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32)화 (432/454)



〈 432화 〉130.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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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보내고 정말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는, 아르세이유에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오랜만이 맞나?”

얼마 전에 온 것도 같고.
아닌가?

“…….”


온 거 맞잖아.
기억이 두루뭉술해서 잠깐 헷갈렸다.

어쨌거나 데이엔 가로 우선 직행.
브로헤닌 왕가에 얽매인 데이엔 가문이지만, 에드릭이  제국 황실을 복권 시키면, 그깟 나라 주무르는  일도 아닐 테고.
다른 의미로, 테티아나가 브로헤닌 왕가를 집어삼킬 여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거다.


“…어떠려나.”

그걸 원한다면, 과연 들어주는 게 맞긴 하려나.
괜한 욕심, 야욕을 부추겨서 사람을 망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간만에 본 테티아나는, 언제나 그렇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절세의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필시 나이를 먹으면 피부서부터 영향이 미치기 마련인데도, 그녀는 되려 분위기만 성숙해져서 너무나도 매력적인 아우라를 뽐낸 채, 기쁜 마음으로 에드릭을 맞아주고 있었다.
단련도 꾸준한지, 무심코 끌어안은 허리도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적극적이구나?”
“그럴 사정이 생겨서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물었다.


“루이샤는요?”
“조금 먼 곳에  있지.”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고요?”
“교육 차원에서 보낸 거니까 걱정은  해도 돼.”


확실한 건, 테티아나가 느끼기에도 에드릭이  이상 그녀 자신과의 관계에 눈치라는   보기 시작했다는 게, 행동에서부터 확연하게 느껴졌다.
“카일론 왕실에서 모습을 감췄다는 소식은 접했는데, 뭐가 어떻게  거야?”
“별건 아니고요.”


에드릭이 설명을 끝마치자.


“…별 게 아닐 리가 없잖니.”


그녀로선 제법 충격적인 내용이었나 보다.

“그래서 말인데요.”


에드릭은 데이엔 가문의 천형과도 같은, 사내를 가문의 소속원으로 들일  없는 이걸, 정식적으로 철폐 내지 내려놓게 만들 의지를 밝혔다.

“뭣하면 그냥 황궁으로 오시죠?”
“…내가 그래도 될까?”
“테티아나가 어때서요?”

에드릭은 그녀라면 아무렇지 않게 황실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자부했다.

하지만….

“거기로 들어가면 내가 너무 숨이 막힐 거 같아. 거기다… 루이샤에겐 뭐라 말하고.”
“…….”

자유.
평안.

이것과 가장 동떨어진 개념이 권력이란 건데, 권력의 중심부로 초대하며 그걸 보장해주겠다고 말하면, 사기꾼이며 악마조차 치를 떨며 나가떨어지리라.
기뻐할 거라 생각은 안 했지만, 역시 그런가.

무엇보다 에드릭이 그녀만을 위한다 어쩐다, 이렇게 말했으면 또 상황이 틀려졌겠지만, 그건 테티아나도 알고, 에드릭도 다 아는 사실.
에드릭은 단  사람에게 일편단심, 올곧게 그 한 사람을 추종할 수가 없었다.

굳이 한다고 치면 팀장님 정도인데… 그건 이미 확정 난 상황이니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저도 얌전히 사는 게 최고긴한데, 너무 나간 거 같아요.”
“뭐든 잘 풀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카일론 왕가에 속했을 땐 제자리를 찾으러   알았는데… 그보다 더한 게 있구나.  너는….”

테티아나는 뭔가 감개무량한 듯 씁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루이샤는 가급적 조용히 키우고 싶어.  아이가  혈통이라는 게 알려지면, 그 삶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점은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어차피 선택지를 언급할 뿐, 선택하고 자시고는 그녀의 몫이니.
한편으론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배경을 이용해 권력을 손에 넣고자 했다면… 에드릭은 말은 안 하더라도, 아주 많이, 실망했을 거다.

오히려 처세 차원에서, 이렇게 사양하고 빼는 듯한 방침을 내보이는 게 훨씬 정치적인 술수로서 알맞다고 본다.
다만  상황은, 테티아나에게 있어선 자연재해와 같은 상황일 거다.
뜬금없이 자신이 황제와 살을 맞대는, 그런 위치에놓일  있게 된 거니 말이다.

“그럼 이렇게 하죠.”


에드릭이 앞서 품어 왔던 생각을 털어놨다.


