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10)화 (410/454)



〈 410화 〉123. 0(2)

“자, 이제 어쩔 셈이더냐?”
“어쩌…다니요?”
“계속 여기서 넋 놓고 있기만  속셈이더냐? 더 이상 네게 자유는 허용되지 않게 됐음을 인지할 때도 되었을 텐데.”
“…….”

과정이 어떻든, 제 3자가 보기에 이번 사태는 어떤 식으로 그들 눈에 비칠지.



“저 애송이가 자진해서 모두 감수했고, 이를 시인했기에 이번 일로 네게 당장에 처벌이 내려지진 않을 것이나, 넌 이번 일을 통해 전례를 구축했다. 이번 일이 누구의 귀에 들어가는 한, 네 앞날이 결코 순탄하거나 밝을  없다는  하나만큼은 분명해질 것인데, 어찌할 생각이더냐?”
“제가… 뭘 하고 자시고  자격이 있긴 한 겁니까?”
“그거야 네 하기 나름이지. 여기에 처박혀 있는 것도 물론 선택이지만, 그건 권장하지 않으마.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네 처지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이 손을 써올 테니까.”
“…제 선에서 처리가 불가능하단 말씀인 건가요?”
“그건  모르지.”

숲의 현자는 아리송한 말로 얼버무렸다.
아니, 얼버무린 게 맞긴  걸까.
힌트? 충고? 그것도 아님 경고?



“…제가 무슨 대답을 하길 원하시는 건가요?”
“그걸 내게 구할 참이더냐? 하하! 정녕 너란 것은 발전이 없구나. 폐기물이라 하여 스스로의 숙명이랍시고 이를 받아들인 채 사는 게 그리도 즐겁더냐?”
“…그게 아니잖습니까.”



지금도 뭘 어찌해야 할지,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뭔가 가슴이 복받치는데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는데도, 마치 세상과 단절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영 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와중임에도, 유일하게 현실감을 띄고 있는 건, 스승의 그 냉엄하면서도 비꼬는 듯한 음성 때문.

공교롭게도 거기에 긴장하고야 마는 자신이 있다.
그러기에 도저히 믿기지 않는, 믿고 싶지 않는 현실조차 어찌 현실로서 수긍하고 있는 거고.



“…….”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아.
이제부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싫어… 다 싫다고.
그냥 이대로… 전부 다 포기하면 안 될까?




[안 할 거 아니잖아? 그런데 왜 괜히 머리 아프게 신경 써? 어차피  거면 그냥 해. 안 될 거라 생각되면 그냥 포기를 하던가.]
[그걸 못하니까 이러는 거잖아?]
[왜?]

불현듯 떠오른다.



[왜 못해? 안 하면 세상이 멸망해? 내일 당장 죽어?]
[그…건, 아니지.]



그때 자신은 무슨 생각을 했더라.

[그럼 해. 하지 마. 포기하면 편해.]



포기하면 편하단다.
정말로 달콤하고, 정말로….

그런데, 그 다음에 뭐라 했더라.
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시금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전혀,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았다.

…….

아니, 그게 아니잖아.
이미, 답이 나왔잖아.

그러니까,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걸지도.



“스승님.”
“왜?”
“지금이라도 그를 되돌려보낼 순 없는 겁니까? 본인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분신, 가짜여도 좋으니….”
“그걸 가로막은 게 너였지 않더냐?”
“그걸 감안하고! 그럴  있는지 아닌지를 묻잖습니까!”
“이미 죽었고, 앞서 이야기한대로 죽은 놈은 정보체로서의 기능이 상실됐는데 뭘 어떻게 하란 거냐? 우리가 무슨 만능적 존재, 다재다능, 전지전능한  아느냐? 영생불멸을 이룩하고, 불로불사를, 죽은 자를 다시 부활시키는 건 우리가 주관하고 다룰 권능이 아니지. 그런데 그걸 내게 바란다? 너는 내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구나?”
“아니신가요?”
“아니지. 절대. 그랬으면 내가 번민하고 절망감에 허우적대가며, 완벽이며 완전을 추구하기 위해 분투하고 고생해댈 이유가 없으니까.”
“…된다 안 된다, 그걸 이야기해주시죠.”
“이미 다 물거품이 된  왜 자꾸 들먹이느냐?”
“나는   있다 아니다, 이걸 답해주시란 말입니다!”
“거 쓸데없는 걸로 자꾸….”
“분명하게 답을 안 하시는데는 이유가 있을  아닙니까?!”
“허허,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슬그머니 웃고 있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잔잔한 새벽녘의 숲의 잔잔함을 연상시켰다면, 지금은 비바람 속을 헤집고 내리꽂히는 우레를 연상하게 했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히고, 전신이 바들바들 떨리다 못해, 알몸으로  험한 폭풍우 속에 내팽개쳐진 듯한 공포와 고독감이 아르스피엘을 좀먹어 갔다.




