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15)화 (415/454)



〈 415화 〉125. 쇠는 달아 있을 동안 치는 거다.

전쟁 한 번 벌어지면 수년은 금세 흐른다.
하물며 전쟁 준비는 오죽할까.


전쟁을  줄 모르는 것들은 전쟁이 길든 빠르든 상관없다고 판단한다.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야.


그리고 전쟁이 고착되는 시점에, 산더미처럼 쌓아뒀던 재산과 군자금들이 삽시간에 거덜 나는 걸 보고, 초기와 달리 점점 말을 안 들어 처먹는 병사며 용병들, 부하들을 보게 되면, 이젠 판단마저 흐려지게 된다.


이쯤 되면 평화 협정, 종전 협정이라도 맺고 싶어지는데, 선제공격을 취했다거나 선전포고 없이 기습한 시점에 그러기도 껄끄러워진다.

무엇보다 그대로 종결할 시, 쏟아부은 자금들은 어찌 복구할 테며, 온갖 기대를 품고 자신의 명을 따른 수하들의 실망과 불만, 불평과 울분은 어찌 감당할 텐가.

결국 이런 고민은, 차라리 병력을 소모 키시고 갈아버림으로써 해소할  있다는, 매우 놀라운 해결책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실패와 패착, 불운과 무능을 기억하는 족속들이 그대로 살아 본국으로, 영지로 돌아갈 시, 어떤 처참한 소문이 맴돌지는….

한편으로는 그조차도 병력이며 소중한 재원들이기에 그러한 불명예를 감수할 여지도 있지만… 일부 명예를 신처럼 떠받드는 족속들은, 그럴 바엔 죽고 말지! 하며 되려 전선에 가장 앞서 몸을 내던지다 죽음의 공포조차 되새길  없이 급사하는 등.

전쟁은 여러모로 다양한 딜레마를 낳게 된다.
그러나 이건 전쟁을 발발한, 일으킨 족속들이 느끼는 배부른 고민들이다.

애초에 끌려가서 개죽음당하는 이들은 무슨 죄인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늘 힘없는 백성, 시민, 민간인들이다.


그러니, 차라리 명분과 명예가 너무 드높고, 종교의 눈치를 살펴 가며 섣불리 병력을 준동할 수 없는 시절이 어느 의미로 좋다는 역사적 평가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러기에 몇몇 혼란에 잠긴 국가며 지역은, 차라리 마왕이어도 좋으니 어중간한 것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확고하게 주변을 통일하거나, 통제해주길 기대하곤 한다.


마왕이어도 자신의 입에 풀칠을 해주고, 배를 불려주며, 안전을 보장해주기만 한다면, 그가 바로 성군이 아니겠나.


적대국, 적국에게 악마든 마왕이든 그게 그들에겐 무슨 상관이겠나. 되려 자랑스러워할 일이지.

전투, 국지전, 단기 분쟁 등.
이러한 것들은 국경에선 거의 밥 먹듯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러나 전쟁은 스케일이 그에 비해 수배에서 수십, 어쩌면 그 이상의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


이를 단순 병정놀이로 여기는 애송이들은, 그러기에 본인들의 영토며 영지, 그 주변에서나 통하던 압도적 역량이 외부에까지 통할 거란 거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자기 구역에선 자신이 왕이었으니까,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야 만다.
그게 곧 패착, 파멸로 이어진다는 것조차 모른 채.


다시 1개월 후.

금세 종식 시키리라 여겼던 폭동이며 내란, 반란도들은 어쩐 영문인지 더욱 맹렬해져 있었다.

내부적 불만이 외부의 지원과 협력, 공조로 인해 확실한 전력으로 급부상.
결국 일부 영지가 독립 및 자치권을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수용할 시 왕의 권위와 주변 영주들의 권위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게 될 터다.

