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20)화 (420/454)



〈 420화 〉126. 바람이 분다.(3)

“지금 이게 무슨 행패요?! 그럼 여태껏 우릴 향해 이것저것 논한 그 모든 사안들은? 전부  우릴 기만하려는 수작이었던 게요?!”

나이 든 노귀족 하나가 얼굴을 붉힌 채, 간신히 화를 참아내는 기색이지만, 눈빛만 보면 사람 하나둘 정도로 금세 때려죽여도 모자람이 없을 듯한 기세로 따져댔다.

“잘들 상기해보시오. 내용 중 거짓된 바가 하나라도 있는지.”

그럼에도 팀장님은 태연하게, 빛나는 외모를 뽐내며 의기양양하게 발언해대고 있었다.

순식간에 이곳을 적지로 만든 주제에, 제집 안방에 있는 양 아주 태연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이었다.
괜스레 이쪽만 위통을 앓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에드릭은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 해야 할지, 혹여 나서야 될지도 모를 상황을 면밀히 검토했다.
어차피 신분 밝혀진 마당에 능력 좀 쓴다고 문제 될 건 없을 테고.


‘그냥 싹 다 죽여?’

딱히 살의는 없더라도, 먼저 얻어맞을 바엔 선빵필승의 예를 조속히 활용해보는  어떨까 하는, 괜한 걱정이 뇌리를 어지럽혀 간다.
의외로 이곳 수뇌부들, 핵심층만 싹 다 날려버리면… 이쪽 진형의 통합은 물 건너갈 여지가 다분했다.
그러면 카일론을 비롯한 다종족 연합이 파죽지세로 지역을 복권하는 거 이상으로, 그들의 목에다 어금니와 발톱을 들이밀 수도 있을 터.

그 와중에 팀장님의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자, 머리들을 굴리시게. 지금 이 상황에서 본녀가 이러한 사실을 밝힌 이유를.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이들은 무언가 감이 잡혀야 정상일 텐데, 내 그대들을 너무 과대평가한 건가?”
“그 무슨!”
“더 들어볼 필요도 없소이다! 당장 둘을 구금해 볼모로 삼으면!  자체로 우리에겐 유용한 패가 둘, 하나 곧 합류하게 될 황자까지 추구하면 셋이….”
“정말 그걸로 사태가 해결될 거라 보오?”
“그럼 어쩌잔 말이오?”

그 와중에 묘하게 조용한 이들이 있었다.
눈여겨본 건 아니지만, 에드릭은 그들 대부분이 뿌리 깊은 적폐, 가문 자체가 엘프로 인해 잠식된 가문들이라는 걸 눈치껏 파악할 수 있었다.

‘미리 말이 오고 갔다?’


충분히 고려할 만한 부분이다.
다만 구 제국 기준으로 가장 먼저 밀어버려야 마땅한 적폐, 악질들이 있다면 저들인데, 되려 저들과 손을 잡는다?


‘…타산적으론 맞긴 하네.’


저들을 끌어들이면 의외로 사태를 뒤집는데  어려움은 없을 터다.
이 경우 구도가 어찌 굴러갈지, 조금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주변 상황은 그럴 여지를 고려해주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었다.

삶이란 단  순간도 진지하게, 차분히 생각하고 고려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특히 일이 발생하거나 벌어진 직후엔, 침착하면서도 판단을 빠르게 내려야만 한다.

‘게임처럼 잠시 멈춰놓고 기다리거나,  턴 끝날 때까지 계속 시간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


뒤로 돌리거나 물리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고.


“그리고 놀라긴 아직 이르다만, 앞서 이곳에 온 손님부터 소개해야겠구나.”

거기다 팀장님의 발언에 소란이 살짝 잦아들었다.
또 무슨 충격을 가져다주려고 저런 소리를?

이윽고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누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하녀 차림새인 그녀는 몹시 인상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에드릭은 순간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이윽고 팀장님 옆에 선 그녀가 무심한 어조로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구나. 이 몸은 알브레시아스 칼 에스클리오네. 다 알다시피, 네놈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존재이니라.”


………….
…????

주변에 알 수 없는 침묵이 도래했다.

“긴말할 거 없다.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말 한마디를 신중히 하거라. 아, 너 혼자서 어쩌겠냐 그런 싱거운 소리는 말아라. 그럼에도 굳이 떠들어 보고 싶다면, 어디 해보던가.”

적지 한가운데인데도 마찬가지로 당당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지금 그녀는 협박, 겁박을 해대고 있는 거다.
과장됨도 없이, 너흰 목줄 잡혔으니 못 믿겠으면 발광해봐라, 하며 쿨한 태도를 내보이니, 이게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지.

실제로 시장판처럼 소란스러웠던 주변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뭐 신전에 들어선 것도 아닌데 왜들 갑자기 조용해진 걸까.
역시 이곳에 들어설 정도는 되니 눈치며 시류 파악에 한에선 그럭저럭 감이며 머리가 돌아가서 그런 걸까.

