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09)화 (409/454)



〈 409화 〉123. 0

뒤를 따라 걷는다.
살아간다는 건 후회를 쌓아간다는 거라 누가 그랬던  같은데.


애송이는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비정상적인 선택들을 감행했다.
그것의 옳고 그름, 과연 그걸 누가 결정하고 정할지는 의문이지만.

본인의 만족이 중요한가.
그도 아니면 지켜보거나, 관찰하고 있던 이들이 알아서 판단할 노릇인가.
어느 쪽이든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이 젊은 네게 그런 선택을 강요했는가?”
“강요는… 아니죠.”



아마도.
애송이는 확신이 따로 없는 투였다.

애초에 이성과 직감,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거 자체가 모호한 나잇대기도 하고.


나이를 먹는다고  현명한 건 아니다.
반대로 나이가 어리다고 늘 순수할 순 없는 노릇.

순수함을 등지고 영악함을 본능적으로 일깨워 이를 표출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연륜이란 이름의 방패막을 둘둘 둘러,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선택을 옳다 확신하며 선택하고, 결국 그렇게 될 때까지 거북이 마냥 몸을 웅크리고 있는 예도 세상엔 수도 없이 많다.


거기서 옳고 그름을 정하는 건 결국 결과다.

과정은 희생된다.
초기 마음가짐, 다짐, 목표, 의미며 의중 따위는 결과에 의해 찬미 되거나 모독당한다.

우린 아주 많이, 그 광경을 보아왔다.

결국 누가 보느냐, 누가 판단하느냐, 누가 결정하느냐에 따라 그들은 죄인이요, 영웅이요, 성자이자, 사기꾼에, 악독한 마귀 마녀 악마로 매도되기도 하기에.

명명백백한 건 차라리 좋다.
그러나 악마라는 것도 누군가에겐 훌륭한 자식이며, 하나뿐인 아비며 어미이자….



“네 부모에게 너는 하나뿐인 자식이었겠지. 그런데도 네가 이런 선택을 할 정도로, 그들의 걱정보다 그 아이를 더 중시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사실인가?”
“…모르겠네요.”

어느 쪽이 중요하냐 묻는다면, 솔직히  중요했다.
부모님께 돌아가는 것도, 아르스피엘 곁에 남는 것도.

만약.
그녀 곁을 떠나 살 수 있다면, 아마도… 유감이지만 그쪽을 선택했으리라.


그러나 죽는다고 하니 선택지가 참으로 복잡해졌다.
눈앞의 노인은 말한다.

너는  돌아가더라도, 너를 대행해줄 그림자라도, 인형이라도 보내는 주겠다.
그게 저쪽 세계에서의 네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며,  부모가 원하는 자식 상을 마음껏 그려 내며, 두 부모가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식으로 살다, 둘이 세상을 떠나면 이윽고 역할을 끝마친 결과물로서, 사라질 거라고.

“혹시라도 결혼하거나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가급적 안 하게 될 테지만 혹시 모르지.”



이 경우,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고 쳤을 때, 아내와 자식이 남아 있다 치면, 목적이 완수됐다는 의미로 사라져야 함이 맞는가, 틀린 건가.


어느 쪽이든 자신하곤 상관없는 일일지도.
애송이는 참담하면서도, 어딘가 반쯤 초월한  담담한 표정이다.


여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실감을 안 하려 드는 걸지도.



“어느 쪽이든 세상을 뜨면, 그런 걸 걱정할 여유조차 없어질 테니, 죄책감이며 안타까움, 허탈함, 절망감 같은 것들도, 결국 누릴 수 있을 때 누려두는  좋을 것이야.”
“후우, 어쩔 수 없는 거라면요.”
“아쉬움이 없도록 작별은 해두게. 여기서 눈을 감는다고 치면, 방금  약속한 것들은 모두 제공하기 어려워질 테니. 자네가 적어도 이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그걸 복제해야 온전한 자네의 분신이 탄생할 테니까. 시체를 가지고 그렇게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 알아두게.”
“…알이 많이 섭섭해할 텐데요.”
“섭섭해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




노인이 멈춰선 채, 등을 보인 상태로 말했다.
헤진 천과 어둑하게 가라앉아가는 주변과 안개가 어스름하게 끼어가는 주변까지.
더 없이 이곳 세상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 속 마녀의 집에, 그것도 19금 공포에서나 자아낼 법한 분위기를 한껏 풍겨대는 듯 느껴져 괜스레 오한이 치밀었지만, 어찌 보면 이것도 참 서글픈 광경이었다.