결국 불가항력으로 그들은 이를 악의 무리로 정의하고 널리 이런 사실을 공표하며, 정의를 구현한다는 대의명분을 꾸며 이들을 퇴치하고 처단하는 군을 꾸리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일부는 하룻밤 꿈으로 전락한 반면, 일부는 되려 토벌군을 물리쳐 협상의 테이블로 어깨에 힘들어  족속들을 강제로 서도록 강제하기까지 한다.

전자는 결국 후일 그 지역의 주인이라 주장하는 이들의 실질적인 백성 혹은 노예로 전락했고.

후자는 그들 무리에게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으며, 동맹이자 우군으로서 이제는 되려 자신들의 지배자들에게 창칼을 겨눌 위치를 점하게 된다.

사실상, 카일론이 여기서 정식적으로 병력을 파견하거나 군사적 활동을 한 예는 무엇 하나 없었다.


단지 카일론의 특수 부대, 특작 부대가 은밀히 여러모로 수작을 부리긴 했지만, 그것이 완벽히 대세를 굳힐  없는 법.


그럼에도, 그러한 첩보 및 방첩에 기이할 정도로 능한 그들 덕에  소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결정적 순간에 판단을 그르치거나, 시일을 지체하는 등, 여러 문제와 직면해 결정적 시기를 놓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모든 걸 하나하나 검토하며 지시를 내리고, 지켜보던 패왕녀는… 책상 위에 철제 부츠가 끼워진 발을 올려둔 채, 팔짱을 끼고 앉아 마냥 보고를 듣고 있었다.

투구만 빼면 왕녀와 큰 차이 없는 외양.
그조차도 벗은 사내는 제법 날렵하면서도 날카로운 외모를 지닌 청년이었다.

“현재  제국 이전, 각 종족들의 영토 수복 진행률은 3할 이상 완료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빠르군.”


역시 자기들 일이라 그런지 아주 기를 쓰고들 있었다.

“이런 식이면 5년 내외로 반은 넘게 수복하겠군.”
“제아무리 의지가 굳건한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이들이 합심해서 대응한다면, 방비하는 것만으론 부족하겠지요. 최선의 방비는 공격이란 말처럼, 저들을 성에 틀어박히게 하여 고립시키는 게 가장 주효하리라 봅니다.”
“도시며 각 영지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상대가 안 되긴 하겠지.”



경제적 측면이든 뭐든.


병사도 먹어야 하고, 먹는  해결된다 치면 그 다음엔 온갖 욕구를 해소해야만 한다.

이는  다른 사업, 산업의 발달로도 이어지겠지만, 한편으론 몇몇 분야의 쇠락과 몰락을 야기한다.


관련 수공업자, 기술자, 상인들만  불릴 일이지.
정작 이를 주체적으로 운용하는 왕이며 귀족들은, 되려 살이 쭉쭉 빠질 거다.
뱃살은 그대로겠지만, 마음속 군살이 처참하게 줄겠지.

이러면 현철했던 이들조차 여유를 잃고, 폭정을 일삼기 시작하는 바.
여유로울 땐 누구나 자비롭고 배려심이 넘칠  있다. 품격이니 품위도 어차피 꾸민다 치면 뭔들 못할까.

그러나 사태가 안 풀리고, 되려 문제가 산발하는 와중에 꿈도 희망도 없이, 모든 대소사에 제동이 걸린다면?

그런 답답함, 불유쾌한 것들을 인내하고 수용하며 차선책을 마련하고, 개선안을 짜내는 건, 위기며 시련을 도통 겪어보지 않은 배 부른 돼지들로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거다.

여기서 인물이 나누어지는 거고.
생활이 파탄 나고 엉망이 되어도 좋다.


개선책, 새로운 기책, 차선책이 나와 문제를, 시련을, 사태를 해결하거나 일소할 수만 있다면!