“솔직히 말해 싹  죽이고, 내분을 일으키고, 이간계를 펼쳐 스스로 자멸하게 했다면, 구 제국 영토 반을 수복하고, 내 후대에 전부를 집어삼키게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겠지만, 그런 싱거운 짓은 흥이 떨어지니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한다. 앞서 설명을 듣고 온 이들도 있겠지만 아닌 이들도 있겠지. 왜 듣지 못했는지는 스스로 잘 알리라 판단한다. 그조차도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을 테니. 아무튼 설명하지. 다른 의미로 설명을 바라는 이들이 이곳에 꽤 많이 있어 보이니.”


그러면서 패왕녀가 이쪽을 고개 돌려 당당히 직시하니, 금세 주변 시선이 몰려 든다.

저기요? 저한테 설명하라는 건 아니겠죠?
에드릭은 괜히 찔려서 철렁했다.


“그건 본녀가 설명하지. 기본적인 도리도 있고 하니.”

이윽고 팀장님이 배턴을 넘겨받아 설명을 이어갔다.

요약하자면.
카일론을 비롯한 다종족 연합과, 이곳의 왕후장상, 귀족을 비롯한 지배계층 간의 동맹.
이로서 쓸데없는 대전쟁, 전투를 치를 필요가 없어질 거라는 점.
당연하지만 여기까지 언급된 시점엔 온갖 반발이 이어졌는데, 그들 가운데 가장 반발이 심한 이들은, 당장 자신의 나라며 영지가 다종족 연합에 먹히거나 빼앗긴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팀장님 왈.

“그대들에겐 선택지가 놓여 있다. 공존하느냐, 이주하느냐, 통치하며 지배한 너희만 제외되고 배척당하느냐.”
“그 무슨 말도  되는 억지요!”
“귀족 사회에서 명분은 중요하나, 반대로 그대들이 제거되면 이쪽 진영 명분은 일소되는데, 그러면 되려 진영 간 반목이 사라질 수도 있을 테고, 더 이상 전진하는 바 없이 각 영역을 공고히 다지는 쪽으로 협약을 해버리면, 그대들이 대관절 뭘 어찌할 텐가?”
“그….”


실제로 여긴 귀족이란 이름의, 자칭 왕후장상들의 이권과 이익 수호를 위해 모인 부류에 속했다.
사실상 몇몇 영지 및 나라, 영토 복권을 목적으로 군이며 병력을 모은 것조차 실상은 자신들의 영지에 피해가 못 미치게 하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예라 볼  있었다.

전쟁이 나도 자국 영토에서 나는 것보단 바깥에서 나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익이다.
그리고 약소 영지, 영토, 국가라는 이름의 텃밭을 뒤집어 엎어 새로이 개간하는 건, 바로 그들이 될 테니.

전쟁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명분도 보장.
그리고 무수히 많은 이들이 합류해 성과를 보일수록, 배분받거나 할당받는 이익도 극대화될 테고.
사실상 소국의 왕, 귀족이며 대귀족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본토를 되찾았을 때쯤엔, 반쯤은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란 거다.

그들이야 복구한 시점에 어떻게든 되겠지, 당장 급하니 이번 위기만 벗어나면 재기할 기회가 오겠거니 싶겠지만, 그건 자기들 생각이고.
애초에 자신의 살을 깎아가며 참가하는 건데, 저들이 바보도 아니고  좋은 일을 대충 시켜주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머릿속의 꽃밭이 죄다 헤집고 뿌리째 뽑히는 걸 이번에 제대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절망의 구렁텅이가 어떠한지 몸소 굴러떨어져  처참한 광경을 겪게 되리라는 건  보듯 뻔한 일.

“그리고 알겠지만 이곳에 합류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방안을 짜내려 틀어박힌 이들이 있지. 그리고 그들의 영토는 이번 전쟁이라던가 분쟁에 제법 격리되듯 떨어져 있기에, 우리끼리 힘을 빼면 그것들이 기회랍시고 이빨을 드러낼 건 자명한 바. 이에 동의하지 않은 이는 없을 터다. 어떤가?”

이조차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어느 의미로 고의로 그러한 이들을 제외 시키기까지 했으며, 그들의 영역도 상당했기에 마냥 무시하기란 힘들었다.
그러나 방도가 있다는 팀장님의 구설수에 속아 결국 여기까지 오게  그들.

애초에 이들이 추구했던 것  하나는, 팀장님이나 에드릭, 그리고 현재 밖을 배회하며 활동하고 있는 또 다른 황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걸려 있기도 했다.

예컨대 구 제국 복권.
제국 황실의 복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통합.

