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화 〉126. 바람이 분다.(2)
“여기까지 고려하는 건 너무 나갔나.”
애초에 전체, 전부를 위한 정책, 사상, 국가, 신념 등은 있을 수가 없다.
해와 달이 다르며, 빛과 어둠이 같을 순 없기에.
빨강과 파랑을 같은 색으로 볼 순 없을뿐더러, 불과 물을 합하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사라지고야 만다.
…실질적으론 수분은 기체가 돼 증발하는 거지만, 이조차도 불의 세기와 물의 양에 따라 그 규모가 정해지는 거기도 하고.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다시금 순환의 원리를 거쳐 다시금 환원을 이루는 등.
“…결국 이조차도 큰 흐름에서 보자면, 하나하나에 과몰입하는 거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건데.”
그러나 그걸 일일이 헤아리면 세상 구조가 어찌 돌아가겠나.
그러기에 현명한 자가 있는 만큼 어리석은 이들의 수도 그에 부합해야 마땅한 것.
똑똑한 자들이 많다 해서 세상이 이치대로 굴러가고, 잘 굴러가리라 생각하면 그거야말로 오산이다.
오히려 너도 나도 왕이다, 주인이다 뭐다 하며 상전 노릇을 하려 들 테고, 그러다가 싸움 나고 살인 나고….
그리고 최후의 승자가 정상에서 깃발을 꽂고, 왕이 되는 걸 테지.
생각해보니 이거, 굉장히 흔해 빠진 일 아닌가 모르겠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군.”
이를 깨닫고 집착하며 휘둘리지 않는 위치에 자리 잡을지, 그 균열 혹은 혼돈 속에 몸 담아 다 같이 울상 짖거나 울부짖을지는… 본인의 선택 사항이겠지.
적어도 나는 아니다.
에드릭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그럴 여력도, 의지도, 능력도 없고.
그러기에 구태여 자기 의지, 의도를 위해 타인을 설득하려는 수고를, 그는 감당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게 그나마, 타인에게 덜 해를 끼치고, 민폐를 자제하는 거라 생각되기에.
이쪽 입장에서 보면 죽을 줄 훤히 알면서 짚에다 기름을 잔뜩 묻힌 채, 불길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여도, 저들로선 그게 아니리라 확신을 하기에 저러는 거 아니겠나.
이쪽의 시각과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볼 순 없는 노릇.
또 무지든 어리석음이든 간에, 이에 대한 열정과 열의, 욕망과 열망을 가지고 뭐든 시도하고자 발버둥 치는 걸 무지하고, 어리석다며 핀잔을 주고, 꾸중 주며 이를 막아서는 건, 다른 의미로 잘못됐다고 보는 그였다.
죽더라도 그조차도 자기 선택이다.
무지, 어리석음의 의한 선택일지라도, 결국 그러한 선택도 자기의 것.
젊음의 소치니 뭐니 해도, 그 젊음이 있기에 시도할 수 있는 그런 게 있는 법이니.
과거 독립운동가, 의사 분들을 보면 30도 채 안 되는 젊은 분들이 허다했다.
그분들이 어리석었냐 하면 오히려 반대다.
그럼에도 그 한 몸 불살라, 내던져 안 될 걸 알면서도, 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이를 시도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쌓이고 쌓였기에, 결정적으로 이후 윤봉길 의사의 사건이 부각 됨으로써 당시 조선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품고 있던 당시 장제스조차, 독립 활동 및 이에 대한 지원을 적극 보장하게 됐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외에도 논하고 보면 차고 넘치지만… 어쨌든 인간의 의지와 행위, 젊고 나이 들었다 하여 이에 대한 막연한 편견,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이를 격하 시키고, 자의로 판단해 무시하고 외면하는 게 무조건 옳다고 볼 순 없는 노릇.
그러기에 자기 주체성, 자신의 주관이 막강한 인간은, 결국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신념, 의지, 사상 등을 주입하고, 같은 색채로 물들여 자신의 추종자 혹은 신봉자로 만들어 세력을 부풀려 가니, 이러한 방식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리고 에드릭으로 말할 거 같으면, 그는 주체성이 확고하지 못했다.