어떤 기벽이든 변태적 성벽을 내보이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귀족이며 왕후장상이 윗줄에 앉을 수 있는 건, 그들의 승자들의 후계자이자, 이후로도 승리를 독식할 수 있기 때문이지, 승리의 여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시점에 이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저 옛 승자들이 남긴 잔여물로 간신히 비참함이나 면하면 다행일까.


“무능한 돼지들을 쳐내고, 악의 넘치는 쥐새끼를 쳐내면, 그 다음 자리하는 건 영악한 여우와 사자,  같은 족속들이겠지. 어느 쪽이든 힘없는 백성, 약소 종족들에겐 누가 됐든 민폐 덩어리들이지만.”
“가장 상위에 앉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요?”
“이 몸이 그러고 싶어서 눌러앉은 건 아니잖아?”




패왕녀가 팔짱을 풀곤 어깨를 으쓱였다.


“공교롭게도 세상은 내버려 둬도 알아서  굴러가지만, 그건 과연 선한 자, 약자에게 유용한 세상일까, 아님 악인이며 강자들에게 유용한 세상일까?”
“그건 모르죠.”

사내는 자신의 생각은 상관없다는 양, 담담하게 대꾸했다.



“신만이 아십니다, 라는 개소리나 안 하면 다행이겠지.”




그렇게 신이 좋으면 당장 신의 곁으로 꺼질 일이지, 왜 자꾸 살아있는 새끼가 위에 있느닞 없는지 모를 존재들을 팔며 특정 삶을 강요하는 건지 원.
정작 지들은 피도, 땀도 안 흘리는 주제.




“종교계에서도 이런저런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교도며 사교, 이단이라 부르는 것들이 우후죽순 솟아나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같은 인간들은 그러려니 하지만, 인간 아닌 이종족, 아인들도 특유의 종교며 신앙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신앙관을 합쳐, 인간의 종교관에 도전하고 자빠졌으니, 이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거다.

선민 의식에 빠진 것들을 깨부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죄다 무너뜨리고는 거다.
주춧돌 하나 남김없이, 자부심이라 일컫는 모든 걸, 죄다 허물고 부수고 무너뜨려, 일소해버리면 그만.


그런 의미에서 불은 평등하며, 폭력도 평등하고, 죽음도 평등하다.




“소브릴 쪽에서 난리도 아니겠군요.”
“그쪽 신앙도 결국 우리의 일부라는 식으로 조립을 해버렸으니까.”



그리고 이쪽 신앙관을 설계한 건 그녀 자신이기도 했다.
…실질적으론 그녀를 제외하고서도 꽤 여럿이 달라붙었지만.



“이후 세계는 어쨌든 마법이 주도하게  테고,  마법의 한계에 달하면, 또 다른 기술  분파, 학문들이 파생돼 이것저것 발전을 이룩하겠지.”
“그로 인한 무수한 희생과 좌절을, 압축해서 일으키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그건 너무  희생과 혼란을 야기하는 거 아닌지요?”
“이 몸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다는  아니잖아? 어차피 진행되는 흐름이고 물결이라면, 적어도  희생에 가치를 부여해줘야지. 생은 무의미하지만 전부 다 고유의 가치며, 이유가 있다지? 우린 결국 병졸이고, 졸개에 지나지 않아. 왕이고 노예고, 그래 봤자 필멸자며 생명체라는 한계는  벗어던지잖아? 대마법사도 여기선 예외가 없지. 단지 우리 사이에 고하가 나누어져 있다 뿐. 이건 힘이 판단하고 판가름 짓는 영역이고. 그렇다고 쳤을 때, 결국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삶은 뭐냐 이거지.”
“…….”
“결국 우린 모두 각자의 역할극에 충실할 따름이지. 이를테면 보드 게임에서의 말 같은 거. 주사위를 굴리든, 자기 턴이 왔을 때, 말을 움직이든. 거기서 누가 잘못 전진을 시키든, 말을 배치해  말이 죽든 말든… 그걸 일개 말인 우리가 어쩔 수는 없는 거지.”
“너무 회의적인 생각 아닌지요.”
“그러니까 다들 나  났습니다, 나는 달라요, 특별해요! 하고 소리 못 질러 안달들인 거잖아? 나는, 이 몸은 그들에 대한 안쓰러움 만 있을 뿐이다. 그조차도 오만이겠지만.”
“…….”
“세상은 많은 변화가 있을 거다. 우린 그걸 장려하고, 동시에 수습하는데 전력을 기해야지. 그게, 이 빌어먹을 판에서 조금이라도 무고한 것들을 구제하는 길일 테고.”




