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40)화 (440/454)



〈 440화 〉133. 황제라 해서 바쁘라는 법은 없다.

“…….”




요 3주는 여러모로 지옥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나 잘 났어! 황제 됐어! 대단한 사람이야! 야호! 하면서 남들 앞에 자랑질하는 걸로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내 기준에선 전~혀.



“그냥 제도에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잠적했으면 했는데.”
“또 그 소리더냐?”
“황제됐다고 제국 영토 전역을 순방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영토 전체를 돌았다면 3주가 아니라 몇 개월은 잡았어야 했을 거다. 중요 지역만 순방한 정도로 어리광피지 마라.”
“아이고.”


그래도 간신히 버텨는 냈다.

“지난 일을 가지고 무얼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고 그러는지… 쯔쯧!”
“맥이 빠지니까 그렇죠.”

영혼을 혹사 당한 기분이다.



“한동안 푹 쉬어야지.”
“아무것도  하고?”
“여독이 너무 깊어서 자칫 잘못하면 합병증을 앓을 수도 있답니다.”
“되도 않는 소리를.”




콧방귀를 낀 왕녀 마누라도 일이 바쁘기는 마찬가지인지, 오기 무섭게 중요 안건들이 요약 정리된 서류를 연달아 살펴대고 있었다.


“일 참 좋아하시는구려?”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좋고 싫고가 어디 있나.”
“하여간 그 책임감은.”
“책임이 아니라 의무지.”

셀프로 인생 피곤하게 만드는 분이실세 그려.
그렇다 쳐도, 권력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반인의 수백, 수천, 만 단위가 하지 못할 일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혹사 당해준다는 거 자체로 그러한 이들로선 복된 일이다만, 한편으론 그로 인해 부조리며 불합리가 해소되는 건 아니니,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영 아니긴 한데 말이지.


‘일하고 싶은 애들 불러다가 시켜야지.’


문제는 사람 새끼가 권력을 차지하면 엇나간다는 게 문제란 말이지.


‘권력자가 뒷돈 챙기고 부정부패 일삼으며 배를 불려대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고.’


그나마 민주주의 시대엔 투표로 엿이라도 먹인다만, 전제주의 시대엔 그조차도 힘들고.

“하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존중합니다. 존경하고요.”
“공허한 소리 마라.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아니요, 진짠데.”



내가 못 하는 일, 하기 싫은 일은 실은 내색 일체 없이 자처해서 한다. 존경스러운 일이지.
그런 존재를 케어하고 떠받치는 역할이라. 나쁘지 않을지도.



“멜 님은요?”
“네가 알아보지 그러더냐? 왜 매번 본인에게 묻느냐?”
“그야….”


눈치 보이니까?
적어도 이곳 세계? 이쪽 세계에서 1순위는 왕녀 마누라가 맞으니까.
그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게 그녀인데 어쩌냐.



“네가 그녀를 1순위로 여기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본인 눈치  필요는 없노라.”
“그래도 대외적으로도, 당장에 제 앞에 있는 건 당신입니다만?”
“그건 네 사정이지.”



이상한 사람일세. 자신을 우선시 여겨준다는데도  저런 반응이람?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나 합의라도 있었던 건가.
아니, 그거야 당연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걸 어쩌고 저쩌고 헤아릴 수 있을 거 같진 않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다고 치면, 뭘 할 생각인가?”
“그러게요.”


계획한 건 많다.
다만 선택 사항  가장 주의깊게 여겨야 할 건.



‘아바타 양도 문제.’

즉, 에드릭으로서의 삶을 땡 치고, 넘기느냐.
팀장님이 말하기로, 양도 시 그나마 가장 네가 만족할 방식으로는, 나 자신이 에드릭으로서 여태 살아온 방식에 의거해, 기본적인 행동 및 사고 패턴을 복제한 복제체로서 활동하는 식.

즉, 대세에 큰 영향이 미치지 않는 선으로 내가 나로서 활동하는 것에 큰 어긋남이 없는 형태로 아바타를 운용하게 될 거라고 대충 전해 들었다.
…누군가에게 뺏기는 것보단, 사실상 분신을 놓아두고 몸을 뜬다는 편이 적합하리라.

“…….”

근데 그렇게 된다면, 솔직히 홀몸이면 상관이 없는데 이곳에 남겨진 그녀들은?
아니, 남겨졌다고 말하는 게 가당키는 할까?



“대답을 못 하는  보니 미련이 많나 보군.”
“미련이라기보단….”
“책임감인가? 그거야말로 하찮군.”
“…….”
“급한 건 아니니 멜하고 제대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해보도록.”
“그래야겠죠.”

이곳에 남는다는 선택을 하면, 아마 이곳 시간으로 향후 수십년을 무난하게 살아야할지도.
아, 누구들 기준에선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은 사치의 극치들을 맛보는 걸 테지만….



‘거기다 에드릭 아바타를 포기함으로써 잃게 될 상실감도 장난 아닐 테고.’




이쪽 비중도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거다.
예를 들자면, 어느 게임 속에서 최상위권에 등극한 캐릭터를 버리고, 어딘가에서 새로이 다시 시작하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이니까.



‘그것도 나름 재미가 있겠지만.’