“…….”


그럼에도,  눈을 크게 뜬 아르스피엘은 최대한 담담하게, 표독스럽게 그 위협에 이를 악물고 저항하며 재차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러며 자신의 스승을 계속, 끝도 없이 쏘아볼 따름이었다.




“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초, 수십 초, 어쩌면  이상이었을지도.



“나는 불가하지. 하지만 가능한 족속들이 있다면,  어쩌겠느냐?”
“…….”

눈을 질끈 감은 아르스피엘은, 거기서 수차례 호흡을 골랐다.
여전히 앞뒤 분간이 가질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거래를, 할  있겠습니까, 제가?”
“너 따위가? 나도 함부로 못 만나는데 너 따위가?”




싱겁다는 듯 웃어 보인 숲의 현자를 향해.

“됩니까, 안 됩니까?”
“하, 버르장머리 없는 것만 배워가지고….”




혀를 끌끌 차며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안 되지.”
“그럼 되게 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호, 기관에서도 제대로 적응 못 하고 무단 탈주한 녀석이 그보다 훨씬 상위로 올라가시겠다? 그건  무슨 배짱이더냐?”
“방법을 말씀해주시죠. 다른 부차적인  시간을 낭비이지 않습니까? 언제나 제가 효율, 결과를 따지시던 분이 왜 자꾸 자질구레한 것들로 감정을 뒤흔드는데 기회 비용을 소모하고 계신지요?”
“…….”

평생 이런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자신은 언제나 스승의 눈치를 살펴왔다.
경외보단 공포에 가까웠다.

그는 폭력을 휘두르는데 가차 없었으며, 자신을 판단하는데 있어 일말의 자비며 배려도 베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 자신을 스승의 지도, 학습을 따를 수 없었다.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맞겠지.

그는 늘 절실성, 절박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중에 네년의 어리석음, 무지함, 나약함에 피 눈물을 흘릴 날이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이루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이 뜨인  같았다.


여태까지의 나는, 뭔가 근본을 본다기보다는 늘 겉껍질을, 겉표면만을 보아왔던 건지도.


무슨 차이였을까.
그때와 지금은.



“…그 부질없는 생이 단숨에 끝장날 수 있을 텐데, 죽는 것보다 더한 굴욕과 수치, 절망과 공포를 맛볼 수도 있을 텐데, 네년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리가….”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




몰아붙이고, 욕을 퍼붓고, 매도한다 해서 상대를 증오하고 미워한다고 어찌 장담하는가.

애초에 그런 표현법을 배우지 못한 이라면, 결국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세상은 병들어 있다.
그러니 병든 세상 속에 살아가는 모두가 병이 들지 않는  이상하다.
그러니까, 그걸 조금만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면 세상은 조금, 좋아지지 않을까?


……라고, 누가 그랬던  같은데.

언제 이 이야기를 들은 걸까.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 낭떠러지임을 자처하고 뛰어내리겠다는데,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가겠다는 걸 내 말릴 정도로 네년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의외로 숲의 현자는 표정 없는 얼굴로 담담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봤자 네 벌레 근성이 어디 얼마나 버텨낼지 두고 보자꾸나. 잠깐은 저 애송이를 잃은 탓에 뭔가 깨달은  행동 하지만, 결국 네년의 그 썩어빠진 근본은 아직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으니. 넌 결국 네 더럽고 추잡한 근성을 다시금 내보이게  것이다. 그때 다시금 후회하겠지. 더더욱 추잡해져 가는 자신을 깨우치며, 너 따위에게 저 애송이가 자신이 지닌 모든 걸 포기하며 헌신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어느덧 원망과 증오로 뒤바뀔 테지. 적반하장 식으로. 너 때문에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어차피 날 구해주지도 못했으면서 멋대로 뒤지기나 하고 말이야! 자기만족에 취해서! 속으로 이리 구차하게 원망하며 울부짖겠지! 그래, 얼마나 빨리 쓰레기가 될지 이건 좀 궁금하긴 하구나. 네 입으로 말해보거라. 너는  그럴 자신이 있느냐? 확신이?”
“…….”


