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07)화 (407/454)



〈 407화 〉122. 나는 로미오도, 줄리엣도 싫다.(3)

정신이 망가진 소녀, 자해하며 실성하고 집착해대는 소녀를 착각 시켜 여친이랍시고 끌고 다닌 소년의 이야기가 무심코 떠오른 건 무슨 연유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정신 나간 이야기지만, 그 시절엔 나름 그것도 재미있게 감상했던  같기도?



“그보다.”



그러기에 지금의 애송이는 조금, 위험했다.
정상인…이라 말하긴 뭐하지만,  기준으로 보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위험천만한 녀석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관찰인.
그저 영화를 감상하는 관람객에 불과했으며, 저건 이미 벌어진 일들.
예컨대 과거.
그러니, 닥치고 지켜보는 수밖에.




“내가 한두  이상 버틸  있다고 알려준 사람이 따로 있기라도  거야?”
“으응? 그거? 그건…….”


어쩌면 애송이의 물음은 핵심을 관통하는 걸지도.
되려 애송이는 이런 전개에 익숙한 듯, 어딘가 예상하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대충 유추해보자면….



‘그녀가 품은 저주는 그녀의 아군인 척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지.’




그러니까.
그녀의 특이성, 능력이자 남들보다 탁월한 이점이 있다면  부분.
그리고 그 부분에 그녀는 본의 아니게 의지하고 의탁하고 있겠지.

저주가 악마와 같은 이성과 잔대가리를 잘 굴려 아르스피엘을 혹하게 하고, 휘두른다 치면 어느 게 제일 치명적일지는, 뻔한 이야기.

이를테면….

“아, 아아… 아니야… 거짓말… 아, 정말로…?!”


아르스피엘은 머리가 비상하다.
애송이보다 훨씬.

인정하기 싫어도 그녀는 애송이의 질문에, 그 비상한 두뇌로 헤아려버린 거다.
그래서, 저 녀석이 저 정도 버틸  있단 소리를, 대체 누가, 어떻게, 왜?




“…….”


저주는 애초에 아르스피엘이 중요한 거지, 애송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리고  중요도가 커질수록….


무너뜨리고 망가뜨리는 재미도 상당하겠지.
어쩌면 그저 괴롭히는 것에 불과할지도.


뭐 흔한 만화며 애니, 판타지 소설 마냥 이지며 이성을 무너뜨려 몸을 차지하려 한다던가?


아님 특정 목적을 완수하게 만들기 위해, 인형처럼 부릴 수 있게끔 뭐 수작을 펼치려 한다던가?

그 외에도 짐작은 다양하게 해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중2병인지 정말로 책임감이며 사명감을 느껴 아르스피엘을 도우려는 건지, 구제하려는 건지 모를  애송이의 사고가, 도무지 짐작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아르스피엘의 사고며 생각 등은 너무 훤히 읽혀서, 내가 누구에게 몰입을 하고 있는지 착각하게 될 정도로.


“내가 만약 내일 죽는다 치면, 넌 어떻게 했을 거 같아?”
“…….”



침묵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선 가벼운 구상이 휘몰아치리라.


뜬금없이 죽었다.
예상에서 벗어났다.

아마 잠시간 아무 생각도  들겠지.
그 다음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이성이 작동하리라.


왜 이렇게 된 거지? 어떻게 된 거지? 이걸 어떻게 수습하고?


그러나 그 모든 사고의 귀결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여태 쌓아두고 쌓아뒀던 모든 게 일제히 폭발하리라.


아마  와중에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저주에 대한 원망과 증오도 포함돼 있겠지.

그러나 결국 바뀌는 건 없다.
남은  냉엄한 현실뿐.

이때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것인가.
죽은 이를 따라 독약을 섭취하는 한 소녀와 같은 선택을 할 텐가.


아니면  증오와 울분을 쏟아내며 마치 불씨가 잦아들어 재가 되기 전까지, 그 고통과 혼돈, 울화를 흩뿌리며 주변에 거한 민폐를 끼쳐댈 텐가.


그도 아님 그럴 의욕마저 증발해, 죽은 듯이 늘어져 이도 저도 아니게 침몰할 텐가.


…이건 좀 궁금하군.


그러나 썩 보고 싶은 광경은 아니다.
영화라면 그런 if를 상상하는 것도 썩 나쁘진 않다.

가상이니까.


그러나 그게 현실이라면, 나는 현실에서의 희극과 비극, 모두 다 싫다.
남들에게 희극이 되는 비극도, 내게 희극이되 남에겐 비극이 되는 무엇 또한.

애초에 누구 물 먹이고 엿 먹이는 것도 싫고.