“브로헤넨 왕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부터 시작하죠. 루이샤는 마음껏 자기가 좋아하는 이와 짝을 이룰 수 있도록. 아, 물론 프리지아도요.”
“…….”

그러자 테티아나가 묘한 눈빛으로 에드릭을 응시해온다.

“그건  아이에게 직접 알려주고, 답을 듣는  맞지 않을까?”
“??”

이건 또 무슨 의미람?
에드릭은 조금, 아주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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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다.”


보자마자 한다는 말이 그거냐?


“그만, 아피젠.”

밀리엄 대공의 딸로 한때 신대륙에서 나름 같이 재미 좀 본(?) 사이인 그녀.
당장 의원 직을 내려놨다지만, 그녀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져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엘프를 비롯해 이종족들과의 관계가 그녀 이상으로 굳건한 이가 없었으며, 인간이라 하여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렇게 보려고 했는데 올 때마다 못 봐서 엄청 아쉬웠습니다만.”
“그럼 직접 찾으러 오지 그랬나?”


멜레니아는 여전히, 변치 않은 당당함을 지니고 있었다.
고귀한 대공 가문에 하프 엘프라는 특이성까지.
그럼에도 사교성도 좋은데 능력도 상당히 걸출하며 진취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하마터면 전부 잊은 줄로만 알았지.”

그러면서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고개를 돌려 눈가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는 시늉을 한다.
자연스레 그녀의 뒤편에 자리한 호위가 눈을 부라리고 있지만….


“잊을리가요. 절대 그럴 리가 없죠.”


어쨌든 에드릭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저 황제 되는데, 황비 되실 생각 있으세요?”
“……?”

멜레니아는 잠시, 자신이 뭔가를 잘못 들었나 싶어 뒤에 서있는 아피젠을 보며 물었다.

“방금 저 친구가 뭐라 말했느냐?”
“화, 황비가… 되실 생각이 있냐고… 그랬죠?”


말하고서도 자신이 뭔 헛소리를 하나 싶었을 거다.

“하하하하! 재미난 농담이로군! 체격도 그렇고 몸이 자라난 만큼 유머 감각도 많이 발전했나 보구나!”
“음, 진짠데.”

에드릭이 거듭, 3번 정도를  진지하게 말하고서야, 멜레니아는 가만 있어 보라며 미간을 지압해댔다.
“구 제국 황제라니… 이게 무슨 말장난도 아니고.”
“권력욕이 충만하신 멜레니아 님께선 아~주 좋다고 들러붙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농으로라도 그런 소리 마라.”

멜레니아가 질색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에 황비가 무슨 주도권이 있다고. 황후도 아니고. 황후여도 기반이 다져지지 않으면 거긴 그저 사지가 아니더냐?”
“제가 신의 가호를 받고 있어서 어지간한 건 문제없을 거예요.”
“또 가당치 않은 소리를.  본 사이 머리가 이상하게 된 건가?”

신은 아니어도 본사의 가호를 받는다 치면, 못 누릴  또 뭔가.


“조금 편하게 말한 것도 있지만, 멜레니아가 있으면 이것저것 도움이 많이  것도 같고, 원하신다면 어떨까 싶어서요.”
“너무나도 매력적인 제안이로군. 독배를 들이키는 거 같아 목이  칼칼할 거 같아서 그렇지.”


그 전에.

“네가 다른 여자와 부대끼는  멀뚱히 지켜보면서, 네게 나도 안아달라며 재롱을 떨어야 한다는 게, 그게 나는 내심 못 마땅하구나.”
“…그렇군요.”


상충될 수 없는 부분이다.
에드릭 자신이 그럴 리 없다 말해도, 어떤 식으로든 시간을 그녀 개인에게 쏟고 할애하지 않은 한, 그런 서운함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테티아나에게조차확답을 못 줬는데, 멜레니아에게 그런 확답을 준다? 이게 기만질하고 뭐가 다르겠나.
양쪽에게 거한 사기를  셈이 되는데, 그건 아니지.

“네 정치력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는지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거기 가서 내가 얻을 것보단 잃을 게 더 많아 보이는구나.”
“그런가요.”
“너는 우리에겐 자애롭고 친절해도, 네 후계자며 자식에겐 냉정할  같아서 더욱.”
“……?”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는데, 너는 순순히 자식을 오냐오냐하며 기르지 않을 거다. 하물며 황제가 된다면 더 그렇겠지.”
“잠깐만요? 어째서 그렇게 장담하실  있는 건데요?”

