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3화 〉134. 왜 이따위 전개가 됐나이까?
“헨델.”
“네, 말씀하시죠?”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주둔지로 돌아온 뒤로 자기 막사에 날 앉힌 뒤 손 하나 까닥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제국의 하나뿐인 절대자이신데, 이 정도밖에 해드릴 게 없어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니, 이래서야 짐이 민폐 끼치러 온 격밖에 더 되겠나?”
“민폐는 맞지 않사온지요? 저야 폐하께서 걸음하셔도 크게 개의치 않사오나, 부하 장병들은 폐하께옵서 이곳에 친히 방문하셨다는 이유 하나로 온갖 것을 신경 써야 할 테니까요. 존엄을 대하는 것만으로 과한 부담으로 위장이 썩어가지 않을지요?”
“…….”
넌 날 돌려 까는 거냐, 아니면 악의 없이 순수한 진실을 털어 놓는 거냐? 사람 참 헷갈리게 만드네!
“자제하지.”
“현명하십니다. 이런 곳에 오실 바엔 적진으로 가서 수괴들의 수급을 취해 용맹을 떨치시는 편이 이롭지 않으시온지?”
심지어 적진으로 가서 공을 세우란다.
나보고!
나에 대한 평가가 너무 좀 편향된 거 아니냐?
“경은 짐을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닌가?”
“품위며 권위를 지켜드려야 함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감히 되지도 않은 버러지들이 폐하의 기휘를 훼손하려 든다면, 마땅한 벌이 필요하겠지요. 실질적으로 폐하를 해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사옵니다만, 도전을 허하는 거 자체만으로 무수한 이들의 불충이 될 테지요. 그 부분 만큼은 철저히 파악하고 있사오니 부디 안심하시길.”
“…….”
그게 아니잖아요, 이 사람아.
뭔가 좀 많이 엇나갔다?
뭐 본인 기준에서 죽일 수 없는 존재니 어차피 어중간한 자객이나 암살자, 대놓고 달려드는 강자조차 무의미하다 여기는 걸지도.
단지 수준 미달의, 그녀 식 표현으로 벌레가 내게 도전하는 거 자체가 본인 자존심과 체면을 망가뜨리는 걸로 이해하는 걸 테지.
날 거르고 감히 폐하께 덤벼? 이 새끼가 돌았구나? 뒤져랏!
……무시무시하네 정말.
“그보다 이곳에 어떤 유희 거리를 찾아 방문하셨는지, 슬슬 일러주실 때도 되지 않았는지요?”
“유희 거리라.”
전혀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는 뭔가를 언질 받기라도 하셨수?
“역시 직할 1전대의 전대장다운 혜안이옵니다! 이미 전부 헤아리고 계셨군요!”
거기다 수행원이랍시고 온 노인네가 갑자기 이상한 헛소리를 나불댄다.
“후훗!”
그리고 헨델, 넌 왜 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앉았는데?
“폐하께서는 피를 원하십니다.”
앙?
예?
뭐라고요?
피? 피리의 그 피? 만두피의 그 피 말하는 건 아니겠지?
“피라… 흥겨운 축제가 되겠군요.”
저기요, 님들? 제발 제가 아는 말 좀 해주세요. 전혀 못 따라가겠는데요?
언제부터 내가 이런 놈들 착각에 휘말려 오락가락해야 하는 신세가 된 거지?
저기 황후님? 마누라 님? 이거 님이 의도하신 건가요?
“그렇군요! 제가 할 일을 드디어 깨우쳤사옵니다!”
응?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폐하께선 부디 편히 기다리시길. 번거로운 잡일은 모두 제게 맡겨주시옵소서.”
“오, 능히 충신이로다! 이것이야말로 기사의 표본!”
이 정신 이상한 것들이 왜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를 쳐대는 거지?
“…….”
그래 얼마나 미친 짓 하나 어디 구경이나 해보자.