저쪽 게임에서 즐길 거 다 즐기고 고인물 됐다고, 그 고인물이란 타이틀과 허명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날고 기는 짓에 집착해 포기를 못 하는 건, 어느 의미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거다.




‘괜히 기억 소거술을 받는다는  아니구나.’



엄청난 명작 게임도 여러 차례 즐기면 감동이 덜하다.
흔히 그거 안 본 뇌, 그 게임 안  뇌 삽니다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실제로 그게 가능하다면?


‘거기다 신체 노화마저 해결 가능하다니까.’

신체 노화를 억제한다 해서 수명이 무한인 건 아니란다.

원기가 쇠하면 노화를 억제해도 수명이 급속도로 줄고, 결국 버티지 못 하게 된단다.
그러니 원기를 채우는 것까지 포함.


그럼에도  2가지가 전부 보장되도, 인간이 끌어안을 수 있는 기억의 한계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단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기억 소거.


‘본사는  대단해.’

후배 녀석이 고유 공간을 구입해서 그쪽 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살겠다고 한 예도, 따지고 보면 엄청 신기한 예인데 말이지.
땅을 사는 게 아니라 공간 째로 산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고 보니 우리 부인께옵서도 이곳에서의 생활, 의무를 다 마치면….”
“내 의지는 아니지만, 멜의 이야기를 들어본 바로는 손해를 볼 것 같진 않더군. 본인의 빌어먹을 아바마마도 따지고 보면 그걸 위해 삽질을 반복해 온 셈인데,  쪽이 먼저 그쪽으로 앞서가면,
그건 그것대로 유쾌하지 않을까 모르겠군.”

“…우리 부인께선 국왕 폐하가 그냥 승하해 대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인지요?”
“그러한 광오한 인간은 어디로 뛰쳐 나가면 안 돼. 온 세상에 민폐를 끼칠 족속이니.”
“그래도 카일론 기준에선 좋은 왕 아닙니까?”
“왕으로서는. 그러나 왕이 아니라면? 되려 그가 맡은 자리가 폭정을 일으키거나 폭거, 전쟁, 학살을 일삼는 자리였다면? 그는 그걸 아주 충실히 이행했겠지. 그 누구보다도 현철하게!”
“…….”
“그걸 탓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 그렇게 따지면 이 몸도, 본인도 할 말이 없긴 마찬가지니까.”
“그러면?”
“그냥 내가 싫다. 그가 나와 멜에게 행한 짓. 그것에 대한 반발과 적대심에 일환으로 여기도록. 아버지이기에 검을 빼들어 목을 치지 않는다 뿐, 그는 충분히 그런 짓을 벌였어. 우리에겐.”
“…….”
“이건 이쪽 사정이니 그대는 개의치 말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는 어지간해선 개인사에 끼어들지 않는다.
그게 곧 존중이고, 그러한 존중이  기본적인 스텐스기도 했으니까.
끼어들 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


“카일론 쪽은 언제쯤 방문할 참입니까?”
“가고 싶나? 간다 치면 그가 우릴 내버려 둘 일이 없겠지. 그렇다고 국경까지 튀어 나오게 해서 거기서 접선하는 것도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걸 테고. 어찌됐든 그는 우리 둘의 윗손. 황제며 황후가 됐다며 부모 된 자를 경우에 없게 대접하고 대우하면, 그로 인한 병폐는 고스란히 우리 황실을 뒤흔들 테지.”
“그렇다고 완전 방치도 문제가 있을 텐데요?”
“그건 어떻게든 짜맞추면 되는 거고.”



하긴.
주목 받는 것보단 조용히 묻어 가는 쪽이 기획하고 조작하기도 좋긴 하지.

…딱히 나쁜 일이라 생각은 안 한다.
오히려 그런 예의며 기본 도리를 지키려다 전쟁 나고 사단 나면, 그거야말로 국제적 문제로 불거지는 건데, 그럴 경우 우리가 직격탄을 맞는 게 아니라 당장 피해를 입는 건 오로지 백성들뿐이다.

“별일 안 생겼으면 하는데요.”
“일은 생길 거다.  아비이나 결코 세상을 대충 산 적도, 대강 넘어간 예가 없지.”
“……그거  가슴이 울적해지는 이야기로군요.”
“적어도 진심으로 떠나고자 한다면 내 아비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가도록. 그래보았자  년 안 남았다. 그는 여전히 중병을 앓고 있고, 혹여라도 삿된 짓으로 수명을 연장하거나, 사술을 부리거나 금기를 범하면, 역으로 그게 그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무너뜨릴 테니, 그로선 아~주 초조하겠지.”

드물게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다.
선이 굵은 얼굴이지만, 그만큼 개성이 강하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 탓에 무척 매력적으로 느끼고야 만다.

인간적으로 말이다.



“내 눈치 보고 억지로 뜬눈으로 날을 지새울 필욘 없다. 먼저 눈을 붙이도록.”
“…그런데 슬슬 합방할 때도 되지 않았는지요?”
“할 때는 멜과 함께다.”


응?


“그런 약속이었으니까.”

 들은  없는뎁쇼?




“…그래서 여태 이 몸을 건들지 않은 거 아니었나?”
“아닌데요?”
“…….”
“…….”

우린 서로, 아주 거창한 오해를 하고 있었나 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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