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6화 〉131. 그럼에도 엔딩은 다가온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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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만 놓고 보면….
“다들 자유를 좋아하는구나.”
아무래도 황제의 옆에 선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나 보다.
물론 에드릭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그녀들에게 요구하고, 요청하지 않은 이유도 포함돼 있을 거다.
예컨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지체 높은 존재가 된다는 건… 그 이상의 희생과 포기해야 할 것들을 선별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런 의미에서 다프넬은 오히려 좋구나 하며 달라붙어 온 터라, 어느 의미로 가장 예상대로 움직여준 터라, 되려 고마운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쳐도….’
그게 과연 그녀에게 있어 행복한 흐름일지는 솔직히 확신이 안 든다.
그녀의 출신 및 직업적 특성 때문에라도, 황실에서 지내기엔,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닐 텐데.
‘거기까진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는 게 문제지.’
나름 손을 쓴다 쳐도 한계는 다분하다.
뭐 그녀가 일일이 그런 거에 상처 입고, 멘탈이 터질 거라 생각하긴 어렵지만.
반대로 자신의 파벌을 형성해 권력의 쓴맛 단맛을 온전히 다 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려나.
당연하지만 에드릭은 자신의 옆에 달라붙어 파벌이니 권력 확보를 위한 정치 활동, 행각에 대해선 일정 선에선 어쩔 수 없다지만, 조금이라도 선을 넘거나 지나칠 시엔, 그에 합당한 처벌 내지 처리를 할 작정이기도 했다.
아마 밀레니아가 대놓고 너는 자식들에게 냉담해질 수밖에 없다 한 예도 그런 거겠지.
자신의 기준, 규율.
예컨대 선을 지키는 게 우선인가, 자식들이 선을 넘나들어도 이를 용인하고 용서하고, 허락할지를 우선으로 할지.
왜 자식을 오냐오냐 키우면 자식 인생이 망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를 용인하는가.
하나뿐인 혈육이고, 제아무리 그 꼬맹이가 대단하더라도, 결국 부모에게 있어선 물가에 내놓은 아기와 다를 바 없는 것도 사실.
예컨대 옛 동네에 자주 보았던 꼬맹이가 국회의원이니 대통령이라 한들, 그래봤자 과거엔 코흘리게 꼬맹이었다는 사실은 그대로고, 그걸 고스란히 기억하는데 그 존재에 대해 마냥 환상 내지 존경을 품을 수 있을까?
“…….”
비유가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아무튼 그런 거다.
그녀들이 자신의 옆에 달라붙든, 혹은 떨어져 있든 결국 황제의 자식이란 태생적 타이틀이 붙으면, 원하든 원치 않든 날파리들이 꼬일 테고, 허파에 바람 들 일이 늘어날 텐데, 이러다가 선을 넘을 시, 자신의 자식인 건 둘째쳐도 애인이자 부인의 눈치를 보고 과연 순순히 용서하고, 이를 쉽사리 넘길 것인가.
…그건 그것대로 정치적 위협 및 입지를 뒤흔드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타인의 눈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 평판을 망가뜨리면 그 자체로 권위마저 흔들리고, 이는 곧 형성한 권력의 위기로 직결한다.
입헌군주더라도 이는 예외가 없다.
오히려 입헌 군주기에, 명예가 박탈 당하면 그야말로 상징적 호구에 불과해지는 거고, 그러면 권력의 노리개가 돼서 아이돌 마냥 선전 도구로 쓰일 여지도 다분.
에드릭 자신이야 그럴 리 없겠지만, 에드릭 이후엔 예외 없이 그렇게 될 거다.
여기서 패왕녀며 팀장님의 경우와는 또 다르다.
“골치 아프네.”
그래도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건 좋다.
그런 의미에서 팀장님의 최초 제안대로, 에드릭의 존재를 은폐하고 새로이 구 제국 황족의 일원으로서 세간의 활동을 시작한 건 좋다고 치자.
그런데… 패왕녀 남편이라 하는 시점에 이미 에드릭의 존재가 노출된 거라 봐도 무방한데, 이러면 굳이 신분을 감춘다는 개념이 의미가 있을까도 싶도.
