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화 〉122. 나는 로미오도, 줄리엣도 싫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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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밤.
오르누스 말고도 애송이는 한 사람을 더 만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결정은 그대로 이어졌다.
우선은 아르스피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볼 것.
생각해보면 평소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의외로 깊이 있는 이야기는 서로가 미룬 것처럼 느껴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애송이로선 조금 더 느긋하게, 이런 생활이 익숙해질 때까지 지켜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는지도.
반면 그녀의 경우는….
“괜찮아? 아무 일 없었어?”
“음, 일은 많았지.”
“무슨… 일?”
애송이는 차분히 그녀에게 식사를 차려주며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딱히 뭔가를 먹지 않아도 됐었던 것도 같다.
애송이 녀석과 식사할 때 외엔, 따로 뭔가를 입에 넣는 행위를 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여건상 간식이나 군것질거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것도 분명 이유겠지만….
“우선 내가 얼마 못 산다는 건 알게 됐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아르스피엘의 표정이 급변한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
태연한 내색으로 애송이가 묻자, 그녀는 침묵한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추궁이 이어진 것에 대한 당혹감.
하지만.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할 거니까.”
“…….”
이 또한 예상 범위.
오르누스와, 아까 전 왔던 그도 이에 대해 예측이라도 한 듯 설명해줬으니까.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오르누스의 경우는 위험에 대해서만.
반면 좀 전에 왔던 그는….
“음, 문제가 없다면 나한테도 그 방법을 일러줬으면 하는데.”
“…….”
“네가 나한테 위험하거나 이상한 짓을 할 거란 생각은 안 드니까, 솔직하게 말해줘.”
“…….”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 후다닥 처리하려 했던 거야? 그럴 수는 있었던 거고?”
어쩌면 지금, 버젓이 눈을 뜨고 있는 애송이의 멀쩡한 상태에 의혹을 느끼게 됐는지도.
실제로 근래까지는, 이 시간이면 늘 그는 침대에 드러누워 죽은 듯 잠드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나는…….”
“불안해하지 말고. 여길 벗어나고자 했다면 진작 벗어났지. 여기에 있는 건 오로지 내 의지야. 네 선택이고. 그러니 네가 불안해하거나 이로 인해 죄책감이나 죄악감을….”
“그게 아니야… 아니라고. 이건, 그러니까….”
흐음, 조짐이 안 좋네.
애송이 녀석은, 어딘가 자기 세계로 빠지기 시작한 아르스피엘을 보며 은연중 표정을 굳혀갔다.
그러나 금세 표정을 바꾸더니.
“야.”
“으, 응?”
“내 말을 똑바로 들으라니까 그러네.”
빙그레 미소 지으며.
“내 선택이야. 내가 여기에 남기로 했고, 오고자 했어. 아님 뭐야? 네가 나한테 최면이라도 걸거나 뭐 이상한 술수라도 부려서 날 납치라도 한 거야? 그런 거야?”
“그, 그건….”
“아니잖아? 그러니 바뀌는 건 무엇 하나 없어. 단지 내가 어리석어서 몰랐을 뿐이고, 놓치고 있던 게 있었던 거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하지 않아?”
“가, 간단할 리가 없잖아!”
기어코, 그녀는 동요를 드러냈다.
“가, 간단할 리가 없잖아… 본래라면… 내가 억지만 안 부렸다면 넌 멀쩡히 돌아가서….”
“그리고 이곳에서 겪은 모든 걸 잊고, 어딘지 모를 평범한 일상이란 걸 누려가며 찐따처럼 살아갔겠지.”
“…….”
“말했지만 네 잘못이 아니야. 애초에 잘잘못이 중요해? 하고 싶은 걸 하고, 결정한다. 우린 그것만 생각했을 뿐이야. 이런 이런 짓을 해서 잘못됐다, 어쨌다. 이건 나중 문제고, 지금 당장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 그 무슨 무책임한….”
“무책임하면 안 되냐?”
“어?”
“안 되냐고?”
그걸 그렇게 대놓고 물어볼 수 있는 거야? 어떻게?
어안이 벙벙해진 아르스피엘은, 뭐라 반응하지 못 하는 태도다.
기존처럼 앞머리가 눈을 가리고 있던 것도 아니기에, 확연히 동요하는 기색이 버젓이 드러나, 그녀의 당혹스러운 심경을 여실히 비춰주고 있었다.
“어른인 척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은 걸 해보겠다며 떼를 쓰는 건, 이때에만 할 수 있는 특권 같은 거야. 안 그러냐?”
“…….”
“뭐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누가 뭐라 하든 그게 뭔 상관이야. 부모님이 있어야 어리광 피우고 그럴 수 있는 거냐? 없으면 나 자신한테 부리면 되지. 아쉬울 건 아무것도 없어.”