그러나 세상은 늘 원하는 걸 소유하고자 하면 투쟁을 강요하며, 상대의 적의와 폭력에 굴하지 않으려면, 언제고 힘을 갖추고 준비를 해둬야 하는 법이다.

내가 평화롭게 살고 싶다 한들, 세상이 그걸 원치 않는다면, 맞서 싸워 지켜내야만 하지 않겠나.


그걸 위한 힘이고, 권력이고, 명성이고, 재력이며, 능력이다.
사실 그것만 제외하면, 조용히 편하게 살고 싶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한편으론 이것도 좋다.
짧고 굵게 가더라도, 이런 식으로 강렬하게 끝맺음을 장식하는 건, 비교적 나쁘지 않을지도.

애송이 녀석은 내일 죽으며 이건 변치 않는 진실.
그리고 녀석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면 남은 건, 아르스피엘 뿐이다.
그러니 애송이는 물었다.
내가 죽으면, 넌 어쩔 거냐고.

이건 고백인가, 추궁인가.
그도 아니면… 경고이자 협박인가.

물음의 타이밍이 매우 악질적이다.


사랑하는 이, 라고 단정 짓고 결론  이가 죽는다고 밝히곤  어쩔 거냐며 물어온다.

 이런 거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걸까. 사디스트도 아니고.
그러나 필요한 질문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그녀는, 혼자서 살아가야 할 테니까.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있다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아르스피엘은 어느 정도 답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상 애송이의 생존 기간을 착각하고, 이를 깨우친 시점에 전부  헤아렸겠지.

아마도….

“방법이 없으니까, 결국… 먹어치웠겠지? 시체를 방부 처리한다던가, 어떻게 한다 해서 되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사체로 되살린다? 언데드? 그건 더더욱 말이 안 되잖아?”

꽤 현실적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르스피엘도 광기에 찬 건 매한가지.
애송이도 멀쩡한 척 하지만 미쳐 있는 건 마찬가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끼리끼리 논다는 건 이런 경우를 일컫는 걸 테지.


“나는 살아있는 너를, 지금의 너와 함께 하고 싶은 거지… 단순히 육체나 허물 같은  너라고 합리화하며 붙어 있고 싶은… 그런 게 아니라고.”
“그래? 음, 그건 다행이네.”



묘하게 아쉬워하는 말투네. 미친 건가.

이 새끼, 아무래도 얀데레 마냥 시체여도 좋아! 그래도 사랑해! 같은 미친 고백을 듣고 싶었던 건가?


그런 거라면… 저기, 상담이 불가능해요 이 사람아.

“뭐야 그 태도는? 뭔가 아쉽기라도 한 거야?”
“아니, 기왕이면 내 시체마저도 사랑해줄 순 없나 싶어서.”
“거기까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딱히 개그는 아닌데 애송이가 워낙 태연자약해서 그런 걸까, 혼자 미칠 것처럼 혼란에 빠지려던 아르스피엘조차, 그 설렁설렁함에 물들에 헛웃음을 삼키고야 만다.
이래서 분위기라는 게 중요한 거다.


아무리 진지하게 각 잡으려고 해봐라. 옆에서 이상한 춤 추거나 아기들 웃으라는 양 부르르르 까꿍 거리면, 지켜보던 이도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되는 거다.
애송이는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한 건데, 아르스피엘은 농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하아. 바보 같아….”




꼴사납기라도 한지, 눈물이 글썽대는 얼굴을 양손으로 덮는 그녀.



“뭐 진정됐으면 다행이고. 그러면 이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미래?”



애송아? 진도가 너무 빠르잖니? 그녀가 적응할 시간을 좀 주지 그러니?

“우선 내가 죽는다 해서 아쉬워 말고.”
“…심각한 이야기를 왜 그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뭐 어차피 올 일이잖아. 그러려니 해. 별거 아니야. 다 지나고 보면 추억이고.”
“…….”

이쯤 되면 정말 광기를 느낀다.
미친 건가.




“그리고, 너는 나 죽었다고 슬퍼 말고 여기에 짱 박히지 말고, 나가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좋은 남자 있으면  때처럼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네가 먼저 다가가서 후려 쳐.”
“뭐, 뭐…라고? 다시 말해봐. 무슨 소리를….”
“중요한 건 네 행복이다. 거기에 초점을 잡자고.”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지금 나보고 그럼  잊고… 다른 사람하고 사귀어서 행복해지라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정말로?”
“아닌데? 누가 잊으래?”
“뭐?”

아르스피엘의 얼굴이  가관이다.
방금 전까지 눈물을 글썽였는데, 지금은 이게  개소리? 대체 내가 뭔 소리를 듣고 있는 거지? 하는 태도다.