설마 루이샤를 방치한 거 때문에? 그건 이거하고 많이 틀린 이야기일 텐데?

“너는 기본적인 도덕과 관념, 상식과 예의, 범절 등을 중시하지. 맞는가?”
“그렇죠.”
“네 그 기준은 사실, 누군가에게 있어선 말도 안 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너는 그 기준을 우리에겐 들이밀지 않아도, 네 자식에겐 반드시 들이밀게 될 거다. 그리고, 그렇게 안 된다면 다행이더라도, 그렇게 된다고 가정한다 치면, 너는 우리가 옆에서 뭐라 떠들어도, 전혀 들어먹질 않겠지. 안 그런가?”
“그건….”
“네가 애인들에게 보내는 헌신과 애정, 사랑과 배려는 어느 의미로 병적이야. 너는 자신의 욕망에 일정 선을 그어두고, 절대로 그걸 넘으려 하지 않아. 그게 누군가에겐 윤리관이 투철하며, 고결한 무언가 일 수 있지만, 욕망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건, 존재 그 자체로 위협이자 질투를 유발하고, 증오를 유발할 수 있는 그런 거다. 네가 남들에게 대놓고 그걸 어필하지 않은 채, 시류에 맞게 흘러가듯 살아간 건 무슨 이유였지? 그런데 지금 네가 주류가 된다면… 과거와 달리 시류에 맞게 흘러만  순 결코 없을 거다. 물론 너는 능숙하게 잘 해내겠지. 네 처세술하며 정치며 중상모략에 대응하는 그건 이미 여러 차례 접해온 나로선 거기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진 않을 거다. 이미 카일론에서도 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냈고, 지켜내기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부터는 많이 틀려지겠지. 너는 공략하고 허물 수 없더라도, 아마 네 애인들은 그러한 위험에 노출될 거다. 그러나 너는 그것조차 잘 제어하겠지. 그러나 과연 자식 대에까지 그럴 수 있을지, 나는 장담할 수가 없구나.”
“…….”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확 와닿는  아니다.
애초에 이건 너무 편향된 억측이기도 했고.
그런데도 그녀가, 내게 대놓고 쓴소리를 한다는 거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라는 것.

멜레니아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토로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게 마냥 아니라 무시할 순 없을 거다.
그녀가 내게 대놓고 안 좋은 소리를 털어놓은 시점에, 그건 필시 그럴 이유가 있었을 거다.


“조금 혼란스럽네요.”
“그래. 그리고 네가 마주해야 할 필연이지.”


그럼에도 걱정보단 뭔가 흥미진진한 게임을 구경하는 듯한 반응이다.
마치 보드게임에서 네 턴이니 어서 주사위를 굴려보라는 듯한 표정.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가 뭔지, 조금 속 시원하게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우선 네 슬하에 자식이 여럿 되는 건 알고 있겠지?”
“…….”
“단순히  뿌리는 차원에서 부탁했으니 들어줬다, 이건 이해한다. 너로서도 나쁠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들 가운데 넌 누구에게도 자신이 아버지라 떳떳하게 밝히기는커녕, 아예 접근조차 안 했지. 이 또한 이해는 된다. 그런 아이들마저 자기 자식으로 인정해버리면, 족보가 꼬여도 한참 꼬일 테니까.”
“……음.”

그래서 그런 건 아닌데.

여기에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긴 했지만….

“거기다 그렇게 많이 해댔음에도, 임신한 여성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지.”
“…뭡니까?”
“임신하고 싶다고 밝히고, 널 설득 시켰다는 것.”


확실히.
그건 맞다.


“이거 하나로 넌 원하면 누구에게나 씨를 뿌려 자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명확한데, 안 그러고 있다는 건데…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단 말이지.  시대에 자식을 가지고, 가문을 꾸려 혈통을 이어가는 건, 모든 종족 고하를 막론하고, 의무며 책임이자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가 짙은데도. 왕가가 권력을 쟁취하려 날뛰고, 가문의 성세를 키우려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너는 그런 쪽으로는 그러니까, 완벽하게 타고 난 셈이야. 그런데 그걸 썩힌다? 이상하잖아? 하물며 그것도 다른 의미로는 초능력에 가까운 건데.”
“오해가 좀 있으신  합니다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에요.”


애초에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막연히 첫 아이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거나 감동을 받는다거나 어쩐다거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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