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33)화 (433/454)



〈 433화 〉130.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다.(3)

그래, 잘 모르니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남들과 같은 감동을 누릴 수 있을지도.
이런 기대를 아예 안 해본  아니다.

하지만.
먼저 생각나는  이거다.

임신한 아내를 봤다가 문득 뱃살이 터지고 부르튼  보고 충격을 받아 다른 의미로 그녀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아닐까.
…고귀한 일을 하고서도 그런 충격을 당한 일화들을 보곤, 괜스레 내 쪽도 불안했던 적이 있었다.

애초에 나는 기쁨이니 감동이니 뭐니, 이런 쪽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는 쪽이 맞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리스크란  말하는 걸까?

아니, 그걸 왜 리스크로 생각하고?


“장담하는데 너는 그녀들을 위해선 목숨을 바칠 수도 있어. 그게 가능한 사내야. 굉장하지! 그런데, 자식에 한에선 몰라. 차라리 엄연한 타인이라면 냉혹하게 버리던가 구하던가, 극단적 조치 중 하나를 망설임 없이 하겠지만, 너는 자식을 대할 땐 그럴 수 없어. 왜냐하면, 그게 바로… 네가 세상을 제대로 직면하는 최초의 순간일 테니까.”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좀 힘든데요.”
“날 믿어라.”


멜레니아가 말했다.


“너는, 모두의 영웅이 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너를 친애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존재에게 영웅으로서 기억되고, 그 마음이 변치 않길 기대한다. 그걸 위해 몸을 갈고 닦고, 마음가짐을 정갈히 하는 등, 노력을 서슴지 않지. 하지만… 내가 보기엔  어딘가가  비었어. 당시에야 네 삶이 기구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알았다. 너는… 뭔가 중요한 걸 포기했어. 물론 그게 없었기에 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겠지만, 이젠 달라. 이젠 그게 다시 필요해질 거야.”

 순간만큼은, 멜레니아가 뭔가, 다른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넌 이미 목적을 이뤘는데도, 아직까지 공허하잖아. 그거, 뭔가 좀 이상하지 않느냐?”
“…….”

목적을 이미, 이뤘다?
금세 떠오르는 건 팀장님과 맺어졌다는 사실 하나.
그 외에도 몇 가지 떠오르는 건 있다.

그래, 어차피 지금 에드릭의 삶은, 사실상 에필로그에 해당할 거다.
팀장님과 맺어지고, 이어 황제가 되면… 아마  이후론 그럭저럭 무난하고 평탄하게 흘러갈 테지.
그걸 위해 팀장님이며 왕녀 전하가 나름 힘써주고 있는 거 아니겠나.

다 잘되고 있다. 무엇 하나 거리낄 게 없다.
그래서인지, 아무렇지 않게, 예상조차    만남 속에서, 뭔가   없는 지적을 받아버리니, 마치 머릿속에 담아둔 세계관 자체가 흔들리는 거 같은, 그런 위화감과 이질감을 느끼고야 만다.

여성의 매력이란 건 뭘까.
결혼으로 인해 깨어져 나가는 이미지란  뭐고.
서로  거 다 알아간다는 것.
서로 거리낄 게 없어진다는 거.

흔히 아이돌은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던가, 쌩얼에 대해선 터부시하고 언급  한다거나, 불미스러운 무언가에 대해선 은연중 묻어간다거나.
어쩌면 내가 이곳 세계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들에 대한, 애인들에 대한 기대는 그러한 것들일 거다.
그리고 그 이상은 언제든 깨어질 수 있다는 것도 이미 받아들인지 오래고.

그럼에도 사랑하고, 좋아하고… 그럴 수 있게 됐다는 건에 내심 뿌듯함을 느낀다.
그래, 뿌듯함.

…사랑하고 좋아하는데, 뿌듯함을 느끼는 건 조금 이상하잖아?
이걸 머리로 인지하고는 있는데, 여태 당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해진다.
그렇다면 내 사랑은 거짓인가?

그건 아니다.
진실은 맞다.

그러나 그 깊이가, 당장에 나로선 짐작이 서질 않는다.
그저 섹스하고, 어떻게 하고 어쩌고저쩌고하면 그게 또 증명되는가?

아니다.
그건 아니지.