이런 폐허 비슷한 곳에서 녀석은 살아가기로 했던 거니까.
사실상 스스로를 격리하고자 했던 거니.



“그럼 내기 한 가지 해보는 건 어떤가?”
“어떤 내기요?”
“그것이 자네를 얌전히 돌려보낼지, 말지. 자네는 어느 쪽에 걸겠나?”
“…실제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그 선택 강요는 조금 잔혹한 거 같은데요.”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난 그 반대를 택하지.”
“…제가 이기면요?”
“좋은 일이 있을 걸세.”
“…지면요?”
“아무것도.”



예컨대 리스크가 없지만, 이기면 메리트도 애매모호하단 의미.
이건 즉, 그거다.

단순 유흥.
흥미.
동시에 특정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수작질일 수도.

그러나  시점에 애송이는 아직 그런 새카만 음모를, 전혀 예상도, 헤아리지도 못할 터였다.


그것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 심리, 그리고 과정과 결정마저 무의식 와중에 영향을 끼칠 거라는 사실을.


“그래요, 뭐 가는 김에 한다 치고.”

이윽고 애송이는 선택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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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소녀가 본 건 헤진 나무로  천장이었다.

비스듬하게 무언가에 기대 누워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소요됐다.

작은 콧노래가 희미하게 들리는 가운데, 자그마한 창을 통해 햇살이 어렴풋이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걸 나직이 지켜보니, 서서히 흐린 안개처럼 희미하기만 했던 의식이 점차 현실감을 띄기 시작했다.


“…….”




무심코 흘린 침음성에 머리 위에서 흘러나오던 미약한 콧노래가 마치 바람에 꺼진 촛불처럼 툭 하고 멎었다.




“…….”



정적.

습한 새벽의 공기가 안개처럼 창밖을 통해 들어서며, 햇살에 부서져 연기처럼 흩날리는 가운데, 소녀는 왜 자신이 이러고 있는지 좀처럼  의구심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살짝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식탁과 의자가 눈에 띈다.


그러니까 어제….



‘돌아와서… 식사를….’


차려주는 걸 왠지 초조하게 지켜보며, 제대로 뭔가를 먹지조차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한입이라도 들었나.
문득 그게 언제적 일인지조차 헷갈려졌다.
생각해보니 근래… 아니, 한동안 제대로 눈을 붙인 적이 없었는지도.
아니, 애초에  필요가 있긴 했나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이 기묘한 고요가, 사뭇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한창 기관에서 교육받을 당시, 늦잠자서 깼을 때도 이런 느낌이긴 했다.


알람도 울리지 않고, 깨어나는 게 너무 짜증나고 버겁고 힘겨워, 잠시만… 잠시만 했다가 이상하게 편안한 시점에 눈이 자동적으로 뜨여졌달까.


항상 그 시점에 시간을 확인하면, 참담함이 앞을 가리곤 했다.
애써 몸을 일으켜 세워 옷을 입는 와중에 머리 손질도 안  있고, 지금 당장 뛰어간다 해도 지각은 이미 정해진 마당이고.

그렇다고   수도 없고… 빠질 수도 없고.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어차피 나 따위가 하루 빠지고, 나타나지 않더라도 신경 쓸 사람이 있긴 할까.


위기감은 돌연 고독과 난해함, 그 외에 온갖 불안과 절망감으로까지 번져, 마치   위에 검은 잉크를 떨군 것처럼, 정처 없이 퍼지고 퍼져….

이윽고 모든 행위의 당위성을 허물어뜨린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긴 했을까.


내게 필사적 노력이라는 건, 누군가에겐 아주 당연한 일상이자 평안한 하루의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일과.


거기에 노력이 무슨 필요란 말인가.
그냥  쉬듯 자연스러운 것들인데.

자신에겐 모든 게 필사적이었지만… 그건 온전히 자신이 못난 존재라 그런 거다.
부족하고, 어리숙하고, 말귀도 제대로  알아먹고.
그렇다고 성격이 유연한 것도 아니다.

하자 덩어리다.
마치 타고 남은 나무며, 석탄이며, 기름찌거기에 남은 그것들 마냥.


그러니까….
지금 느끼는 이 평안함은, 일종에 폭풍전야? 아무튼  전조와도 같다.


나는 무언가를 잊어먹었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면, 아마 무척…….


…슬플까? 참담할까? 비참할까?
아님….

그럼에도 정신은 갈수록 또렷해진다.
결국, 눈을 뜨고, 비스듬히 기댄 상체를 어쩔 수 없이 비틀 듯 일으켜 세우자.


툭.