“…….”
“아무튼 그런 거니까, 네 계획을 말해봐. 뭘 하고 싶었고, 그게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됐으며, 우리가 아니라면… 적어도 너한테 어떤 도움이 됐는지, 그거부터 들어보자고.”
아르스피엘은 입술을 깨문 채, 한참을 고민했다.
“…너는 이곳 사람들처럼 마법 같은 걸 부리고 싶다 했었잖아?”
“음, 그렇지? 아마도?”
“…아마도는 뭔데.”
푸념조로 중얼댄 아르스피엘.
“그게 가능하게 해줄 수 있어. 나는.”
“어떻게?”
“…인간임을 포기하면 돼.”
“으음?”
“그러면 저절로, 지금 겪는 부조리도 해결될 테니까.”
그녀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애송이가 이대로 있다간 오래 못 버틴다는 점을.
그러기에 일부로 안정제며 수면제까지 먹여가며 무리하지 않도록 애송이 녀석의 활동 능력을 제한한 거고.
그러면서도 그녀는 동시에, 그 방법을 찾아내고자 노력해왔단다.
지금의 그녀로선 원하는 결말로 도달할 수 없었기에.
“그래서, 그렇게 되면 난 어떻게 되는 건데?”
“…하나가 되는 거지.”
음란마귀의 존재를 필터링 삼아 걸러 들으면, 매우 흡족하게 들릴 표현일 테지만.
“그래, 이건 아니야.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던 거고.”
“흐음.”
“들은… 거구나. 내… 이거에 대해서.”
그녀가 손아귀를 말아쥐고, 이를 펼치자 놀랍게도 손보다 큼지막한 까마귀가 훌쩍 튀어나왔다.
까악까악!
불길하기 짝이 없는 울림.
까마귀는 본래 효도의 극치며 똑똑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새다.
다만 검고 어두우며 울음소리 때문에 여러모로 오해를 사지만….
‘근데 쟤는 정말 심각해 보이는데.’
눈깔이 새빨갛다.
마치 만화에 나올 법한 불길하기 짝이 없는 흉조(凶鳥) 그 자체.
“듣기야 들었지. 불길함을 넘어 아주 무시무시한 거라고.”
일종에 한 왕가가 짊어진 치부이자 저주라 할 수 있을 거다.
강대한 힘을 탐한 선조에 의해 들러붙은 저주라는 건데, 아르스피엘 이전엔 다른 이가 짊어지고 있었다는데, 그가 이를 짊어질 필요가 없어졌기에 이를 떨쳐냈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 그 저주는 그녀에게로 이어졌다고 한다.
“할아범이 오래 버텨줬어.”
“…….”
그리고 저 할아범이라는 건, 저 저주의 사실상 매개 같은 것.
애초에 그녀에게 할아범이란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단다.
그녀를 키워준 이는 스승 되는 누구.
그조차도 키웠다기보다는, 그냥 클 때까지 지켜주며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친 정도가 고작이라 하니.
“그리고 할아범이 더 이상 못 버티고 제어하지 못하게 된 걸 노려, 이를 처리하려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얼마 전…이랄까. 지금으로선 꽤 지났지만, 한창 애송이가 그녀에게 어프로치를 하다 며칠간 그녀가 모습을 감춘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문제를 알게 돼서 그랬다는 모양이다.
그녀에겐 선택지가 주어졌다.
이곳으로 돌아와 얌전히 저주를 짊어질 텐가.
아님 그냥 모르는 채 저쪽 생활에 만족하며 보낸다던가.
각 선택이 그녀에게 어떠한 메리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보다 궁금한 건….
“이쪽을 선택한 이유에, 내가 여기 남게 된 이유가 포함되어있는 거야?”
“…….”
이 부분이 애송이로선 조금 걸렸는지도.
“내가 널 불행하게 만들었다던가?”
“그건 아니야! 결코 그렇지 않으니까! 아니야 그건!”
“흐음….”
이 반응은 되려 녀석의 속내를 흡족하게 해줬나 보다.
이렇게 보면 애송이 녀석도 제정신은 아닌 거 같은데….
애써 미소 지어지려는 걸 헛기침으로 억누르며, 녀석이 재차 물었다.
“뭐 복잡한 건 됐고. 그러면 결론만 놓고 보자고. 궁극적으로 우린 뭘 위해 여기에 온 거야?”
“…….”
“자자, 대답해야지?”
그녀는 망설인다.
그러나 말없이, 기대하는 눈초릴 보내는 애송이의 시선에 못 이겨, 결국 짧게나마 대답한다.