“잊지 말고, 끝까지 기억하면서, 나보다 널 위해주고  대해줄 새끼를 구해다가 사귀라는 거지. 아닌 새끼들은 다 쳐내고. 어딜 감히 하면서!”
“저기, 잠깐만. 나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너무 힘든데….”
“그러니까, 나보다 잘난 놈, 널 좋아해 주고 아껴줄 개새… 아니, 남자를 사귀어서, 백년해로하라 이거지. 아, 굳이 한 사람일 필요 없어. 여럿 사귀어도 좋지. 역 하렘도 나쁘진 않겠네.  능력자잖냐? 그 정도는 가능하지?”
“…….”

이쯤 되면 얘가 개그를 하는 건가? 장난치는 건가 싶어 표정이 심히 기괴해진 아르스피엘.



“뭔 소리인지 이해했지?”
“하나도 이해  했거든?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럼 거짓말이게? 전부 진심이니까 새겨들어둬. 나중엔 듣고 싶어도 못 들을 텐데.”
“그럼 너는?  어떻게 되는데?”
“난 내일 가잖아. 시간도 부족하고 여유도 없는데 지금 와서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있어? 그냥 얌전히… 가기 전까지 이러고 있으면 되는 거지.”
“너….”


아르스피엘은 한편으로 의구심에 사로잡힌다.
얘가 날 놀리는 게 아닐까?
실은 내일 죽는  아니라… 그냥 이것저것 캐물으려고 장난 삼아 자신을 들쑤시고, 흔들어댄 게 아닌가? 라는 식의….

그러나 말하는 내용은 우스꽝스러워도, 녀석의 태도 만큼은 태연했지만.
…말의 무게 만큼은 진심이었다.


녀석은 말한다.
네 행복이 가장 중요하며, 거기에 초점을 맞춰 행동하라고.

즉, 이건 애송이 자신의 존재는, 일종에 디딤돌로 써먹으라는 말과 진배없는 내용인데….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장난으로라도 그러지 마! 제발….”
“알. 남자는 말이야. 양보할 수 없는 그런 게 있어.”
“……?”
“나는 이곳 세계에 와서 딱 하나, 확실하게 하기로 결정했거든.”


어딘가 아련하면서도, 치부를 밝히려는 양 낯부끄러운 투로 녀석은 말을 이어갔다.


“그건, 후회하지 않기로. 어떤 경우에라도.”
“후회?”
“그러니까, 후회 안 하려면, 매사 모든 행동, 말 하나하나를 할 때도, 망설이거나 주춤하거나 하는 일 없이,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뭐 그런 거지.”



찐따처럼 고개 수그리고, 눈치 보고, 말을 자제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애써 나대지 않는다.


적당적당, 애들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딱 그 선을 지킨다.
그게 바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학생으로서의 내 본분이니.

“근데 여긴 아니지.”



여기에서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어차피 다 까먹는단다.


그러니까.

…굳이 일일이 눈치 보고 사리고, 주춤거리며 아쉬운 짓을 할 필요가, 굳이 있을까.




“그러니 내가 당시   있는 건, 너희 기억 속에 나란 존재가, 사뭇 유쾌한 녀석이었다, 좋은 놈이었다, 헤픈 녀석이었다, 그래도 자신감은 넘치더라! 라는 식으로 남길 바랬던 거고, 그걸 위해 앞뒤 분간 없이 날뛰었던 거거든.”


거기에 나는 없다.
‘나’라는 존재를, 지켜본 모두가 있을 뿐.




“그러니까 기왕 그렇게 기억될 거면, 멋진 새끼로 기억 남는 게 좋잖아? 맞아 틀려?”
“…….”

아르스피엘은 그럼에도, 애송이가 하는 말을 따라가지 못한다.
아니,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까지 하고 있지만….

가슴이, 그 말을 도무지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지금 그가 그 말을 내뱉는 시점에, 그는 자신이 보여줬던 모든 마술의 비밀을,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를 보며 느껴왔던, 동경이랄까, 기대랄까, 언제나 당당하며 자신감 넘치던 그의 그 모습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는 속속들이 밝혀대고 있는 셈이었다.


비밀을 알게 된 마술을 보며 과연 기뻐하고, 감탄하며, 신기해할까.
그건 그저 잠깐일 뿐이다.

비밀을 몰랐으면 매번 신기했으리라.
그러나 알게 된 순간, 모든 감탄은 수그러든다.

혹자에 한에선 비웃음, 조롱, 괄시로까지 이어진다.


“어때, 알? 나는 네게 그럭저럭 좋은 녀석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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