거기서 제외된 것들은 대놓고 먹잇감이 되어 모두 다 찢어서 나누어주겠다는 은밀한 모의는, 각 대 귀족들에게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었을 거다.
거기다 일부 왕국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소국들에 한에선, 왕보단 아래지만 어지간한 대귀족 이상인 제후 취급을 해주며, 더불어 그냥 제후도 아닌 선제후로 추후 황제 선출에 있어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할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 하니, 이건 이것대로 구미가 당겼을 거다.

어쨌든 이야기가 진행되니, 이건 이것대로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렇더라도 카일론의 야욕은 어찌할 참인지요? 마음만 먹으면 당장 주변을 헤집는  아이가 개미의 몸을 짓누르든 쉬운 일이라 생각되옵니다만.”

노귀족이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제국의 황후로서 합류할 테니 그 점은 걱정 말도록.”

응?
으응?

“황후…라 하심은?”
“앞서 제안하지. 제국 황실의 첫 주인으로서 나는 이쪽에 있는 그를 추천하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황후가 되는 그녀가, 우리를 도울지언정 우리에게 창칼을 들이밀고, 그녀의 정예 군대로 우리를 말굽으로 짓밟고 우리 영토와 백성들을 짓밟고 유린할 필요까진 없어질 테지. 어떤가?”
“……?”


저기, 잠깐만요?
에드릭이 식겁해서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입술을 매만졌다.

그러니까  말은 지금….
저보고 황제가 돼라, 이 말씀 입지요?

대놓고 들었음에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아니아니, 이건 아니지. 내가  황제를 해? 그런 건 줘도 싫다고!

“아니, 제가 왜 황제를 합니까? 그냥 누님이… 하시죠?”
“보라. 이 사내가 이토록 과욕이 없네. 아마 경들 위에 서더라도 좀처럼 경들을 못살게 구는 일은 없을 터다. 실제로 그가 살아온 삶 자체가 그러하기도 하고.”

벌써 부하들을 칭하듯 저들을 경이라 언급해댄다.


“하지만….”
“흠….”
“그것이 연기가 아님을 어찌 증명하시겠는지요?”

이때, 장년인이 부정적인 태도로 따지듯 묻자.


“보시죠! 사람을 어찌 믿고  시킨답니까? 그냥 누님이 하시죠?”
“본녀가 황제가 되면 너희들의 모든 이권을 빼앗아 절대 왕권을, 중앙집권 체계를 완성해 경들의 숨도 쉬지 못할 체계를 조성할 것이다. 그러고도 본녀가 되길 원한다면, 내 기꺼이 받아 들여주마. 노예 되고 싶은 자들은 본녀를 칭송하거라. 어서 여제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 어떤가? 그러고들 싶으신가?”


아니 그건 반칙이잖습니까….

“아, 그리고 밖에서 열심히 나뒹구는 아둔한 동생의 경우는,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을 거다. 조금만 어긋나도 저건 친정해서 너희 영토를 쑥대밭으로 만들겠지. 알다시피 그도 오죽 잘 싸우더냐? 전략 전술에도 능하며, 판을 깔아주면 아마 병력 차이가 수배는 나도 족히 이를 극복해 그대들의 본진을 유린해댈 터다. 곁에서 직접 이런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을 터다. 어떤가?”
“아, 그러니까 왜 저한테 상의도 없이 이러시는 겁니까?!”
“했으면 넌 안 했을 거 아니냐?”
“당연하죠. 이런 미친, 아니 귀찮을 짓을 왜….”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질색하고 있는 에드릭이었다.
왕의 부군으로서 있어도 시아버지(?)가 있어서 눈치 보여 제대로 숨도  쉬고 살았는데.


“제가 황제되면 입헌군주제 실현할 겁니다?”
“그렇다는군?”


그렇다는군?
뭐야? 마치 유도하는 듯한  미친 소리는?

“삼부회의를 열어 백성들이 정치에 참여하도록 만들 거고요.”
“그거 참 흥미롭군. 여기 있는 이들은 싫다고 기를 쓰더라도 백성들은 쌍수를 모아 그대를 반기겠군?”
“아니, 우민들에게 뭘 맡긴다는데  쌍수를 들고 맞아들입니까?”
“보다시피 백성 보기를 대놓고 하늘이라 말하는 위선자가 아니라는 걸 이렇듯 그는 잘 알고 있지. 상업 행위로 성공을 그렸고, 신대륙 진출의 교두보를 놓기까지. 개척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재산을 축적하기까지 한 그였다. 그뿐 아니라 개척 당시 전투며 전쟁에도 여럿 참가해 선봉에서 서서 가장 먼저 진격해 가장 나중에 후퇴하는 등의 본을 보였고.”
“그건 전부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그대들의 선택을 돕도록 또 다른 손님을 초대했네.”

또 누군데?!

에드릭이 기겁해하며 팀장의 손짓에 따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끅!”

에드릭은 소리 죽여 신음했다.
왜 님이 여기 계신 건데요?!
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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