어차피  쉬고, 배만 채우고 불리며 욕구만 충족하다 간다 치면.

“…살아 있을 의미가 있겠냐만, 이렇게 단정 짓는 것도 오만한 거고, 자기 주관적인 거지. 그러니 이 몸은 거지며 비렁뱅이며 악인을 무의미하고, 쓸모없다 단정 지을 생각은 없다. 그조차 일부로, 그러한 것들이 세상을 더럽히고 짐을 늘려가는 것조차, 결국 더 나은 삶을 추종하기 위한, 또 다른 게임판이라고, 나는 보거든.”
“…그렇습니까.”

청년은 고심했다.


“보드 게임의 말만 생각하지 말고.  말이라는 것도, 결국 판이 깔려야 존재 가치를 발할 수 있는 거잖냐.”


판이 안 깔리면,  말이 그 게임의 체인저, 판도를 바꾸는 엄청난 특권적 무언가라 하더라도.



“뭔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러기에 그녀는 게임의 말로서 다뤄질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 역사는, 그러한 말의 압도적 기량에는 찬사를 보내나, 결국 판의 한계를 극복 못해 대부분 비참한 말로를 걸어왔다는 걸.


그리고 그러한 말로를 동경하게 만들어, 또 다른 희생자와 불순분자들을 창출해낸다는 걸.

“…이걸  인간한테 들은 거기도 하고.”
“부군 전하 말씀이신지요?”
“아무렇지 않게 적은 죽일 수 있으면서, 정작 귀찮아질 거 같으면 꺼려하는 인간이라.”
“특이한 분이긴 하시죠. 부군이신데도 성에 틀어박혀 이상한 발명만 하시고, 연회며 사교장에도 출석 안 하시며 공처가임을 대놓고 피력하시는 것도요.”
“…자기 입장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부군이 되기 전까지 문란했다는 게 거짓처럼 수그러들어서, 세간의 평도 극과 극을 내달립니다. 정작 그런 소문에 대응하는 것 같지도 않는 걸 보면, 자기 주관이 강하시다거나, 세상에 무관심하신 게 아니신지요?”
“반대야.”
“반대?”
“세상 눈치를 너무 살펴서, 아예 그럴 여지를  주는 거지. 걔는 사고가 단순해. 잘못은 안 하면 된다. 이게 전부야.”
“…말로는 참 쉽군요.”
“그래.”


욕구를 단절하고, 금욕을 이어간다, 라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참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 참는다는 건 그런 특권을 일방적으로 버리는 걸 넘어, 배제한다는 건데… 이걸 감수할 괴상한 족속이 대체 몇이나 될까.

차라리 고기 맛을 평생 모른 채 안 먹는다 치면, 그건 이해한다 쳐도.


“그런 주제 특수한 사상이나 신념관도 없으니, 아주 특이해.”

그래, 그러기에 되려 냉정하고, 이성적이면서도, 객관적이지.


추구하는 게 악이 아니면서도, 그쪽으로 추가 기울지 않게 알아서 인지하고 자제까지 하고 있으니까.



“얼마 후면 인근에 올 테니, 그때 보도록 하자고.”
“기대되는군요.”
“궁금하면 다른 단원들에게 물어보던가. 너야 합류한 지 얼마 안 돼서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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