“살기 위해…서야.”
살기 위해서?
“내가, 나로서.”
“흠.”
이건 또 철학적인 표현인가, 아님 그냥…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건가?
애송이의 표정이 두루뭉술해졌다.
다만.
“거기에, 너도 있었으면 했어.”
“응?”
“…헤어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건, 그러니까, 고백 맞지?
뭐 이미 듣기도 했고, 말 안 해도 사실 다 아는 이야기긴 하지만….
그래도 살짝, 불안감이 없진 않았다.
혹시나 모르게, 또 다른 속내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아예 안 해본 거냐 싶으면, 그 또한 거짓이겠지.
그러나 지금, 확실하게 아르스피엘은 말했다.
결국 그거다.
혼자 있기 싫다는 그 단순한 마음에서 비롯된 기원이, 애송이란 존재와 맞물려 확고하게 엉켜버린 것.
츤츤거리기만 했지, 묘하게 데레는 아예는 아니지만 최근까지도 어설프게만 보여주더니, 이런 곳에서 갭 모에를 선사해주시다니.
하며, 애송이 녀석도 나름 알면서도 한 대 얻어맞은 양, 표정 관리가 좀처럼 안 되는지 애써 과장되게 팔짱을 끼며 고개를 주억거려댔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그래. 흐음!”
그래도, 만족스러운 건 당장 중요한 건 아니지.
아닌가? 이게 제일 중요한가?
그래도 결국, 우선 순위는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어때? 그렇게 될 거 같아?”
“…….”
그녀가 말한 하나가 된다는 뜻을 애송이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예컨대 잡아 먹히는 거다.
그녀가 품고 있는 저주에게.
다만 그래서야 하나 된 게 맞지만, 이걸 맞다고 표현해야 할지.
뭐 고기도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니, 영양분 차원에서 하나가 되는 건 맞지.
쓸모없는 것들은 배출될 테지만.
어느 의미로 이거야말로 궁극의 희생, 사랑에 가까우려나?
이렇게 생각하면 좀 이상하려나?
“모르겠…어.”
그녀는 말했다.
“얘들은 그럴 수 있다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을 해.”
“그래?”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맹목적으로 저주에 심취해 있진 않았다.
“할아범은, 이제 없으니까.”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 할아범의 비중은 상당했는지도.
주변에선 그 존재마저 인정받지 못하지만, 원래 가치라는 건 상대적이기도 하며,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보물이 될 수도,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거니.
“그러니 나는 믿지 않아.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고 있어.”
“그래?”
애송이는 차분히 받아줬다.
이미 그녀가 하는 말로, 어느 정도 답이 나온 셈.
예컨대 가능할지 아닐지는 불투명.
단기간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애송이가 말했다.
“그럼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알고 있고?”
“지, 짐작하기로 최소 한두 달 이상은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그때까지 최대한….”
“내일이야.”
“……??”
“내일까지라던데.”
흐음, 어쩌다 이런 견해 차이가 발생한 걸까.
일순 알아듣지 못한 아르스피엘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변한다.
핏기가 화악 빠져나가는 모습이란 게 실시간으로 보면 이렇구나, 이렇게 소름 끼치는구나 하는 걸, 애송이 녀석은 처음으로 실감한 양, 조금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
“내, 내일…? 누가, 누가 그런 소리를?”
“찾아온 사람들이.”
“…사람들?”
그녀의 눈매가 뒤바뀐다.
“거, 거짓말이야! 그런 잔인한 거짓말을…!”
“진정해. 그건 어차피 내일 되면 알게 될 일이잖아?”
“하, 하지만!”
“네 생각, 판단이 맞다면 초조해할 필요가 없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녀로선 그런 거짓을 통해 애송이를 빼가려 했다는 식으로, 아마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지진이라도 난 듯 울화가 폭발했던 건지도.
그럼에도 애써, 애송이 앞이라도 그런 내색마저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한편으론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녀는 이미, 반쯤 광증에 휩싸여 있었다.
본인이 알든 모르든.
뭐, 오히려 그 맛이 간 눈매에 애송이는 희열이랄까, 기쁨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 새끼 완전 또라이잖아?
예예, 중2병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이 어찌 됐든 코앞 혹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하면서도, 되려 스릴감 비슷한 심경을 느끼고 있다.
…생각해보니 중2병에 시달리던 시절엔 저런, 뭐랄까, 파멸 충동? 자살에 가까운 어떤 극한의 충동적 뭐시기에 마음이 두근댔던 적이 있긴 했지.
그러고 보면 그 시절 라노벨들 보면 죄다 일본 쪽 서브컬처며 문학 영향이 다분해 그런 요소가 참 많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