고 그러면 추해지고, 그 시점엔 완벽하게 무능으로 낙인 찍히며, 인성 문제로까지 거론된다.


그러니 매몰시킨다.

평범함이란 괴물의 아가리 속에, 자신의 무기력함, 무능력함, 무분별함을 죄다 먹잇감 삼아 내줘야, 비로소 사람은 조금 간사해질 수 있는 법이다.


자존감이니 자신감이니, 빨랑 떼어놓을수록 사회생활 적응에 도움이 되는 거고.
그걸 내보일 수 있는 놈들조차 결국 간이고 쓸개고  빼내는  사회라는, 더욱 거대한 괴물들이 몰린 사육장.

거기에 일개 개인따위는, 어지간히 잘나지 않은  의미 자체가 사라진다.
톱니바퀴조차  수 없다면 말이다.

단단하고 잘 버티며 마모되지 않고 잘 움직이는 톱니바퀴를 원하는 거지, 금으로  개성 넘치는 톱니바퀴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건 되려 쫓겨난다.
애초에 그건, 태생적으로 톱니바퀴가 돼선 안 됐던 거였다.


최소 금은방에라도 갔다면 기본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았겠지만… 글쎄올시다.


“흔한 이야기잖아. 유별날 것도 없는데.”

그러기에 애송이를 비롯해, 현재의 자신도 예외가 될  없는 것.
때문에 진작 포기했다.
무언가 특출나거나 뛰어나지는 걸.

중요한 건 구성으로서의 결과와 결실, 성과를 내는 것.
그건 굳이 능력이 탁월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누구처럼 삼고초려로 등용된다거나 하지 않아도, 천하삼분지계 따위를 구상하지 않더라도, 사용되고 쓰이는데 전혀 문제  게 없다.


내가 유비의 예를 본받고자 한 건, 유비가 특출나서 그런 게 아니다.


아니, 특출난 존재인 건 맞지만, 결국 스스로의 특출남을 믿으며, 일기당천에 만부부당의 무장들을 형제로 두고 있었음은 물론, 그 시기 기준으로 재벌급의 부호가 올인하듯 뒤를 받쳐줬다 한들… 결국 그 혼자선 한계가 있음을 그는 실감했다.


그러니까 제갈량을 찾은 거였고.
그 전까진 그가 사실상 리더로서 모든 걸 주관했었다.

혹자들은 관우가 책사의 역을 대신했다 어쨌다 하지만, 이건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다.


되려 그런 역할을 한 이들은 다른 이들이고, 오히려 여럿의 의견을 모은 케이스라 보는  맞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나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할 땐, 그는 꽤 독단적이며 자기 주관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곤 했다.


그러한 티를 안 드러낸 채 자기 의도대로 흘러가게끔 흐름을 조장을 잘했던 게, 그가 소통을 잘하며 경청을 잘하는 등으로 묘사된 이유겠지만.


…애초에 쌍검 들고 전장을 휘젓는 시점에 정상일 리가 없잖아.

‘잘 나가는 놈들은 수두룩하지.’




그러니까.
나는 굳이 잘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되려 반목만 생기고, 괜한 시비에 휘말리거나 분쟁만 생길 여지가 있으니까.


영역 싸움을 하는 짐승들을 보라. 서로 죽자 살자 싸우지 않나.
그러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도태되기 마련이지.
적어도 취직 못 해 방황하던 때엔 이런 사고를 고수하진 않았다.

자신은 바뀐 거다.
본사에 입사한 이후로, 차근차근….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아르스피엘이 애송이의 말에 딴죽을 걸었다.
뭐 아르스피엘보다 현실적으로 훨씬 위태롭고 안쓰러운 게 녀석이니까.
어차피 돌아갈 녀석이고, 사실상 관광 느낌으로 지낸다고 치면… 그러한 무능력 자체가 크게 흠이 될 건 없겠지만.



“아니, 말해도 돼.”

근데도 녀석은 꽤나 태연했다.




“재주도 없고 재능이 없다 해서, 내가 좌절하고 포기해야  이유는 없으니까.”
“…무슨 소리야?”
“안  거 아니잖아? 그런데 왜 괜히 머리 아프게 신경 써? 어차피  거면 그냥 해. 안  거라 생각되면 그냥 포기를 하던가.”
“그걸 못하니까 이러는 거잖아?”
“왜?”




반문한다.




“왜 못해?  하면 세상이 멸망해? 내일 당장 죽어?”
“그…건, 아니지.”
“그럼 해. 하지 마. 포기하면 편해.”

아니, 그걸 지금 말하는 거냐?


애송이 녀석의 단호함엔 나조차도 놀랐다.
보통 그럴 땐 격려가 답이잖아?
애초에 아르스피엘이 원하는 대답이며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라고 인마!

그럼에도.


“그러니까 포기하는 거다? 하지 마. 그냥 때려 쳐.”
“저….”
“왜?”
“어떻게, 그걸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야?”
“??”




이에 애송이는  그걸 묻냐는 투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당연하지. 내 일 아니니까.”

우와….
 새끼, 미친 건가?



“너….”


기가 막힌 나머지 입을 벌린 채 헤― 하고 잠시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내비친 아르스피엘.