어차피 단순 생식 행위, 교미, 교접 개념으로 생각하면 간편해진다.
죄다 쾌락 행위의 일환이고.

이렇게 냉정하게 정리하면 한편으론 간단해진다.
다시 말해 뇌의 작용, 신경 작용  반응.
감정이니 뭐니 이런 것도 전부  착각. 진실인 척하는 착각.

근데 그렇게 따지면, 아예 내가 살아 있는 세계 자체가 진실이냐 아니냐, 이런 물음으로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통 속의 뇌와 뭐가 다른가.

아니, 너무 나갔다.
이게 아니야.
정확하게는.

“깨달았나 보군?”
“진작 알고는 있었죠. 별거 아닌 거긴 한데….”
“사실 몰라도 됐고  필요도 없었겠지. 대부분 그렇게 사니까. 부부 관계는 좋아도 자식에겐 소홀하다던가. 실은 너무나도 사랑하고, 소중하다는 점엔 변함이 없긴 함에도… 너는 그걸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여.”
“근거는요?”

가만히, 에드릭이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야 네가 나중에 불행해지지 않을 테니까. 시한폭탄을 달고 있는 거 같아서, 누나는 내심 불안해지는구나.”


너무 편향돼서, 선을 넘지 않고 지키기 위해 고사 되고 썩어 가고 무너지는 걸 자처하면서까지, 너는 자기 자리며 위치를 이탈하지 않겠지만.

“다른 이들은 그럴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저항하지 않는다.
마치 늪에 빠져들 듯, 잠겨 들더라도 저항하지 않으리라.

그게 옳고, 그릇되지 않았다면.
기꺼이,  몸을 방치하리.


“이미 그런 전적도 있는  같고. 잘은 몰라도.”


그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대체 정체가 뭡니까?”
“별거 있겠어. 남보다 좀  잘난 하프지.”


벨레니아는 자조하듯 턱관절을 몇 차례 움직여 입매를 고치곤 혀로 입술을 핥아댔다.

“잘먹고  살고 세간에서 말하는, 그럭저럭 할 거 다 하고 이루고, 그렇게 모두가 행복하다는 삶을 누리고 살다 죽는다.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끝인 게 맞긴 한 거고?”
“뭔가 악마가 속삭이는 거 같네요. 엄청 매력적인 것처럼 들리는데, 터무니없게도 들리고….”
“제안 하나 하지.”

멜레니아가 말을 자르며 요구 조건을 내밀었다.


“네 반려를 내치고, 날 반려로 삼아봐. 그러면 네가 모자란 모든 걸 채워주지.”
“……?”


뭐지, 이 전개는?
순간 몰래카메라인가 싶었다.

“선택지를 하나 제시하는 거야. 이로서 넌 한 길로 직행하던 행보로부터, 또 하나의 길목에 놓인, 아주 골치 아픈 상황과 직면하게 되겠지. 매순간 복잡할 거야. 그리고 일이 좀처럼 안 풀리고, 뭔가 답답하고, 원하던 삶이 아니라는 걸 헤아리고, 후회하고, 고뇌함에 따라… 내 제안이 계속해서 떠오를 테고. 나는 행복을  손바닥 위에 올려주지 않을 거야. 반대로  쥐게 손에다 못이며 압정을 찔러줄 테지. 냉혹하지만 확실한 진실을 일러줄 테고, 네가 진실에 도달하여, 보다 확실한 근본이자 근원점에 이르게끔 해줄 거야. 당연하지만  길이 무척 고되고, 힘겨우며, 네가 여태 이룬 모든 게 하루 아침에 재로 변할 수도 있어. 그러니 순탄하게, 무난하게 살려면, 그냥 지금 생활에 만족해. 그러면 다 해결될 거야.”

그러면서 빙긋 웃는데, 이 시점에 에드릭은 확실히 이해했다.
멜레니아는….