즉 외모며 이름을 바꾼다 쳐도, 결국 이를 해명할 시점이 온다는 건데….
‘여기서 패왕녀가 에드릭을 팽개치는 건 정치적 평판으로서도 그렇게 좋은 결정은 아니야.’
차라리 죽는 쪽이 훨씬 낫지만, 이 경우엔 자기 남편조차 못 지킨 머저리로 취급 받으며, 이러한 것이 소문으로 퍼지면 마녀 소리 듣기 딱 좋다.
거기다 곧장 남편을 갈아탄다? 오우 쉣….
‘하지만 이미 공표는 됐다.’
이미 자신이 에드릭인 건 밝혀진지 오래니 이딴 생각은 단순한 상상에 불과하게 됐다.
‘그리고 내 애인 출신들은 하나하나 표적이 되기 십상일 테고.’
그래서 일부러라도 앞서 싸돌아다니며 황실 쪽으로 합류 시키려 했는데, 이게 또 좀처럼 먹혀들질 않았고.
“허이구.”
어쩌다 일이 이리 꼬였는지.
이러니 황제 되기 싫다니까.
결국 패왕녀 님께옵서 철권 통치를 바탕으로 내 권위를 호구로 삼는 건… 좋다 쳐도 2세 3세 때, 지금처럼 일발 역전을 노리 훗날을 도모하는 쉣더뻑들이 없을 거라 어찌 확신하나.
“아, 갑자기 전개가 복잡해지네.”
이걸 고민하던 게 전혀 쓸모없게 되는가 싶더니, 마치 당연한 걸 괜히 노파심 삼아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미 다 알고 있던 내용들이니 각오만 다지면 족하다거나.
그도 아니면 강제로라도 착출하듯 데려왔어야 했을까.
케사린 령에 밀어 넣는 정도가 그나마 유일하게 이쪽이 취할 수 있는, 강제적 조치라지만… 이조차도 지키기 어려운 이들은?
‘거기다 너무 옆에 끼고 살면 왕녀 전하나 팀장님 체면에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이쪽 면목이 서질 않아!
“전부 다 뻘생각이네.”
머리가 무거워진 게 아닌데, 엉덩이가 무거워진 탓에 아주 대가리만 혹사 당하네.
“가서 물어봐야겠다.”
안 돌아가는 머리 돌려서 뭐하냐.
이럴 땐 똑똑한 사람에게 직접 묻는 쪽이 빠르다.
왠지 뻘쭘하고, 뭔가 이런 걸 묻는 게 좀 그래서 시도를 안 하고 있었던 거지.
이럴 거면 진작 책사 겸 참모를 구했어야 했을까.
애초에 황제 씩이나 되는데 꾀주머니 없는 거 실화냐? 유비도 이곳저곳 의탁하고 도주하는 와중에도 신하며 책사며 장수들을 끌고 다녔는데….
뭐 그쪽이야 대의며 명분이며 의욕 및 야망이 다분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지만.
‘야망도 야심도, 뭐 엇비슷한 뭔가도 없는 내가 누굴 끌고 다닌다는 게 말이 안 돼지.’
그런 의미에서 여태 최측근을 못 구한 건, 자업자득인 동시에 현명한 처사라 본다.
…애인이 참모 겸 책사이자 마누라였다면 이건 이것대로 골 때렸을 테니.
반대로 내가 그 입장이 되는 게 맞겠지?
……아마도?
어쨌든 복귀 뒤 한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 보기가 어려웠는데, 작정하고 찾아가니….
“마침 잘 왔다. 이것 좀 살펴보거라.”
패왕녀가 즉각 일거리를 맡겨왔다.
‘응?’
어,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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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사 아닌 혹사를 당했지만, 역시 일을 하고 있을 땐 딴생각이 안 들어서 그건 편했다.
‘일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숙명이로구나.’
안 하면 뭔가 불안하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과 워커홀릭이 결합됨으로 인한 부작용?
“팀… 멜크리우스 님은 어디로?”
“아아, 멜 말인가.”
황녀로 활동할 땐 유느미라.