그러나 별달리 주변에 혹하거나 동조하는 예도 없었다.
이것도 다른 의미로 자기 주관이 강한 케이스다.
성향이 번지는 들불이며 산불처럼 구체적이고 확고하지 않다 뿐.
“놀이만 아니라면야.”
만약 팀장님을 비롯해 본사 측에서 그런 유희, 재미 차원에서 이곳 세계에 전쟁을 유발하고, 악의적 명목과 의도로 혼란과 혼돈을 유발하고자 했다면, 과연 자신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까.
자기합리화를 하며, 그저 나 또한 소속에 일환으로서 그저 비즈니스 맨, 노동자, 일꾼, 직원이란 직분의 방패에 숨어, 아무렇지 않게 선악에 관계없이 시키는 일에 종사했을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이런 부분을 잘 설명했었지.
스스로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대한 것, 이러한 것에 비판적 사고를 적용하지 않는 무사유 행동.
그 자체가 악을 촉발하고, 유발하며, 발생시킨다는 의미는, 제법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무수한 학살을 자행한 걸로 여긴 아이히만의 구차하다면 구차한 변명.
난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다.
내가 안 했더라도 어차피 다른 누가 했을 거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나.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당장 일자리를 잃을 테고, 이러면 우리 가정을 누가 부양하고 책임지나?
무엇보다 내가 직접 죽인 것도, 학살한 것도 아닌데 왜 내 탓을 하는가? 지도부를 탓해야지.
물론 이러한 내용에 대한 반론, 반발도 다양하지만, 여기서 논한 핵심 내용도 유심히 생각해볼 구석이 있는 건 확실했다.
뭐, 접근성 자체가 철학인 시점에, 역사학자를 비롯해 실질적인 걸 논하는 주류들 기준에선, 탁상공론 및 몽상으로 들릴 여지도 있긴 하다만.
이 또한 결국 어디에 주관을 두느냐에 차이다.
역사의 주체를 누구에 두냐에 따라 해석이 180도 달라지듯.
삼국지에서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느냐, 조조를 주인공으로 삼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180도 달라지듯.
그런 의미에서 에드릭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길 원치 않았다.
…그거, 대놓고 개고생을 자처하는 거밖에 더 되겠나.
화려한 일생.
주목받는 삶.
근데 이건 정의롭든 불의하든 전부 다 손해 보는 장사다.
명예욕이 골수까지 미쳐 작정하고 거기에 눈깔이 돌아갔다면야 모르겠지만.
유명해지는 건 그 자체로 비난과 비방, 혐오를 자행한다.
이는 단순히 혐오의 시대인 현대 사회만의 독보적 병폐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에도 도편 추방제라는 게 있어서, 훗날 독재자가 될 법한 자, 혹은 그에 준하는 위험인물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 10년간 아테네에서 강제 추방하는 제도였는데, 대상으로 하여금 6,000개 이상의 파편이 모이면 이를 실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아리스티데스라는 정치가가 있었는데, 수많은 아테네 시민에게 정의로운 이, 공정한 이라 부르며 칭송을 한몸에 받던 사내였다.
그러나 그도 그런 도편 추방제에 의해 쫓겨났다.
일화 중 하나로, 그는 글을 모르는 노인이 도움을 요청해 도자기 파편에 그 이름을 적어줬는데, 그 직후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러자 노인 왈.
“한 번도 본 적 없네.”
그러자 아리스티데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 사람이 당신에게 해를 입혔습니까?”
이번에도 노인은 태연히 대꾸했다.
“그런 적은 없었지.”
이에 아리스티데스가 다시 물었다.
“본 적도 없고 딱히 해를 끼친 예도 없는데, 왜 이 사람을 내쫓으려 한단 말입니까?”
이에 대해 노인은.
이런 답을 내놓았다.
“주변 사람들이 그 인간을 매번 정의롭다며 자꾸 칭찬을 해대니까, 내 진절머리나고 짜증이 나서 그랬네만?”
…그리고 노인이 적어 달라 했던 이름이 바로 아리스티데스였다.
보다시피 이런 존재조차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비방, 비난, 매도로부터 자유롭기란 불가능하단 의미.