“그래, 슬슬 짐작하겠지만, 이거 이직 제안이야. 네가 이룬 모든 걸 걷어치우고,  다른 길로 오라는 제안. 선택지가 많아서 손해 볼 건 없잖아?”
“…제가 뭘 잘났다고 저한테 이런 제안을?”
“중요한 건 네가 아니야. 이로 인해 우리가 얻는 이득이지. 그리고 너는, 네가 원하는 바를 얻을 테고. 그게 우리에겐 별달리 중요한 게 아니니까. 다만 너는 확실하게 구원이 됐든 구제가 됐든,
네가 원하는 결말을 얻겠지. 거기엔 거짓도 뭣도 없어. 진실과, 결과가 있을 뿐이지.”
“절 흔들어서 결과적으로 다른 쪽에 해가 가도록 유도하시겠다?”
“뭐 이것도 공식적 활동이니까 너무 뭐라 하지마. 불법적인 거 아니다? 너네 윗선에서도 다 알고 있을 테고, 딱히 하자라거나 이로 인해 네게 불이익이 떨어질 일도 없을 거야.”
“…반대로 대놓고 알림으로써, 제 선택지를 좁히시려는 건 아니고요?”

내가 사람 눈치는 잘 본다.
선을 왜 지키는가.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변의 눈초리가 바뀌면, 나 자신은 아니어도, 결과적으로 내 선택지며 행동의 본질은 왜곡될  있는 거다.


“이건 너한테도 꽤 유리한 조건인데?”
“…….”

그리고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순식간에 이해했다.

“그래, 너는 맹목적으로 그녀들을 믿어주지만, 이제 슬슬 난이도를 좀 높여봐야지. 신뢰에 맹신, 맹목은, 재미없잖아?”


그러니 의심을 던져준다.
불신의 씨앗을 심어둔다.
이것조차 극복하면 더욱 진실한, 극렬한, 지고한 사랑이 완성되겠지만.

“아니면 파탄 나겠지?”


한쪽만 어긋나도 손바닥이 마주칠 일은 없어진다.
이건, 그런 게임이다.

에드릭은 언제나 상대가 손바닥을 마주칠 수 있도록 가져다줬으며, 그 이후엔 그녀들이 그렇게 해주곤 해왔다.
그러나 지금, 멜레니아…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그걸  하게 만들겠단다.

구체적인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진짜 멜레니아인 겁니까, 아니면 그냥 모습만 흉내 낸 겁니까? 그도 아니면 빙의?”
“마음대로 생각하렴. 어쨌든 선택지 중 하나로 두는 거다?”


확 바뀌었던 기척이랄까, 분위기가 다시금… 멜레니아 특유의 그 여유롭고 뻔뻔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그럼에도, 어떠한 위화감도 없이, 그녀는 평소처럼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 만나서 즐거웠다. 다음 만남은, 더욱 즐겁길 고대해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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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였을까.
아직도 얼떨떨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우리 본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도 이곳 세계에 개입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린 이미 알게 모르게 엮여 있었단 말인가?
아니, 솔직히 이게 맞긴 하지.
일방적으로 본사 하나만 다중 세계를 주름잡는다?
본사가 압도적이라는 건 인정하더라도 경쟁사가 아예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건 상담이 필요하려나.”


침묵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거 자체가 수작에 말려 들어가는 격이 된다.
아까 밀레니아가 말했듯, 이건 본사며 윗선에서도  아는 이야기라면.

‘감추는 거 자체가 다른 속내가 있다 해석될  있겠지.’

본사가 빤히 이쪽 생각을  헤아리고 있다 하더라도, 생각의 선에 그치면 정상 참작될 여지가 다분했다.
그러나 이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뭔가 계획대로 안 이루어지는군.”


무엇보다 밀레니아가 찌른 그건,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였다.
어쩌면 평생 헤아릴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였을지도.

애초에 누가 애를 낳을  그런 걸 일일이 따지냐.
낳고 나서, 하나하나 새로 배워 나가듯, 갖추어가며 습득해가며, 그로서 다시 성장하고, 배우고 익히고….

그러면서  나아질 수도, 더욱 실수며 실책을 쌓아갈 수도 물론 있겠지만….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

이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밀레니아가 그런 식으로 찌를 때 늘 그래왔듯 적합한 대응을 해냈을 거다.
그런데도 거기서 꽉 막혔다는 건, 나도 모르는 뭔가가 내 안에 꽈리를 틀고 있단 의미겠지.

 불안감, 공백, 안이함.
그게 어떠한 형태인지, 뭐가 뭔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겠지만.
 가지는 확실했다.

그래, 나는 필시 원하는 걸 얻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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