“아니 힘들고 싫다며? 그럼 왜 해? 안 하면 되잖아.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세상 멸망 안 한다며? 안 죽는다며?”
“…….”

애송이 쪽보다 아르스피엘 쪽 심경이 훨씬 더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는 건, 기분 탓이려나.




“하.”



바보 같긴.
내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하고 중얼대는 아르스피엘.

아니지, 너는 기대를 하고 있던 거야 이 꼬맹아.
그리고 그건 지극히, 한편으론 정상적인 습성? 본능 같은 거고.
무언가에 의지하고 의존하고픈 건 결코, 나쁜 게 아니라니깐?


 외에도 위안과, 뭔가 바뀌길 바라는, 아무튼 그런  기대하는 게 뭐가 나쁘냐?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마냥 좋은  아니거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잖아? 혼자 살 수밖에 없으니 그러면 어쩔 수 없다지만, 그게 아니라면 충분히 의지하고 의존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보강해주는 건... 당연한 거잖냐?

뭐, 그게  안 되니까 문제지만.

그러니까 되려, 상대를 신뢰하고, 믿어주는  되려 강하고, 강인한 거다.
애초에 그릇이 크지 않으면, 자신의 몫조차 감당 못 하는데, 타인을 어찌 담겠나?

그럼에도, 그걸 전부 고려한다 쳐도 세상은 상냥해지지 않는다.  무겁고, 늘 잔혹하기만 했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랬다.

이렇듯 일주일에 누구들은 매번 복권에 당첨되지만, 우리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질 않지. 아쉽게도.


이렇듯 세상엔 단숨에 모든  질환을 처리해주는 만병통치약도, 단숨에 우릴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주는 절세 신공이 담긴 무협지 속 절세 비급 등은, 그렇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 쳐도 우리 것은 아니라는 거지.
그걸 받아들이면, 세상은 조금 풍요로워진다.
없는 걸 상상하고 망상하며 좌절하고,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으니까.
되려 존재한다 치면, 땡큐! 대박! 인 거고.

그러니까, 본사의 존재는 내게 있어선 그런 거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걸 찾아야, 어찌 됐든 삶이 조금이라도 풍요로워지는 거고.


못 찾는다면 손에 넣을 때까지 고군분투하던가, 만족을 알던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나 본데, 못하겠다, 어렵다, 힘들다고 말한 건 너야. 그러면 안 하면 그게 해결된다 치면, 안 하면 되지. 그런데 포기하고 안 한다고 너 마음 편해지고 그래? 어때?”
“당연히….”
“불편하겠지. 아, 이거 뭔가 아닌데. 해야되는 건데. 반드시 어쩌고어쩌고….”


애송이는 말한다.




“그러니 결국 할 거잖아? 그러면 괜한 문제로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아님 정말로 관두거나, 좀 쉬었다가 하던가.”
“…….”



사실 간단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걸 이 상황에, 이 분위기 속에 한다는 게 참….
네가 그러니까 여친이 안 생긴 거다.


적어도 원하는 말을 속삭여주고, 사탕발림 속에 자신에게 빠져들게 해서, 드러눕히고 천천히 탈의로… 크흠!

“자, 그러면 문제 해결됐지? 끝?”
“…….”



 그대로 끝이다.
녀석의 말에 허점은 없다.

미련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적어도 논리 자체엔 이견이 있어선 안  거다.
그게 아님, 전제 자체가 무너지니까.


애초에 상황이 어찌 굴러가는지, 아르스피엘이 원하는 바가 뭔지는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훤하게 예측됐다.

그러나, 정작 과거의 나였던 애송이 녀석의 생각은, 좀처럼 간파가 되질 않는.




‘뭐지?’


나는 죽고서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정말로 저건 내가 아닌 건가?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글쎄, 어떠려나.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지.’



적어도 애송이 녀석과 내 의견을 저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니까.
부모님 슬프거나 걱정 안 들게 하며, 적당히 효도하며 자식  도리  하는 것.
그러면서 즐길 거 즐기고, 무난하고 길게, 행복하게 삶을 구가하는 것.


적당한 스릴, 생동감 넘치는 그럴싸한 체험이며 경험 등.


확실한 건 내 기억상에 현재 애송이가 겪어왔던 무언가는 들어있지 않지만, 그걸 제외하면 무엇하나 위화감 드는 건 없었다.

말 그대로,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 수습이 됐다는 의미겠지.
애초에 기억이 온전하며, 육신도 동일하며 온전하다 치면… 그건 나인가 아닌가.


영혼이니 뭐니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걸 들먹인다 한들… 비록 판타지 세계며 본사의 그 상식의 기준을 수백 번 초월한 것 같은 뭔가들을 마구 접하고 있다 쳐도, 어쨌든 그런 건 옛날부터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 식이었다.
살기도 바쁜데, 뭘 진지하게 인생은 무엇이며 진리며 진실은 무엇.

…그딴 건 여유 있는 놈들이라 파고들라지.


“또 하고 싶은 말 있어?”
“…….”



그나저나 이놈아, 왜 자꾸 상대를 내보내려 하냐?

애초에 가려는 녀석 손 잡고 붙들어 앉힌 건 너다 이 새끼야. 그럼 책임을 지라고! 책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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