하고, 무언가가 낡은 나무로 된 지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의아할 정도로 싱겁게 귓전을 때려왔다.




“……?”



손을 짚고 있던 건 무엇이었을까.
다리다.
그다지 건강미 넘치는 다리는 아니다.
근육량은 적지만, 젊은 나이에 걸맞은… 어쨌든 그런 다리.

바지가 입혀진 다리, 그것도 무릎 위와 아래 부근을 번갈아 짚어가며, 자신을 몸을 일으켜 세웠던 것.


누군가의 양다리 사이에 자신은 반쯤 앉듯, 드러눕듯 눕혀져 있던 셈이었다.
그걸 자각하며 이윽고 어깨와 목 주변만을 돌려 뒤를 보자.

눈 감은 채,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앉은 소년의 모습이 소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편안한 것도, 어딘가 아쉬움도, 후련함도 없이.

그저 무심하면서도, 어딘가 입가만 살그머니 호를 그리고 있는 그 광경.

“…….”


무심코 손을 뻗어 소년의 얼굴을 매만진다.
생각해보니 이곳에 와서도  한 차례도, 이랬던 적이 없다.


적극적인 건 소년 쪽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한걸음 뒤에서 강요도, 강제하는 바도 없이, 늘 차분하게 자신의 투정과 신경질들을 받아주며, 아쉬움 없다는  그런 자신의 어리광을 받아주기만 했다.

떠나갈 때는 언제라도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처럼, 고요히 자신의 뒤를 배웅해주기만 했다.

“…….”

이상하잖아.
아니, 왜 그렇게까지?
어디서부터 이상해진 거지?


“깼느냐?”
“?!”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녀가 몸을 일으키려다 자기 발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을까.
노인이 메마른 음성으로 껄껄 웃어댔다.



“매번 그 꼬락서니구나. 도저히… 귀엽게 봐줄 수가 없어. 너란 녀석은.”
“스승….”
“자, 그래서 이게 네 선택이로구나. 어떠냐? 가슴이 후련해지더냐?”
“선택…?”




어느새 서로를 마주 보는 형국으로 앉아 있는 둘이다.
그러나  사람은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떨구고, 벽에 기대 앉아 있을 뿐.

그리고 자신은….




“…데리고 가지, 않으신 건가요?”



소녀는 물었다.
자신의 스승이라면 언제나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한다.
거기에 소녀 자신의 의견, 의중, 호불호따위는….


“본인이  가겠다는데 어쩌겠느냐? 너 따위는 내 선에서 강제할 수 있다 하나, 저건 내 선을 벗어난 녀석이니, 하겠다는 걸 지켜보는 게 여기선 타당하겠지.”
“…안 가겠다고, 했다고요?”왜? 어째서?


죽는다는 건 알았다.
애초에 그는 부모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반복하곤 했다.


그때, 같이 가자는 소리도….
그걸 위해 마법이니 여러 기술이니, 이론이니 뭐니….


공간 이동이며 차원 이동과 같은 고차원적인 걸 너무 간단하게, 쉽게 말해대서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그런 속내를,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밝혔음에도.

[일단 해본 다음 생각하지. 하지도 않고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잖아?]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처음엔 대충 흘려넘기거나, 그러려니 하나 보다 싶었는데….


“왜… 그런 선택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신이 막아서서 그런 건가.


그리고 스승이 이를 방치해서?
네 힘으로 극복해 보라고?



“그럴 리가.”



스승의 코웃음이 뒤따른다.

“본래라면 네년을 무력화시켜 감금한 다음 저 애송이를 데리고 갈 속셈이었지. 당연히 이렇게 될 거라 짐작했었으니까.”



그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대체 지금 이 상황은… 뭔데?

“우린 내기를 했다.”



저 녀석은 네가 마음 편히 배웅해줄 거라고.
난 결코 그럴 리 없다는 쪽으로.



“누가 이겼을까?”
“…….”




믿음에 배신한 건 자신.
처음부터 무엇 하나 제대로, 털어놓지 않은  또한 자신.
결국, 그를 죽게 한 것도, 그의 빛나는 생을 불사르고, 잿더미에 파묻은 것조차….

“녀석이 그러더구나.”
참담함에 목이 콱 막혀오는 가운데.
소녀의 스승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자신이 이겼다고.”


……?

“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혀를 끌끌 찬 숲의 현자.

“그런데 이리 말하더구나.”


자신 안에 너는, 거리낌 없이 자신을 놓아줬다고.



“그러니까, 자신이 이긴 거라더구나.”
“…….”

이해할 수 없는 소리다.
대체… 대체 무슨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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