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고요 위를 내달린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두려웠다.


언제나 그가 말한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방금  말한 그건, 일종에 예언과도 마찬가지일 거다.
결국 시련에 주저앉게 된다면, 그가 말한 절차를 고스란히 밟게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구석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아. 사실 그러지 말라 말했으니 다시 번복하는  미안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니까.]
[안 되는  없어.]
[우리가, 안 했을 뿐이지.]
[하지 않는다는 것도 선택이야. 우린 언제나 선택을 하지. 우리가 하는 모든 건 전부 선택이야. 가만히 있는 것도 선택이고, 시도하는 것도 선택이고. 그래서, 넌 어쩔 건데?]

…왜 이게 갑자기 떠오를까.

순간적인 두려움에 말문이 막혔다.
그럼에도 하겠다는 마음만큼은, 각오는 고스란히 이어졌지만….

도무지 말문이 떨어지질 않는다.
마음이 어떻든 몸은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손 놓으면, 그래도 처음은 어떨지 몰라도 나중엔 점차 익숙해지리라.
스승이 자신을 포기한 순간의 고통을 떠올려보면, 그조차도 결국 적응하고 익숙해졌다.


그래, 잠시 주변이 조용해지는 거뿐이다.
빛이 없다 해서 죽는 식물이 아니다.


먹고, 자고, 깨어나기만 반복하면… 사람은 죽지 않으니까.

“…….”




그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그것도 선택이라면 선택일 테니까.


…하지만.



“다 할 겁니다.”
“뭐라?”
“원망할 거고, 증오도 할 거라고요!”
“……?”
“그렇다고 안 한다는 건 아닙니다! 할 일 하면서, 원망하고 증오하고! 욕도 하고! 그렇게… 버틸 거예요. 버틸 겁니다!”



결과가 중요하니까.
결과만 이룰 수 있다면.


“…과정 따위 알게 뭐냐고요.”
“…….”

너절한 버러지가 과정마저 아름답게 치장하려 한다는  자체가 이미 글러 먹은 거다.

버러지라면 버러지답게… 바닥을 아득아득 기어서라도.

“내가… 하겠다는데.”

적어도 시도할 자유가, 선택할 권리라는  있다면.
한걸음 내딛고 끝나버리는 구차한, 빌어먹을 시도라 하더라도.


…시도  해볼 이유가 없잖아.
어차피 세상이 멸망하는 것도, 내가 죽어 나자빠지는 것도 아닌데.


…저 녀석은 자신의 세상이 멸망하고, 죽어서까지… 곁에 남아 무의미하게 생을 마감했는데.

이대로, 이대로 끝내는 게 좋을 리가 없잖아.
의미니 무의미니 누가 어쨌든 그거야 알게 뭐냐. 어차피 남에 시선, 남에 평가따위인데.


하지만.
그가 평가하고 인정해준 나마저, 나 자신마저 잃을 수는…….


“말귀가 안 통하는군.”

쯧쯧, 혀를 찬 숲의 현자는.



“그래, 해봐라. 나중 일은 나중 문제지, 그런 거까지 고려해줄 오지랖 따위가….”
“…….”
“뭣 하느냐? 애송이를 그대로 방치할 속셈이냐?”
“…예?”
“어리바리 까지 말고 빠듯하게 움직여! 시체를 묻든지 보관할지, 처리를 정해야 할 거 아니더냐? 인간이든 짐승이든 고깃덩어리는 뒤진 시점부터 부패하며 썩어 간다. 이 정도 이야기조차 이해 못할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진 않겠지?”
“…뭘 하면 되는 거죠?”
“네게 물으마. 묻을 테냐, 관작에 넣을 테냐, 아님 미라로? 포르말린에다 담가둔다거나?”
“…진지하게 권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네 대답 여하에 따라 다르지.”
“…….”



이윽고 아르스피엘은 여전히 두 다리를 뻗은 채 바닥에, 나무로 된 벽에 기대어 앉은 애송이를 보며, 천천히 다가가 그의 머리를, 얼굴을, 목을, 어깨를 매만지고 짚으며.

숨 죽여 이를 악물었다.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저미는  느껴지고 있음에도,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잠시만 정신을 놓으면,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지럽기만 했다.


그럼에도.

“…이게 끝은 아니니까.”

마음을 다지자.
비록 포기한다 하더라도.
너는 어쨌든, 용서해줄 테니까.


……나 자신이, 내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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