그 외엔 자잘하게 패왕녀 대행 및 대리 수행 목적으론 멜크리우스라는 신분을 다시 끄집어내서 사용 중이란다.
에드릭이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한 이유로 이쪽으로 이유를 달아뒀기에, 에드릭이 멀쩡히 놀고 먹고 시간 썩히고, 어딘가에서 멍 때리며 뻘짓한 게 아니라는 증거이자 이유로서 팀장님은 현재, 패왕녀 이상으로 주변 정리 및 일처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치 및 외교, 경영을 비롯해 관리.
그 외에 자잘한 것들을 비롯해서, 가장 핵심적인 건 적재적소 인재 배치.
당연하지만 그 와중에 우리 측에 고개를 순순히 수그리고, 전망이 있으며, 능력 있되 반골 기질 다분한 놈들은 알아서 거르되 최대한 반감 안 느끼도록, 동시에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고, 상황에 따라선 정치적 실각 및 퇴각을 부추긴다던가.
세부적인 건 알 수 없었지만, 저번에 통화상으로 겸사겸사 들은 내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속이 불편해진다. 나보고 하랬으면 토 나왔을 뻔.
“공사다망하여 이 몸도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들구나. 식사 정도는 같이 할까 했으나, 자리를 비우는 일이 오죽 많아야지.”
“…이동이 수월해져서 예전처럼 장기적으로 자리를 비울 일은 없지 않나요?”
“그러기에 밤낮, 거리 제한 없이 이곳저곳을 오가는 중이지.”
마치 너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뭘 알면서 묻냐는 식이다.
“뭐….”
이건 내 탓은 아닐 텐데.
근데 달리 말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이들도 사용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이 순간이동 서비스는, 관문까지 가야했던 불편함을 혁신했기에 다른 의미로 개개인의 저력 있는, 능력 있는, 잘 난 놈들이 개나소나 할 거 없이 다 사용할 테고, 이는 곧 과거보다 훨씬 시간 활용이 빡빡해졌음을 의미한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단순히 통신구, 통신기기를 대고 중요사를 논하는 것보단 마주앉아 논하는 게 일반적인 동시에 그게 예의이자 법도이고, 기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엄청 수월해졌다.
과거엔 누구 하나 만나러 간다 치면, 비공식이든 공식이든 도달하는 시간이란 게 필요했는데, 지금은 그냥 그딴 거 없이 의뢰 받은 술자가 튀어와서 곧장 순간이동 마법을 시전하고, 장거리라 하여도 중간 매개를 거쳐 다시 이동.
더군다나 순간이동 마법의 발전으로 신체 부담도 덜어져서 이전보다 활용성도 현저히 상승했다는, 그런 보고를 한두달 전에 틈 날 때 받아본 기억이 났다.
어쨌든 에드릭 자신은 그 서비스 업체에 알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주주기도 했기에, 이런저런 속사정 및 내․외부 정보며 사정을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건 어차피 필연적이었어요. 저는 조금 더 수월하게 퍼질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준 정도고요.”
“그게 중요하단 말이지. 1년, 최소 반년만 늦어졌어도 우리가 이렇게 피곤하게 업무 과다로 치일 일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드물게 약한 소리를 한다.
“그만큼 일이 빠르게 굴러가는 건 좋지 않나요?”
“그렇군. 본인의 일을 몸소 돕겠다는 그 충만한 의지 하나 만큼은 가상하게 여기도록 하지. 잠은 충분히 자고 왔겠지? 아, 그럴 필요 없다고 했나? 하면 당장 시작하지. 우선 저기 쌓인 서류 중 여섯 번째 구간이 네가 처리하기에 충분한….”
“아하하… 요, 요즘 몸이 으슬으슬한 게 하루 이틀 정도로는 누워서 쉬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농땡이 피운 만큼 수습을 해야지. 사적으로 놀러 다녀놓고 염치도 없나?”
“노, 놀러 다니다니요. 제가 얼마나 바쁘게….”
“호오, 진심인가?”
“…….”
에드릭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서류 탑으로 걸어갔다.
“…이쪽이죠.”
결혼 전부터… 아니, 이미 결혼을 했다지만 이건 다른 의미로 잡혀사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뭐, 의지해주는 거야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