침묵한 채 지긋한 시선으로 고개만 끄덕거려주자, 가슴에 손을 얻고 가벼이 군례를 남긴 헨델이 뒷걸음으로 막사를 나섰다.
“경도 영양가 없는 소리를 굳이 입에 담았군.”
“번잡함을 앞서 처리하지 못한 불충, 용서하시길.”
“…….”
뭔 개소리냐고. 알아먹게 설명을 하라니깐?
그런 눈치를 자꾸 주는데, 왜인지 뿌듯한 미소만 짓고 서 있다.
덕분에 그 노인네 뒤며 다른 쪽에 자리 잡은 수행원들조차 뭔가 부러운 듯, 존경하는 듯한 시선들을 던져대고 있었는데, 영문을 모르겠네!
‘내게 관심법을 달라.’
체면 때문에 함부로 묻기도 그렇고!
아니 물을 수야 있는데, 저 당연하다는 듯한, 확신에 가득 찬 시선이 너무 뼈아프다고! 뭐냐고 저거!
이따금 보내오는 과한 시선도 내심 불안한 판에!
설마 저 노인네가 아까 먼저 날아가서 똥개 훈련 시킨 걸로 흑심 품고 이쪽 먹이려고 수작 부리는 거 아냐?
‘…아니지, 나 같은 부류도 아닐 테고.’
당하면 엿을 먹이다.
그냥 엿도 아니고 과한 엿을!
물은 덤이다.
물은 답을 알고, 사람을 매우 건강하게 하는 유익한 생명의 본질과도 같은 구성물.
고로 물은 많이 마시게 해야지
딱 과하지 않게.
그러나 본인은 과하게 느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이쯤이면 죽겠구나 하는 느낌이 딱 들어서, 삼도천이나 스틱스 강에 발목을 담글까 말까 고민 좀 하게 될 정도는 되게끔!
“…….”
이렇게 보면 내가 엄청 나쁜 놈 같잖아.
아무튼 그렇게 앉아 차분히 쉬는 건지 고문 당하는 건지 모를 심경으로 대기하길 한두 시간.
갑자기 주변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노인네가 잽싸게 막사를 빠져 나갔다.
그리곤 5분도 채 안 돼서 활짝 핀 얼굴로 막사에 들어서더니.
“폐하, 헨델 경이 재물들을 이끌고 왔사옵니다.”
응? 재물?
재물이라니? 무슨…?
불안함을 억누른 채 막사를 나서자, 버젓이 보였다.
주둔지가 조금 고지대다 보니, 저 멀리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몰려드는 무수히 많은… 괴물? 괴수? 마물? 종류도 참 다양하네.
육안으로 보면 애매해 눈앞에다 물로 된 투명 렌즈를 형성해 시야를 확대한다.
“…….”
날 아주 엿 먹이려 작정을 했네.
헨델이 마물들을 몰이하듯 끌고 오고 있었다.
심지어 도망치는 포지션이 아니라, 도주하는 초식 동물을 뒤에서 쫓는 맹수처럼, 철저하게 뒤에서 이쪽 주둔지를 향해 몰이하듯 몰아붙이고 있는 형상.
고작 인간 나부랭이 하나가 뒤를 쫓고 있을 뿐인데, 형태도 다양하고 척 봐도 인간으로선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체구며 체격을 지닌 괴물이며 마물들이 겁 먹은 강아지 마냥 허겁지겁 이쪽 부근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옆으로 튀세요, 왜 이리로 오는데?
라는 의문을 품기도 전.
못 참고 정면이 아닌 옆으로 도주하려는 마물이 순식간에 무언가에 꿰뚫린 듯 꼬꾸라진다.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하니, 다시 정면으로만 내달리는 괴물마물들.
“…….”
진짜 몰이가 맞구나.
어처구니가 없네.
덕분에 이를 지켜보던 병사들도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도대체 우리가 뭘 보는 거지?
이럴 거면 우린 왜 여기서 저것들과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을까?