애초에 유명해진다는 건, 그만큼 욕을 퍼먹을 수밖에 없단 사실을 아냐 모르냐에 따라, 그쪽 삶이 수명이 결정된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왜냐면, 그가 눌러앉은 그 자리는, 모두가 앉고 싶어 했던 자리였기에.
정당한 주인이라 여겨지는 이가 그 자리에 앉더라도, 이걸 용납 못 하는 이는 반드시 튀어나오게 되어 있단 법이다.
“수지타산에 안 맞아.”
왜 그런 개고생을 자처하나.
그래서 에드릭은, 그게 싫어서라도 가급적 선을 그어두는 삶에 집중했던 거다.
어차피 적당한 재산에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잘 먹고 잘 사면 그 자체로 좋은데, 명예욕이란 허울에 휘말려 괜한 위험, 수고스러움을 자처하는가.
“하여간.”
그러니까, 지금처럼 눈에 띄게 주변을 헤집고 다니는 건, 영 그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도, 팀장님 말을 들어보면… 이번 일만 어찌 매듭지으면 이후부턴 얌전히 방구석 생활을 영유할 수 있다 했으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애초에 카일론으로 돌아간다 쳐도, 철왕 때문에라도 이게 영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죽을 때까지 버틴다? 몇 년이 걸릴 줄 알고?
그렇게 그가 물러난다 해서, 정말로 마음 편히 방구석 생활을 즐길 수 있을까? 흐음….
“그 속에서도 온갖 수고스러움이 뒤따르겠지.”
애초에 왕가의 체면이니 뭔가를 따진답시고 다른 이들과 자유롭게 만남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이건 이 자체로 부자유스러운 거잖나.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기엔 이건 이것대로….
“전하, 슬슬 군의 시간이옵니다. 준비하심이….”
그런 식으로 사색에 잠겨 있자 시간도 훌쩍 지나가고야 만다.
“후우.”
나직이 한숨 쉰 에드릭은, 알았다고 답하며 채비를 정비했다.
“…귀찮구나.”
자리가 불편하니 멍 때리는 것조차 힘겹게.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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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리스터 마르바스 가르벨은, 세간에선 이렇게 불립니다. 에드릭 콘웰. 수년 사이엔 이렇게 불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에드릭 콘웰 드 에스클리오라. 뭘 감추랴. 그가 바로, 카일론의 전여신, 알브레시아스 칼 에스클리오네의 하나뿐인 반려인 존재. 바로 그 자가, 여기 있는 그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는 바요.”
음, 그러니까….
고위 귀족과 온갖 적폐들의 온상들이 한가득 모인 이곳에서, 뜬금없이 폭탄 선언을 내던지는 팀장님이시다.
저기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하고 상의도 없이 이런 무시무시한 소리를 불쑥 터트리신 것인지…?
덕분에 회의장을 졸지에 시장판 못지않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내 제대로 들은 게 맞소? 바, 방금 그녀가 한 말이….”
“뭐가 어떻게 된 게요?!”
“이럴 수가….”
저기, 여러분들도 당혹스러운 건 아시겠지만, 제가 훨씬 더 당혹스럽습니다만?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라는 추궁과 불만, 경악의 눈초리를 확 쏘아보내나, 팀장님은 의기양양할 따름이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아니면 이 상황을 순수히 즐기는 건가.
아님 뭐냐, 내가 자의로 죽기는 싫으니 고의로 죽임 당하게 ‘유도’를 하겠다는 건가? 그로 인해 뭘 얻으려고? 어떤 이득이? 오히려 내가 여기서 인질이 되면 그게 더 문제 아닌가? 아니, 배신자로 몰아 어쩔 수 없이 협력하게 이끄는 게 여러모로 적절할지도? 그게 아니면 알아서 자결하게끔 판을 화려하게 깔아준 건가?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머리가 하얗게 된 것보다야 100배는 낫다 쳐도, 혼란 덕에 말랑말랑한 두뇌가 마음껏 혹사 당하는 이 체험은, 가급적 권하기 어려운 체험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아니 근데… 정말로 이게 맞는 판단인 겁니까? 장난 아니고?
에드릭은 도저히, 이 사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