라는 식의 허무와 허탈, 황당과 탄식이 짙게 서린 그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를 간과하기가 무척 껄끄러워졌다.
애초에 위협을 느끼는 그게 아니다.
이 진풍경이 뭔 사태인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능숙한 병사라면 저 위험한 마물 무리들이 몰려드는 걸 보고 진형을 갖추던가 방어 태세를 갖추던가 뭘 해야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멀뚱히 이쪽을 보며 절망 어린 눈초리를 던져올 따름.
마치 왜 저흴 이리 괴롭히시나이까? 하는 원망 어린 시선들이 아닌가.
그들의 얼굴엔 존경과 경외심 따윈 단 한 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천인공노할 것들을 보았나.
…라곤 해도 대체 이건 뭔 사태인데.
어, 설마 피를 보고자 한 게 장병들 존나 굴려서 죽자 살자 구르는 걸 보고 싶었다, 라는 흉악한 의미로 해석한 건 아니겠지?
‘…찜찜하네.’
여기서 내가 나서는 게 맞긴 한 건가?
“살아남으면 강해질 것이오, 죽은 자는….”
뒤에 서있는 노인이 혼잣말을 주절대는데, 미친 것처럼 느껴지는 연유는 뭘까.
“조금 지나치군.”
아냐아냐, 이러다 괜히 미친놈, 학살자란 평판 생기게 생겼다.
내가 직접 안 죽여도, 죽임을 방조 방관 유도 의도했다는 식으로 퍼지면, 마물과의 훈련을 빙자해 학살을 자행했다, 그건 훈련이 아닌 유희를 빙자한 몰살극! 라는 식으로 퍼져 봐라. 이미지 작살나지.
‘…황후 마누라는 좋아하려나?’
공포와 경외를 뇌리에 심고 척수 반사로 그 절망을 일깨워야 감히 대들지 못한다는 걸 대놓고 내게 가르치듯 엄포를 놓아뒀던 마누라시다. 충성스러운 부하도, 충성스럽지 못한 부하도 예외없이 공포란 이름의 절망을 영혼 깊숙이 쑤셔 박아 넣으라 했던 걸 난 아직도 버젓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가벼운 한숨.
장탄식을 터트릴 걸 애써 참은 채, 나는 몸을 띄웠다.
그리고 그 상태로 주둔지에서 조금 떨어진 부근까지 향할 때쯤, 어느새 마물 무리들이 눈앞까지 쇄도하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상황!
“잘하는 짓이다.”
본의 아니지만 이 문제를 야기한 건 내 탓이니, 어쩌겠나, 내가 수습해야지.
애완견이 똥을 싸지르면 그건 누가 치우냐? 주인이 치우는 거다.
안 치우면 뭐다? 쌍욕을 퍼먹어야지.
이왕 하기로 한 거, 게다가 번잡한 건 질색이니….
‘단숨에 처리한다.’
가뜩이나 주변이 칙칙하고 뭔가 습하기도 하니 능력을 활용하기도 퍽 나쁜 환경은 아니고.
이윽고 발목 부근서부터 차근차근 안개가 서리기 시작한다.
어느덧 저 괴물이며 마물들 무리로 인해 시야가 꽉 막힐 정도가 됐다.
몇 초 후면 이 몸을 덮쳐오겠지.
살벌한 형상들이 공포에 질려 침을 질질 짜내며 괴성을 내질러온다.
서 있는 나로 인해 도주 속도가 늦춰지는 게 걱정되기라도 하는 걸까. 내게 짓쳐드는 괴물 딱지들만 아주 죽을 것처럼 괴성이며 포효를 내질러온다.
‘누가 불쌍한 건지.’
무심코 혀를 찬다.
세상은 왜 이리도 불합리하냐.
너희나 나나, 왜 얌전히 살려 하는데 주변에서 자꾸 훼방을 놓는지 모르겠구나.
기구하도다, 기구해!